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 그의 생애와 사상의 전기
뤼디거 자프란스키 지음, 오윤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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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모든 심오한 정신은 가면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모든 심오한 정신을 가리면서 가면은 계속해서 커진다. 그 정신이 제시하는 모든 말, 모든 발걸음, 모든 삶의 기호를 두고 지속적으로 벌어지는 그릇된 해석, 즉 천박한 해석 덕분이다. («선악 너머» I, 40)

safranski.jpg니체에 대한 해석이 니체만큼이나 심오한 정신이 아닌 자의 해석이라면, 그것은 니체의 정신을 한사코 가리려는 가면에 불과할 수 있다. 우리는 니체를 해석할 때에 1881년 니체의 수를레이 암벽에서의 경험이 심오한 정신을 탄생시켰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나는 이 사실에 동의하지 않는 학자들의 니체 해석은 하나의 “천박한 해석”으로 간주하고 싶은 경향이 있다. 니체는 1881년의 경험 직전에 «서광»을 출판하고서 “책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운명”, “이제까지 인간의 두뇌와 심장이 탄생시킨 가장 대담하고 가장 고상하고 가장 신중한 책들 중의 하나”라고 호평을 했지만 그 경험 직후에는 동일한 책을 두고 “초라한 파편 철학”이라고 평할 정도로, 1881년 경험을 전후하여 달라져던 것이다. 이것은 한 예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과연 그가 그토록 달라진 계기가 된 1881년 초여름의 경험은 무엇이었을까?

자프란스키는 그 경험에 대해 상세히 소개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독보적인 해석과 함께 그 경험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과 관련한 니체 자신의 편지, 유고, 저서, 니체가 읽은 책 등을 총망라하여 그 경험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물론 관련 자료를 총망라하긴 하지만 두서없이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대목에서 꼭 필요한 어휘만을 고른다. 그래서 자프란스키의 서술은 압축적이면서도 풍요롭다.

한 대목을 예로 들어 설명했지만 이러한 자프란스키의 방식은 이 책의 전체적인 특성이기도 하다. 그래서 독자는 니체 사상의 형성과정을 추적하면서 자프란스키의 해석에 휘말려드는 것이 아니라 미로에 숨어 있는 니체를 좀더 밝게 비추는 빛에 노출된다:

니체는 자신의 이론의 정원들에서 중심 주제를 굳이 밝혀내려는 자는 누구든 부득이 조악한 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도록 그 정원들을 배치하였다. 니체는 자신의 미로에 숨어 있다, 그는 발견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구비구비 이어지는 기나긴 길을 거쳐서. 그러니 사람들이 그를 찾을 때에 어찌 헤매지 않겠는가. 아마도 [각 사람들] 자신에게서 일어난 일이 최상의 것이리라.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어 그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먼저 너희 자신을 찾아내지 못했다면, 너희는 나를 너무 일찍 찾아낸 것이다. 그래서 니체는 자신의 책들을 배치하되, 사람들이 그 중심 사상을 찾을 때에 운이 좋으면 [사람들] 자신의 사상과 충돌하도록 배치하였다. 거기에서 사람들이 그를, 즉 니체를 발견하느냐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이 사유를 발견하느냐 여부가 중요하다. 자기 나름의 사유는, 사람들이 되찾아야 할 아리아드네다. (Safranski 241)

그러니까 자프란스키는 니체 해석의 역사에서 어느 한 입장을 취하거나 이제까지 없었던 니체 해석을 새롭게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니체 사상의 탄생, 자기모순, 전환을 정확한 연대기를 따라 추적한다. 이 추적의 과정 속에서 그는 니체의 흔들림, 충돌, 움직임, 변화를 여실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그리고 그런 흔들림과 움직임 속에서 생성된 것이 바로 니체의 사상이다. 니체의 사상은 그리하여 생생한 것이고 그래서 숨어 있다. 그래서 수많은 해석도 등장한다. 그러나 심오한 사상은 가면이 필요할 뿐, 어떤 비유나 이미지를 선호하지는 않는다. (개념은 하나의 비유나 이미지일 뿐이다.) 다시 말해 심오한 정신에게 있어서 모든 비유나 이미지는 상징이 아니라 하나의 가면이다. 그런 의미에서 니체는, 특히 1881년 경험 이후의 니체는, 미로에 숨어 있다. 따라서 비유나 이미지나 개념을 중심으로 니체를 찾아내려는 자는 니체를 찾아낼 수 없다. 결국 미로 속의 니체는 독자의 굳어진 개념이나 해석을 자꾸만 흔든다. 자프란스키는 이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의 전기를 읽노라면 독자의 생각, 독자의 해석이 자꾸만 흔들리는 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이 책의 커다란 장점이다.

뒤집어 말하면, 자프란스키의 전기는 디오뉘소스, 동일한 것의 영원회귀, 초인, 권력의지 등등의 중심 개념을 가지고 니체에 접근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 중심 개념들에 대한 명료한 해석을 내놓지도 않는다. 그는 그것들이 탄생했던 장소, 분위기, 상황, 날씨를 추적하여 이야기할 뿐이다. 이제까지의 니체 해석의 역사에서 등장했던 수많은 해석들도 그 장소, 그 분위기, 그 날씨를 추적하는 실마리에 불과하다. 혹시 그 수많은 해석들은 니체가 무너뜨린 사상들의 잔재에 불과하지는 않을까? 자프란스키가 일반적인 전기 형식에 걸맞지 않게 마지막 15장을 할애하여 니체 이후의 해석사를 서술한 것은 무슨 의미일까? 여러모로 이 책은 많은 영감을 준다.

정신적 붕괴 이후에도 위엄을 잃지 않았다는 니체는 1900년 8월 운명한다. 그의 사망 100주기가 되는 2000년, 독일에서 니체에 관한 수많은 저작들이 출판되었으나 이 책만큼 각광받은 것은 없다. 호프만, 쇼펜하우어, 하이데거의 전기에서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입증했던 자프란스키가 명쾌한 문체로 니체 사상의 토양들을 종횡하면서 일궈낸 성과는 깊고 풍요롭다. 자프란스키의 전기는 니체를 공부하는 이들이 일급의 전기로 삼을 만하다. 이 책을 알아보고 번역, 출판한 문예출판사의 기획에는 찬사를 보낸다. 오윤희 옮김, «니체 - 그의 생애와 사상의 전기»(2003)


그러나, 다시 한번 우리말 번역의 문제. 니체의 저서를 읽는 독자들은 항상 빛나는 섬광같은 것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 오윤희가 우리말로 옮긴 «니체 - 그의 생애와 사상의 전기»에서는 그 섬광같은 것, 그 번뜩이는 뭔가를 이상하게도 느끼기 힘들다. 자프란스키가 그토록 수많은 니체의 글과 편지와 메모를 인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가사의하게도 번역본에서는 그 맛을 느끼기 힘들다. 번역의 문제 때문이다. (”그의 사상의 전기”라는 딱 알맞는 부제를 두고 “그의 생애와 사상의 전기”라고 바꿔붙힌 것부터가 왜곡의 전조다.)

