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합리주의적 사고를 하기보다 야생적 사고를 한다. 주술적 · 신화적 사고를 한다. 끊임없이 은유 · 환유 관계를 연상함으로써 몽상을 하고 예술을 한다. 예술은 느닷없는 난입이며 교란이다. 예측 불가능한 것을 증가시키면서 허무라는 구멍을 끊임없이 파는 일이다. 이미 실재réel라는 거대한 허무rien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Réel과 Rien은 어원이 같다. 우리는 외부라는 세계에서 몸을 돌려 내부세계에 똬리를 틀며 그 안에서 전율하고 황홀경을 느끼다가 서서히 잠이 든다.
- P15

인류학자가 연구하는 사회는 크고 현대적인 사회라기보다.
약간 ‘차가운‘ 사회입니다. 즉 증기기관처럼 뜨거운‘ 사회가아니라 시계 같은 정밀한 기계처럼 ‘차가운‘ 사회입니다. 이런 사회는 무질서를 지극히 적게 생산합니다. 물리학자들이 엔트로피라고 부르는 것, 그것은 그 초기 상태에서무한히 자기 자신을 유지하고 보존하는 경향이 있어 역사도없고 진보도 없는 사회처럼 보입니다.

우리 사회가 증기기관을 많이 사용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구조적 관점에서는 증기기관을 닮았어요. 기능을 위해 잠재력의 차이를 이용합니다. 이것은 다양한 사회적 서열 형태를통해 구현되지요. 노예제, 농노제 또는 계급분화 같은 겁니다. 우리가 사물들을 멀리서 그리고 넓게 파노라마로 볼 때는 그게 근본적으로 중요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사회는 그 한가운데서 불균형을 만들어내지요.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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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체험 중에도 혼자서 그 체험의 동굴을 자꾸 나아가다 보면, 마침내 인간 일반에 관련된 진실의 전망이 열리는 샛길로 나올 수 있는 그런 체험이 있지? 그런 경우, 어쨌든 고통스런개인에게는 고통 뒤의 열매가 주어지는 것이고, 흑암의 동굴에서괴로운 경험을 했지만 땅 위로 나올 수가 있음과 동시에 금화 주머니를 손에 넣었던 톰 소여처럼! 

그런데 지금 내가 개인적으로체험하고 있는 고역이란 놈은 다른 어떤 인간 세계로부터도 고립되어 있는 자기 혼자만의 수혈(竪穴)을 절망적으로 깊숙이 파들어 가는 것에 불과해, 같은 암흑 속 동굴에서 고통스레 땀을 흘리지만 나의 체험으로부터는 인간적인 의미의 단 한 조각도 만들어지지 않지. 불모의, 수치스러울 따름인 지긋지긋한 웅덩이 파기야. 나의 톰 소여는 끝없이 깊은 수혈 밑바닥에서 미쳐 버릴지도몰라."

"내 경험으로는 인간에 관한 한 완전히 불모인 고통이란 건 없는 것 같아."... - P204

"카프카가 아버지에게 쓴 편지에 있는 말이지만, 아이에 대해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찾아오는 아기를 맞아들이는 것뿐이랍니다. 자네는 아기를 맞아주는 대신 그를 거부하고 있는 건가요?
아버지라고 해서 타인의 생명을 거부하는 에고이즘이 허용되는걸까?"
- P218

"아기가 우는 소리는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구나" 하고 히미코는 아기 울음소리에 대항하여 자신도 소리를 질러 가며 말했다. 
"인간의 온갖 말의 모든 의미를 품고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네."
아기는 여전히 아이, 아이, 아이, 이야 , 이야, 이야 , 이에, 이에, 이에, 이에 하고 울었다.
"우리가 그 말을 못 알아들어서 다행이야‘ 하고 버드는 불안해하며 말했다.
- P255

"자넨 이번 불행과 정면에서 맞서 잘 싸웠군 그래" 하고 교수가말했다.
"아뇨, 저는 여러 번 도망치려 했었어요, 거의 도망쳐 버릴 뻔했었죠" 하고 버드는 말했다. 그러고는 자기도 모르게 원망스러움을 억누르는 듯한 음성이 되어 "하지만 이 현실의 삶을 살아 낸다고 하는 것은 결국 정통적으로 살도록 강요당하는 것인 모양이네요. 기만의 올무에 걸려 버릴 작정을 하고 있는데도 어느 샌가 그것을 거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버리는 그런 식으로요."

