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에 읽은 좋은 책은 로힌턴 미스트리의 <적절한 균형>. 자세한 이야기는 리뷰에 썼으니 생략하기로 하자. 엄청난 두께감도 좋았고, 표지도 마음에 들었고, 이야기도 최고였던 작품이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내 일이 아니라고 치부해버렸던 안타까운 이들의 삶이 작은 활자로 빼곡히 종이를 메우고 있다. 이 책을 읽고 한동안 장르소설은 유치하게 느껴질 정도였고(하필이면 곧바로 읽은 책이 '트와일라잇' 시리즈라 미안;;), 인도를 비롯한 여타 제3세계 나라를 배경으로 한 소설에 대해 무한한 갈증이 생겼다. 일단 호평 일색임에도 불구하고 단편집이라 망설이는 <그저 좋은 사람>과, 그냥 고민도 없이 사버리고 만 <남자들의 나라에서>가 뒤를 이을 것 같다. 그동안 내가 지나치게 '미국'과 '일본'을 선호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그런 점에서 <리틀비>도 좋았다. 기대를 많이 해서 그런지 조금은 아쉬웠지만, 나이지리아 난민 소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는,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할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철저히 영국인의 시각이었다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책 소개 문구처럼 '머릿속이 멍해지도록 전해오는 터질 듯한 감동'은 없었지만 긴 여운이 남는 작품이기는 했다.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끝까지, 그냥 그저 그랬다. 영화를 먼저 봤기 때문에 그 이미지가 '각인'되어 소설로는 만족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고, 이리저리 꼬이는 이야기를 싫어하고 단순한 플롯을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 탓일 수도 있다. 특히 삼각관계라든가, 대책없이 흔들리는 우유부단한 여자주인공에 대해 병적일 정도로 '싫다'는 취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싫어하는 모든 요소의 집대성편이라고 할 수 있는 <이클립스>에서 못참겠다는 느낌이 극에 달했지만, 모든 것이 해결되고 단순해지는 <브레이킹 던>에서 어느 정도 화기애애한 느낌으로 마무리를 한 시리즈라고 할 수 있다. <브레이킹 던>에서 벨라가 강인해지고 흔들리지 않는 주관을 보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대략적인 줄거리는 모두 알았으니 영화를 보고 즐길 일만 남았다.
오랜만에 읽은 미미여사의 시대물. 북스피어에서 출간된 미미여사의 시대물 <외딴집>을 처음 읽고 그동안 출간된 시대물을 모두 읽었으나, 사실은 딱히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었다. <외딴집>이 무척 좋았기 때문에 다른 작품들이 만족스럽지 못한 것도 있었고, 비슷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두께감부터가 남다른, 혹은 제목부터가 색다른 <메롱>은 어느정도 기대를 하고 보기 시작했는데,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외딴집> 다음으로 괜찮았다. 주인공인 오린의 귀여움도 좋고, 여러 귀신들의 캐릭터도 살아있어서 읽는 즐거움이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이나, 전형적인 인물이 등장하는 단점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좋았다. 오린의 성장기를 읽은 듯한 느낌도 들었다. 이러니 출간되는대로 계속 사는 거겠지.
마이클 코넬리의 <실종>은 그의 다른 작품들보다 조금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는데, 그럼 다른 작품들은 어느 정도인지 정말 궁금하다.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의 경우는 처음에 몰입하기가 어려웠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몰아치는 재미가 있어서 손에서 놓기가 어려웠었다. <실종>은 그와 정반대였다. 이사온 집의 새전화번호가 '릴리'라는 여자의 옛전화번호와 같은 바람에 걸려오는 여러 전화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색다른 소재로 풀어낸 스릴러답게 초반부터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뒤로 갈수록 이야기가 힘을 잃더니 결국 '용두사미' 꼴이 되고 말았지만, 마이클 코넬리의 솜씨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곧 읽게 될 다음 작품들이 기대된다.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은 특이한 소설이다. 기이한 이야기가 반복되고 마지막에 가서 모든 수수께끼가 풀리게 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빠른 시간 내에 다 읽게 되는 장점은 있지만 읽고 난 뒤의 기분이 이상하달까. <마성의 아이>나 <얼어붙은 섬> 같은 경우에도 그런 느낌이 없지 않아 들었는데, <마성의 아이>의 경우 불편한 기분이 계속되고(굉장히 선한 듯한 주인공이 계속해서 '악인' 취급을 당하는 데에서 기인한 불편함이다), <얼어붙은 섬>의 경우에는 속았다는 느낌(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데, 차라리 없었으면 하는 마지막 반전 때문에 김이 빠졌다)이 강하게 들었다.
<악몽의 관람차>와 <악몽의 엘리베이터>는 본격추리가 읽고 싶어서 구입했던 책인데, 스포일러가 담긴 리뷰를 읽는 바람에 읽기 전에 맙소사, 해버렸던 관람차는 그저 그랬고, 엘리베이터 역시. 이 작가의 작품은 또 출간되어도 안 살 듯하다.
읽고 났더니 무슨 내용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남자와 운명의 여인이 만들어내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인데, 음. 두 사람의 시점에서 반복되는 사건들이 '여자'와 '남자'의 다른 시선을 보여주는 것 같아 신선했다. 하지만 그러한 서술상의 특징 때문에 이야기의 흐름이 이어지지 않고 끊어지는 단점이 있어서, 소설보다는 영화로 만드는 것이 이야기 구조로는 더 탄탄할 듯 하다. 그나저나 이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비극적인 결말은 싫은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