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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바보 이야기 - 4학년 2학기 국어 교과서 수록도서
윤구병 글, 홍영우 그림 / 휴먼어린이 / 2010년 5월
어린시절, 엄마는 저녁을 먹고 나면 나를 등에 업고
마실을 다니셨다.
낮동안 일하느라 서로 어울릴 시간이 없어서 저녁이면
그렇게 서로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셨다.
매일 보는 얼굴인데도 매일 무슨 할 말이 많으신지
바느질거리를 들고 가서 바느질하면서 수다를 떨기도 하셨다.
이웃집에 숟가락이 몇개인지 저절로 알 수밖에 없는 것은
다 그런 이유에서다.
그러던 마을에 텔레비젼이 들어오면서 마실문화는 점점 사라졌고,
소소하게 김양식을 하다가 여러가지 시설이 좋아지고
김공장이 생기면서 돈을 많이 버는 사람, 적게 버는 사람이 생겨나게 되었고
마을의 인심은 정말 없이 살던 때보다 메말라 갔다.
비단 우리 마을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물질은 풍요로워지고, 먹을 것은 많아지는 데도
어쩐지 마음은 점점 더 삭막해져만 가는 것 같다.
길을 가다가 남과 부딪혀도 잘못했단 사과 한마디도 안하는 사람들...
네가 아니면 일찌감치 자신들이 느꼈던 세계를
아이들에게 가르쳐준다. 경쟁에서 이기라고, 너만 잘 먹고 살면 된다고...
이런 우리의 모습을 윤구병 선생님은 옛이야기로 옮겨 놓으신 것 같다.
울면 지는 거라는 말... 이 말은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울고 싶으면 울면 되는 걸... 이렇게 자연스러운 행위마저 할 수 없는
꽁꽁 얼어붙은 우리들의 모습이 불쌍하다고 우는 것도 같다.
옛날 어느 마을에 무서운 병이 돌았대.
무슨 병이냐고?
눈알을 빨갛게 달아오르는데 가슴은 얼음덩이처럼 꽁꽁 얼어붙는 병.
서로 쳐다보기도 싫고, 얘기도 안 나누고, 누가 곁에 오기만 해도 싫은 병.
이 돌림병이 온 마을을 덮친 거야.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는 걱정이 태산 같아.
잘 걷지도 못하시는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마을 한가운데 섶을 쌓고
불을 피우라고 하셨어. 왜냐고?
옛날 같으면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불을 피워놓고 노래도 하고 춤도 추었거든.
저렇게 마을 한 가운데서 불길이 피어오르는데도
사람들은 사립문을 닫아걸고 내다보지도 않아.
야단났네.
생각다 못해 할아버지는 해님에게 부탁했어.
따뜻한 햇살이 사람들 마음을 녹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신 거지.
그런데도 소용없어. 가뭄이 들고, 곡식이 다 타들어가는데도 사람들
마음이 풀리지 않아.
별 수 없이 할아버지는 사람들 마음을 녹이는 약을 찾아 길을 떠나시기로 했어.
노새 한 마리와 반딧불이 하나가 따라나서.
노새는 몹시 절름거리는 늙은 노새야.
반딧불이는 꽁무니에 불이 희미하다고 놀림감이 되어 외톨이가 된 애고.
그런데 다른 마을도 마찬가지였어.
말을 붙이면 팔짱 끼고 말없이 노려보거나 획 고개를 돌려 버려.
땅에 침까지 퉤 뱉으면서 말이야.
할아버지 일행은 어느덧 깊은 산속에 접어들었어.
와~ 시냇물에 연분홍 꽃잎이 떠내려오네.
참 곱다.
어라, 꽃잎 사이로 뭐가 떠내려오네.
댓잎으로 만든 조그만 배야.
할아버지 일행은 시냇물을 따라 위로 위로 올라갔어.
갑자기 앞이 환해졌어.
숲 사이로 빈터가 보이고, 시냇가에서 댓잎으로 배를 만들어 물에 띄우고 있는 애가 있어.
얼마나 반가웠겠어.
어라, 할아버지가 노새에서 내리자마자
그 애가 두 팔을 벌리고 달려오더니 늙은 노새의
절름거리는 다리를 꼭 붙들고 앙~ 우는 거야.
불쌍해, 불쌍해 하면서 말이야.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
절름거리던 노새의 다리가 멀쩡해지고, 다시 기운이 솟아나는 거야.
이번엔 반딧불이를 손바닥에 놓고
불쌍해, 불쌍해. 얼마나 외로웠니?
하며 울음을 터뜨리네.
그러자 반딧불이 꽁무니에서 별빛처럼 초롱초롱한 불빛이 되살아났어.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할아버지가 멍하니 지켜보고 있는데
할아버지 보다 훨씬 더 늙으신 할머니 한 분이 나타나서 일행을 맞는거야.
할머니 얼굴에 피어난 웃음이 어찌나 따뜻한지 온갖 예쁜 꽃이 다 그 웃음을 보고
피어난 것 같았어.
할머니가 할아버지께 말씀하셨어.
"기다렸어요. 내일 저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세요. 다 잘될 거예요."
이 말을 듣자 할아버니는 그만 엉 하고 울음보를 터뜨리셨어.
노새도 울고, 반딧불이도 울고, 그 자리가 온통 눈물바다가 되었어.
이 눈물이 시냇물을 이루어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려 갔어.
시냇가에서 빨래를 하던 아주머니들은 그 물에 손을 적시자마자
얼어붙은 마음이 스르르 풀리는 걸 느꼈어.
아주머니들은 다정한 눈빛으로 웃으며 수다를 떨기 시작했지.
개울에서 민물고기를 잡던 남자들은 그 물을 마신 고기들을 솥에 끓여 먹고 나자
눈빛이 달라졌어. 서로 안고, 뒹굴고, 소리 지르고 야단 났네.
울보 바보는 지나는 마을마다 사람들을 만나면
불쌍해, 불쌍해 하면서 울음보를 터뜨렸어.
그러면 온 마을 사람들도 덩달아 울었어.
그 눈물은 사람들 마음을 녹이고,
개울로, 강으로, 바다로 흘러가면서
온 세상 얼어붙은 사람들 마음을 녹이고, 온갖 풀, 나무, 짐승, 물고기들에게도
생기를 주었대.
저 밤하늘에 반짝반짝하는 거 보이니?
저건 지금 반딧불이가 꽁무니에서 불을 밝히는 거야.
같이 놀자고 동무들을 부르는 거지.
이 그림책의 그림은 홍영우님이라고 일본에서 활동하고 계신 분이다.
그림의 느낌이 참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