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오는 아프리카>를 리뷰해주세요.
눈 오는 아프리카
권리 지음 / 씨네21북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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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르르.  

20대 중반쯤 그년, 아니 그녀와 헤어지고 술을 먹고 골목길을 뒹굴다가 잃어버린 삐삐가 알고 보니 내 몸 속에 박혔던 걸까. 다음날 아마도 “그래, 돈 벌어서 성공하고 만다”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었는데 말이다. 지르르. 그렇게 오랜 만에 느낀 기분이다. 

걔의 호출을 기다리다가 까무룩 잠이 들면 기다렸다는 듯 품속에서 지르르 울리던 삐삐, 비퍼, 페이저, 메신저, 뭐, 아무려나. 그때의 무심한 듯 설렜던 기분을 권리의 장편소설 <눈 오는 아프리카>를 읽고 다시 느끼고 말았다.  

그러니까 난 30대 중반을 넘긴 지금도 소설을 쓰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스무 살 때부터 품은 꿈이니, 꽤 오랫동안 놓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난 소설을 쓰기 위한 노력을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전혀 하지 않았다.  

일 핑계를 댈 수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그 동안, 지금과 마찬가지로, 소설 말고 몰입할만한 뭔가를 찾지 못한 상태였다. 다시 말해 야근의 연속인 날도 있었지만 그다지 내 정신을 쇠약하게 할 만한 무언가는 아니었다. 

그러다가, 문득 정말 쓰고 싶으면 괴로워하지 말고 써봐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쓰려고 하니, 다시 문득 아는 게 너무 없다는 걸 깨닫고, 먼지 쌓인 인문학 서적을 읽기 시작했다.  

렇게 좀 읽다 보니, 뭔가 실마리가 꼬물거리는 게 보이는가 싶었는데, 제길 그러다보니 소설 읽기가 좀 시시해지기 시작했다. 읽지 않은 건 아니지만 취향이 달라졌다. “뭐야? 소설 한권 내내 늘어놓은 얘기를 이 책은 단 세 줄로 정리하잖아?”라는 식이다. 뭘 아는 것도 같았는데, 역시 뭘 잃어버리고도 있었다. 아무려나, 소설은, 그러니까 가볍게 읽은 소설은 <눈 오는 아프리카>가 오랜 만이다.  

“이름이 정말 ‘유썩(You suck : 얼간이)’이에요?” 리셉션에 앉아 있던 남자가 ‘썩’에 힘을 잔뜩 주며 물었다. -75P

‘미술품을 둘러싼 위작 시비를 밝히는 미스터리 형식의 소설이며, 세계 각국을 누비는 여행소설이자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주인공 '유석'은 아버지가 남긴 그림의 진실을 찾기 위해 유럽에서 에티오피아, 케냐, 인도를 거치며 세계를 여행한다’라는 책 소개를 줄여서 말하면, 아일랜드 더블린에 있는 호스텔 주인이 제대로 본 그대로 얼간이의 방랑기이다.  

39개국을 돌고 돌아서 그가 들고 다닌 아버지의 마지막 유작, 젯소를 바른 빈 캠퍼스 <눈 오는 아프리카>의 실체를 킬리만자로가 아니라 눈 내리는 부산 자갈치 시장 골목길에서 고향집 앞에서나 본다. 스트레스로 머리는 빠지고 ‘파로 치면 리콜도 불필요한 페차 수준’으로 몸이 상한 그 길고 긴 여정의 답이 결국 서울에서 KTX로 세 시간 거리의 고향집이라니 얼간이라고 할밖에.

유석이 고통과 고민과 절망과 낙심과 입시 실패와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사업 실패와 친척 사이의 악다구니 등등이 벌어진 바로 그 장소에서 해답을 찾지 않으면 결국 어디에서 찾는단 말인가.  

“아프리카에 눈이 온다? 하하하”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얼룩진 세상 위에 눈이 내리면 어떨까 하는 것이죠. 남들은 척박하다고 하는 땅 위에 언젠가 눈이 내려 세상을 포근히 감싸 주면 좀 더 평화로운 세상이 될 거예요.”  -406P
 

딱 스무 살짜리 세상 물정 모르는 미대지망생다운 소박한 평화론이다. 하지만 유석을 그리 반기지 않는 세계를 돌고 돌아 오체투지의 여행을 다녀온 뒤, 입시니 취직이니 화풍이니 미술계니 명성이니 등이 부질없다는 걸 제대로 깨달고 훌훌 털고 온 후에 나온 이 대답은 익숙한 자갈치 시장의 골목길 풍경 안에 세계를 담겨 있다는 설득력을 갖는다. 
 

