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솔직하게 살고 싶다
김지룡 지음 / 명진출판사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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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비슷한 시기에 서갑숙 씨의 책과 이 책을 동시에 읽었다. 여자로서 말하건데, 이 책이 더 재미있었다. 서갑숙 씨의 책이 용기 면에서 훨씬 대단하다는 건 알지만, 역시 책이란 글재주, 입담, 말발이 재미를 많이 좌우하기 때문인가 보다. 김지룡 씨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끌고가는 능력을 갖고 있다. 저자의 방탕기 혹은 섹스 유람기도 매우 흥미로운 읽을 거리였고, 남성이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손쉽게 발표하고 그것 때문에 서갑숙 씨에 비해서는 정말로 전혀 아무런 단죄도 당하지 않고 스무스하게 넘어가는 것도 부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 책의 진정한 미덕은 원조교제의 원인 분석이었다. 수많은 사회면이 세상 도덕이 땅에 떨어졌느니 말세라느니 하면서 한탄조의 말만을 하고 있고, 어쩌다 나온 분석도 단지 도덕이 붕괴됐니 요새 애들이 변했니 하는 식의 이야기가 주류였지만, 이 책은 원조교제의 원인에 대해 이제까지 나온 모든 책 중에서 가장 정확한 분석과 판단을 내리고 있다고 본다.

왜 하필 여고생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보통은 여자애들이 못됐다는 식의 평가를 내리기 일쑤이지만 그는 이 문제를 남성의 입장에서 예리하게 파악하고 있다. 그들이 가진 소녀 환상이 문제의 핵심이고, 그것에는 오늘날의 쪼그라든 남성, 위축된 남성성이 그 근본 원인이라는 판단은, 정말로 혜안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내놓을 수 없는 분석이었다. 김지룡씨의 문화 분석은 언제 읽어도 가장 기발하고, 참신하고, 그리고 가장 정확하다. 앞으로도 이런 글을 많이 써주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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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농담
박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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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풀어내는 솜씨는 뛰어나달까, 읽는 재미는 있었기에 끝까지 읽었지만 글쎄. 읽은 뒷맛은 굉장히 불쾌했다. 처음에 나온 부도덕한 부유층과 맨뒤에 나온 희생적 서민 가장 아버지의 대비도 너무 상투적인데다가, 별로 와닿지도 않았다. 부도덕한 부유층이야 그렇다 치고, 중간에 뜬금없이 형이 날아와서 집안 정리 다 해주는 수퍼맨적 결말도 그렇다 치지만, 정말로 뜬금없는 치킨 박의 등장은 대체 뭔가? 지금 농담하나? 지금 70년대 계몽운동 하나?

게다가 그 부유층. 가만히 앉아서 당하는 그 며느리는 짜증이었다. 며느리가 짜증이라기보다는 그녀를 그렇게 무능하게 그려내는 작가에 대한 짜증이었다. 그 죽은 남편도 짜증이었다. 저 죽이는줄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피눈물 흘리면 대체 뭐한단 말인가. 버스는 떠났는데. 며느리의 경우, 그 수퍼맨같은 큰오라비가 나타나서 구원해주지 않았으면 꼼짝없이 죽을뻔하지 않았나. 그녀는 그렇게 무력한가? 세상 여자가 여기 나오는 시어머닛자리를 위시한 악녀와 며느리같은 무능한 여자, 두종류 뿐인가?

