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게 있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좋다고 칭찬을 날리면 쓸데없는 반골정신, 또는 기대치에 대한 자동적인 수치 저하를 위해서, 결과적으로는 일부러 그 화제의 물건을 접하려들지 않는 것. 그렇게 되면 대개 한 시기를 놓치게 된 시점에 그 소문의 진원지를 직접 접하게 되는데 그때 보이게 되는 반응이란 대개 두가지다. '에이, 역시 그럴 줄 알았어'와 '빌어먹을 내가 왜 이걸 이제야 잡은 거지?'. 두다멜의 베토벤 교향곡은 분명 후자쪽에 위치하고 있다.

나이다운 에너지가 펄펄 넘쳐흐르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냉철하고 스마트하다. 운명의 부담감도, 9번 다음 가는 교향악의 장대함을 꿈꿨던 베토벤의 야심도 부드럽게 흘려버리며 폭발할 것 같은 리듬 속에서도 자신의 자리들에서 미끄러지지 않는 이 젊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이들의 정체 또한 놀라운 것이었다)는 정열적인 힘으로 가득 채워진 음들이 냉정한 계산을 통해 베토벤이 설계한 화려한 화원으로 구축되는 경이로운 과정을 맛보여주면서 청자로 하여금 웃고, 또 웃고 감탄하게 만든다. 바렌보임과 아바도의 찬사도 필요없다. 이 연주는 '한방에 느끼게 만들어주는' 연주다.

 

 

 

 

 

PS.

베토벤 교향곡 7번. 어쩌면 내가 이 에피소드에서 상상했던 그 음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2권에서의 급조 오케스트라가 추구한 나름의 경박한 파격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계산적이고 영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다메 칸타빌레]를 본 이가 두다멜의 지휘에서 파격의 열정을 조절하며 고답적인 해석을 견지하려 했던 7번 교향곡에서의 치아키와 비슷한 성격을 발견해내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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