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시크릿 2006을 봤다. 당연히 아드리아나 리마를 보기 위해 본 거였지만 정작 아드리아나 리마(휘하 모델군)는 별로 카메라에 비치지 않고, CBS에서 촬영 컨셉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모델들 불러다 벌이는 눈요기 잔치에 대한 한폭의 대형 추상화로 잡으려고 작정한 모양인지 반라로 오가는 톱모델들의 숨막힐 정도의 피트감과 모델 개개인이 보여주는 돈과 천성과 노력이 하나로 뭉숭그러진 그 멋대로 만지면 죽습니다-_- 라고 외치는 듯한 압도적인 위압감은 인상 깊었지만 전체적으론 좀 흐릿했다.

되려 인상에 남은 게 저스틴 팀버레이큰데 씰과 리키 마틴이 나왔던 2005년과는 달리 2006년에는 가수라곤 이 방정 맞아보이는 친구 한 명만 나온다. 그런데 자신의 노래들을 믹스한 두번째 공연에서의 안무가 장난 아니게 멋지다.

http://dory.mncast.com/mncHMovie.swf?movieID=10017097820061220003732&skinNum=1

자연스러운 막춤 시추에이션을 곳곳에 배치시켜놨지만 전체적으론 꽉 짜인 군무를 기반으로 한 공연으로 특히 뒷조명이 최대 루멘으로 올라갔을 때, 멈춰선 자세에서 팔과 몸통의 동선을 따라 뿌려지는 모래로 정점에 달하는 안무 디자인과 살짝 구부러진 무릎의 언밸런스함이 죽여준다. 예전에도 잘 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때는 '마이클 잭슨?' 이런 느낌이었는데 이 라이브는 춤 자체로써 '재밌다.'

 

춤 자체로써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에게 지독하게 충격을 줬던 것은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 물론 돈이 없어서 라이브로는 못 보고-_- 학교에서 틀어줄 때 심드렁한 얼굴로 보기 시작했다가 우와.

말그대로 우와.

남자백조들이 보여주는 단순하고 직선적이지만 힘이 넘치는 안무는 어린이날에 교육방송에서 보던 오래된 고전발레 [백조의 호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감각을 던져줬다. 거기에 더해 게이섹슈얼리티를 자극하는 설정과 어우러지는 정신분열증적 스토리, 희노애락 온갖 다양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엉키고 설키는 박력 넘치면서도 우울한 이야기가 음악과 인간의 몸만으로도 완벽하게 가능하다는 사실이 불러오는 충격이, 내 머리를 강타했었다. 

올해 공연이 7월에 있는 걸로 벌써부터 스케줄이 잡혀 있으니 여전한 인기라고 해야 할려나.... 1995년에 초연했으니 어느새 11년째. 완연히 고전의 자리를 꿰찬 퀴어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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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7-01-18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퀴어 드라마로 봤는데, 아니라는 사람도 있어서 뻘쭘했어요.-.-;
게이섹슈얼리티를 자극하는 설정은 이성애자에게도 적용 가능한가요?
빅토리아 시크릿 2006을 챙겨 보시다니.
링크까지 걸어 주시니 감사. 헷.

hallonin 2007-01-18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퀴어적인 게 아니면 뭐가 퀴어적인 건지 난감하군요. 인류애일까요? 제가 알고 있는 지식을 수정해야 할지도 헐헐.
음, 이성애자도 그런 설정을 보고선 자극이 되느냐는 말씀이신지?
그리고 빅토리아 시크릿은 남자들이 더 좋아하겠던 걸요. 컨셉이나 행사시기를 봐도 한해 동안 고생한 평민들에게 신이 내려주는 선물잔치 같은 느낌이랄까...-_- 뭐 스펙 자체가 보통 인간과는 다른 여자들이니.

blowup 2007-01-18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그런 의미의 질문.
근데 자극이 되는 게 맞겠죠.
대부분의 란제리 쇼 시청자가 남자들인데 반해,
빅토리아 시크릿 쇼는 여자들도 꽤 관심을 갖던걸요.
요즘엔 톱모델들이 연예인이니까요.
다른 차원의 스펙을 가진 여자들을 보는 건 여자들에게 더 흥미로울지도 몰라요.
타짜에서 김혜수의 노출씬에 더 열광한 게 여자들이라잖아요.

hallonin 2007-01-18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만 저 [백조의 호수]에서 보여주는 게이섹슈얼리티의 무차별적 자극가능성에 대해선 개별적으로 좀 의문의 여지가 있습니다 흘흘.
음, 그렇군요. 그래서 백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