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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은 스스로가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한다. 자기 자신에게 익숙해진다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이다. 세월이 갈수록 인간이란 자신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그 인물을 점점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낯설게 느껴진다고 한들 무슨 불편이 있을 것인가? 그 편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알게 되면 혐오감에 사로잡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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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이와 같은 다소 식상하고 뻔한 글귀로 시작을 한다.
그러나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다시 앞장을 펼쳐 이 구절을 읽으면 왠지 소름이 돋는 것 같다. 이 몇 개의 문장이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도 저토록 태평스럽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어조로!
이 소설은 <두려움과 떨림>, <시간의 옷>에 이어 내가 세 번째로 읽은 아멜리 노통의 소설이다. 앞의 두 권의 소설은 분명 신선하고 재미있게 읽었으나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이 ‘노통은 정말 천재야!’(노무현이 아니다.-_-;) 라고 말을 했는지 실감하지 못했다. ‘기발함’에 밀려 묵직한 ‘무게감’은 없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이 <오후 4시>는 정말 최고였다.
이 소설은 나 자신도 알지 못하는 내 안에 숨어 있는 또 다른 나에 대한 이야기이다.
(음..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의 리얼리즘 버전이라고나 할까나.-.-a)
그러나 저런 무서운(?) 이야기를 작가는 마치 잔잔한 동화를 들려주는 듯한 태도로 천연덕스럽게 조곤조곤 들려준다.
아, 앙큼해라!
60평생을 평화롭게 살았던 퇴직 교사인 에밀. 그는 사랑스러운 동갑내기 부인인 쥘리에트와 퇴직 후 조용한 작은 시골집으로 이사를 간다. 별다른 부와 명성을 얻진 못했지만, 교양 있는 학교 선생으로서 그의 삶은 그럭저럭 괜찮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말년을 보내기 위해 선택했던 그곳에서 그는 그의 이웃 때문에 끔찍한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오후 네시면 어김없이 찾아와 에밀과 쥘리에트를 난감한 상황 속에 빠뜨리는 이웃집 남자 팔라메드. 소설의 전반부에서 대부분의 독자는 팔라메드에게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는 에밀의 심정을 십분 이해하리라.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는 좀 엉뚱하게 진행된다. 팔라메드를 혼내주기 위해 갖은 애를 쓸수록 오히려 서서히 자기 파괴적으로 되어가는 것은 에밀이다.
결국 그는 한밤 중 조용히 이웃집으로 건너가 팔라메드를 살해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화롭게 살아간다.
그러나 그는 안다. 그의 삶은 이제 더 이상 그 전과 같지 않다는 걸. 그리하여 그는 ‘나는 내가 누군지 잘 모르겠다.’라는 말을 한다.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알게 되어 혐오감에 사로잡힌 것이다.’
이 소설이 내게 그토록 인상적이었던 것은,
나 역시 ‘내 안의 진짜 나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갖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적당한 상식과 이성으로 짓누르고 있어 지금 타인에게 보이진 않지만, 어느 급박한 순간 툭, 하고 튀어나올지 모르는 ‘내 모습’.
25살에 데뷔하여 매년 한편씩 소설을 쓴다는 아멜리 노통. 네 번째 쓴 이 소설은 그녀가 28살 때 쓴 소설이다.
스물여덟에 어떻게 이런 소설이 나올 수 있을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육화된 체험과 진리를 발효시켜 나온 것들을 쓰는 작가들과 또 그런 방식에만 길들여진 나였지만, 그녀의 소설들을 읽다보면 정말 선천적인 재능이란 게 있는 걸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