소설의 마지막 대목인 이 장면에서 망상에 시달리는 유석의 눈에 비로소 환상처럼 펼쳐진다. 과거의 기억을 밑그림 삼아 색을 칠하듯이. 
 

유석과 같이 여행을 다닌 쇼타가 찾아 돌아다닌 형이 알고 보면, 유석의 아버지와 인연이 있다거나, 또 미스터리의 원인이 된 아버지의 ‘야마 자화상’이 알고 보면, 일본인 학생이었던 형을 위해 담뱃값 은지 위에 그린 작품이었다거나 하는 아쉬운 설정이 눈에 보이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작가 권 리가 352일 동안 39개국을 여행하며 쓴 소설은 구성이나 얼개로 평가 내리기 힘든 진득함이 있다. 올해 서른이 된 그녀의 스무 살 시절부터 습작을 하면서 고민했던 막막함의 떨치고자 떠났을 여행의 기록이기도 한 소설은 깔끔하고 말쑥하게 다듬었다면 그 진득함이, 적어도 그 고단함이 여실히 묻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진가였다면 사진을 찍었을 것이고, 화가였다면 그림을 그렸을 테지만 소설가이니 소설이  남긴 이 기록은 한편으로 나 같은 말뿐이고 생각뿐인 ‘얼간이’가 소설을 쓰기 위해 뭘 해야 하는지, 지르르, 호출을 보낸다. 

추신 : 난 그 동안 워드 프로그램을 얼마나 많이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가, 흰 바탕의 워드 프로그램의 첫 줄 첫 글자 앞에서 깜박거리는 커서만 내버려둔 채로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던가, 라고 자괴감에 빠졌으나 <붉은 쟌느> 위에 젯소로 바르고 다시 <거인의 눈물>을 그렸다가 다시 젯소를 발라 울퉁불퉁 두꺼워진 햐얀 캔버스 <눈 오는 아프리카>만큼 내가 다시 켠 워드 프로그램이 그만큼의 더께를 가졌는가, 혹은 색을 잃고 세상을 흰색과 검정색만 구별하는 유석처럼 종이와 연필만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가, 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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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백년 전 악녀일기가 발견되다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6
돌프 페르로엔 지음, 이옥용 옮김 / 내인생의책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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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금으로부터 2백여 년 전인 19세기 말, 네덜란드령 가이아나(현재 남아메리카 수리남) 커피 농장주의 외동딸 마리아의 열네 번째 생일.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성경책을, 친척 아줌머니들은 향수와 핸드백을 선물했다. 아버지와 엘리사베트 아줌마만 아직 비밀이라는 데 뭘까, 마리아는 궁금하다. 독일의 아동문학작가 돌프 페르로엔이 쓴 <2백년 전 악녀일기가 발견되다>는 마리아의 시점으로 본 열네 살 생일 이후, 몇 달 간의 일상을 적은 짤막한 일기이다.
 

부잣집 귀한 영애답게 까탈스러운 구석은 있지만 사춘기 소녀의 눈으로 본 소소한 일상이 악녀일기로 둔갑한 이유가 무엇일까.
 

드디어 아빠의 선물이 도착했다. 커다란 은쟁반 뚜껑을 열자 그 안에는 작고 까만 선물이 있었다. 초콜릿 케이크? 아니다. 아프리카 흑인 노예 꼬꼬다. 엘리사베트 아줌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작은 채찍을 선물했다. 마리아는 생일 선물로 받은 숙녀용 핸드백은 마리아가 들고 다니기에는 ‘아주 컸’지만 채찍을 넣기에는 ‘작았다’고 일기에 적는다.
 

집 안과 농장에도 노예들이 많이 있었지만 꼬꼬는 마리아의 첫 개인 노예다. 그리고 이후 꼬꼬를 팔고, 다른 노예를 사고, 아빠를 따라 노예 시장을 다녀오면서 마리아는 노예를 대하는 법을 자연스레 익힌다. 그리고 아빠와 루카스가 여자 노예들을 어떻게 다뤘는지 알게 되면서 아픔을 겪기도 한다. 이제 마리아는 개인 교습을 시작했다. 그렇게 유럽의 스위스 기숙학교에 갈 꿈에 부푼다.
 

