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여자 (2disc) - 할인행사
장진 감독, 이나영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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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나영이 출현한다기에 호감이 갔던 영화.
그 이나영이 귀여운 스토커로 나온다기에 더욱 기대가 되었던 영화.
(영화 속 ‘한이연’처럼 직접 행동에 옮기진 못했지만, 고백하건데 아주 어렸던 시절까지 포함한다면 비슷한 경험이 몇 번 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마음의 위로와 공감이 되지는 않을까, 했던 영화.
이래저래 나의 기대치는 은근슬쩍 꽤나 상승해 있었나 보다.
그러나, 기대를 너무 했었기 때문인지 영화는 생각보다 꽤 실망스러웠다.(예고편은 억수로 잘 만들었더구만!!!-.-)

사실 장진의 전작인 ‘킬러들의 수다’를 보면서 많이도 곤혹스러 했었다.
삼류 코미디 영화 정도는 아니더라도, 영화 속 황당한 행동을 하는 캐릭터들이 “야, 웃어 봐. 웃어보라니깐!” 하고 권유(?)할 때는 떫은 표정만 짓고 있어야 했으니 말이다.

‘아는 여자’는 확실히 ‘킬러들의 수다’ 보다는 재미있고, 유쾌하게 웃을 수 있다.
그의 전작들에서 뭔가 타이밍이 안 맞고 억지스럽다고 느꼈던 부분들도 상대적으로 줄어들었고, 때론 정말 기발하고, 솔직하고, 허를 찌르는 유머에 감탄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야구에서 땅볼을 관중석으로 던지면 정말 그렇게 황당한 상황이 되는 거냐? 야구에 문외한 이라서리...;;; 야구에 대해 쫌 안다면 더욱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다.-.-a)

시나리오를 쓰고 이 영화를 감독한 사람이 남자이기 때문인지,
이 영화가 그의 전작들에 비해 여성 캐릭터가 비교적 잘 살아 있다는 평을 두루두루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나영이 연기한 영화 속 ‘한이연’이란 캐릭터는 정재영의 ‘동치성’에 비해 정교하지가 못하다.

영화의 첫 도입부 부분에서 ‘이연’이 ‘치성’이 있는 여관방에서 돌아 나올 때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힐 때는, 나도 모르게 순간 짠, 했었으나 그녀의 감정선은 그 후로 일관성 있게 유지 되지 못하고 중간 중간 툭툭 끊긴다.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에 따라 억지로 진행되고는 있으나, 영화의 중반부 부터는 그녀가 정말 그를 사랑했던 것인지 잘 느낄 수가 없었다.
유쾌하고, 즐겁고, 이나영이 너무너무 예쁘게 나오는 영화이기는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어떤 ‘진심’이 느껴지지가 않았다.

이 영화는 ‘사랑’ 보다는 ‘코미디’에 좀더 중심을 두고 본다면 훨씬 즐겁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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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납치사건
재스퍼 포드 지음, 송경아 옮김 / 북하우스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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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샤롯 브론테의 <제인에어>.

어렸을 때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이기에 스토리는 주루룩 모조리 기억은 나지만, 완역본으로 읽었던 것이 아닌지라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는 없겠다. 샬롯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제인에어>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이 떠오르고 <폭풍의 언덕> 때문에 가슴이 두근두근해져서 <제인에어>는 별로 신경을 안 쓰게 된다.

그런데 ‘제인에어 납치사건’이라는 소설이 있단다.
제목만 듣고, ‘아, 재미있겠다!’ 하고 인터넷으로 구입을 해버렸다.
처음엔 다시 쓰는 ‘제인에어’ 형식의 소설로 일종의 메타소설이 아닐까, 생각했었으나 이 소설은 ‘환타지 소설’에 가깝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전제하에 시작된다.

1. 시대적 배경은 1980년대, 그러나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80년대와는 다르다. 헐리우드 영화에서 봤음직한 온갖 잡다한 소재들이 등장한다. 늑대인간, 타임머신, 특수 수사대 등등
(실제로 이 책으로 처음 데뷔한 작가는 원래 영화판에 있던 사람이다.)

2. 이 안의 사람들은 스포츠나 연예인 보다는 문학과 소설 속 등장인물에 열광한다.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연극이 곳곳에서 공연되고,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새겨진 스티커 사진이나 문학 박물관 등이 최고의 인기품목이다. 문학작품의 원본이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의 고가의 가치를 가짐은 물론이다.