이 번역본은 많은 정성이 들어갔지만 위험한 번역이다. 독자들은 이 번역본을 읽을 때 막힘없이 잘 읽힐 것이다. 그래서 번역을 상당히 잘 했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역자는 잘 읽히는 번역문을 만들기 위해 니체의 원문을 자기 마음대로 주물렀다. 주의하시라, 원문을 위해 번역문을 손질한 것이 아니라 번역문이 잘 읽히도록 원문을 손질했다! 이러한 손질에 의하여 니체의 강하고 큰 문제가 사소한 문제가 되었으며, 황금의 비유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미로의 공간이 시장바닥이 되었다. 그래서 잘 읽힌다. 한 예를 들어보자:

Es ist durchaus nicht nöthig, nicht einmal erwünscht, Partei für mich zu nehmen: im Gegetheil, eine Dosis Neugierde, wie vor einem fremden Gewächs, mit einem ironischen Widerstande, schiene mir eine unvergleichlich intelligentere Stellung zu mir.

내 편을 드는 것은 필요하지도 않으며, 그러한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보다는 낯선 식물을 대할 때 갖게 되는 어느 정도의 호기심과 비판적 저항, 이런 것들을 가지고 나를 평가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자세다. (오윤희 역)

니체가 1888년 카를 푹스에게 보낸 이 편지 내용은 자프란스키의 저서에서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다. 그런 만큼, 자프란스키가 니체 독해와 관련하여 독자들에게 제일 먼저 당부한 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책 겉표지에 인쇄된 것이기도 하다. 이런 대목에서 “ironisch”를 “비판적”으로 옮긴 것도 놀랍거니와 문장 자체를 오독한 것도 당황스럽다. 이 문장은,

내 편을 드는 것은 전혀 필요없으며 결코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와 반대로, 낯선 식물을 대할 때와도 같이 약간의 호기심을, 반어적 반박과 함께, 내게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나에 대한 가장 지적인 입장을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로 옮겨야 한다. 즉, ‘니체에게 반어적 반박(다름아닌 경쾌한 반박)을 하면서 약간의 호기심을 내비추는 것’ 자체가 바로 ‘니체에 대한 가장 지적인 입장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윤희의 번역문은 이런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 이러한 예는 가벼운 예고편에 불과하다. 곳곳에 암초가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번역본을 일일이 들추면서 오역을 점검하느라 내 청춘을 허비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독자들은 이 번역본을 읽으면서 상당히 평범한 차원으로 전락한 니체를 만나게 된다는 사실에 유의하기를 바랄 뿐이다. 한겨레신문에 실린 편집자의 변, <니체 100주기 맞춘 삶과 사상 더듬기>에 의하면, 편집실에서 철저히 원문과 대조하고 ‘니체에 대해 누구보다도 해박한 고병권’이 꼼꼼히 점검했다고 하는데,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대조하고 무엇을 점검했는지 의아하기만 하다. 과연 그들은 독일어 원문을 읽기는 읽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구입해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니체라는 존재 자체가, 어쩌면 자프란스키의 안목이, 필연적으로 번역본이라는 가면이 필요한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 크고 두꺼운 가면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숨어 있는 독자는 숨어 있는 니체, 숨어 있는 자프란스키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독자라면 이 책을 읽는 동안 경쾌하게 반박을 하면서 약간의 호기심을 가지고 니체의 사상을 엿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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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5-27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신의 글과 함께 읽어야 할 책이군요.
짜라두짜와 함께 이 책도 보관함으로 일단..

반조 2007-05-28 0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윤희의 번역본은 잘 읽히는 문장이기는 합니다. 역자가 잘 읽히지 않는 원문들을 자유롭게 (제가 보기에는 '자기 마음대로') 다루었으니까요. 그런데, 짜라두짜를 구입하실 예정인가 보군요. 저는 그 번역에 대해 그다지 기대를 하고 있지는 않은데, 혹시라도 달팽이 님께서 읽게 되신다면 제게 짤막한 평이라도 전해 주셨으면 합니다.

Tugend 2007-05-28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자 오윤희입니다. 반조님께서 제기하신 번역의 문제에 대해서 제가 수긍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어서 글을 올립니다. 두번째 문장에 나오는 schiene를 님께서는 "... 보여주기를 바랍니다"로 번역을 하셨는데, 혹시 scheine로 잘못 보신 것은 아닌지요? 저는 schiene 가 추측을 나타내는 접속법 2식이며(원형 scheinen: ~처럼 생각되다), 이 동사의 주어는 eine Dosis Neugierde라고 보았습니다.
제가 번역을 할 때 가장 신경을 썼던 점은 잘 읽히는 글을 쓰자는 것이었습니다(학창 시절에 겪은 경험때문에). 이러한 의욕이 넘처서 종종 풀어쓰게 되는 경우가 있었지요. 하지만 님께서 주장하는 것처럼 '자기 마음대로' 번역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제 이름을 달고 나가는 책이었으니까요. 기본적인 의미의 왜곡이 없다고 생각될 때에 한해서 읽히기 쉽게 풀어서 해석을 했습니다. 이러한 나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번역의 문제점은 어느 곳인가에서 발견될 수 있을 것이며,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저의 책임입니다. 오윤희.

반조 2007-05-29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번역본에 역자님의 정성이 대단히 많이 들어갔다고 봅니다. 그 수고와 정성에 대한 별도의 감사를 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 먼저 미안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어쩌면, 저는 그 정성 때문에 "구입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말로 대신했는지도 모릅니다. 역자님께서 이 리뷰를 방문한 것 자체가 이 번역본에 대한 정성과 애정이 없이는 불가능하겠지요.