여기까지가 일기의 내용이다. 이후 내용이 없는 이유는 엘리트 코스를 밟기 시작한 마리아가 요즘 한국 아이들처럼 공부에 치어서 그런 게 아닐까 짐작해본다. 처음에 자기 피부를 ‘아주 안 예쁜 노란색’이라고 속상해했던 마리아는 이후 완벽한 ‘흰색’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교육과 제도를 통해 이성과 지식과 교양을 갖춘.
 

짐작하듯 ‘사춘기 소녀의 성장기’가 이 책의 주제는 아니다. 일기에 스치듯이 등장하는, 인간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노예 문제를 고발한 작품이다. 검은색은 흰색과 가장 대비 차가 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백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마리아가 반한 루카스의 웃을 때 보이는 하얀 이빨처럼, 흰색을 드러내는 배경색일 뿐.
 

좀 엉뚱한 얘기지만 ‘푸드 마일리지’라는 말이 있다. 지구온난화의 주범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먹거리와의 관계를 나타낸 개념이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식빵 300g을 김제(거리 230km)가 아닌 미국산(거리 20,063km)을 사면, 운송거리 차이로 220g의 이산화탄소가 더 내뿜은 셈이 된다는 식이다. 그리고 220g의 이산화탄소는 형광등을 26시간을 더 켰을 때 나오는 양과 동일하다. 그런데 왜 슈퍼에 가보면 미국산 밀로 만든 식빵이 대부분을 차지할까? 당연히 가격이 더 싸기 때문이다. 그 먼 거리를 왔는데에도 싼 원인은 값싼 화석연료 ‘검은 황금’ 석유가 있다. 
 

석유를 먹고 쓰고 입으며 사는 ‘호모 오일리쿠스(Homo Oilicus)’라는 현대인 삶을 2백 년 전으로 돌리면 역시 ‘검은 황금’이라 불리는 아프리카 노예들이 있었다. 다시 말해 노예가 할 일을 지금 석유가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노예 제도는 마리아의 아버지나 루카스처럼 만연한 성 착취 등 인권 유린 이전에 노동력 획득이 목표였다.  

석유 1배럴(159L)은 노예 12명의 1년 치 일을 한다. 다시 말해 욕망을 줄이지 않는 대신, 더 실용적이고 편리하고 일 잘하고 말도 잘 듣는 석유로 노예를 대체한 것이다.
 

18세기의 산업혁명이 노예 제도와 맞물리지 않았다면, 과연 인권 운운하는 노예 제도 폐지가 되었을까. 미국 역사에서 공업 위주의 북부와 농업 위주의 남부의 대립에서 북부의 승리는 인권의 승리 이전에 ‘검은 황금의 교체기’라고 보는 게 맞다. 
 

한국 아이들은 마리아가 생일 선물로 받은 꼬꼬를 몇 개월 만에 다른 노예로 갈아치우듯이 휴대폰을 갈아치운다. 그리고 미국 아이들은 운전면허를 따고 생일 선물로 차를 몰고 다닌다. 사춘기에서 어른이 되는 나름의 통과 의례이다. 그렇게 현대인은 평균 1년에 300명의 석유 노예를 부린다. 
 

백인 작가의 반성과 인신매매, 성 상품화,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순혈주의 등 여전한 인권 문제에 대한 경고는 당연히 유효하다. 하지만 그 이전에 노예 제도의 원인인 “과도한 욕망”을 줄일 수 있는가를 고민 하지 않을 수 없다.  담뱃갑에 폐암 경고 문구를 넣듯이 식빵 포장지에 푸드 마일리지 표시를 붙여서 경각심을 일깨우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우리의 삶이 근간인 지구를 마구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화석 연료를 기반으로 한 편리한 삶, 이런 ‘상식’이 상식이 아니고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지금 2백년 전 악녀일기의 진짜 무서움이 드러난다. 그리고 2백 년 후 우리 아이들이 쓴 일기가 악녀 일기로 읽히는 비극이 없기를 바란다.*

