[기고/최한우]위험국가 여행 규제법안 행정편의적 발상 아닌가

입력2006.06.26 03:03


고 김선일 씨 납치 살해사건이 발생한 지 2주년이 되었다. 2004년 6월 이라크 진출 한국기업에 근무하던 김선일 씨는 이라크 이슬람 무장세력에 의해 납치돼 살해됐다. 이 사건은 정부의 재외국민보호 정책기조의 대전환을 가져오는 등 우리 국민이나 정부에 두 가지 문제를 제기했다.

첫째, 관계 당국의 구출작전이 적절했는가 하는 점이다. 당시 우리 정부는 알 카에다와 연계되어 있는 알 자르카위가 주도하는 이라크 이슬람 무장세력을 나이지리아 무장납치세력과 거의 유사하게 인식했던 것 같다. 여기서 해법이 꼬인 것이다. 서아프리카 무장세력은 대개 금품과 보상을 노린 것이지만 알 카에다 연계 이슬람 테러 집단들은 다르다. 그들은 이른바 점령군인 미군에 대항하여 무력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김선일 씨보다 며칠 앞서 납치된 터키인이 소속된 기업은 철수 경고를 받고 즉각 철수했다. 터키 측은 무장세력이 점령군 미군을 돕는 외국인 하청기업의 철수를 목적으로 테러를 감행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우리 외교통상부는 문제의 한국 기업의 즉각적인 철수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우리 측은 돈으로 협상을 하려고 하였다. 테러집단에 대한 우리 당국의 전문성 결여가 막을 수도 있었던 참상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둘째, 이 사건 이후 우리 정부는 국민의 이라크 접근을 지금까지 완전 봉쇄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정부 여당은 여기다 더해 국민 해외여행규제법안을 만들어 놓고 국회 비준을 기다리고 있다. 이 법안에 따르면 우리 국민이 정부가 지정한 위험국가에 접근할 경우 여권 회수, 벌금 등 법적 제재를 가하는 것이다. 점점 불안해지는 국제 상황을 감안할 때, 정부 규제는 점점 강화되고 확대 적용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 당국의 이러한 발상과 접근 방법에는 문제가 있다. 김선일 씨 사건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다. 피해 당사자들의 경험 부족과 대응하는 당국의 전문성 부족이 초래한 예외적인 사건이었다. 그런데 극히 예외적인 이 사건을 빌미로 우리 국민의 해외여행과 활동을 제한하는 법안까지 만드는 것은 과잉 대응이며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격이다.


현재 이슬람 국가는 57개에 이른다. 이슬람 국가와 같이 백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거나 접근을 꺼려하는 나라들에 대해서 우리는 오히려 쉽게 접근할 수 있다. 한류가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경쟁력이다. 만일 서구 백인 국가들의 잣대로 우리 국민을 통제할 경우 우리는 기회를 잃게 될 것이며 중장기적으로 대외 경쟁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포화 상태이다. 앞으로 많은 젊은이가 도전정신과 개척정신을 가지고 비서구권 국가들로 진출해야 한다.

물론 외교부로서는 규제와 통제가 가장 쉬운 방법이 될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과도하게 우리 국민의 해외 활동을 제한하는 것은 행정편의주의라고 지적받을 수도 있다. 실제로 정부 당국은 일단 위험하다고 규정해 놓고 보는 것이 행정적으로 편하기 때문에 과잉규제 가능성은 늘 논쟁이 될 수 있다. 더불어 당국의 위험국가 판단과 관련한 전문성도 늘 논쟁거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세계 175개국에 나가서 활동하는 우리 국민의 안전을 정부가 100% 보장한다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다.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통해 효과적으로 안내하거나 또 필요 시 경고할 수 있지만, 최종 책임은 국민 당사자가 지는 방향으로 시급히 정책을 전환해야 할 것이다.

최한우  아시아문화개발협력기구 대표, 한반도국제대학원대 총장

ⓒ 동아일보 & 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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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최종책임은 개개인이 부담하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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