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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상
양귀자 지음 / 살림 / 199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명작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훌륭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10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여전히 저에게 진한 감동을 안겨주는군요. 나성여관이라는 그 서민의 삶 중에서도 바닥에 위치한 공간. 끈적끈적하고 텁텁한 때 냄새가 질펀하게 흘러나오는 그곳에서, 아웃사이더적인 면모를 보이는 삼수생 '나'의 이야기로 소설은 진행됩니다.
운동권에 투신한 형, 그가 어느날 데려온 반송장같은 정체불명의 인물. 그들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진정한 아웃사이더라면, 감각은 있지만 가정환경이 받쳐주지 못하여 결국은 화류계 쪽으로 흘러가버리는 누나는 시대에 가장 처절한 방식으로 적응해버린 아웃사이더일 겁니다. 그 외에도 끝내 객사해버린 지저분한 노인, 악다구니같은, 그러나 그렇게 억척같은 삶에도 불구하고 주류에 편입될 수 없는 어머니, 자리만 차지하는 아버지...시대의 엄혹함은 얼핏 그와 상관없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평범한 서민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는 법입니다. 가난은 보다 직접적이죠.
뭐랄까, 이 소설은 깔끔합니다. 주인공의 시선이 아웃사이더적이기 때문일까요, 자신만은 그 진흙구덩이 속의 인간이 아닌양 바깥에서 관찰하는 듯한 시선을 견지하는 주인공 덕분에 책은 감정이 절제된, 매우 깔끔한 어조로 시종일관 진행되는 거죠. 하지만...
그 깔끔함 속에는 어떠한 과장적인 수사로도 묘사할 수 없는 삶의 진실이 들어있었습니다. 진솔한 삶,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발가벗겨져 그대로 드러나는 현실의 애환. 그 와중에서도, 겉으로는 강한척 하지만 사실은 순수한 주인공을 보며, 왠지 찡해오는 가슴을 부여잡은 독자는 저뿐만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수많은 삶의 애환이 한데 모여 그려낸 어두운 시대, 소외된 사람들의 모습, 그 속에서 존재하는 '진실'... 그것이 희망이 아니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