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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ㅣ 그림책 보물창고 50
모디캐이 저스타인 글.그림,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우리 집에는 만 두 살을 몇 달 남겨놓은 아기가 있다. 그런데 이처럼 조그만 아기에게도 자기 나름대로의 취향과 호불호가 있다. 얼마 전부터는 자기 맘에 드는 옷만 입으려고 하고 때로는 엄마가 골라준 옷을 입지 않겠다며 떼를 쓰기도 한다. 이렇게 아기들은(혹은 아이들은) 점차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서 자신만의 고유한 생각과 입장을 가져나가게 된다.
보물창고에서 펴낸 <책>이라는 그림책은 이처럼 자신만의 이야기를 찾아나가려는 어린 여자아이의 성장(?) 그림책이다. 서커스단의 광대와 소방대의 소방수라는 뚜렷한 자기 색깔의 직업을 갖고 있는 부모와 미래의 꿈이 우주비행사인 오빠를 두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는 문득 자기에게는 자기만의 이야기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겨가면서 자기의 이야기를 찾아내기 위한 모험에 나서게 된다.
아이들에게 이 그림책을 같이 읽어주면서 엄마 아빠의 직업은 무엇인지, 오빠나 누나의 장래 희망은 무엇인지를 물어볼 수도 있을 것이고, 또 한 장 한 장 넘겨가면서 등장하는 여러 가지 다른 동화 속의 주인공들에 대해서도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이 평소에 부모나 가족들에 대해서 갖고 있었던 생각을 들어줄 수도 있을 것이고, 예전에 읽었던 다른 책들에 대한 기억도 다시 되살려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그렇다면 우리 예쁜이(또는 똘똘이)만의 이야기는 뭐가 될까?”라는 질문을 던져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책은 한 편의 이야기와 예쁘고 아기자기한 그림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 부모에게 여러 가지 생각할 것들과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거리들을 제공해줌으로써, 아이들의 사고능력 발달에 좋은 자극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대부분의 그림들은 배경이 없는 대신에 그림자만 뚜렷하게 그려져 있어서 마치 동양화의 여백의 미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일부의 페이지에는 화려한 배경 그림이 장면을 꽉 채우고 있기에 마치 파도를 타듯이 아이들의 시선을 잡아끌 것 같기도 하다. 마지막에 즈음하여 주인공이 왼손으로 글을 쓰는 그림도 인상적이었다.(혹시 작가가 왼손잡이였는지도...)
책장을 열게 되면서 이야기의 아침이 시작되고, 책장을 닫으면서 이야기의 하루 일과가 끝나게 된다는 구성도 재미있고, 온 가족이 모여 앉는 아침식사와 저녁식사의 자리가 이야기의 출발과 맺음의 장소로 설정된 것도 가족의 의미를 알게 모르게 강조해 주고 있는 의미 있는 장치인 것 같다.
다소 아쉬웠던 점은 글씨 크기가 조금 더 컸다면 어린 아이들이 읽기에 더 좋았을 것 같았고, 그림책에 등장하는 여러 다른 동화나 이야기에 대해서 책의 마지막에 역자나 출판사의 주석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몇 페이지에 등장하는 빨간모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주석이 가능할 것이다.
(*p) 빨간모자 : 할머니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는 빨간모자를 쓴 어린 소녀를 늑대가 유인하여 잡아먹었다는 이야기
이와 같은 주석이 있다면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좀 더 풍부하고 다채로운 부연설명을 덧붙이면서 이 그림책을 읽어 줄 수 있을 것 같고, 아이들도 이러한 주석들을 보면서 이 책들도 사달라고 부모님에게 조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