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있고, 만남이 있는 책"
좋은 책이란 그 속에 사람이 있고, 만남이 있고, 살아야지 하는 삶이 있는 책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달 '내맘대로 좋은 책'은 <현경과 앨리스의 神나는 연애>. 어느 문장을 읽다가는 연락 뜸한 오랜 친구에게 편지를 썼고, 어느 문장을 읽다가는 아빠께, 취업 준비한다고 고군분투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구에게는 여기 적힌 시 하나 읽어줬고, 누구와는 "여기 적힌 삶처럼 살고 싶다."하고 수다도 떨었다. 하루 종일 뛰어 다녀도 다 만나기 힘들 사람들을 책 한 권 읽으면서 다 만났으니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빠 때문이야.
열두 개의 인형을 손수 꿰매 만들어준 아빠.
철마다 인형의 옷을 바느질하시며 남자 속의 여자를 보여주셨어.
아빠의 눈빛 속
나는 눈부신 해바라기
품에 안고 들려주신
어린 소녀 전사의 목숨 건 순례기들
나는 그냥 나라서
예쁘다는 믿음을
내 세포 하나하나에 새겨주셨어.
아빠의 사랑 때문에
나는 가부장제를 졸로 보지.
남자는 사실
부드럽고 아름다운 존재라는 걸 믿으면서 말이야.
그래서 나는 아직도
남자를 사랑하나봐. (본문 54쪽에서)
사회.역사담당 김현주(realsea@aladin.co.kr)
"노래는, 이렇게 만드는 것이다."
우타다 히카루의 2004년 최신 싱글인 이 앨범에는 단 한 곡이 담겨있다(트랙은 두 갠데, 하나는 노래, 하나는 연주곡). 두 곡 합쳐봐야 10분이 채 되지 않는다. 거기에 가격은 5,000원이니, 사실 좀 억울한 맘이 들기도 할 법 하다(실제 판매도 별로 없다).
하지만, '누군가의 소원이 이루어질 때'는 여태껏 발표했던 우타다의 노래 중 단연 최고라 단언할 수 있다. 피아노를 기본으로 담백하게 짜여진 멜로디와 군더더기 없는 편곡, 우타다 히카루의 한층 여유로운 보이스까지. 어디 하나 빠지는 곳이 없고 어느 하나 허투른 공간이 없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새삼 좋은 노래란 어떤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요란한 이펙트나 웅장함만 강조하는 천편일률적인 히트곡들 사이에서 우타다는 조용하지만 강한 톤으로 뭇 노래들을 압도한다. 그래, 노래는 이렇게 만드는 것이다.
얼핏 보면 비싸게 느껴지겠지만, 정말 좋은 'Song'을 만나고 싶은 분께 주저없이 권한다.
음반.DVD담당 서현(mirinae@aladin.co.kr)
"존경합니다, 하이타니 선생님!"
원래 아무 때고 잘 우는 인간이긴 하지만, 책을 읽다가 정말로 엉엉 울어버렸다. 나는 자신을 선하다고도 생각지 않고, 사람들이 모두 선하게 태어났다고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성선설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이는 가르치고 이끌어야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배우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하이타니 선생님의 말은 이제 하나의 교리가 되었다.
인문.예술담당 이예린(yerin@aladin.co.kr)
"유쾌한 트라우마를 맛보고 싶은가!"
스X츠서울에 연재되는 만화를 보고 웃은 적은 이때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큰맘먹고 읽어보려고 해도 몇 년이 지나도 똑같이 반복되는 이X세 풍의 심각한 만화를 보노라면 시도할 마음도 사라진다.
곽백수(본명이다;;)의 이 만화는 좀 다르다. 네컷 만화풍의 촌철살인을 시도하는데, 어딘지 모르게 핀트가 어긋난 웃음보가 터진다. 첫 연재물이지만, 베테랑 못지 않은 깔끔한 선과 개성있는 캐릭터(나중엔 이 캐릭터들의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난다), 쉽게 생각해내지 못하는 일상 속의 유머를 발굴해내는 솜씨가 훌륭하다. 이 더운 여름, 근심걱정 모두 잊고 선풍기 켜고 바닥에 누워서 보라며 주변인들에게 한 권씩 안겨주고 싶다.