<인상깊은 구절>
 

두 분은 내게 금으로 된 걸쇠가 있는 성경을 선물했다. 20p

에르다 아줌마가 핸드백을 선물했기 때문이다. 숙녀용 핸드백인데 아주 크다. 어딜 가든 언제나 들고 다닐 거다. 21p
 

엘리사베트 아줌마가 준 선물은 작은 채찍이었다. 채찍은 내 핸드백에 넣기에는 좀 컸다. 아쉽다. 25p
 

올라는 비싸지 않다. 할 수 있는 일도 꼬꼬보다 더 많다. 그 노예를 데려 오자, 엄마가 말한다. 그럼 꼬꼬는 어떻게 하고? 천천히 생각하자. 결정이 났다. 꼬꼬를 팔기로 했다. 65~6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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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덕 성령충만기
이기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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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엉뚱한 얘기를 늘어놓는 사람들이 있다.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데, 자신이 겪은 일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회사에서 야간 당직을 서다가 꼬박 세 시간을 송수화기에 붙잡힌 적이 있다. 속에서는 짜증이 끌어 올라서 눈앞에 있으면 당장 목이라도 조르고 싶지만, 위태롭게 들리는 목소리에서 ‘자살’ 적어도 ‘자해’의 기운이라도 느꼈던 바, 순순히 그의 얘기를 받았다. 결국 그는 “당신 때문에 오늘도 전화비가 많이 나왔다”는 불평과 함께 “막 라면이 다 끓었는데 당신과 먹지 못해 아쉽다”면서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잘한 일이다 싶었는데, 라면을 먹는 그가, 새벽 야참을 챙겨먹는 그가, 자살을 할 리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놈을 그냥!” 송수화기를 내던졌는데, 허탈해지면서 긴장과 분이 좀 풀렸다. 후루룩 소리가 내던진 송수화기에서 들렸던가? 허기가 몰려왔다. 그가 한참 후루룩거리며 먹고 있을 라면이 같이 한 젓가락 담구고 싶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신이 약간 문제가 있지 않고서는 하지 않을 성 싶은 얘기라고 치부했던 그의 황당한 쌈마이(그의 표현대로 하자면) 집안 얘기를 세 시간이 붙잡고 있었던 걸 보면 꽤 흥미진진한 면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난 그의 얘기에 온전히 동참한 그날의 ‘독자’였던가, 그래서 그가 그리 당당했던가 싶다.  

다만 그의 얘기를 무시하거나 재미로만 듣지 못했던 건, 그이의 목소리에 담긴 결연한 태도 때문이었던 게다. 이기호의 <최순덕 성령충만기>에서 간만에 내가 오롯하게 느꼈던 태도이다.   

아귀다툼을 벌이는 옆집 같은, 지질하고 남루한 인생들이 하필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단편소설집에서 그들의 언어는 평이하지가 않다. 악다구니가 치받치는 정도로 이야기를 들어 주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 예를 들어 해외토픽 감인 성적비관 자살이 한국사회에서는 더 이상 뉴스가 되지 않지 않은가.  

이기호의 소설 속 화자들은 기존 소설의 문체에 그다지 기대지 않는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요즘, 그들의 어투, 즉 문체는 랩이거나 성경의 의고체 등이다. 이기호에게 접신을 하여 이야기를 푸는 그들은 10대 양아치(랩)거나, 경찰 앞에서 범죄자로 고개를 숙였(조서)거나 태어나 평생을 교회의 십자가의 그늘 아래 살았던(성서체) 경우이다. 그러니까 책 해석처럼 이기호의 “이야기꾼은 독자와 직접 대면하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신문과 TV와 같은 양지 무대에서 소위 가진 자들의 가식적이고 더러운 말에 귀와 눈이 어지러운 요즘, 이기호는 자신의 역할을 아는 작가이다.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기 위해 한밤중에 자살을 가장하듯이, 이야기가 그치지 않는 이상, 한풀이가 그치지 않는 이상 르포 작가처럼 이기호는 송수화기에 귀를 바짝 붙이고 추임새를 넣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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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가게 -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행복을 파는 곳
정근표 지음, 이미경 그림 / 샘터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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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살 때인가, 뒷산을 놀러갔다가 산책 나온 아주머니에게 외과피(外果皮)만 벗겨난 은행 몇 알을 받은 적이 있었다. 워낙 집이 가난하다보니 은행을 좀처럼 먹을 일이 없기도 했지만, 또 큼큼한 냄새가 밴 단단한 중과피를 벗기지 않은 은행을 좀처럼 볼 일이 없다보니, 바로 그 자리에서 까먹기가 좀 꺼림칙했다.

그러다보니 호주머니에 넣어둔 채로 실컷 놀고는 집에 와서 꺼내놓았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우리 아들이 엄마 생각을 할 줄 알게 되었다”면서 생각지 않게 감동을 하시는 게 아닌가. 

