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은 편식을 심하게 한 달이었다. 거의 추리와 스릴러에 해당하는 장르소설만 주구장창 읽어댔고,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을 세 편 연달아 읽었다. 마이클 코넬리는 내가 빠져 있던 일본 추리 소설에서 눈을 돌려 영미권 스릴러에도 관심을 갖게 한 장본인인데, 이번 달을 기준으로 국내에 출간된 코넬리의 작품을 다 읽게 되었다(원서를 읽을 능력이 불행히도 내게는 없다는;;)고 생각했는데, 1990년대에 출간된 <블랙 에코>와 <블랙 아이스>는 안 읽었군;; <시인-자살 노트를 쓰는 살인자>는 엄청난 두께에 알맞지 않게 흡입력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자살 사건으로 마무리될 뻔한 형의 죽음이 누군가에 의해 치밀하게 조작된 살인 사건이라는 것을 밝혀낸 신문기자 동생의 이야기로, 전문 수사원이 아닌 기자에 의해 하나하나 밝혀지는 사건의 실체가 매력적인 작품이다. 더구나 에드가 앨런 포의 시를 인용하는 낭만적인(?) 살인자라니-. 다만 지나친 반전으로 긴장감을 급격하게 떨어뜨리는 마무리가 아쉬웠다는.  

 <블러드 워크>는 개인적으로 상당히 마음에 들었던 캐릭터인 매케일렙이 등장하는 작품. 심장 이식 수술을 받은, 허약한(?) 전직 FBI 수사관 매케일렙이 자신에게 심장을 기증한 여인의 죽음을 추적하는 과정을 그린다. 상처, 여린 마음, 사랑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는 정의로운 사나이가 범인의 함정에 빠지지만 결국은 빠져나오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러브 스토리도 꽤 괜찮았고 범인의 정체를 알아내는 과정도 흥미진진했다. 하지만 결말은 왠지 맥 빠진다는- 

 <시인의 계곡>은 친숙한 이름이 많이 등장해서 좋기는 했으나 이야기 자체가 힘이 없어서 아쉬웠다. 마이클 코넬리가 창조한 대표적인 인물이라는 해리 보슈가 처음 등장하는 작품인데, 처음부터 그를 접하지 못한 나로서는 별다를 것 없는 주인공이라 메케일렙보다도 못한 인물로 느껴졌다. 더구나 <시인>에 나왔던 레이첼은 내가 그토록 잘 되기를 바랐던 기자와 헤어진 채, 여기서는 해리 보슈와 이상야릇한 애정전선을 마련한다. 시간이 훨씬 지난 설정이지만 <시인>에 뒤이어 <시인의 계곡>을 읽은 나로서는 레이첼이 지나치게 가벼운 여자로 느껴졌다는;; 더욱 나쁜 것은, 매케일렙은 죽었고, <블러드 워크>에서 몸과 마음을 다바쳐 사랑하던 여자와는 그닥 좋은 관계가 아니었다는 설정이었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아 여러모로 마음 상했던 작품.  

 

 

 

 

 12월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여섯 권이나 읽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방황하는 칼날>을 마지막으로 책을 읽은 기억이 전혀 없는데, 빨리 읽히는 반면 기억에서 빨리 사라지는 그의 책이 지겨워졌기 때문이다. 5부작으로 만들어진 일드 <악의>를 보고 관심이 생겨서 책 <악의>를 보다가, 가가형사 시리즈니 나머지 책도 다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보기 시작한 시리즈다. <악의> 말고 다른 작품을 먼저 봤으면 아마 안 봤을지도 모르겠다. 가가형사 시리즈의 다른 어떤 책보다도 <악의>가 가장 좋았기 때문이다. <졸업>은 가가형사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 우승을 할 만큼 검도를 잘 했고 잘 지내던 친구 중 첫사랑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었고, <잠자는 숲>은 가가형사가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 발레리나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해서 흥미진진했다(사건과는 별도로). 그런 장점은 있지만, 나머지 책에서는 가가형사 개인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살짝 아쉬웠다. 특히 <잠자는 숲>에서의 그 여자와는 어떤 관계가 되었는지 왜 안나오냔 말이다! 사실, 그게 궁금해서 나머지 책을 모조리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두 소설 다 별로였다. 두 소설 다 기대를 많이 했기 때문일 것이다. <피아노 교사>는 절절한 러브 스토리를 기대했고, <얼음공주>는 손에 땀을 쥐는 스릴러를 기대했는데 둘다 기대에 못 미쳤다. <피아노 교사>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의 홍콩과 전쟁이 끝난 후의 홍콩을 보여주면서 사건이 진행되는데,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생존에 대한 이야기라고 느껴졌다. <얼음공주>는 '사건'에 대한 이야기보다 주인공 주변 이야기가 지나치게 자주 언급되어서 몰입이 전혀 안 되었다. 동생의 불우한 결혼생활이 줄기차게 등장하는 이유는 뭐냐는.  

그리고 서평단 도서를 꽤 읽어야 했는데, 그 중에서  

<유정천 가족>은 유쾌해서 좋았고  

<데샹보 거리>는 그리워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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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0-01-03 0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히가시노 게이고 안 보는데, <악의>가 좋다고 해서 <악의>만 나중에 봤어요. <둘 중 누군가 그녀릉 죽였다>가 괜찮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어떤가요? 페이퍼보니 <악의>보다는 별로인 것 같긴 하지만요..

퍼트리샤 콘웰도 앞에 한 일곱권은 무지 재미있는데, 요즘은 열라게 욕하면서 사보는 시리즈가 되었다죠. 전 그래도 옛정이 있어서, 아직도 좋아요. ^^

그린네 2010-01-03 21:59   좋아요 0 | URL
<악의>보다는 별로였지만, 그래도 나름 괜찮았어요. 머리를 쥐어짜게 하는 트릭과 애매모호한 결말 때문에 추리하는 즐거움(?)이 있어서 평이 좋은 것 같아요- 저도 처음엔 신선해서 좋더니 <내가 그를 죽였다>에서 비슷한 형식이 반복되어서 매력이 떨어진 듯해요.
페트리샤 콘웰은 아직 한번도 안 읽었는데(왠지 옛날 작가같은 느낌이 물씬;;) 괜히 읽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