3. 기이하게도, 현실의 인물이 소설 안의 세계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반대로 소설 속 인물이 현실 세계로 나와 활동할 수도 있다.

물론 아주 기발한 착상과 신선한 소재임에는 틀림없으나, 소설 전개 과정은 아주 지루하기 짝이 없다. 기본 플롯을 너무나 충실히 따르기에 쉽게 다음 내용이 예측 가능한 007시리즈를 보는 기분마저 든다.

박진감 넘치는(?) 액션과 무모하기까지 한 용감무쌍한 주인공의 활약, 미스테리한 악당의 카리스마, 조미료처럼 적당히 끼여 맞추어진 싱거운 로맨스. 헐리우드의 종합선물세트 영화를 보는 기분이다.

차라리 영화로 봤다면 훨씬 재미있게 보지 않았을까 싶은 부분도 많았다. 액션 장면을 소설로 서술하면 이리도 촌스럽게 보일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뭐, 번역의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그런데 역자가 소설가 송경아였는데?)
카네시로 카즈키의 소설 <Go> 역시 적당한 액션(?)이 들어간 꽤나 활기찬 소설이었지만, 읽으면서 문장이 민망스럽다고 느꼈던 적은 없었는데 말이다.;;;

물론 중간 중간 반짝이는 부분은 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쓴 이가 실제로는 베이컨이었다고 주장하는 ‘베이컨주의자’들의 출현이라든지, 제인에어가 결국 마지막 반전을 통해 로체스터와 결혼하게 된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들 같은 것이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왜 이 무거운 책을 낑낑 들고 다니며 지하철에서 그 많은 시간동안 이 책을 읽었던 건지, 정말 후회막급이다.
(사실 1/3 부분부터는 돈이 아까워서 억지로 읽긴 했다.-_-a)

그리고, 역시 절망과 슬픔, 상처가 없는 악역 캐릭터는 매력도 없고 재미도 없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하데스 말이다. 마치 '난 악역을 위해 태어난 인간이요.'라고 말하는 듯한 인물. 이유 없이 악역을 맡는 인물은 존재감이 절실하게 안 느껴진다고나 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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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dts] - 할인행사
소피아 코폴라 감독, 빌 머레이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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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여행지에서 사람은 조금 이상해진다. 그곳이 자신이 원래 살던 곳과 많이 다를수록,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더욱 그렇다.
낯선 장소이기에 긴장을 놓을 수 없기 때문인지 자신의 의식이 환하게 열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평상시라면 상처에 둔감해지기 위해 닫아두었던 문들이 무방비 상태로 빗장이 풀린다. 그래서 냉정했던 사람도 여행지에서는 조금 이상해진다.

작은 친절에 크게 감동하고, 별다른 의도 없이 던진 상대의 무심한 말 한 마디에 부르르 화를 내고, 꽁꽁 감춰두었던 자격지심이 실체를 드러내며, 예정되었던 헤어짐에 괜히 눈물을 흘린다.

그뿐인가.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삶의 무게가 갑작스럽게 짓눌러와, 생각해, 생각해 봐. 이제 어쩔 거야? 어쩔 거니? 하고 내게 답을 요구한다.

그래서 여행할 땐 평소엔 게으름으로 쓰지 못했던 일기장만 붙들고 온갖 개똥철학과 푸념들만 늘어놓는다.(나만 그런가?-.,-)

여행을 하며 이런 상황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관광’이 아니라 ‘여행’), 영화 속 샬롯과 밥의 심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감독은 아시아의 나라가 익숙하지 않은 두 주인공을 내세움으로서 그런 극단적인 감정의 고조와 고립감 등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데 성공한다. 더불어 우스꽝스러운 일본인들과의 이질감은 지루하고 잔잔하기만 한 영화에 귀여운(?) 유머도 제공한다.

낯선 나라에서 자신과 소통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난 밥과 샬롯.
그러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영화제목과 달리, 그들이 나눈 감정의 실체가 ‘사랑’인지는 잘 모르겠다. 남녀간의 모든 감정의 소통을 단순히 성 호르몬의 자극으로 생겨나는 하나의 감정으로 일축해버리는 것은 너무 무식한 처사다.

마지막 장면에서,
밥은 샬롯에게 뭐라고 귓속말을 했을까.