몇 알 안 되었지만 불에 살살 구운 은행을 어머니와 둘이 오순도순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그 쌉쌀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20년을 훌쩍 넘긴 지금도 ‘은행의 맛’으로 입 안에 남아 있다.

그때 어머니가 자신을 향해 지었던 그 미소가 떠올라서, 제 입만 알던 개구쟁이는 그 뒤로 별 것 아닌 군것질거리라도 챙기는 버릇이 생겼다. 한 마디쯤 더 철이 들었다면 그때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때 일이 떠올랐던 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행복을 파는 곳’이라는 부제가 달린 <구멍가게>를 읽고 난 뒤였다. 올해 샘터에서 개정증보판으로 새롭게 단장을 해서 나온 이 책은 구멍가게집 아들로 유년기를 고스란히 보낸 일화를 진솔하고 어제 일인양 세밀하게 풀어낸 동화작가 정근표 글에, 향수를 담은 삶의 스러져가는 이런저런 모양새를 따뜻한 펜화로 담는 화가 이미경(
www.leemk.com)의 그림을 더해 씨실에 날실을 촘촘하게 짜낸 뽀얀 명주천 같은 수필집이다.

‘냉장고는커녕 찬거리를 보관할 변변한 찬장조차 변변히 없던’ 시절, 고만고만하게 살던 동네 골목에서 만물상이자 사랑방인 구멍가게. 그러나 가게와 집 구분 없이 일곱 식구가 아옹다옹했던 ‘버드나무집’의 천덕꾸러기 둘째에게 그 시절은 마냥 즐거웠던 시간은 아니었다. 

통금이 끝나는 새벽 4시면 남들보다 싸고 좋은 물건을 사기 위해 채소도매시장으로 나섰던  아버지의 어스름한 뒷모습으로 시작해 통금 전까지 “마치 우리 가족이 구멍가게에 포로로 잡혀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던 고단한 구멍가게의 일과는 “아버지가 한물간 채소를 다듬는 날이면 …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신발 안에 채소가 들어가면 하루 종일 썩는 냄새와 씨름을 해야”했던 기억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골목의 소소한 일상이 고이는 구멍가게에서의 삶은 불혹을 넘겨 글을 쓰기 시작한 정근표에게 잘 삭힌 거름처럼 작자의 소양을 키우기 위한 좋은 자양분이었음이 분명하다.

이 책의 미덕은 후일담이 종종 범하는 실수처럼, 이 후에 애써 곁불을 지피지 않았다는 것이다. 구멍가게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책으로 묶인 17편의 작은 글에는 결핵으로 죽은 친구 춘실이의 일화처럼 가난한 이웃들의 힘든 삶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여기에 화자인 작가는 더하거나 빼지 않고 그 친구에게 소홀하고 삐치고 화내고 소홀했던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투영했다. 보통 장사를 하는 집 아이들이 그렇듯이 얼마간 영악하고 되바라진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삽화를 맡은 이미경도 마찬가지, <구멍가게>의 삽화가 아니더라도 진작 경쟁에 밀려 천연기념물 신세가 되어버린 구멍가게를 찾아서 담은 작품들을 보면 일정한 간격을 엄정하게 유지한다. 이를 바라보는 눈은 동정이나 흥미나 꾸밈이 아니다.

60~70년대는 사회적으로도 혼란스러웠거니와, 책이 출간되자마자 제일 먼저 드린 아버지가 책을 도로 가져가라고 했던 대목에서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이 있는 세월이 아버지께는 고단한 상처로 아버지께는 고단한 상처”로 남아 있더라는 작가 후기처럼 서민들은 고단하고 힘들고 악다구니를 떨며 살아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삶이란 요지경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서, 어두운 곳에서는 어둡게만 보이기 마련이지만 빛을 마주하고 보면 환한 구석이 내비치기도 한다. <구멍가게>가 부제처럼 따뜻한 행복을 담고 있다면 마찬가지로 환하면서도 따뜻한 빛의 속성 때문일 것이다.