외국어.실용담당 김세진(sarah2002@aladin.co.kr)
"진실된 거짓말쟁이"
내가 2003년 읽은 책 중 최고의 소설! 오랫동안 절판상태여서 정말 어렵게 구해 읽었다. 문장은 극히 간결하고 무감정하다. 3권에선 조금 느슨해지지만 1, 2권을 읽어보라. 주인공들의 고통을, 아픔을, 외로움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단어는 한마디도 없다. 다만 이런 식이다.
할머니가 우리에게 말했다.
-개자식들.
사람들은 우리에게 말했다.
-마녀의 새끼들! 망할 자식들!
...
우리들은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얼굴이 새빨개지고, 귀가 윙윙거리고, 눈이 따갑고, 무릎이 후들거린다.
우리는 더이상 얼굴을 붉히거나 떨고 싶지 않았다.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이런 모욕적인 말들에 익숙해지고 싶었다.
우리는 부엌 식탁 앞에 마주 앉아서 서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런 말들을 되는 대로 지껄여댔다. 점점 심한 말을.
하나가 말한다.
-더러운 놈! 똥같은 놈!
다른 하나가 말한다.
-얼간이! 추잡한 놈!
우리는 더이상 할 말이 생각나지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게 될 때까지 계속했다.
우리는 매일 30분씩 이런 식으로 훈련을 하고 나서 거리로 바람을 쐬러 나갔다.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욕을 하도록 행동하고는, 우리가 정말 끄떡없는지를 확인했다.
그러나 옛날에 듣던 말들이 생각났다.
엄마는 우리에게 말했다.
-귀여운 것들! 내 사랑! 내 행복! 금쪽같은 내 새끼들!
우리는 이런 말들을 떠올릴 적마다 눈에 눈물이 고인다.
이런 말들은 잊어야 한다. 이제 아무도 이런 말을 해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시절의 추억은 우리가 간직하기에 너무 힘겨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정신훈련을 다른 방법으로 다시 시작했다.
우리는 말했다.
-귀여운 것들! 내 사랑! 난 너희를 사랑해! ...너희가 내 인생의 전부야.
반복하다보니 이런 말들도 차츰 그 의미를 잃고 그것들이 가져다주던 고통도 줄어들었다.
아아, 약해서 또 약해서 껍질 속에 숨어버린 인간들의 이야기이다. 버림받고 갇혀 제대로 자라지 못한 아이들, 사실 이 소설을 읽는 건 매우 고통스러운 경험이지만, 누구에게나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만으로 아쉬운 분께는 그녀의 다른 작품
<어제>를 추천.
p.s. 이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만 나오면 된다. ^^
문학담당 박하영(zooey@aladin.co.kr)
"실용서는 실용서만의 접근 방법이 있다."
경영분야만을 뚝 떼어내서 다른 분야와 비교하는 것은 좀 그렇긴 하지만, 분명 느껴지는 차이점 하나는 경영 독자들은 문학이나 인문 분야에 비해서 책을 빨리 읽고, 또한 많이 읽는다는 것. 왜 그럴까 생각해 보면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어 보인다. 아무래도 경영책은 정보와 활용법이 주가 되다 보니 이 책도 읽어보게 되고 저 책도 읽어보면서 비교하고 더 좋은 방법을 찾게 된다. 성공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도 책을 다독하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다. 늘 앞서나가고 성공하고 싶으니까.
늘 많은 책을 읽으면서도 더 좋은 책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는 나 같은 경영독자들에게 공병호 박사의 이번 신간은 그냥 지나치기에는 조금 아까운 책 중의 하나다. 우리나라에 출간된 거의 모든 경영서를 읽는다는 분이 실용 독서 기술을 정리했다면? 당연히 읽고 넘어가야 한다.