하나, 그 수퍼맨 큰오라비의 말은 귀담아들을만 했다. 강한자에게 약하고 약한자에게 강한 세상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하라는 것. 그가 그 방법을 잘 휘둘러 부도덕한 부자들을 등쳐먹었을 때야 후련했고, 그 방법은 잘 익혀둬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한 부분의 감동으로 다른 부분의 짜증을 덮기엔 짜증이 너무 깊고도 짙었다. 왜 이 얘기가 격찬을 받는지 모르겠다. 개연성도 별로 없고, 이야기 구조도 뜬금없고, 나오는 캐릭터는 너무 전형적인데다가 작위적이기까지 해서 현실성도 없는데. 아, 하나 있군. 문체는 뛰어났다. 어쨌거나 끝까지 보게는 만들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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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여자 -상
공지영 / 한겨레출판 / 199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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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소설을 한마디로 축약하자면 '청승'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녀의 소설은 청승맞다. 여자들은 항상 세상으로부터 몰매맞고 걷어차이고 밟힌 끝에, 슬프게 저물어간다. 마치 정인이 그렇게 생각했듯이, '30세 이후 여자의 삶은 한귀퉁이에 놓인 장롱모서리처럼 서서히 부스러져가는 것'인 양. 그러나 그것을 외면할 수 없는 까닭은 그녀가 그려내는 그 청승맞은 삶이, 실제로 우리 주위에서 숱하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 책 <착한여자>의 오정인도, 어김없이 짓밟히고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상처받는다. 어찌보면 바보같아서 짜증이 날 지경이다. 그래도 이 책은 단순한 청승도, 단순한 한탄도 아니다. 이책의 가치는 대안이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착한 여자>를 읽은지 여러해가 되어가지만, 이 책은 아직도 가끔씩 꺼내어 읽곤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끝부분을. 그 햇살이 가득 고이는, 그녀가 일구어낸 땅이 너무나 따스해 보이기에. 숱한 상처를 입은 그녀가 마침내 자신만의 일을 찾아 깊게 패인 웃음을 지을 때, 수많은 여성들이 같이 안도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여주인공이 죽어간 고등어나, 자살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에서, 보다 진일보한, 그리고 보다 희망적인 결말이자 현실적인 결말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삶을 가장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따스히 그려나간 명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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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
박완서 외 지음 / 정민미디어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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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단편이 실려 있었고, 모두 괜찮았지만, 윤명혜의 <꼬레> 앞에서, 다른 모든 글들은 내 뇌리에서 지워졌다. 그만큼 강렬했고, 그만큼 인상깊었으며, 그만큼 훌륭했다. 루벤스의 <한복 입은 남자>, 그 하나의 실마리를 가지고 '어떻게 루벤스가 이 한국인을 만나게까지 됐을까'에 대한 이야기를 나름대로 창작하여 풀어낸 이 중편은, 단지 루벤스와 이 남자 꼬레와의 인연뿐만 아니라, 이 남자 꼬레의 처절한 인생 역정을 지극히 담담하게 그려낸다.

임진왜란이라는 난리통에 모든 것을 잃고 노예선에 팔려온 남자. 그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 속에서 조선에서의 삶을 <전생>으로 치부해버린다. 그리하여 이탈리아까지 떠나서 그곳에서 정착해서 살게 된 꼬레였지만, 실제로 그의 조선에서의 기억은 항상 몽환적이고 가물가물하고, 그는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닌 상태로 이탈리아에서 죽은듯이 살아간다.

생사의 경계, 피해자인 조선 노예뿐만 아니라 그가 저승사자인 줄 알았던 가해자 일본 졸병들들조차 실상은 죽음의 공포 앞에서 한낱 약자일 수밖에 없었던 상황, 꼬레의 이탈리아에서의 삶, 그곳에서조차 존재하는 지주와 소작인의 갈등, 생명력에 넘치는 그의 아들이 젊은 혈기로 뛰쳐나가는 이야기, 노예들의 운명, 수많은 이야기들을 한데 섞어 회색의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 이 꼬레이지만, 이 이야기들은 단순한 회색이 아니다. 그 결을 하나하나 훑어보면 조금조금씩 다른 이야기, 다른 빛깔, 그 모든 것에 진한 무게를 갖고, 하나의 그림 안에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있었다.

아아, 말발이 딸려서 이 작품 <꼬레>의 감동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작품 전면에 흐르는, 이 뉘엿뉘엿 기울어가는 석양의 태양빛 같은 느낌을 뭐라 설명하면 좋을까.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생사를 가름하는 그 깊은 무게를 찾기 위해 수없이 고뇌하면서 이 소설을 썼을 작가 윤명혜의 그 깊은 삶에 대한 고민을, 어떻게 나타내면 좋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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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전설 타케루 1
시마자키 유즈루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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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의 고대 일본을 무대로 한 전쟁물인데...이게 과연 창작물이라고 할 수 있는건지 심히 의심스럽다. 예를 들어 관포지교의 우화. 우화를 우화로서 <인용>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이 책은 그것을 아예 스토리 진행의 방편으로 이용하고 있다. 극중 주인공이 실제로 관포지교에 나오는 옛 중국인들과 그야말로 이름과 나라만 다르지, 상황, 하는짓, 결말 모든 것을 똑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이 만화 내용중에는 삼국지나 열국지 등등 중국 고사에서 본듯한 이야기들이, '중국 고전에 이런 내용이 있다'는 언급은 일언반구도 없이 마치 창작인양 버젓이 들어있다. 주인공만 일본인으로 바뀌어서, 내용은 옛 우화와 똑같이. ...그래서 그것이 재미잇느냐. 가령 관포지교의 우화를 길게 늘이거나 독창적인 어떤 요소를 가미했다면 표절이 아닌 고전의 재창작이겠지만, 이것은... 이름 외에 뭐가 다르냔 말이다;; 이야기 삼국지를 보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한마디로 실망스러운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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