그 시절보다 먹고 살만한 요즘이라지만 방향을 잘 조율하지 못하면 지리멸렬했던 차가운 기억만 화석처럼 남는다.**

 

<밑줄긋기>

어릴 때 가난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어서 죄가 될 수 없지만 성실히 노력하지 않는 것은 죄가 될 수 있으니 열심히 노력해서 이런 도시락 천 개 아니 만 개를 갚을 수 있는 훌륭한 사람이 되거라. =도시락, 71P

그날 이후, 어머니는 이른 새벽 꽁치가 들어오면 제일 먼저 싱싱하고 굵은 놈을 한 마리 따로 챙겨 놓았다가 꽁치 아주머니가 올 시간쯤 상자 위에 슬그머니 올려놓았다. 상자에 담겨 있는 꽁치는 크기가 제각각이어서 아침 장에는 싱싱하고 굵은 놈을 비싸게 팔고, 저녁 장에는 한물가고 씨알이 작은 꽁치를 거의 반값에 팔았다. 그런데 새벽에 가려 놓은 꽁치를 저녁에 싸게 꽁치 아주머니께 드렸으니 다른 어떤 단골도 그런 파격적인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꽁치 아주머니, 113P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고생고생하며 모은 돈을 이름도 밝히지 않고 선뜻 내놓은 것이 어리석게만 보였다. 식이 아재는 자기가 할 일은 다했다는 듯 그렇게 돈을 맡겨 놓고 뒤뚱뒤뚱 가게를 걸어 나갔다. … 그리고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풀려고 끙끙거리는 아이처럼 한동안 식이 아재에 대해 생각했다. 그럴수록 머리가 어지럽고 복잡했지만, 이 세상에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식이 아재, 19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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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탱고 - 파리지앵보다 매혹적인 파리 다이어리
칼라 컬슨 지음, 하윤숙 옮김 / 넥서스BOOKS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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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사진의 힘이란! 우스갯소리로 동네에 “파리△△△” 빵집 한 곳 없는, 대신 떡집과 방앗간은 있는, 시골 동네에 살면서 <파리탱고>를 읽는 내내 사뭇 파리지앵이 된 듯한 기분을 즐겼으니, 참 대단하달밖에.

‘낯선 사람에게 “어디서 오셨어요?” “무슨 일을 하세요?” 같은 질문을 던지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파리지앵의 도도함처럼 혹은 바게트 빵처럼 딱딱하고 각이 딱 잡힌 양장본 <파리탱고>의 두꺼운 표지를 착 열면, 막 무대를 향해 바쁘게 종종걸음을 치며 계단을 올라가는 물랭루즈의 화려한 무희의 뒷태가 보인다.

호주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사랑에 빠진 후, 심장의 1/4조각은 파리에 있다는 사진작가이자 칼럼니스트 칼리 컬슨이 살짝 와인에 취한듯 찍고 써내려간 <파리탱고>를 물랭루즈의 화려하고 환상적인 무대처럼 즐기라는 권고이다. 

초연 당시 낯 뜨거운 춤으로 센세이션을 불러온 무희들의 캉캉춤이 대표적인 댄스클럽 물랭 루즈(붉은 풍차)는 그 길고 긴 역사 동안 전소가 되거나 파산 위기에 몰리는 등 위기를 겪었지만 에디트 피아프, 이브 몽탕, 조세핀 베이커 등 프랑스가 자랑하는 가수들이 무대를 빛낸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클럽이다. 물랭 루즈는 단순히 여흥을 즐기는 클럽을 넘어서 화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처럼 예술적 감수성이 뛰어난 파리지앵이 즐겨 찾은 천국 같은 곳이다. 바게트 빵의 부드러운 속살 같은 곳이라고나 할까. (물랭 루즈 무희들은 ±2kg가 넘으면 해고일 정도로 엄격하다. 자유로운 듯하지만 완고한 파리지앵의 특성이랄까, 바게트 빵의 겉면이랄까.)

<파리탱고>는 물랭 루즈의 화려한 무대보다 이면의 무희들을 사진에 많이 담았는데, ‘10센티미터 하이힐을 신고 15킬로그램짜리 머리장식’을 머리에 얹은 채로 가슴을 드러내고 춤을 춘다는 정도만 보면 신문 사회면이 떠오를 법하지만 천만에, 자부심과 자긍심이 무희들은 ‘천박하기는커녕 우아하고 유쾌’하기만 하다.

