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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클의 소년들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2월
평점 :
젊은 시절, 작가 콜슨 화이트헤드는 백인 경찰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몸수색을 자주 당했다. 수갑이 채워지는 날도 있었다. 그는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었다며, 흑인들이라면 흔히 경험하는 일이라 회고한다. 소설 <니클의 소년들> 초반에도 주인공 엘우드가 아무런 이유없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차량 절도범으로 몰려 소년원에 가게 된다. 그는 대학교 입학일을 앞두고 도로에서 차를 얻어 탔을 뿐이었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1/0131/pimg_7995621572824444.jpg)
소설의 배경은 1960년대 초. 프랜치 타운의 투쟁, 버스 승차거부, 프리덤 라이드 등 흑인 인권운동이 곳곳에서 일어난다. 엘우드는 권력 투쟁에 참가했던 힐 선생님에게 역사와 문학 수업을 받으며 대학 진학을 꿈꾼다. 하지만 대학입학 전날 엘우드는 잘못된 시간, 잘못된 장소에 있었기에 그는 니클의 소년원으로 보내진다. 그곳은 가출한 소년들, 고아, 의지할 곳 없어 국가의 후견을 받는 아이들의 감화를 위한 곳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구타, 강간, 고문이 행해진 감옥였다.
친구들의 싸움을 말렸다는 이유로 엘우드는 하이트하우스라는 곳으로 끌려가 채찍으로 고문을 당한다. 죽은 아이들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 학대가 자행되는 곳. 고통스런 일상에서 엘우드는 할머니가 사주셨던 레코드 판에 담긴 루터 킹목사의 연설을 떠올린다. ”억압자들을 향해 순수한 사랑을 품어보라, 그러면 이 투쟁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른다...어둠은 어둠을 몰아낼 수 없다. 어둠을 몰아낼 수 있는 것은 사랑뿐이다. 증오는 증오를 몰아낼 수 없다. 증오를 몰아낼 수 있는 것은 사랑이다.” 엘우드는 고문자들과 세상을 향해 분노와 증오가 아닌 숭고한 마음을 가진다. 그는 오로지 소년원을 일찍 나간 다음, 대학에서 공부하길 희망했다.
엘우드는 지역봉사를 같이 나가며 친해진 터너와 탈출을 시도했으나 죽음을 맞게 된다. 터너는 엘우드란 이름으로 뉴욕에서 살아가게 된다. 어느 날, 그는 니클과 묘지에 관한 기사를 접한다. 진실을 마주치기 망설였던 터너는 43년 만에 니클로 향한다. 엘우드가 어린 시절 일했던 리치먼드 호텔의 식당에 간 터너. 예전에는 흑인들이 드나들 수 없었던 곳이었으나 식당 종업원은 그에게 “아무 데나 앉으시면 돼요.”라고 말한다. 엘우드가 40여년 전, 리치먼드 호텔의 식당을 지켜보며 “금지된 장소였지만 언젠가 그 문이 열릴 것이라는 믿음"을 안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장소. 엘우드는 "어두운 피부색을 초월해서 인정받기를 원했다.”
<니클의 소년들>은 한 편의 르포와도 같다. 에필로그를 읽고 책장을 넘기자, “이 책은 허구이며, 등장인물은 모두 나의 상상이다.”라는 작가의 말을 읽고 나서야 아, 소설였지 했다. 작가는 한쪽에서 흑인인권운동이 일어나고 다른 쪽에서는 학대를 받고 있는 소년들이 살았던 아이러니한 시대, 1960년대로 독자들을 데려간다. 화이트헤드는 실제 도지어 남학교에서 발생한 죽음과 매장에 관한 조사 보고서와 생존자들이 만든 웹사이트에서 영감을 얻어 이 소설을 썼다. 그는 무거울 것만 같은 소재를 담담한 문장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물들을 등장시켜 어둡지 않게 그려냈다. "반드시 우리의 영혼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중요한 사람입니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존재이므로, 매일 삶의 여로를 걸을 때 이런 품위와 자부심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엘우드가 들었던 킹 목사의 연설이 담긴 레코드 판은 우리 곁에서 오늘도 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