"그렇게 하지 않고 현실의 삶을 살 수도 있다네, 버드, 기만에서 기만으로 개구리 뜀 뛰듯이 죽을 때까지 가는 인간도 있지."하고 교수는 말했다.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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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쯤 밖에서 친구들하고 어울리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해서 그걸로 시어머니한테 주눅이 들 만큼 순진하진 않았다. 그것보다는 온종일 한번도 집 걱정을 안했었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서매우 기묘한 느낌을 맛보았다. 첫애라 더했겠지만 자나깨나 한시반시 마음을 놓지 못하고 골몰했던 엄마 노릇에서 그렇게 완벽하게놓여나게 한 게 다름아닌 화투놀이의 매혹이었다는 게 문득 나를어리둥절하게 했다. 

뒤미처 매우 기분 나쁘게 섬뜩한 느낌으로 내가 경험한 매혹 속에 악의에 찬 속임수가 숨겨져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음의 트릭 따위가 아닌 운명의 마수같은나는 곧 그런 생각의 터무니없음을 스스로 알아차렸지만 섬뜩한느낌만은 구체적인 물건의 촉감처럼 생생했다. 나는 그 기분 나쁜것을 떨어버리기 위해 애써 그날의 수입을 계산하려 들었다. 반찬값은 번 것 같았다.  - P64

그 섬뜩한 건 핏줄 사이에만 있는 신비한 끈과 관계가 있다기 보다는 내 철저한 방심과 더 깊은 관계가 있음직했다. 집안일에 대한 일시적인 방심은 나 자신만의 일이나 재미에 대한 몰두를뜻하기도 했고, 그런 모처럼의 이기에서 헤어났을 때, 한 집안의 안주인 노릇만을 숭상했던 평소의 의식이 느낄 수 있는 가책과 당황이 그런 섬뜩한 이물감으로 와 닿았다고 생각하는 게 훨씬지당하고도 속 편했다. 내적인 심리상태와 외부의 현상 사이에 있다고 가정한 어떤 초월적인 힘의 작용에 대해 이런 온당하고 상식적인 해석을 붙이고 나니 섬뜩한 느낌의 영험도 차츰 무디어지기시작했다.
- P66

나는 술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딴사람처럼 기분이 고조되고말이 많아지고 웃음이 헤퍼지는 버릇이 있었다. 꼭꼭 써둔 생각.
황당한 불안, 맺힌 마음이 거침없이 술술 말이 되어 넘쳤다. 퍼니어도 퍼내어도 넘치는 맑은 샘물처럼 말이 범람했다. 듣는 상대방에게도 그게 맑은 샘물이 될 것인지 구정물이 될 것인지는 내 아랑곳할 바도 아니었다.

 오로지 나는 내 속에 갇힌 것들이 말을 통해자유로워지는 쾌감에 급급했다. 그건 또한 내가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진 느낌이기도 했다. 나는 그런 방법으로 자유를 맛보고 있는지도 몰랐다. 평소 나에게 있어서 자유란 나뭇가지 끝에 걸린 별이나 다름없었다. 당장 딸 수 있을 것 같아 나무를 기어올라가 봤댔자 허사였다. 올라갈수록 별은 멀고 돌아갈 수 있는 땅 역시 멀어져서 얻어 가질 수 있는 것은 위기의식밖에 없었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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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영어로는 ‘조선’도 ‘한국’도 모두 ‘KOREA’다. 일본인이 멸시적으로 사용한 ‘조센’이라는 일본어 어감마저 이곳 청중에게 전달되었던 걸까. 나는 신중하게 말을 골라가며 답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조선’이란 말을 학대에서 구해내고 싶습니다. 식민지 지배자가 멸시적으로 사용했다는 이유로 그 말을 기피한다면 학대에서 구출할 수가 없으며, 오히려 그 학대를 추인하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 P175

많은 일본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히데요시를 영웅이라고 생각하면서 자랐던 나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그런 내 자신에게 위화감과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다. 히데요시가 나의 영웅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으며 묵살되어온 소수자나 패배자의 존재에 눈을 떴던 셈이다. 나 자신이 그런 패자들 쪽에 속해 있다는 사실 역시, 그러한 ‘불편함‘이야말로 내 인생의 귀중한 자산이다. 만약 그 자각이 없었더라면 내 정신세계는 언제까지나 일면적이고 천박했으리라. 아일랜드 사람이라면 크롬웰을 어떻게 생각할지를 상상해보는 일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 P39

터너는 왜 「노예선」을 그렸던 걸까. 물론 인도주의 정신과 자신의 정치적 신조를 완수하려는 행위였으리라. 노예제 옹호론자와 대비한다면 그의 인도주의는 대단히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함이 틀림없다. 다만 어디까지나 시대적인 제약과 대영제국의 신민(요컨대 오랫동안 노예제의 혜택과 수익을 누린 자)이라는 틀 안에서였다.

