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닌 1
아사노 이니오 지음 / 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일상의 치명타가 서서히 가해진다. 시간은 흘러가고 나이는 먹어가며 사회는 요구하고 의식은 번민한다. 인생은 선택이다. 그리고 그 씨X놈의 선택은 계속된다. 분단위 초단위로 계속된다. X같이.

날아가버리고 싶다. 그러나 착지할 땐 어떻게 하지? 너무 높이 날았다가 다다른 곳에서 다리가 부러진 사람들. 혹은 부러지는 것이 두려워서 영원히 날아다니는 사람들. 조금만 더 나이가 들면 우리는, 비웃을 수 있는 사람이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침을 뱉으면 내 얼굴에 고스란히 날아든다. 억지로 뚜껑이 닫힌 머리통은 터져나갈 것처럼 끓어오른다. 우아아아아아악! 악! 악!

 

 

폭발할 거야?

그래.

뭐 그러라지.

 

 


 

 

 

[소라닌]은 공황이 일상이 된 젊은이들의 세계로 들어간다. 아니, 굳이 들어간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것은 나와 당신과 그 누군가의 이야기, 표현대로라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려도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 세계에서 젊음을 보내야 하는 모든 이들에 대한 '흔한' 이야기다. 보라구, 결국 그들은 좌절하고 고통스러워하고 그래도 뭐 그냥저냥 삶을 살게 되겠지? 뻔한 이야기야. 뭔가 화끈한 반전을 원하겠지만 그래, 모든 것에 질려버려서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려도 코웃음만 칠 누군가의 예상처럼 [소라닌]은 그렇게 뻔한 이야기다. 그러나.

우리가 겪는 흔한 고통에 대한 비웃음은 잠시 접어두자. [소라닌]은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다. 그리고 그 섬세함이란 소위 감상적인 사소설적 만화들에서 발견되는 두서없는 신변잡기의 나열이나 뻔한 우울증적인 쿨함과는 확연하게 다른 자장을 가지고 있다. 후루야 미노루의 스타일에서 영향받은 듯 하면서도 독자적인 평범함을 뿜어내는 인물들, 얼굴에 주근깨가 잔뜩 나거나, 희멀건 안경잽이이며, 비만형 체질이거나 80년대 마초풍 패션을 한 시대착오적 겉늙은이인 이들의 표정, 동선, 사고, 그리고 결과는 일상의 오소독스함과 풍부한 감정선을 살려내는 그들 캐릭터의 원초적인 매력과 더불어 그 모든 과정의 점착성과 인과의 부드러움을 통해 보는 이를 무장해제시켜서 지독할 정도로 절절하게 공감토록 만든다. 즐거워하고 달리고 소리지르고 우울해하는 그들의 손짓과 말 한마디한마디는 자꾸만 어디서 본 것처럼 눈에 밟힌다. 한탄하고 화내며 원망하는 그 극명하고 실감나는 모습들은 또한 라디오헤드, 오아시스와 벡의 노래를 귀에 꽂고 다녔던 이들이 현실적으로 가졌을 감정의 소용돌이와도 같다. 그렇다고 [소라닌]이 그저 궁상맞게 질질 짜기만 한다고 생각지는 말자. 두 권 동안의 짧은 이야기, 청춘의 한순간 동안 이들은 딱 한 번씩만 울 뿐이다. 단 한 번, 그들에게 주어진 눈물의 순간은 현실의 냉기가 만들어낸 결과에 대해 허용된 잠깐동안의 흐트러짐이다.

울어라. 사실, 처음부터 그들은 어디에도 갈 수 없었다. 꿈은 부러지고 현실은 가혹하다. 생활은 엄연하게 존재하고 시간은 흘러간다. 행복에 대해 물어봐도 아무도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는다. 꿈을 몰아부치거나 현실을 몰아부치거나 그들에겐 결국 한가지 길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게 싫다면 종교적인 광기에 젖는 수밖엔 없다. 결국 [소라닌]은 그 제목에 준하게 내밀하게 거칠고 잔인한 이야기다. 아무데도 갈 수 없었던 이들에 대한, 그러나 어디로든 가고 싶어했던 이들의 모습. 마치 어떤 이의 소망처럼 단지 조금만이라도 그들의 모습을 지켜봐주는 것, 그것만이 유일한 구원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 구원.

그래서 그들은 사랑을 한다. 혹은 했다. 그리고, 하고 있다. 지켜봐줬었고 지켜보고 있다. 그들로 하여금, 우리로 하여금 살아있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그 보잘 것 없는 위로에 의해서 모두는 그 얼마나 오랜 삶을 부지하고 있는 것인가. 이 추레한 삶에 대한 [소라닌]의 대답은 그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다. 구차하다고, 진부하다고 성급하게 결론내리지 말자. 그러기 전에 살아나가는 이들의 모습을, 뒤늦게서야 불러오는 오래 전 기억을,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갈 짐과 공동체의 아련한 풍경들을 보자. 추레하지만, 눈부시다.

 

왜 울고 있니 너는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왜 웅크리고 있니 이 풍요로운 세상에서

너를 위로하던 수많은 말들 모두 소용이 없었지
어둠 속에서도 일어서야만 해 모두 요구만 했었지

네가 기쁠 땐 날 잊어도 좋아
즐거울 땐 방해할 필요가 없지
네가 슬플 땐 나를 찾아와 줘
너를 감싸안고 같이 울어 줄게
네가 친구와 같이 있을 때면
구경꾼처럼 휘파람을 불게
모두 떠나고 외로워지면은
너의 길동무가 되어 걸어 줄게

<무지개> - 산울림

 

아아, 꿈을 꾸고 있는가. 그러나 꿈속에서든 현실에서든 우리는 살아간다. 줄어든 희망과 작은 기대, 보이지 않는 안타까움과 저 가슴 깊이 새겨진 따스함을 안고.

 

 

 

 


폭발한 거야?

그래.

 

그럼, 이제 웃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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