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 모 여상에서 꿈 같은 알바 생활(이라고 쓰고 지옥)을 보내던 때가 있었다....
암튼 레인보우라는 중고음반점이 있다 그 여상 앞엔. 워낙 작은데다 분식점 옆에 겨우 낑겨들어가는 환상적인 입지여서 다닐 때도 앞날이 불안했었는데 세상에, 아직까지도 살아있었다.
원체 명일동이란 동네와는 연이 없기도 하거니와 억지로 보습학원 다니면서 뒤로는 에로만화 구하고 다녔던 중학교 때외엔 별로 갈 일도 없었기에 한참 안 가고 있다가 근간... 근간? 하여튼 자전거를 마련한 덕분에 가게 되었는데 암튼 그 가게가 살아있었다. 주인도 살아있었다. 별로 늙지도 않았다. 벌써 4년 전 얘긴데 말이지.... 케미컬 브라더스제 빅비트에 별다른 뇌내 화학효과를 일으키지 못하던 때였으니 정확하다. 저걸 이 주인장이 나한테 팔아치웠었거든. 덕분에 뭐 이번 펜타포트 때 그네들이 온다 해도 별로 꼴리질 않는다.
뭐 하도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라 그런지 날 기억하는 눈치는 아녔다. 가게 안의 콜렉션은 좀 더 줄어있었고, 특히 클래식은 씨가 말라 있었다. 이런.... 4년 전에도 봤던 싸이프러스힐 라이브 앨범이 보인다. 프로모션용 비매품이라 안 팔린 모양이다. 난 프로모션용 비매품이라도 과감하게 샀었다.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 같은 거라면!


음... 암튼 싸서 좋다. 몇 개 더 샀었는데 뭐뭐 있더라.
요즘 같은 세상에, 아직도 그 자리에서 그대로 살아남아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주인장은 4년 만에 들른 그 날도 내가 그 가게를 느물느물 들락거릴 때처럼 일렉트로니카 뭔가를 이것저것 믹싱하고 있었는데, 뭐에 쓸려는 건지 모르겠다.
가게 성격이 성격인 만큼, 뜨내기보단 동네 단골들이 잘 이용하는 가게인데 어느 순간 꽤 매력있는 안경소녀가 들어와서 주인장과 얘길하는 걸 어깨 너머로 들어볼 수 있었다. 세상에, 블랙사바스를 사네....


블랙 사바스의 리마스터링 앨범. 동방신기랑 맞먹는 판매고인 8장 판매를 자랑하고 있다고 주인장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잠깐 들어봤는데 꽤 괜찮다. 리마스터링다운 박력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그러고보니 요번에 나온 도어즈 리마스터링도 음질 하난 죽여줬음. 근데 스피커가 개판인 내 방에선 틀어봤자 거기서 거기. 큰 맘 먹고 5.1채널로 착각하게 들려준다는 헤드폰이라도 사야할까 싶다.
시완레코드 것들이 주루룩 있길래 얼마에 파느냐고 물어보니 것들은 안 판다고 한다. 역시 중고음반점 사장들은 음악에 일자무식이어야 소비자가 편해지는데 말야.



3주 동안 들락거리며 구한 것들. 디페쉬모드는 뭐 본바탕이 좋다보니 그럭저럭. 근데 한 장 빼먹어서 냈지 염병할. 초기 전깃불악단은 예상외로 신선했고.... 만족도는 제리 가르시아가 제일 높았다. 블루지한 게 밤에 틀어놓으면 죽여줌. 그런데 역시 우리 집은 스피커가 황이네.
암튼 안경걸은 이제 20대 초반 같은데 척 베리에 제퍼슨 에어플레인에 뭐 이상한 것들만 고르고 있었다. 음, 다음에 보게 되면 집주소랑 이름이랑 나이랑 가족관계랑 주기적으로 먹는 비타민제 상표가 뭔지 물어봐야겠다. 내가 먹는 이마트제 메가비타민이랑 같은 거라면 좀 안타까울 거 같다. 그놈의 두툼한 비타민 정제 한 알을 소화시키려면 물을 목구멍 속으로 퍼부어야 한다. 그러니까 동병상련 루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