예의와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새로운 변화와 변혁에 관대한 파리지앵의 사례로 물랭 루즈가 가장 인상 깊었던 이유는, 늘 새로운 쇼를 고민하는 기획팀 멤버의 나이가 81세, 79세, 77세라는 점이다.
“우리가 이 자리에 계속 있는 건 열정 때문이지요. 단지 늙었다는 이유로 팀을 바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비록 우리는 늙었지만 이 쇼는 결코 늙은 쇼가 아니니까요. 중요한 것은 젊은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파리지앵들을 취재한 이 책에 실린 글이 대부분 약간 들뜬 기분에 써내려간 것은 맞지만(읽다 보면 덩달아 붕 떠오른다), 낯선 이들에게 파리가 그리 만만한 곳만은 아니고, 과거를 기억하는 이들의 종종 파리의 변화에 대한 애잔함이나 아쉬움을 토로하는 부분도 놓치지 않았다. 낭만적인 생각으로 찾아온 예술가들에게 파리는 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비싼 도시이고, 런던이나 뉴욕처럼 기업후원금이 후한 곳도 아니다. (커피 한 잔에 4유로, 현재 환율로 대략 6800원 꼴이다.)

그러다보니 파리 외곽의 버려진 건물이 예술 불법 점거 세력의 본거지가 되었고, 이들은 이른바 ‘문화적 목적’으로 사용할 경우 국가에서 사용 권한을 받아서 사용했다. 그러나 이런 풍토도 바뀌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온 설치예술가 카를로스 레가소니는 10년 동안 사용했던 철도국 창고를 재개발 목적을 앞세운 파리시청에게 내줘야 할 판이다.

그럼에도 파리는 여전히 흥겹다. 제목에서도 드러나지만 작가가 바라본 파리의 모습은 순혈주의에 속박당한 파리지앵들의 모습이 아니다. 파리에서 도착한 그날부터 파리 아프리카인의 아름다움에 매료당한 저자는 몇 블록 지나서는 남미의 탱고와 살사의 매력에 또 흠뻑 빠진다. 

전통과 변혁이 절묘하게 맞서면서 뒤서거니 앞서거니 하는 파리에서 사는 그들은 과연 누굴까? 작가가 물어본 파리지앵들은 다양한 의견을 내놓는다. 그중 가장 그럴듯하게 들리는 정의를 옮기자면 이렇다. “벨르빌에만 140개나 되는 인종이 함께 뒤섞여 사는 도시에서는 여러 세기에 걸쳐 다양한 층의 이주자가 뒤섞여왔지. 모든 파리지앵의 몸속에는 이주민의 피가 흐르고 있어. 이게 바로 파리야.”

그러니 책 옆에 바게트 빵 대신 떡을 놓고도 얼마든지 파리지앵의 기분에 취한 내 자신이 부끄러울 게 없다는 것이지.***

 <밑줄긋기> 

어느 비오는 날 퐁피투센터 바깥에 서 있을 때의 일이다. 나이 든 여자가 리처드 로저스에게 자기 우산 밑으로 들어와 비를 피하라고 했다. 리처드는 여자에게 자신이 이 앞에 있는 건물을 지은 건축가라고 소개했다. 여자는 로저스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우산으로 로저스의 머리를 내리쳤다고 한다. 161P 

“지난 5~6년 사이에 뭐랄까 자긍심 같은 게 생겼어요. 파리지앵에게 딱 어울리는, 사치스러우면서 별난 구석이 있는 것을 지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가서 퐁피두센터를 한 번 보고 스스로에게 물어봐요. 대체 어떻게 저런 걸 짓도록 허용했을까? 그곳에 갈 때마다 잠시 멈춰 서서 내게 묻지요. 저들은 어떻게 우리에게 저런 걸 짓도록 허용했을까?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에요! 건축가가 저렇게 와일드한 건물을 설계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지요. 하지만 진짜 광기는 저런 걸 짓도록 허용해 준 사람들 속에 들어 있어요. 이것이 파리지앵만이 갖는 특별함이지요. 그들에게 커다란 비전이 있어요.” 162P

“영감은 우연히 찾아와요. 그러므로 깨어 있는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봐야 해요. 향기도, 유리창에 비치는 햇빛도, 겨울 낙엽도 그냥 무심히 봐 넘겨서는 안 돼요. 모든 것 속에는 기회가 숨어 있고 그것을 잘 이용하면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죠.” (파리 오트쿠튀르 수석재단사 스테판 마에아의 말 중에서) 253P

4년이 흐른 지금 내 심장의 나머지 조각은 파리라는 특별한 세계에 깊이 박혀 있다. 아주 소소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파리지앵의 마법 같은 생활 방식 속에 빠져 있다. 3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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