한편 「노예선」을 바라보는 다음과 같은 또 다른 시선도 있다는 점 역시 기억해둘 만하다. "터너는 분명 흑인의 고통 그 자체보다 이토록 비극적 사건을 관련지어야만 훌륭한 바다 풍경화를 그릴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 쪽에 무게를 두었다."

제작동기는 인도주의였을까. 아니면 화가로서 지닌 욕망이었을까. 어느 쪽이라고 여기서 확정 지을 수는 없지만, 내 개인적인 견해는 후자 쪽으로 기운다. 그렇다고 터너를 비난하려는 의미는 아니다. 정치적 신조는 어찌 되었든 그는 예술가로서 단호히 행동했다. 좋건 나쁘건 ‘뼛속까지 화가’였다. -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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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 큰 아이들이 나를 마뜩잖은 표정으로 꼬나보는 꿈.

아이들의 입에서 욕이 연달아 나오는 꿈.

책장을 넘겨도 글자는 안 나오고 백지만 나오는 꿈.”

 

 

국어교사 서현숙은 소년원에서의 첫 수업을 앞두고 악몽을 꾼다. 다행히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은 험상궂지 않았다. 상반신에 물고기와 용 문신을 새긴 소년이 있긴 했지만. 책을 읽은 적이 거의 없는 소년들은 2분 만에 20페이지를 읽어내는 초능력자들이었다.

    

 

 

 

교사 서현숙은 여섯 명 남짓한 소년들에게 쉽고 재밌는 책을 쥐여주고픈 마음이 간절하다. 김동식의 <스마일 맨>을 시작으로 알퐁스 도데의 <별>, 박찬일 셰프의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이종철의 <까대기> 등. 고심 끝에 고른 책을 들고 일주일에 한 번 소년원으로 향한다. 아이들은 인상 깊은 구절을 적고 책을 읽은 소감과 생각을 나눈다. 저자와의 만남을 여러 번 가지면서 소년들은 작가들이 걸어온 고투의 시간과 꾸준한 노력을 해온 일화를 들으며 꿈을 그려간다.

    

 

소년원 아이들을 만나기 전  박찬일 요리사는 아이들이 사회에 다시 나가서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고민이 컸다. 그는 결국 아이들 마음에 ‘하고 싶은 일’ 하나를 선물하기로 한다.

    

 

“책 사진에 나온 레스토랑 예쁘지? 저기가 쥬제베가 운영하는 시칠리아 식당의 정원이야. 야외 테이블에서 저녁을 먹으면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정말 아름다운 곳이야. 나중에 좋아하는 사람과 저기에 가게 되면 , 내가 소개해서 왔다고 쥬제베에게 꼭 말해. 아마 더 맛있는 음식을 해줄 거야”

    

 

출소 날짜가 각자 달라서 같은 아이들로 3개월 이상 책 수업이 이어지기 어려운 상황. 교사 서현숙은 자신이 소년들에게 전해주는 책이 그들의 삶을 얼마나 바꿀지는 모른다고 고백한다.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변화시키지 못한 어른이 아닌지".  “이런 데서 살았다는 흔적, 어디에도 남기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아이 앞에서 그녀는 헛헛함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소년들이 읽었던 책들이 언젠가 ‘무엇’으로 ‘화’化할 것을 믿었다.

    

 

<소년을 읽다>는 "책이 소년원 아이들의 삶을 바꾼다"라는 이상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다. 아이들은 자신이 소년원에 들어오기 전과 다른 삶을 살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소년원에서 나가도 비슷한 생활을 하고 다시 소년원에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알고 있다. 대개의 아이들이 자라온 가정환경이 평탄치 못했고, 형기를 마쳐도 돌아갈 집이 없고, 극심한 가정폭력을 경험한 아이들이기에 더욱 그러리라. 단지 소년들은 책을 읽으며 몰입하는 법을 배우고 방 친구들과 돌려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기쁨을 맛보기 시작한다.

    

 

저자는 소년원이 단순히 죗값을 치르는, 감시하고 관찰하는 기관 너머의 역할에 대해 제안한다. 소년들이 사회에 다시 나가서 학업을 제대로 하는지, 위험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은지, 어떤 친구와 사귀는지 등 좀 더 긴 시간을 두고 폭 넓은 관찰이 지속되길 바랐다. 코로나로 인해 1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소년들이 책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교사 서현숙이 소년들이 좋은 욕망을 꿈꿨으면 하는 기대와 고민이 주는 울림은 크다. 우리의 이웃으로 다시 서게 될 소년들. 우리가 그들에게 가졌던 고정관념과 편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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