늘 하던대로 이 책 또한 '뭐 건질 건 없나'하는 마음으로 보물찾기 하듯 쑥 읽어 내려간다. 아는 내용도 많지만 새로운 내용도, 알고 있었지만 잊고 있었던 내용도 많다. 메모지를 꺼내 새로 건져낸 독서 방법을 정리하는 것은 필수. 이렇게 해서 한 권 또 완독.
경제,컴퓨터담당 윤성화(rain@aladin.co.kr)
"날지 못하는 돼지는 그냥 돼지에 불과해" "바보!!!!"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바보처럼(-_-) 낙천적이다. [붉은 돼지]의 첫 장면을 보라. 유치원생들이 공적들에게 납치되면서도 어쩌면 저렇게 명랑한가. 타고 있던 비행선이 추락해도 유치원생들은 씩씩하다. "우린 수영부에요~" 퐁당퐁당 물 속으로 들어가 잘도 헤엄친다. 이렇게 전체적인 분위기는 바보같이 낙관적이고 동화처럼 평화롭지만, 주인공 포르코만은 툴툴거린다. 정말 가끔은 '포크 커틀릿'을 만들어 버리고 싶을 만큼 바보다.
벌써 네 번이나 본 [붉은 돼지]는 볼 때마다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엔딩곡의 가사를 읽으면 정말 눈물이 날 지경이다. "단 한 장의 남은 사진을 봐. 수염이 많았던 남자가 바로 너지. 어디에 있는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친구들도 몇몇은 있지만 그날의 모든 것이 허무한 것이라고 그 말은 아무에게도 말 할 수 없어. 지금도 마찬가지로 끝나지 않은 꿈을 기리며 내달리고 있겠지 어딘가에서."
바보처럼 낙관적인 분위기 속에서 혼자 인간을 불신해 '돼지'가 되어 버린 사나이 포르코. 파시스트가 되느니 돼지가 되는 게 낫다는 이 무정부주의 돼지를 누가 사랑하지 않으랴. 젊은 날의 열정이 모두 재가 되어 버리고, 같은 꿈을 바라보았던 친구는 이제 옆에 없고, 세상은 점점 자기가 살기 싫은 모습으로 변해가고, 자신은 현재가 아니라 과거 속에서만 살아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도, 그들의 꿈과 열정은 헛되지 않았다고 말해 주고 싶다. 숨이 멎을 때까지 내달린 그 젊은 날을 위해 건배!
어린이담당 류화선(yukineco@aladin.co.kr)
"나무 이름도 모르는 내가 부끄럽다는 생각을 처음 하다."
초등학교 선생님인 동생이 들려준 이야기. 1학년 학급에 평소 밥도 많이 먹지 않고 덩치도 조그만 여자애가 하나 있는데, 어느날 급식을 싹싹 먹더니 반찬을 더 달라고 식판을 들고 오더란다. 기특하게 여긴 선생님이 "그래 **야, 무슨 반찬 줄까?"했더니, 배추무침 반찬을 가리키면서 왈, "나뭇잎이요."
물론 귀여운 이야기이지만, 남의 얘기가 아니다;;; 나 역시 숲에 가면 나무는 나무요 꽃은 꽃일 뿐. -_-; 지난 휴일에 회사 동료들과 난지도 하늘공원에 갔다가 더 절절히 느꼈다. 이런 자연치 같으니라구.
아마 다들 나같은 생각을 하시기 때문에, 꽃이나 나무도감 등이 최근 유독 많이 팔리는 것이리라. 이 책은 그야말로 평범한 한 아저씨의 구룡산 산책기이자 그림책이다. 척 보니 수성펜에 색연필로만 그린 것이 분명한 꽃이파리 그림이 이렇게 아름답다. 왠지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야생초 편지>보다는 아마추어의 솜씨 같고 글 역시 전문가의 것이 아닌 평범한 에세이이지만, 부럽다, 정말 놀랍다.
편집팀장 김명남(starla@ala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