지적하신 내용과 관련하여, 접속법2식은 '조심스러운 추정' 외에도 '조심스러운 바람'을 뜻한다고 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고전어의 접속법에 대한 선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편지의 문체 자체도 니체가 1880년대에 이르러 많이 쓴 문체라고 봅니다.) 아무튼 어느 쪽으로 해석하느냐는 역자의 재량이라고 봅니다만, 저는 원문에도 없는 "이런 것들을 가지고 나를 평가하는 것"을 삽입한 것에 대해 반박하고 싶었습니다. 아마 이런 삽입에 대하여 역자님께서는 '가독성을 높히기 위한 것', '의욕이 앞선 시도'라고 판단하시겠습니다만, 저는 그 판단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제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국내 번역본들의 오역을 두고 네 차례에 걸쳐 지적한 "마이페이퍼"를 들춰보시면 아시겠지만, 국내 니체 번역의 실상에 대하여 저는 몹시 암울한 전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문을 너무 함부로 다루거든요. 이와 유사한 예를 이 리뷰에서 인용한 대목을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역자님께서는 "이제까지 인간의 두뇌와 심장이 탄생시킨 . . .책들 중의 하나"를 "지금까지 인간이 쓴 것 중에서 . . ."(335)로 옮김으로써 "인간의 두뇌와 심장"(aus menschlichem Gehirne und Herzen) 대신에 그냥 "인간"으로 옮겼습니다. 저는 이런 대목이 아주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니체의 의도를 상당부분 가리는 것이니까요. 또, 니체가 1881년 경험 직후 [서광]을 평하면서, "연관과 황금사슬의 그림 속에서 내 초라한 파편 철학을 잊어야만 한다"고 말했는데, 역자님께서는 "연관과 황금사슬의 그림"(im Bilde des Zusammenhangs und der goldnen Kette)을 "새 책의 내용과 구성"(335)이라고 옮겼습니다. 나름대로 역자님께서 고심하여 해석한 대목입니다만, 아무리 가독성을 위해서라고는해도 저는 "연관과 황금사슬의 그림"을 "내용과 구성"이라고 옮길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또, "그는 자신의 이론의 '정원'에서 오직 중심 주제만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낭패를 당하도록 자신의 정원을 가꾸었다"(358)라고 옮긴 대목에서, "조악한 순환"(eine grobianische Rolle)이라는 뛰어난 비유를 "낭패"로 옮긴 것은 지나치다고 봅니다. ("미로"와 "순환"은 제격의 비유이지요.) 그래서 저는 리뷰에서 "황금의 비유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평한 것입니다.

분명 역자님께서는 이런 대목들을 의도적으로 그렇게 번역했다고 봅니다. 아마도 가독성을 높히기 위해서였겠지요. 그러나 제가 이제까지 읽은 니체를 고려하면, 이런 번역에 대하여 용인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꼭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니체는 학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은 문제라고, 그래서 필연적으로 가면이 필요하다고.

돌아보면, 저의 평은 역자님께서 우리나라 니체 번역자들의 수준을 뛰어넘지 못했다는 판단에 근거한 것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국내 번역계 실정에서는 오윤희 번역본의 수준을 뛰어넘기도 힘들다고 봅니다. 그러나, 니체번역의 수준을 최고의 수준으로 높히기 위해서는 저와 같은 사람의 따가운 비평도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역자님께서 이 책에 쏟은 정성과 사랑을 감안하면 저의 비평이 모진 면이 있고 침소봉대한 면이 있겠습니다만, 더 나은 발전을 위한 의도로 받아들여 주셨으면 합니다.

 
이것이 영지주의다 - 기독교가 숨긴 얼굴, 영지주의의 세계와 역사
스티븐 횔러 지음, 이재길 옮김 / 샨티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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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사탄의 통로다. … 그대들은 사탄이 감히 공격하지 못한 남자를 꾀었던 여자다. … 그대들 각자가 이브라는 사실은 아는가? 그대들의 성性 위에 내린 하느님의 선고는 지금도 유효하다. 필연적으로 죄 또한 유효하다.

상식이 있는 이들이라면 위의 인용문이 얼마나 편견에 가득 차 있고 얼마나 폭력적인가를 간파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믿기 어렵겠지만, 초기기독교의 교부였던 테르툴리아누스가 여성들에게 쓴 편지 내용이다. 과연 이런 혐오스러운 글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혹시 성서 문자주의와 교조주의 때문은 아닐까? 그는 “불합리하므로 나는 믿는다”(credo quia absurdum)는 유명한 문구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물론 그가 이 문구를 직접 쓰지는 않았지만 그의 신학적 태도는 이 문구로 요약될 수 있다. 신의 아들인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것은 그것이 불합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믿음”(credo, credible)은 위험하다. 이런 믿음은 성서의 모든 사건을 역사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강요한다. 그 믿음에 의하여 창세기 내용도, 예수의 동정녀 탄생과 부활도 역사적 사실이 된다. (그것이 신화가 아니라고 믿는 이들만큼 성서의 풍요로움을 제거하는 이들도 드물리라!) 여기에서 성서 문자주의가 탄생하고 교조주의가 태동한다. 이러한 공격적 사상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는 테르툴리아누스는 영지주의를 혐오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영지주의자들은 자신의 영적 경험을 신화를 빌어서 이야기하기를 좋아했으므로 성서 문자주의나 교조주의와는 정반대였던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영지주의의 문헌은 대부분 실전되었고, 단편적으로만 테르툴리아누스와 같은 성향의 교부들의 기록에 의해서만 후대에 전달되었다. 그래서 서구 정신사에서 영지주의는 항상 비난받아 마땅한 이단이었고, 육체와 물질세계를 혐오하는 이들이었고, 황당한 신화를 신봉하는 이들이었다.

1945 년 나그함마디 문서의 발견은 이러한 천 육백 년간의 왜곡과 편견의 역사를 뒤집는 사건이었다. 그 문헌들은 역사속에서 주류기독교에 의해 거의 완전히 폐기되었던 영지주의의 문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문서의 발견은 1945년에 이루어졌으나 문서의 확보전과 학자들 특유의 공명심이 결합되면서 수십 년이 지난 뒤에 비로소 일반에게 공개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사정은 1970년에 발견되었으나 작년 봄에 처음 공개되면서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던 <유다복음>의 사례에서 잘 엿볼 수 있다.) 그리하여 1980년대에 대중이 접할 수 있는 소개서들이 출판되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비로소 영지주의 관련서적들이 번역되기에 이르렀다. 스티븐 횔러의 «이것이 영지주의다»(샨티, 2006)는 바로 이러한 유구한 역사적 흐름의 소산으로서, 탁월한 영지주의 입문서라고 할 만하다.

 

“영지靈知”는 희랍어 “그노시스γνωσις”의 번역어인데, 이는 대부분의 번역어처럼 일본인들의 결과물일 것이다. 전통적으로 “영지”는 선불교에서 사용되고 있는 용어로, “알음알이[知解]”나 “분별”과 대비되는 공적한 상태의 앎, 깨달음을 말한다. 이 용어는 우리나라의 태고선사나 나옹선사의 어록에서도 나타난다. 결국 영지주의의 “γνωσις”는 동양의 선불교와 맥락이 닿는다고 판단하고 “영지”라고 번역한 셈인데, 이는 매우 탁월한 판단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영지주의는 서양의 선불교라고 할 만하다. 실제로 저자는 “위대한 영지주의자 붓다”(43)라는 표현도 쓴다. 그렇다면, 과연 영지주의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저자는 영지주의의 문헌들 중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도마복음>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들을 인용하고 있다:

“너희가 너희 자신을 알게 될 때 너희는 알려지고 ‘너희가 살아계신 아버지의 자녀’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너희 자신을 알지 못하면 너희는 빈곤케 되고 너희 자신이 곧 빈곤이 될 것이다.”(말씀3)

“태초를 알고 있어서 종말에 관해 묻느냐? 태초가 있는 곳에 종말도 있다. 태초에 서 있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는 끝도 알게 될 것이며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말씀18)

“만일 너희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낳으면 너희가 낳은 것이 너희를 구원할 것이요, 너희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낳지 못하면 너희가 낳지 못한 것이 너희를 죽일 것이다.”(말씀70)

“나는 그 모든 것들 위의 빛이요, 나는 만물이니, 만물이 나에게서 나와서 나에게 이르렀다. 저 나무를 쪼개보아라. 나는 저기에 있다. 저 돌을 들어보아라. 거기서 나를 볼 것이다.” (말씀77)

그들이 그분께 말하였다. “저희가 당신을 믿을 수 있도록 당신이 누구신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하늘과 땅의 징표는 이해하면서 너희 앞에 있는 자는 알지 못하니, 너희는 이 순간을 이해하는 법을 모르는구나.”(말씀91)

불교의 근본적인 가르침을 알고 있는 이들은 위의 구절들이 너무 친근해서 혹시 불교의 가르침이 아닐까 의구심을 가질 만하다. “살아계신 아버지”, “구원” 등의 낱말이 생소하기는 하지만, 모든 위대한 가르침은 그 가르침이 전파되는 지역의 문화와 언어를 토대로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생소할 것도 없다. 이처럼 불교와 영지주의 간에 근본적인 친화성이 느껴지기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영지주의와 인도종교의 교류관계를 파헤치려고도 한다. 그러나 굳이 그럴 필요는 없겠다. 인간의 위대한 점은 서로 간의 교류가 없더라도 충분히 고귀한 영역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마치 먼 곳에 있는 벗이 찾아오듯. 저자의 말을 빌어서 말하자면, “인간의 영혼이라는 바다에 퍼지는 통찰은, 연못에 던져진 돌멩이가 만들어내는, 점점 커져가는 동심원과 같다. 우리가 더 이상 지각할 수 없을지라도 그것은 영원히 바깥으로 확대되어 간다. 영지주의자들의 지혜는 이런 동심원과 같아서”(6) 다른 동심원, 가령 불교의 가르침과 언젠가는 만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수십 년 사이, 더 정확히 말하면 19세기 후반 이후, 독단은 덜한 반면 영감은 훨씬 풍부한 가르침과 수행법을 찾아 동양의 종교로 발길을 돌리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찾는 대안이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영지주의라 불린다는 것을 전혀 짐작도 못한 것 같다. 그뿐 아니라 실재와 영혼, 그리고 깨달음의 필요성 등에 대한 통찰에 있어서 영지주의와 동양 종교가 얼마나 유사한지도 깨닫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20)

동양과 서양을 하나로 묶는 가장 중요한 공통의 분모는 분명 그노시스의 경험이다.(21)

영지주의가 과연 이런 것이었던가?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편견에 가득 찬 초기기독교 교부들의 비난을 통해서만 영지주의를 접했었다. 물론 그들의 비난이 부당할 것이라는 예상은 했다. 이제 우리는 나그함마디 문서의 발견과 함께 역사상 가장 쉽고 풍요롭게 영지주의의 문헌을 접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했지만, 아직 영지주의에 대한 이해는 초기기독교의 편견에 물들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기독교가 로마제국에서 공인된 이후 지하에서 벗어나 권력을 등에 업기 시작하면서 소위 ‘이단’이 탄생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지하의 기독교 시절에는 영지주의도 기독교였다. 이단이 애초부터 이단이었던 것이 아니라, 주류기독교(로마카톨릭)가 권력화되면서 주류기독교가 아닌 종파들이 이단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2세기의 탁월한 영지주의자였던 발렌티누스가 약간의 표차로 로마 주교직에서 탈락했다는 사실에서도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역사속의 로마제국은 313년에 기독교를 공인하고 나중에는 국교로 삼았다. 그 이후부터 주류기독교가 이단들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살육이 동반된 이 전쟁은 중세시대까지 지속되었다. 스티븐 횔러는 이 역사를 추적하면서, 기독교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살아났던 영지주의자들의 고귀한 삶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카타르 파에 대한 박해는 기독교인들에게 더없이 곤혹스러운 역사이기도 하다.

 

naghammadi.jpg
1945년 발견된 “나그함마디 문서”의 파피루스. 1~2세기 경에 작성된 희랍어 원본을 콥트어로 번역한 것으로서 모두 52권이 발견되었다. 기독교 최초로 공동생활의 수도원을 창설했던 파코미우스의 제자들이 390년 경 주류기독교의 영지주의 문헌소각의 위험에서 구하기 위해 나그함마디 절벽에 숨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것이 영지주의다»는, 천 육백 년 동안 묻혀 있다가 불과 반세기 전에 세상에 드러난 나그함마디 문서를 토대로 영지주의의 역사와 기본 가르침을 소개하는 책이다. 저자 자신이 영지주의의 사제이기 때문에 그렇겠지만, 이 책은 단순한 소개서 수준을 뛰어넘는 훌륭한 통찰들로 가득하다. 나의 경우에는 이 책을 읽고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의문들이 다소 풀렸다. 가령, 여성적 지혜를 상징하는 “소피아”에서 성모 마리아의 원형을 보았고, 입교의식 및 성례전에서 카톨릭 성례전의 근원을 보았다. 데미우르고스에 관한 서술도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칼 구스타프 융의 심리학도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특히 “그노시스(영지)”를 경험한 자는 필연적으로 그 경험을 신화적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으며, 그 경험이 없는 자는 그 신화적 표현들조차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이 신화적인 표현들 때문에 이 시대의 독자들은 약간의 거부감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신화란 그 시대에 그 지역에서 가장 자연스러웠던 이야기 구조였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이 거부감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지”를 경험한 자, 아는 자는 소수이고, 그 경험에 관해 듣기만 하는 자들은 다수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지주의는 필연적으로 엘리트주의 색채를 띨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것이 영지주의가 탄압을 받았던 정치적 이유였을 지도 모른다. 실제로 영지주의는 언제나 엘리트주의라는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이상한 부류의 비난은 인류 역사에서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크리슈나무르티의 말을 빌자면, “세상에는 오직 두 종류의 사람, 곧 아는 자와 알지 못하는 자가 있을 뿐”(41)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유일한 아쉬움은, 영지주의의 구체적인 수행법이 소개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아마도 나그함마디 문헌 중에 수행법에 관한 책이 없었나보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 소개됨으로써 비로소 영지주의가 제대로 소개되기 시작한 셈이지만, 영지주의의 소개가 더 이상 지속되리라는 보장을 못하겠다. 영지주의는 기독교의 역사에서 이단으로 철저히 배격되었던 데다가 그 수행법이나 성례전을 담당하는 종교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내에서 영지주의를 연구할 만한 인력은 어느 종교, 어느 대학에서도 배출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워할 것은 없겠다. 어쩌면 이것이 “그노시스(영지)”의 고귀함에 어울리는 방식의 삶일 지도 모르므로.

