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K에 어서 오세요 - 소설
타키모토 타츠히코 지음, 아베 요시토시 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히키코모리, 대학중퇴, 대인공포증, 광장공포증, 능력전무. 더해서 자살충동 있음. 그러나 근본적으로 겁쟁이.
왜 이렇게 된 거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뭐가 가장 큰 문제지?
그것은 악의 조직 때문이다. 혈기왕성한 젊은이의 의욕을 꺾고 방구석폐인으로 만들어주는 거대한 악의 단체 NHK 때문이다. 그렇다, 때문이다. 온 천지가, 때문이다.
그렇다면 너는 선인가?

이 질문은 일본에서 전후에 만들어진 [울트라맨]과 [가면라이더] 등의 특촬물의 세계관이 만들어낸 공식, 어딘가 존재하는 악의 조직과 그것을 물리치는 정의의 히어로라는 환상극적 공간이 어떻게 개인이데올로기로 변주되었는지에 대한 현재 지표다. 꿈꾸는 대상으로서의 세계에 대한 추구와 구체화는 달아날 세상에 대한 현실적인 환상극으로 옮겨간다. 악은 어딘가 존재한다구. 반드시 존재한다구.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사람들의 골수를 빨아먹으며. 세상을 야금야금 망쳐놓고 있지. 그렇지 않다면 세상의 부조리와 불행은 설명되지 않으니까. 우울증에 걸리고 은톨이가 되서 편의점 직원외엔 사람을 만날 일이 없게 된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으니까.

하지만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건 너다.
왜 구할 수 있느냐고 묻지 말아라. 너가 구할 수 있다.
아니 구해야 한다. 세상은 바로 너니까. 그렇게 해야 너의 가치가 있는 거니까. 넌 버러지에 빌어먹는 놈이지만 그렇게 해서 넌 세상을 구하고 너자신도 구원받는다.
악의 조직 NHK에 대항해서.

웃기는 소리란 걸 안다. 하지만 그 농담 같은 이야기가 현실과 병치될 때만이 힘이 나고 웃을 수 있게 되며 자신에 대해 보다 확신할 수 있게 된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게 된다. 무적이다 무적.

그런데 죽으면 하느님이 관리하는 천국과 사탄이 관리하는 지옥 중 어디로 가게 될까? 더해서 연옥도 있다. 심판날까지 버틸 이들을 위해 준비된 장급 모텔 사이즈 어둠침침 대기실. 그러나 분명 내세 따윈 신경 안 쓰고 있다. 왜냐하면 천국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으니까. 그리고 수도 많거든.

바야흐로 하느님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 하느님이 자리한 세계 안에 들어서면 점지된 전사가 되어 악을 물리치게 된다. 운명적이다. 그리고 그 운명은 도처에 깔려있다. 온라인게임, 로리타포르노, 통신판매 환각제, [파이트클럽], 정신병원, 종교종교종교, 자기개발서 등등. 구원은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 구원은 돈과 등가교환된다. 꿈꿔라, 구원이 있다. 그리고 가난과 자기모멸이 찾아온다. 구원을 손에 넣었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그러니까 [NHK에 어서오세요]는 너무 많이 알아버린, 수많은 자조적 결말들로 뇌가 쩔어버린 이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온갖 사소한 것들에 집착하고 파고들며 싸구려 환각제가 만들어낸 배드트립 속 자질구레한 망상 속에 절어살지만 그것들이 구원이 될 수 없다는 걸 '확신'하고 있다. 확신하지 않는다면 그렇게까지 절망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죽어버리고 말테다, 라는 말이 입에 붙은 남자는 자신이 시도하는 죽음을 향한 장엄한 모험이 언제나 우스꽝스럽게 끝날 거란 걸 안다. 자신이 구제불능이란 걸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정된 광대극은 꼴볼견인 결과를 가져오고 더욱더 죽어버리고 싶어진다.

어떤 위로도, 치료도, 그 비슷한 무엇도 도움이 되지 않으리란 걸 안다. 그 모든 치료제의 가치는 땅에 떨어진지 오래고 그 프로세스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텔레비전과 인터넷의 지나친 발달 덕에 머릿 속에 리스트로 작성되서 기억되어 있다. 이건 나름대로 기분을 나이브하게 고양시키지만 저건 성욕까지 감퇴하게 만들고, 요건 알콜도수 9도쯤과 섞이면 심장을 폭발 직전까지 몰고갈 것이고 조건 내 습관상 세시간동안 다리만 떨게 만들 것이고. 우울증이면 더 우울한 세상에 던져서 반성하게 만드는 거야 시에라리온 같은 동네로. 그러나 아마 뭔가 깨닫기도 전에 총알이 머리에 박히고 반성 없이 나무토막처럼 죽어버리겠지. 고생하면서 살아서 감동적으로 인생승리 달성한 인간극장 단골손님들의 사연을 들어볼까나? 근데 그게 나랑 뭔 관련이 있나?

그렇다. 면역력이 생겼다. 백신따윈 듣지 않는다. 그럼 어쩔래?

그렇게 사는 거다. 질질 끌고 가는 삶, 자신의 DNA를 물려줄 가치마저 없는 삶. 믿었던 모든 것이 붕괴되고 오래된 가치는 모욕 받았으며 수많은 좌절과 악몽을 봤다. 두려운 것이다. 그러나 두려워서 아무 것도 못하고 있으면 또 불안해지는 것이다. 그 어정쩡한 방황이라니. 아주 좋은 방법이 하나 있다. 악을 만드는 거다. 자신보다 저열한 인간을 만드는 거다. 책임을 떠넘길 원죄덩어리를 만들고 위로받을 수 있는 인간을 굽어보는 걸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과연 NHK. 다시 빙빙 도는 중.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하는가.

문제는 여기로 다시 돌아온다. 만족. 차라리 집구석에 쳐박혀 사는 것에 마냥 만족할 수 있다면 그걸로 모든 게 끝일 것이다. 그러나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안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상황만이 아니라 남극에 숨어서 전세계에 특공원정대를 뿌리는 악의 조직만이 아니라 싸구려 환각제에 든 출처불명 전분의 지나치게 높은 퍼센티지가 아니라 그보다 근본적인 무언가가. 그리고 그것은 그 수많은 오류와 방황과 진저리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드는 구원에의 의지다. 죽음을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조차도 그렇다. 자신을 파멸시키고자 하는 행위조차도 그 의지는 어떤 괴상한 종류의 천국을 꿈꾸고 있었다. 핵심은 천국이 아니라 꿈꾼다는 동인 그 자체인 것이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마침내 모든 것이 명명백백해진다. 전사는 결코 전사가 아니었고 히로인은 오래 전에 망가져 있었으며 조력자는 무책임하게 떠나버린다. 해피엔딩 해피엔딩. 아무 것도 변한 게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해피엔딩. 그러나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오지만 거기엔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 내가 아닌 우리가 되어 있다는 것에서, 적어도 누군가는 날 위해 울어준다는 점에서. 이 단순한 것을 위해서 NHK는 분쇄되어야 했다.

 

사실 분쇄된 건 아무 것도 없지만. 뭐 어찌되었든, 해피엔딩.


N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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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n 2007-05-10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포일러일까. 지금 읽고 있는 책이라 제목만 봤어요. :)

hallonin 2007-05-10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포일러는 그다지 없습니다만 일부러 모험을 감행하실 필요도 없죠. 헐.

iamX 2007-05-11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BC에 어서오삼(무플 방치-?- 위원회)

hallonin 2007-05-11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는 등으로 말하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