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오는 아프리카>를 리뷰해주세요.
눈 오는 아프리카
권리 지음 / 씨네21북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지르르.  

20대 중반쯤 그년, 아니 그녀와 헤어지고 술을 먹고 골목길을 뒹굴다가 잃어버린 삐삐가 알고 보니 내 몸 속에 박혔던 걸까. 다음날 아마도 “그래, 돈 벌어서 성공하고 만다”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었는데 말이다. 지르르. 그렇게 오랜 만에 느낀 기분이다. 

걔의 호출을 기다리다가 까무룩 잠이 들면 기다렸다는 듯 품속에서 지르르 울리던 삐삐, 비퍼, 페이저, 메신저, 뭐, 아무려나. 그때의 무심한 듯 설렜던 기분을 권리의 장편소설 <눈 오는 아프리카>를 읽고 다시 느끼고 말았다.  

그러니까 난 30대 중반을 넘긴 지금도 소설을 쓰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스무 살 때부터 품은 꿈이니, 꽤 오랫동안 놓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난 소설을 쓰기 위한 노력을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전혀 하지 않았다.  

일 핑계를 댈 수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그 동안, 지금과 마찬가지로, 소설 말고 몰입할만한 뭔가를 찾지 못한 상태였다. 다시 말해 야근의 연속인 날도 있었지만 그다지 내 정신을 쇠약하게 할 만한 무언가는 아니었다. 

그러다가, 문득 정말 쓰고 싶으면 괴로워하지 말고 써봐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쓰려고 하니, 다시 문득 아는 게 너무 없다는 걸 깨닫고, 먼지 쌓인 인문학 서적을 읽기 시작했다.  

렇게 좀 읽다 보니, 뭔가 실마리가 꼬물거리는 게 보이는가 싶었는데, 제길 그러다보니 소설 읽기가 좀 시시해지기 시작했다. 읽지 않은 건 아니지만 취향이 달라졌다. “뭐야? 소설 한권 내내 늘어놓은 얘기를 이 책은 단 세 줄로 정리하잖아?”라는 식이다. 뭘 아는 것도 같았는데, 역시 뭘 잃어버리고도 있었다. 아무려나, 소설은, 그러니까 가볍게 읽은 소설은 <눈 오는 아프리카>가 오랜 만이다.  

“이름이 정말 ‘유썩(You suck : 얼간이)’이에요?” 리셉션에 앉아 있던 남자가 ‘썩’에 힘을 잔뜩 주며 물었다. -75P

‘미술품을 둘러싼 위작 시비를 밝히는 미스터리 형식의 소설이며, 세계 각국을 누비는 여행소설이자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주인공 '유석'은 아버지가 남긴 그림의 진실을 찾기 위해 유럽에서 에티오피아, 케냐, 인도를 거치며 세계를 여행한다’라는 책 소개를 줄여서 말하면, 아일랜드 더블린에 있는 호스텔 주인이 제대로 본 그대로 얼간이의 방랑기이다.  

39개국을 돌고 돌아서 그가 들고 다닌 아버지의 마지막 유작, 젯소를 바른 빈 캠퍼스 <눈 오는 아프리카>의 실체를 킬리만자로가 아니라 눈 내리는 부산 자갈치 시장 골목길에서 고향집 앞에서나 본다. 스트레스로 머리는 빠지고 ‘파로 치면 리콜도 불필요한 페차 수준’으로 몸이 상한 그 길고 긴 여정의 답이 결국 서울에서 KTX로 세 시간 거리의 고향집이라니 얼간이라고 할밖에.

유석이 고통과 고민과 절망과 낙심과 입시 실패와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사업 실패와 친척 사이의 악다구니 등등이 벌어진 바로 그 장소에서 해답을 찾지 않으면 결국 어디에서 찾는단 말인가.  

“아프리카에 눈이 온다? 하하하”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얼룩진 세상 위에 눈이 내리면 어떨까 하는 것이죠. 남들은 척박하다고 하는 땅 위에 언젠가 눈이 내려 세상을 포근히 감싸 주면 좀 더 평화로운 세상이 될 거예요.”  -406P
 

딱 스무 살짜리 세상 물정 모르는 미대지망생다운 소박한 평화론이다. 하지만 유석을 그리 반기지 않는 세계를 돌고 돌아 오체투지의 여행을 다녀온 뒤, 입시니 취직이니 화풍이니 미술계니 명성이니 등이 부질없다는 걸 제대로 깨달고 훌훌 털고 온 후에 나온 이 대답은 익숙한 자갈치 시장의 골목길 풍경 안에 세계를 담겨 있다는 설득력을 갖는다. 
 

소설의 마지막 대목인 이 장면에서 망상에 시달리는 유석의 눈에 비로소 환상처럼 펼쳐진다. 과거의 기억을 밑그림 삼아 색을 칠하듯이. 
 

유석과 같이 여행을 다닌 쇼타가 찾아 돌아다닌 형이 알고 보면, 유석의 아버지와 인연이 있다거나, 또 미스터리의 원인이 된 아버지의 ‘야마 자화상’이 알고 보면, 일본인 학생이었던 형을 위해 담뱃값 은지 위에 그린 작품이었다거나 하는 아쉬운 설정이 눈에 보이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작가 권 리가 352일 동안 39개국을 여행하며 쓴 소설은 구성이나 얼개로 평가 내리기 힘든 진득함이 있다. 올해 서른이 된 그녀의 스무 살 시절부터 습작을 하면서 고민했던 막막함의 떨치고자 떠났을 여행의 기록이기도 한 소설은 깔끔하고 말쑥하게 다듬었다면 그 진득함이, 적어도 그 고단함이 여실히 묻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진가였다면 사진을 찍었을 것이고, 화가였다면 그림을 그렸을 테지만 소설가이니 소설이  남긴 이 기록은 한편으로 나 같은 말뿐이고 생각뿐인 ‘얼간이’가 소설을 쓰기 위해 뭘 해야 하는지, 지르르, 호출을 보낸다. 

추신 : 난 그 동안 워드 프로그램을 얼마나 많이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가, 흰 바탕의 워드 프로그램의 첫 줄 첫 글자 앞에서 깜박거리는 커서만 내버려둔 채로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던가, 라고 자괴감에 빠졌으나 <붉은 쟌느> 위에 젯소로 바르고 다시 <거인의 눈물>을 그렸다가 다시 젯소를 발라 울퉁불퉁 두꺼워진 햐얀 캔버스 <눈 오는 아프리카>만큼 내가 다시 켠 워드 프로그램이 그만큼의 더께를 가졌는가, 혹은 색을 잃고 세상을 흰색과 검정색만 구별하는 유석처럼 종이와 연필만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가, 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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