그노시스의 깊이를 경험하지 못한 자에게 자신의 그노시스를 드러낸다면 치명적인 과오가 될 것이다. 역사를 통해 수많은 영지주의자들이 가슴 아픈 운명을 맞이한 것은 알지 못하는 자가 아는 자에게 터뜨린 눈먼 분노 때문이었다.(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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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5-12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희 자신, 태초, 나의 안, 나(참나?), 이 순간...
정말 그러하군요.
진리의 문화적 양식은 다르더라도 어차피 진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니
그 말의 낙처를 따라간다면 그것이 한 곳임을...
인용문이 마음을 떨리게 합니다.

반조 2007-05-14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그함마디 문서 중에서 옥석을 가리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만, 그들의 근본 바탕이 불교의 가르침과 유사하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을 듯합니다. 다만, 서양의 고대에 형성된 문헌인 만큼, 그 신화적 표현들이 낯설기는 합니다.

yamaccokek 2007-05-15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그함미디 문서가 우리말로 아직 번역되지 않은 건 참 아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성서 밖의 복음서 (정신세계사)>에 나그함마디 문서 몇 편이 실려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영지주의 사상이 동양 종교 사상과 얼마나 유사한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역시 바탕 깨달음은 비슷하나 봅니다.

반조 2007-05-16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이 영지주의다>의 역자인 이재길의 저작이군요.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지주의의 근본적인 가르침은 기독교 내부로 충분히 흡수할 만한 수준인 듯한데, 그것마저 철저히 배격하는 것을 보면 기독교는 확실히 교의 내지 교리 중심의 종교인 듯합니다. 교의 중심의 종교도 아름다울 수 있겠으나, 폭력성이 항시 잠재되어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네요.

yamaccokek 2007-05-17 0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교의 중심의 종교라! 저도 동감합니다. 교의가 종교의 형성 단계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겠지만 그게 화석화되면 종교를 죽이는 역할을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영지주의는 주류 기독교의 좋은 보완제가 될 수 있겠지요.
 
선어록 읽는 방법
추월용민 / 운주사 / 1996년 5월
평점 :
품절


«무문관으로 배우는 선어록 읽는 방법»(운주사, 1996)은, 그 제목만 놓고 보면, 꼭 무슨 선어록 해설서 같은 짐작이 든다. 나 역시 이 책을 서점에서 처음 접했을 때 제목만 보고 쓸데없는 고칙 해설서이겠거니 하고 아예 들춰보지도 않았다. 나중에야 도서관에서 이 책을 접하고 내용을 살펴보니, 이것은 해설서가 아니라 당송의 선어록 한문독해를 위한 책이었다. 이 책의 의의를 살피자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漢文’에 대한 선이해가 필요하다. 마침 저자는 이에 대하여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漢文’이라 하고 중국에서 ‘古文’이라고 하는 것은, 周秦시대의 말하기 단어를 기본으로 하여 만들어진 일종의 쓰기 단어이며, 그밖에 후대의 작가가 그러한 고대의 쓰기 단어를 흉내내서 쓴 文語文(擬古文)도 포함하고 있다. 戰後까지는 그것을 일본의 고전으로서 보통교육의 ‘國語’科 안에서 가르쳐 왔다. 그 흐름에 따라 오늘의 고등학교의 ‘漢文’교육은 일본어의 ‘古文’을 기준으로 가르치는 것으로 주로 ‘先秦의 고전어’로서, 말하자면 ‘사서오경’을 비롯한 ‘당송팔가문’ 등으로 일컬어지는 ‘擬古文’을 읽는 한문인 것이다. 따라서 당송의 구어를 자유로이 사용한 ‘禪宗語錄漢文’을 읽기에는 그대로만으로는 충분치가 않다.(273-274면)

저자 아키즈키 료민(秋月龍珉)의 설명처럼, 우리가 중국고전을 읽기 위해 배우는 한문은 ‘고문’ 내지 ‘의고문’에 해당한다. 그러나 선어록 고칙은 대부분 스승과 제자간에 깨달음에 이른 인연실화를 바탕으로 성립된 것으로서 죽은 문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문자로 가득하다. 따라서 당송의 구어체가 생생하게 보존되어 있는 만큼 기존의 고문 문법만으로는 선어록 독해를 하기가 아주 어렵다. 더구나 그 정신세계의 층위가 전혀 다른 만큼 제아무리 고문에 능통한 학자라도 선어록 앞에서는 물러설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무문관으로 배우는 선어록 읽는 방법»은 바로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나온 저작이다. 다시 말해, 선어록은 당송의 구어체로 이루어져 있는 만큼 고문이나 의고문의 문법이 아닌 새로운 문법이 필요한데, 그 문법의 초석을 놓기 위해 이 책이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책은 전형적인 문법책은 아니다. «무문관» 48칙을 한 구절 한 구절 전부 번역하고 구문과 문법을 설명하였으며, 책 말미에는 학습문법(school grammar) 수준의 문법을 종합정리해서 실어놓는 방식을 취했다. 그래서 이 책은 «무문관» 번역본이기도 하고, 무문관 및 선어록 독해를 위한 문법책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가 판단하기에, 번역이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정확하다.

물론 학자 특유의 고집이 드러나는 대목들이 있긴 있다. 한 예로, 제9칙 대통지승불 대목을 읽어보자:

흥양의 청양화상은 어느 스님이 “‘대통지승불은 십겁이라는 오랜 시간을 좌선했지만 불법은 현전하지 않아 불도를 성취하지 못했다’라고 하는데 왜 그렇습니까.”라고 물으니, 화상은 “그 질문은 과녘을 정확히 맞추었구나.”라고 했다.

그 스님은, “도량에서 좌선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어째서 불도를 성취할 수 없다는 것입니까.”라고 (거듭) 물었다. 청양화상은 말했다. “그것은 저 분(대통지승불)이 스스로 성불하지 못했기 때문이다.”(80-81면)

저자는 마지막 문장 “爲伊不成佛”을 “그것은 저 분이 스스로 성불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로 옮겼지만, “그대가 성불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로 옮겨야 한다. 이 공안은 임제의 “부처는 作佛하지 않는다”는 평으로 깨끗이 끝나는 것이어서 더 이상 토를 달 필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저자는 나름의 신념이 있어서 “나는 ‘그것은 저 분이 대비천제의 마음에서 스스로 성불하지 않는 까닭이다’라고 풀이하고 싶은 독자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78)고 밝혔던 것이다. 이 신념 때문에 결국 (내가 보기에) 오역을 했지만, 사실 이런 대목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즉, 저자가 자신의 독자적인 해석을 극도로 삼가고 있기 때문이다. 거의 대부분 구문, 문법에만 치중할 뿐 이러한 독자적 해석이나 토달기는 아주 예외에 속한다.