LA에 가서 다시 만납시다?
걍 힘내서 살아라, 그런 남편 신경 끄고 글이나 열심히 써라?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들의 소통은 도쿄의 그 도시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
LA에서는 다시 낯선 감정의 타인이 되라라는 것.

뱀발.
자신과 다르다는 것이 꼭 그렇게 우스꽝스럽게 받아들여져야 했던 거야?
다른 나라에 왔으니 모든 생활방식과 언어가 다른 건 당연한 거잖아.
아니, 알겠어. 무슨 의도와 장치로 사용했던 것인지는.
근데 한 마디 안 하고 넘어가기에는 너무 껄끄러운 부분이 많더군.
특히 밥의 그 초밥에 대한 유머는 정말 짜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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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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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람은 스스로가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한다. 자기 자신에게 익숙해진다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이다. 세월이 갈수록 인간이란 자신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그 인물을 점점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낯설게 느껴진다고 한들 무슨 불편이 있을 것인가? 그 편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알게 되면 혐오감에 사로잡힐 테니까.

--------
이 소설은 이와 같은 다소 식상하고 뻔한 글귀로 시작을 한다.

그러나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다시 앞장을 펼쳐 이 구절을 읽으면 왠지 소름이 돋는 것 같다. 이 몇 개의 문장이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도 저토록 태평스럽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어조로!

이 소설은 <두려움과 떨림>, <시간의 옷>에 이어 내가 세 번째로 읽은 아멜리 노통의 소설이다. 앞의 두 권의 소설은 분명 신선하고 재미있게 읽었으나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이 ‘노통은 정말 천재야!’(노무현이 아니다.-_-;) 라고 말을 했는지 실감하지 못했다. ‘기발함’에 밀려 묵직한 ‘무게감’은 없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이 <오후 4시>는 정말 최고였다.

이 소설은 나 자신도 알지 못하는 내 안에 숨어 있는 또 다른 나에 대한 이야기이다.
(음..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의 리얼리즘 버전이라고나 할까나.-.-a)
그러나 저런 무서운(?) 이야기를 작가는 마치 잔잔한 동화를 들려주는 듯한 태도로 천연덕스럽게 조곤조곤 들려준다.
아, 앙큼해라!

60평생을 평화롭게 살았던 퇴직 교사인 에밀. 그는 사랑스러운 동갑내기 부인인 쥘리에트와 퇴직 후 조용한 작은 시골집으로 이사를 간다. 별다른 부와 명성을 얻진 못했지만, 교양 있는 학교 선생으로서 그의 삶은 그럭저럭 괜찮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말년을 보내기 위해 선택했던 그곳에서 그는 그의 이웃 때문에 끔찍한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오후 네시면 어김없이 찾아와 에밀과 쥘리에트를 난감한 상황 속에 빠뜨리는 이웃집 남자 팔라메드. 소설의 전반부에서 대부분의 독자는 팔라메드에게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는 에밀의 심정을 십분 이해하리라.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는 좀 엉뚱하게 진행된다. 팔라메드를 혼내주기 위해 갖은 애를 쓸수록 오히려 서서히 자기 파괴적으로 되어가는 것은 에밀이다.

결국 그는 한밤 중 조용히 이웃집으로 건너가 팔라메드를 살해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화롭게 살아간다.

그러나 그는 안다. 그의 삶은 이제 더 이상 그 전과 같지 않다는 걸. 그리하여 그는 ‘나는 내가 누군지 잘 모르겠다.’라는 말을 한다.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알게 되어 혐오감에 사로잡힌 것이다.’

이 소설이 내게 그토록 인상적이었던 것은,
나 역시 ‘내 안의 진짜 나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갖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적당한 상식과 이성으로 짓누르고 있어 지금 타인에게 보이진 않지만, 어느 급박한 순간 툭, 하고 튀어나올지 모르는 ‘내 모습’.

25살에 데뷔하여 매년 한편씩 소설을 쓴다는 아멜리 노통. 네 번째 쓴 이 소설은 그녀가 28살 때 쓴 소설이다.
스물여덟에 어떻게 이런 소설이 나올 수 있을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육화된 체험과 진리를 발효시켜 나온 것들을 쓰는 작가들과 또 그런 방식에만 길들여진 나였지만, 그녀의 소설들을 읽다보면 정말 선천적인 재능이란 게 있는 걸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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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소설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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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네시로 카즈키. 그의 이름은 일본 영화 <GO>를 보면서 처음 접했다. 재일 한국인의 삶과 정체성이라는 묵직한 소재를 이야기하면서도 굉장히 유머러스하고 유쾌했던 그 영화를 난 정말 재미있게 보았다.
(물론 주인공 쿠보츠카 요스케의 매력이 한몫 단단히 하기도 했다.-_-)

이 영화는 가네시로 카즈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데 바로 작가의 자전적 스토리이기도 하다.

