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 큰 아이들이 나를 마뜩잖은 표정으로 꼬나보는 꿈.
아이들의 입에서 욕이 연달아 나오는 꿈.
책장을 넘겨도 글자는 안 나오고 백지만 나오는 꿈.”
국어교사 서현숙은 소년원에서의 첫 수업을 앞두고 악몽을 꾼다. 다행히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은 험상궂지 않았다. 상반신에 물고기와 용 문신을 새긴 소년이 있긴 했지만. 책을 읽은 적이 거의 없는 소년들은 2분 만에 20페이지를 읽어내는 초능력자들이었다.
교사 서현숙은 여섯 명 남짓한 소년들에게 쉽고 재밌는 책을 쥐여주고픈 마음이 간절하다. 김동식의 <스마일 맨>을 시작으로 알퐁스 도데의 <별>, 박찬일 셰프의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이종철의 <까대기> 등. 고심 끝에 고른 책을 들고 일주일에 한 번 소년원으로 향한다. 아이들은 인상 깊은 구절을 적고 책을 읽은 소감과 생각을 나눈다. 저자와의 만남을 여러 번 가지면서 소년들은 작가들이 걸어온 고투의 시간과 꾸준한 노력을 해온 일화를 들으며 꿈을 그려간다.
소년원 아이들을 만나기 전 박찬일 요리사는 아이들이 사회에 다시 나가서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고민이 컸다. 그는 결국 아이들 마음에 ‘하고 싶은 일’ 하나를 선물하기로 한다.
“책 사진에 나온 레스토랑 예쁘지? 저기가 쥬제베가 운영하는 시칠리아 식당의 정원이야. 야외 테이블에서 저녁을 먹으면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정말 아름다운 곳이야. 나중에 좋아하는 사람과 저기에 가게 되면 , 내가 소개해서 왔다고 쥬제베에게 꼭 말해. 아마 더 맛있는 음식을 해줄 거야”
출소 날짜가 각자 달라서 같은 아이들로 3개월 이상 책 수업이 이어지기 어려운 상황. 교사 서현숙은 자신이 소년들에게 전해주는 책이 그들의 삶을 얼마나 바꿀지는 모른다고 고백한다.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변화시키지 못한 어른이 아닌지". “이런 데서 살았다는 흔적, 어디에도 남기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아이 앞에서 그녀는 헛헛함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소년들이 읽었던 책들이 언젠가 ‘무엇’으로 ‘화’化할 것을 믿었다.
<소년을 읽다>는 "책이 소년원 아이들의 삶을 바꾼다"라는 이상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다. 아이들은 자신이 소년원에 들어오기 전과 다른 삶을 살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소년원에서 나가도 비슷한 생활을 하고 다시 소년원에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알고 있다. 대개의 아이들이 자라온 가정환경이 평탄치 못했고, 형기를 마쳐도 돌아갈 집이 없고, 극심한 가정폭력을 경험한 아이들이기에 더욱 그러리라. 단지 소년들은 책을 읽으며 몰입하는 법을 배우고 방 친구들과 돌려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기쁨을 맛보기 시작한다.
저자는 소년원이 단순히 죗값을 치르는, 감시하고 관찰하는 기관 너머의 역할에 대해 제안한다. 소년들이 사회에 다시 나가서 학업을 제대로 하는지, 위험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은지, 어떤 친구와 사귀는지 등 좀 더 긴 시간을 두고 폭 넓은 관찰이 지속되길 바랐다. 코로나로 인해 1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소년들이 책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교사 서현숙이 소년들이 좋은 욕망을 꿈꿨으면 하는 기대와 고민이 주는 울림은 크다. 우리의 이웃으로 다시 서게 될 소년들. 우리가 그들에게 가졌던 고정관념과 편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