이러한 겸허한 자세는 그가 선어록 독해를 배움에 있어서 여러 스승들을 거쳤던 과정에서 나온 것이리라. 그는 일반 학자들뿐만 아니라 수행자로부터 선어록 독해를 배웠다, “그런 식으로 읽는다면 조주화상이 우시겠지” 하는 핀잔도 들으면서.


 

«무문관»은 «벽암록» 100칙의 절반쯤 되는 48칙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험준하기로 유명한 공안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책이 아닌데도 국내에 «무문관» 48칙에 관한 해설서가 이미 출간되어 있다. 한형조의 «무문관, 혹은 너는 누구냐»(여시아문, 1999)가 그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 물론 선불교의 역사와 해설을 적절하게 배합하여 읽히는 맛이 있긴 하지만, 그 해설이라는 것이 의리선에 치우쳐 있어 얼토당토 않는 결론에 도달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의 해설들은 실참이나 수행과는 관계가 없을 성싶다. 또한 선불교의 역사나 일화는 기존에 잘 알려진 것들이고 «선의 황금시대»(경서원, 1986)에서 원용한 바도 드물지 않아 그 내용이 새로울 것도 없다. 번역 역시 저자의 개성이 앞서는 발랄한 번역이다.

«무문관»을 읽으려면, 오히려 이 책, «무문관으로 배우는 선어록 읽는 방법»을 추천한다. 특히 당송시대의 한문선어록을 독해하고자 하는 분들은 반드시 이 책을 거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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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교와 창암 글씨에 미치다 - 불행한 시대를 살다간 두 명필을 위한 변명
최준호 지음 / 한얼미디어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내 고향의 천은사가 항상 맑고 청신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면, 아마도 가는비가 흩뿌릴 때 천은사 일주문을 자주 들었던가 보다. 그러나 어쩌면 일주문 편액 탓인지도 모른다. 대부분 사찰의 일주문 편액이 가람의 위세를 과시하듯 힘찬 필세의 글씨라면, 천은사 일주문 편액은 풀잎을 뒹구는 물방울처럼 작고 맑게 흐르는 필세의 글씨였다. 일주문 편액의 분위기가 곧 천은사 가람의 분위기를 대표한다는 생각은 나만의 생각이 아닐 듯하다. 원교 이광사의 ‘유수체(流水體)’라 하던가. 그런가 보다 했던 것이 불과 몇년 전인데, 작년부터 글씨가 보이기 시작했다.

고미술에 일가견이 있는 것도 아니요, 다년간 서화를 보아온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글씨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우리나라 탁본첩이나 서첩을 빌려와 일견하면서 수많은 서예가들 중에서 마음에 들어오는 서예가들을 꼽아보았다. 김생, 탄연, 영업, …. 그들 모두가 명필 중의 명필로 꼽히는 분들이었다. 나는 서첩들을 보기 이전에 서예관련 글이나 책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 역시 예술의 힘이란 이런 것인가? 따로이 설명이 필요없고 곧바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인가? 능호관 이인상도 그렇게 만났다. 그에 관한 견문도 없었고 관련 글도 읽은 바 없었지만, 전시된 단 하나의 작품을 통해서 나는 단번에 그에게 빠져들었다. 그만큼 나의 고미술 지식이 형편없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지만, 내가 그들에 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그들의 작품을 알아보았다는 사실에 대하여 대단히 기쁘다. 내 감각에 대한 확신이 내가 소유한 지식보다 월등히 소중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주류적인 유형에서 벗어난 국외자적 인물임을 자각하고 있다. 서양인문학에 심취하였다가 동양적 정신세계로 완전히 돌아서버린 인문학도. 정상적인 경로라면 어느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기 위하여 탄탄하고 끈질긴 준비를 해야 할 30대 중반에 돌연히 방향을 틀었던 것이고, 대학초년생처럼 동양의 정신세계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어느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룰 수 있겠다는 생각은 감히 품지도 못한다. 학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린 지는 훨씬 오래이고. 다만 ‘나’라는 것이 지속적으로 뭔가를 배우며 변해가는 것을 귀하게 여길 뿐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유일하게 벗하고 싶고 기대고 싶은 분들은 옛 사람들이다. 옛 사람들의 정신세계에 점점 가까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선승과 선비들의 세계, 그리고 그들의 예술세계. 그들은 내가 예전부터 친숙하게 알고 있었던 분들이 아니라, 어느날 갑자기 쏟아지듯 발견되기 시작한 분들이다. 이것이 내게 중요하다. 그들에 대한 지식은 형편없으나, 그들의 글이나 예술을 보는 순간 간명직절하게 읽히고 보인다는 것.

<원교창암유묵>은 원교 이광사(1705~1777)의 서첩(소위 ‘구풍첩’)에 창암 이삼만(1770~1847)의 글씨가 더해진 것이다. 즉, 후대 사람이 서로 다른 두 서첩을 합한 것이 아니라 창암 선생이 원교 선생의 서첩에다 원교 선생을 흠모하면서 자신의 글을 덧댄 것이다. 이 유묵을 아산 조방원 선생이 40여년 간 소장하고 있다가 “완상과 농첩의 즐거움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다”는 바람에 따라 몇년 전에 100부 영인본을 만들어 배포했다. 그리고, 이 영인본의 수량 부족을 대신하기 위하여 최준호 선생이 <원교창암유묵>을 탈초하고 해제하여 «원교와 창암 글씨에 미치다»(한얼미디어, 2005)는 제목으로 단행본 책자를 출간하였다. 이 단행본 말미에는 <원교창암유묵>의 복사본이 실려 있어 나같은 학인 수준의 완상첩으로는 부족함이 없을 성싶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서첩의 탈초와 해제, 그리고 서첩복사본으로 주요부분이 구성되어 있다. 해제자가 워낙 조심스런 마음을 가진 분이어서 원교와 창암의 무게를 겨우 겨우 감당해 내는 태도를 취하면서 두 명필이 썼던 글을 또박또박 번역하고 출전을 밝히고 관련 해제를 덧붙혔다. 탈초(脫草), 즉 초서체를 정자체로 옮기는 작업만 해도 7개월 가량 소요되었다고 하니 글의 출전을 일일이 밝히고 그 출전에 관한 주석과 해석을 찾아내는 수고는 또 얼마나 컸을까. 필자의 해제는 과잉해석을 철저히 금하고 대부분 전고로 일관하고 있지만, 옛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흠모하는 이들로서는 이것이 불만 요인이 아니라 오히려 학인이라면 마땅히 갖추어야 할 기본자세이다. 덕분에 원교의 «서결(書訣)»이나 창암의 «서결»이 해제의 자리를 빌어 갈피갈피 소개된다:

비록 자획은 마음가짐에 근원하고 담긴 품격은 식견과 도량에서 나온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모든 것에 통달하여 지혜가 밝고 정직하며 널리 배워 학문을 갖춘 선비라야 서도를 이야기할 수 있다. (20)

이것은 책에 소개된 원교서결의 한 대목이다. 원교서결은 내가 유일하게 의존하고 있는 예술론이기도 하다. «원교와 창암 글씨에 미치다»에는 소개되어 있지 않지만, 원교서결에서 내가 좋아하는 대목을 소개한다:

노자가 말하기를 “으뜸가는 선비는 도를 들음에 부지런히 실행하고, 중간치의 선비는 도를 들음에 반신반의하고, 아랫등급의 선비는 들음에 크게 비웃나니 아랫등급 선비가 크게 비웃지 않으면 도라고 하기에 부족하다”(도덕경 41장)라고 하였다. 서도는 비록 작은 도이기는 하나 그 지극한 측면을 말하면 또한 그러하다. 또 누가 아랫등급 선비의 마음을 사려고 하다가 도리어 으뜸가는 선비의 비웃음을 당하려 하겠는가? 한유가 말하기를 “글이 조금 부끄러우면 사람들이 조금 좋다고 하고, 크게 부끄러우면 매우 좋다고 한다”라고 하였고, 손과정이 말하기를 “매번 글씨를 써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그 가운데 내 마음에 드는 것에는 일찍이 눈길을 준 적이 없고, 혹 잘못이 있는 것은 도리어 감탄한다”라고 하였으니 이러한 것은 옛부터 줄곧 있어온 걱정거리이다.

— 김남형 역, «서예비평»(한국서예협회 2002) 223~224면

으뜸가는 작품이 제대로 수용되지 못하는 것, 고결한 정신이 외면 당하는 것, “이러한 것은 옛부터 줄곧 있어온 걱정거리이다.” 그래서 대가들은 주위와 당대의 평가는 상관하지 않고, 백 년, 이백 년 뒤에 나타날 진정한 대가의 안목을 두려워했다. 먼 후대의 안목이 두려워 맑음과 고고함을 놓치지 않고 그 외로운 경지를 버텨낸 것이다. <원교창암유묵>은 그러한 경지에서 노닐었던 대가들의 서첩이다.


<원교창암유묵>의 구성을 보면, 원교의 글씨가 112자, 창암의 글씨가 발문을 포함하여 110자로서 각각 30면, 26면을 채우고 있다. 그리고 서체가 각 글귀마다 달라 완상하는 재미가 더하거니와, 특히 글귀의 뜻을 음미하며 완상하노라면 가히 옛 사람들의 완상하는 맛을 알 듯도 하다.

“입으로 외우는 사람은 소털 같이 많으나 마음으로 통하는 사람은 기린뿔 같이 귀하다口諷牛毛 心麟通角”(19). <원교창암유묵>은 이 전서의 글씨와 함께 시작된다. 책에 실린 서첩복사본을 보면 붓의 속도, 필세, 먹의 농담, 결구의 흔적, 비백 처리 등등, 진품을 완상할 때 못지않게 세밀하게 완상할 수 있다. 얼핏 전서라면 강직하고 굳센 의기가 연상되지만 서첩을 완상하다보면 이처럼 맑고 한가로울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의연하다. 해제자는 이 글씨를 두고, “깨끗하고 밝은 마음이 담겨 있다. 맑은 하늘에 구름 지나가듯이 천천히 지나간 붓자국의 필로가 역력하다”(21)고 평한다.

«원교와 창암 글씨에 미치다»는 위와 같은 식으로 유묵의 각 글귀마다 번역하고 출전을 밝히고 해제하는 순으로 글들이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원교의 유묵에 관한 내용이요, 2부는 창암의 유묵에 관한 내용이다. 3부에서는 원교, 창암, 추사의 생애를 약술한 뒤, 그들 간에 얽힌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두 명필의 작품과 서결이 걸림없이 맑고 힘차게 흐르는 반면에 해제자의 풀이는 까끌까끌한 편이지만, 해제자의 노고와 마음자세만큼은 본받고 싶다.

«원교와 창암 글씨에 미치다»는, 책 말미에 실어놓은 <원교창암유묵> 복사본만으로도 충분히 값어치를 하고도 남는다. 연노란 한지의 질과 때묻은 흔적마저 자세히 보일 정도로 복사상태가 좋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마치 <원교창암유묵>처럼 완상한다. 완상할 때마다 언제나 맑은 기운이 내 몸을 감돈다. 절로 옷깃을 여미게 된다.

“높은 암벽이 노을을 다투고 외로운 봉우리로 해가 저무네森壁爭霞 孤峯限日”(31) 즐비한 암벽들이 으리으리한 삼림처럼 뻗어올라 노을을 다투지만, 그러나 붉은 해는 외로운 봉우리로 저문다. 예술가는 모름지기 외로운 봉우리가 되어야 한다.

외로운 봉우리에, 천하를 삼키고 떨어지는 붉은 해 있으리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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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3-09 0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을 울리는 리뷰입니다.
책을 보관함으로 담습니다.

반조 2007-03-10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 님, 반갑습니다.

2007-03-28 08: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조 2007-04-12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월28일에 방문해 주신 님, 격려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먼저 한겨레신문 지면과 웹상에서 벌어졌던 «어우야담» 번역논쟁 기사를 연결한다:

이 논쟁의 과정을 간략하게 소개하면서 개인적인 소감을 덧붙히고자 한다. 이 논쟁은 이상수 기자가 최근에 신익철 교수 외 3인이 번역한 유몽인의 «어우야담»(돌베개, 2006년 11월 출간) 서평기사에서 시작되었다. 이상수 기자는 서평에서 «어우야담»을 흥미롭게 소개한 뒤 번역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짤막한 평을 덧붙였다:

옮긴이들은 서로 다른 판본 27종을 견주어 <어우야담>의 원문에 표점과 교감 내용을 덧붙여 별책으로 묶었고, 본문 속에 나오는 동아시아 인물들에 대한 꼬마 사전도 덧붙였다. 독자들은 비로소 우리 고전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 번역을 만난 셈이다. 그러나 번역문 가운데 수장(水漿), 상식(上食), 임모(臨摹) 등 이미 죽은 옛말들을 풀이말도 없이 그대로 드러낸 건 아쉽다. 민간에 발을 깊게 담근 유몽인의 민중지향 정신과 어울리지 않는다. 또 중국을 ‘상국(上國)’이라 쓴다거나 ‘우리나라 말’을 ‘방언(方言)’이라고 옛말 그대로 옮긴 건, 연구자가 현대 한국인인지 의심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 [서평] 야사와 괴담으로 읽는 조선시대 /이상수

