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에게 있어 [무간도]는 다소 아쉬운 영화였다. 그것은 '무간지옥'이라는 제목에서 따온 그 무시무시한 제목에 비추어 영화가 너무도 '인간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무간도]에서 진영인은 홀로 범죄 조직 속에 들어가 있지만 황국장과 부자관계와 비슷한 정서를 꾸준히 유지하기에 세상에 달랑 혼자 남았다는 억울한 면모가 상쇄된다. 더군다나 인덕이 높은 나머지 한침의 두둑한 신뢰를 얻게되며 그의 정체를 어렴풋이나마 알게된 조직원에게조차 그 높은 품성 덕에 폭로의 위기를 넘기게 된다. 그리고 같은 입장인 유건명과 진영인은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심적으로 서로에게 공명한다. 이 모든 것들은 홍콩영화의 장르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인의, 그 아시아적 정서의 전통적인 현현으로 파악된다. 그래서 유건명이 진짜 무간지옥에 들어가 있음을 절절하게 느끼기 위해선 거의 심리스릴러에 가까웠던 [종극무간]까지 가야했으며 [무간도]의 화면이 내비치는 이미지들은 CF적 감각을 바탕으로 한 도시적 세련됨과 더불어 홍콩영화 특유의 후까시에서 완전하게 벗어났다고 보긴 힘든 혈통성을 보장하고 있었다. [무간도]는 온전히 무간지옥이라고 부르기엔 좀 화려하고 너무 인간적인 세계였다.
시나리오만 봤지 원작은 안 봤다고 누누이 얘기했던 마틴 스콜세지는 [디파티드]에서 어떤 인의도 느껴지지 않는 진짜 지옥을 열어보인다. 여기서 진영인역이 컨버전된 빌리 코스티건은 정말 살아남기 위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바둥거려야 할 운명이다. 그와 그를 침투시킨 국장과의 관계는 정이라곤 거의 느껴지지 않으며 철저하게 계급관계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빌리와 보스인 코스텔로와의 관계 또한 오직 냉정한 업무관계의 연장에서만 파악될 뿐이다. 그래서 그는 코스텔로의 손에 의해 죽게 될지, 아니면 무언가 틀어져서 바깥세상과의 연결이 모조리 끊기게 될지를 계속해서 걱정하는 신경증적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은 유건명의 컨버전인 콜린 설리반 또한 마찬가지다. 반복해서 보여지는 주의회의 이미지 속에서 신분상승의 욕구를 강하게 내비치지만 코스텔로와의 위험한, 그리고 철저하게 '비즈니스적'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그는 유건명처럼 충분히 능력있는 면모를 보이면서도 훨씬 비열한 인상으로 쉬지 않고 초조해하며 불안 속에서 조급증에 시달린다. 더군다나 이 둘은 한가지 공유하는 게 있지만(원작과 비교하여 가장 달라진 부분이기도 하다) 그것은 서로에게 공감하는 정서가 아니라 그나마 인간답게 살기 위해 차지해야 할 조건, 제한된 위안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 한정된 자원을 차지해야 하는 절박함에 있어서 또한 이 둘은 교감이라기 보단 서로 어떻게든 물어뜯어야 할 처지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멧 데이먼은 이 두 바닥난 인물들을 연기하는데 있어서 손색이 없는 기량을 보여주며 그것은 스콜세지의 기름기 쫙 뺀 연출과 부합된다. 보스턴시에서 벌어지는 이 아귀지옥을 다루면서 스콜세지는 어떠한 후광과 이미지적 화려함도 동원하지 않고 지독하게 삭막하고 건조하게, 심지어 [무간도]와 비교하자면 촌스럽고 투박하게까지 묘사해보인다. 그래서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무간도]에서 느껴졌던 그윽한 눈빛 하나로 만사를 파악했던 고수들간의 무언의 합이 아니라 주먹질과 끊이지 않는 진한 욕설, 내내 폭발할 것 같은 분노가 오가는 투견장에서의 진탕속 개싸움에 가깝다.

사실상 두시간 이십여분의 상영시간 속에서 더이상 얘기할 건덕지가 없이 온전하게 이야기 자체를 끝마치는 [디파티드]는 원작과는 달리 남은 이에게 영원한 억겁의 지옥을 선사해주진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확실하게 [디파티드]가 [무간도]와 같은 자리에서 시작하여 다른 이야기가 된 것을 보장한다. 마지막씬에서도 드러나는 그 노골적인 미장센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는 가히 '미국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영토성과 관련해서도 말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산 채로 지옥을 순례하는 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죽은 이(the departed)'에 관한 이야기기 때문이다.
추가 - 생각해보면 이상하게도 난 이 영화에서 잭 니콜슨이 별로 기억에 남지 않았는데 아마 짐 호버만은 기억에 안 남는 정도가 아니라 상당히 맘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5004001&article_id=43075
잭 니콜슨의 과잉연기에 대해선 적절하게 동의. 그러나 그렇다고 2인자였던 레이 윈스턴이 더 무서웠다고 하는 것은 먹물 특유의 텍스트에 끌려간 엄살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