내가 남원으로 출장을 다녀오며 읽었던 <연애소설>은 최근에 나온 가네시로 카즈키의 소설, 아니 소설집이다.

<연애소설>, <영원의 환>, <꽃>이라는 세편의 소설이 묶여 있는 이 책은 특이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연작소설도 아니고, 옴니버스 형식도 아니지만 묘하게 세 편의 소설이 겹쳐지며 연결되어 있다. 세 편 모두 어느 대학의 법학부를 무대로 이야기가 펼쳐지며, 인기 교수인 다니무라 교수가 등장 또는 언급된다.

공통점은 또 있다. 세 편 모두 절절한 러브스토리를 담고 있지만, 그 사랑은 현재 진행중인 사랑이 아니라 이미 비극으로 끝난 기억 속의 사랑이다. 그 과거의 사랑은 낯선 타인과 타인이 만나 대화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과거의 상처는 조심스럽게 위로 받거나 치유된다.

이 책을 읽고 후에 <Go>도 읽었는데.. <GO>가 그러했듯 이 책은 쉽고 재미있게 읽히지만 가벼워 보이지는 않는다.

사실 작품성으로 보나, ‘재일문학’의 연장선 상에서의 위치나 공헌도(?) 면에서 볼 때 <연애소설>이 데뷔작인 <Go>보다 무게감 있는 소설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감성을 좀더 세련되게 표현하는 작가의 솜씨는 능숙해졌다. <GO>에서 보여주었던 기발한 상상력과 재치 있는 입담은 줄었지만, 책 전반에 흐르는 멜랑꼬리한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개인적으로 요런 분위기에 약하다.;;)

다른 사람에게 그의 소설을 ‘강추!’해야 할 필요성은 못 느끼겠지만,
내 개인적 취향엔 잘 맞는 거 같다.

마음에 들었던 구절 몇 개..

“굳이 말로 표현할 필요는 없었다. 중요하고 소중한 일은 약하디 약한 얼음 조각 같은 것이고, 말이란 망치 같은 것이다. 잘 보이려고 자꾸 망치질을 하다 보면, 얼음 조각은 여기저기 금이 가면서 끝내는 부서져 버린다. 정말 중요한 일은, 말해서는 안 된다. 몸이란 그릇에 얌전히 잠재워 두어야 한다. 그렇다. 마지막 불길에 불살라질 때까지. 그때 비로소 얼음 조각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며 몸과 더불어 천천히 녹아 흐른다.”

“귀가 아플 정도의 침묵.”
->아, 정말 공감 가는 표현. 난 이 귀가 아플 정도의 불편한 침묵을 잘 견디지 못한다. 그럴 경우, 나도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마구마구 떠든다. 특히 편하지 않은 사람일 경우 더욱 그렇다. 그리고 바로 후회한다.-_-;;

“내게 어떤 힘이 작용한 것일까? 그의 운명? 나의 운명? 아직 만나지 않은 누군가의 운명? 아니면, 달의 힘? 어떤 것이든, 싱겁게 흘러가는 시간의 힘에 지배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만약 운명이란 게 있다면, 나는 생각했다. 운명은 언젠가 내게 소중한 것을 줘놓고는, 또 언젠가 가차없이 그것을 빼앗아가 버릴 것인가? 아니면, 벌써 이미? 나는 오른손을 꽉 쥐었다가 다시 천천히 폈다.”

“나는 지금, 분명하게 생각한다. 언젠가, 내게 소중한 사람을 만나게 되리라고. 그리고 그 사람을 살아있게 하기 위해서, 그 손을 절대 놓지 않으리라고. 그렇다. 설사 사자가 덮친다 해도. 결국은 소중한 사람의 손을 찾아 그 손을 꼭 잡고 있기 위해서, 오직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이 싱겁게 흘러가는 시간을 그럭저럭 살고 있다. 그렇지 않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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