이 평에 대하여 신익철 교수와 출판사측이 서평이 적절하지 않다는 전화·메일을 했고 신익철 교수는 독자의견란을 통하여 짤막한 반론을 개진했다. 이러한 반응에 대하여 이상수 기자는 지면 한계상 서평에서 건드리지 않고 넘어갔던 것을 지적했다. 그는 두 군데의 명백한 오역을 지적하면서 한국학계의 고전 주석의 수준이 아직은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물론 주요 논쟁사항은 “상국”과 “방언”의 번역 관련 문제인데 이 문제는 나의 관심사가 아니므로 언급하지 않는다.) 이에 대하여 신익철 교수는, 아래의 인용문처럼, 오역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그 오역된 사항을 빌미로 이상수 기자가 과도한 판단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역자들의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번역자들이 어떤 <장자> 주석서든 아무 것이나 하나만 뒤적여봤더라도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었음에도 그런 수고조차 게을리 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라거나, “아는 것은 안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모르는 것은 의미가 통하지 않는 대목 그대로 남겨두는 학자적 양심이 무엇보다 요구된다.”라는 이 기자의 지적에 대해서는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 [재반론] 이상수 기자의 지적에 대한 답변 /신익철

그러면서 신익철 교수는 이 번역본이 얼마나 지난한 과정을 거쳐 탄생하였으며 얼마나 수고를 기울였던 것인가를 주지시키면서 우리나라의 열악한 번역풍토마저 환기시켰다: “이와 함께 대부분의 번역이 자본주의 시장의 논리에 내맡겨져 있으며, 국가적 차원에서 고전 번역을 체계적으로 점검하며 지원하는 시스템이 미미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주요 고전에 대한 교감을 수반한 수준 높은 번역을 수행하기 힘들게 하며, 우리의 번역 수준을 떨어뜨리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라고 생각한다.”(신익철)

이에 대하여 이상수 기자가 지난 2월 6일 마침내 심중에 품고 있던 칼을 뽑았다. “옛글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을 것인가” 하는 대단히 깊고 풍요로운 제목의 반론이었다. 그는 “아는 것은 안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모르는 것은 의미가 통하지 않는 대목 그대로 남겨두는 학자적 양심이 무엇보다 요구된다”는 자신의 발언에 책임을 지기 위하여 그 발언에 걸맞는 대목들을 지적한 뒤, 인문학자가 갖추어야 할 근본적인 자세를 언급했다. “인문학은 굶어죽을 각오로 하는 학문이다”, “국가 쳐다보지 말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道)가 존중받지 아니한다”는 소제목 아래의 글이 바로 그것이다. 인상적인 대목 몇 군데를 읽어보자:

우선 나는 인문학을 하는 사람이 국가가 뭘 해주길 바라며 그쪽을 자꾸 쳐다보는 데 대해 좋게 여기지 않는다. 국가가 하는 일은 무엇을 하든 그건 결국 국가의 사업이다. 언제 어느 곳에 존재했던 국가가 진정한 인문 정신의 발양을 위해 투자했던가? 어떤 계몽군주의 위대한 발자취도 결국은 군주와 통치자들의 치적을 위한 사업일 뿐이다.

물론 나는 국가의 예산 가운데 좀더 많은 부분을 인문 분야로 돌리도록 하는 데에는 적극 찬성한다. 그거야 당연히 나쁠 게 없다. 그럼에도 인문학을 한다는 행위는 어떤 상황에서도 국가와 무관하다. 국가가 돈을 주든 말든, 누가 알아주든 말든, 높은 평가를 해주든 말든,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것이 인문학을 공부하는 가장 기초적인 태도라고 나는 믿는다. 그게 좋아서 인문학을 하는 게 아닐까. 늙음이 오는 것도 모르는 채. 사실 난 국가가 제대로 된 인문학 연구를 악랄하게 방해하던 시절에 대학을 다녔기 때문에, 국가가 쓸데없이 나서서 간섭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천만 다행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

나는 굶어죽을 각오로 하는 게 인문학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대학에서 오라고 해도 가지 않고 안경알을 가는 걸로 생업을 삼다 폐병 걸려 죽었고, 인문학의 정신과 같은 맥락의 치열한 삶을 살았던 모차르트도 고흐도 살아생전엔 아무런 영화도 누리지 못하고 가난뱅이로 비참하게 죽었다. 그러나 그런 죽음도 작은 일이다.

— 옛글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을 것인가 /이상수

이상수 기자에게 존경을 표한다. 한겨레신문에 이토록 동양적 깊이를 갖춘 기자가 있다니 놀랍다. 아마 신익철 교수가 반론을 시작하면서 이상수 기자의 학문적 깊이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4인의 학자가 6년 간 공들여 번역해낸 노작을 일개 기자가 촌평했다는 사실이 불쾌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 기자는 그저 흔한 일개 기자가 아니라 «어우야담»의 번역본을 누구보다도 면밀하고 예리하게 비평할 수 있는 역량의 기자였다. 신익철 교수는 이상수 기자에게 의외의 일격을 당하면서 다음의 말을 했다:

이 기자가 <장자> 인용문 중 오역임을 밝힌 것은 두 대목이다. 177화 ‘한유의 교묘한 글 솜씨’와 231화 ‘정호음과 어숙권의 박식함’ 중 <장자>를 인용한 대목의 해석이 그것인데, 여기에 오역이 있다는 것은 정확한 지적이다. 나는 겸허하게 이 지적을 수용하며 이 기자의 박식함에 감탄하는 바이다.

— [재반론] 이상수 기자의 지적에 대한 답변 /신익철

그러나 나는 그것에 감탄하지 않는다. 그것은 학자의 기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갖고 있지 못한, 글의 폭과 깊이에 맞추어 자신의 모습을 은연히 조금씩 드러내는 이상수 기자의 인간적 깊이에 감탄하는 바이다. 그리고 인문학자의 근본자세에 대한 그의 일갈은 두고두고 음미할 만하다. 아울러 그는 이 논쟁 때문에 혹시 독자들이 번역본의 수준을 오해할까 염려하여 다음의 당부를 잊지 않았다:

이 글을 읽는 많은 이들이 신 교수 등 연구자들이 6년 광음(光陰) 피와 땀으로 옮긴 <어우야담>을 한 권 사서 서재에 모셔두길 권유한다. 한국 인문학의 진일보를 위한 발전 기금을 낸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책 디자인도 그지없이 세련됐고 장정도 말끔한 얼굴을 하고 있다. 내가 여기서 논한 건 좀더 나은 번역을 위해 함께 고민해보고 싶은 내용을 얘기한 것이다. 독자 제현들의 혜량(惠諒)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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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폴리스 2021-03-09 0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서울군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