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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ㅣ 미래의 고전 1
이금이 지음, 이누리 그림 / 푸른책들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국민학교 3학년 때다.
2학년때까진 마을에 있는 분교에 다녔었는데 3학년에 올라가면서 십리나 떨어진 본교로 다녀야 했다.
분교에선 한 반 밖에 없어서 중간을 갈라서 1학년과 2학년을 나눠 수업을 했었는데
본교에 가니 한 학년만 4개 반이고, 1학년에서 6학년까지 모두 있으니 내 존재가 한없이 작아보이고 어리벙벙한 기분이었다.
가장 친한 동네 친구와 한 반이 되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친구와 학교 교정을 이곳 저곳 돌아다니곤 했는데
가끔은 수업종이 울린 줄도 모르고 헤매기도 했다.
학교생활도 낯설었지만 담임선생님 역시 ’체전’이니 뭐니 해서 늘상 출장중이었기 때문에 임시 선생님들로
늘상 바뀌고, 자주 자습하라며 안들어 오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그래서 반은 항상 시끄러웠고 개중에 유난히 튀는
까불이들이 자꾸 괴롭히기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둘째 시간이 끝나고 중간체조를 하러 나가는데 갑자기 앞이 까매진다.
누군가 휙~ 두 손으로 내 눈을 꼭 가린 것이다. 깜짝 놀란 나는 그 손을 더듬었다.
당연히 동네 친구라고 생각했었는데 만져보니 사마귀처럼 뭔가 나 있는 낯선 손이었다.
뗄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장난스레 힘을 주면서 죄는게 이게 뭔가 싶었다.
손을 떼고 난 다음에 보니 햇살에 비춘 승용이가 눈부시게 환하게 웃고 있었다.
갑자기, 모든 소리, 모든 사물들이 다 사라져 버리고, 내 몸이 비눗방울처럼 가벼워져서 공중에 붕 뜬 것 같고
쿵쾅거리는 심장소리만이 오로지 존재하는 경험을 했다.
그 일이 있고나서 맨 뒤자리의 승용이는 쉬는 시간이면 맨 앞자리인 내 책상앞에 와서 턱을 괴고
나를 보고 웃고 가곤 했다. 그럴때마다 왠지 부끄러워지곤 했다.
<첫사랑>을 읽으면서 내 첫사랑은 언제였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승용기가 떠올랐었다.
첫사랑이라고 하기엔 어딘지 부족한, 뭐가 뭔지 몰랐던 기억이지만, 아직도 난 그 손의 감촉을 기억하고 있다.
아주 가끔씩 가라 앉아 있었던 그 기억은 수면 위로 떠올라 빙긋거리게 만들곤 한다.
이금이 작가의 <첫사랑>엔 참 다양한 사랑들이 나온다. 아이에서 노인까지 많은 사람들이 여러 방식으로 사랑을 하고 있다.
그리고 사랑이란 감정뿐만이 아닌 자기만 아는 뻔뻔하고도 이기적인 모습들도 눈에 띈다.
혼자만의 감정일 때는 상관 없지만 둘이 나누는 과정에선 마찰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도 같다.
세상이 많이 변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선물과 데이트 비용에 고민하는 아이들의 이벤트적인 연애법에 놀랍기도 하다.
한뼘 쯤 더 자랐을 것 같은 동재가 다음엔 어떤 식으로 사랑할 지 궁금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