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라는 남자 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4
마스다 미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빠라는 남자

마스다 미리 지음

 

마스다 마리가 아니라 마스다 미리였군. 오프라 윈프리인지, 원프리인지 한참을 두 눈을 뜨고 읽고도 헛갈리는 것처럼, 머리에 들어오는 않는 어떤 것들이 있다.

그래도 이제 마스다 미리는 잊지 않을 것 같다.

 

엄마라는 여자보다 더 공감이 안된다. 내가 왜 작가의 아버지에 대해 읽어야 할까? 원가족에 정이 없는 나 같은 경우엔 더 그렇다. 잘해줬던 기억, 좋았던 기억을 생각해도 찝찝한 무언가가 있다. , 무언가를 말하려다 까먹었다. 사탕이면 달콤함이라도 입에 남으련만, 역시 또 찝찝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계절 산문
박준 지음 / 달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계절 산문

박준

 

[그간 괜찮다 괜찮다 생각해왔는데 사실 하나도 괜찮지 않아졌습니다. 긴장과 불안의 연속인 삶이 유독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사는 일이 이상합니다. 마음에 저승 같은 불길이 일고, 그것을 손으로 비벼 끄다가, 발을 동동 구르다가, 어느새 말과 행동까지 뜨거워져서는 어쩔 줄 몰라 합니다.

 

살아오면서 상처가 되는 말들을 종종 들었습니다. 내 마음 안쪽으로 돌처럼 마구 굴러오던 말들, 저는 이 돌에 자주 발이 걸렸습니다. 넘어지는 날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자격은 나를 조금이라도 생각하고 걱정하고 사랑하는 사람만 가질 수 있습니다. 빛과 비와 바람만이 풀잎이나 꽃잎을 마르게 하거나 상처를 낼 수 있지요. 빛과 비와 바람만이 한 그루의 나무를 자라게 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어디에 살고 있느냐의 문제보다는 누구와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이 삶을 삶답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앞으로 어디가 되었든 좋은 이웃이 되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평소에는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도, 계절이 완연한 여름이 접어든다 싶으면 한 손에는 차가운 청주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오이절임 같은 것을 들고 찾아드는 그때 정원에서 살아가던 이들의 삶이 그랬듯이 말입니다. 언제 새로 이사한 집으로 초대하겠습니다. 다만 빈손으로 오셔야 합니다.

 

사랑은 이 세상에 나만큼 복잡한 사람이 그리고 나만큼 귀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새로 배우는 일이었습니다. 어쩌면 지금 당장은 무용해 보일 수 있어도 끝까지 무용한 것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쇼펜하우어 인생 편의점 (양장) - 내 삶의 철학이 되는 지혜의 모든 것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김문성 옮김 / 스타북스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쇼펜하우어 인생편의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김문성 옮김

 

이처럼 극명하게, 명료하게 알려주는 지침이 있을까? 이대로 따라 하고 싶다. 인생은 그리 복잡하지 않고, 혼자 사는 세상이라는 것.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믿음으로 서로를 배려해야 한다는 건 개소리라고 말하는 책

 

 

[남을 신경쓰지 말고 호감가는 사람이나 좋은 사람이 되기를 포기하라.

출세 등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나만의 기준으로 인생을 살고 오직 나를 위해 내 자존감을 높이는 삶을 살아라.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을 우선 처리하는 것이다.

당신 자신이 자신의 한계를 믿으면 그게 한계가 된다.

걱정이나 후회하는 시간은 얼마든지 짧아도 무방하다.

불행에 꺾이지 말라.

오히려 대담하게 불행에 도전해 나가라.

그러므로 굳세게 살아나가라.

역경을 향해 용감하게 대결하라

비겁함은 지나친 공포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직 자기를 의지하고, 자기 자신 속에 모든 것을 소유하는 사람이, 완전히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이 자신에게 충실할수록 그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그만큼 가치가 적어 보인다.

실제로 훌륭한 사람은 세상에서 존경을 받지 못하고, 존경을 받는 사람은 아무 쓸모도 없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개성을 가진 사람들과 상종하지 않고 지내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세상에서 영원한 삶은 값싼 희극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손에 넣으려는 대상은 모두 다 우리에게 저항한다.

그 누구도 오랫동안 가면을 쓰고 있을 수는 없다.

동물은 언제나 실제의 쾌락이나 고통을 느낀다.

인간은 지적 수준이 얕을수록 삶에 더욱 만족을 느끼고 있다.

개체의 의식은 죽음으로 일단락이 나서 영원히 끝장을 보아야 할 것이다.

생활을 되도록 간단히 내 나간다면.

 

언제나 미래를 내다보고 행복은 앞날에만 있는 것으로 생각하여 현재를 돌보지도 않고 즐기지도 않는 사람은 혼자서 원대한 계획에 따라 지혜를 숭상하고 있는 것으로 자부하더라도, 실은 이탈리아의 노새와 비슷한 족속들이다. 이탈리아에서는 풀잎을 묶어 노새의 머리 앞에 매어 두는데, 노새는 이것만 쳐다보며, 한 반짝만 더 나가면 이 풀잎을 삼킬 수 있을 줄 알고 발길을 재촉하여 잘 걷는다.

 

우리는 언제나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재앙에 대해서는 절대로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재앙에 대해서는 곧 닥쳐올 것으로 보고 빈틈없이 대책을 세워야 한다.

 

우리는 언제나, 오늘 하루는 오직 한 번밖에 오지 않을 뿐이고, 다시는 오는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이라는 날이 내일 또 오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내일도 오직 한 번밖에 오지 않는 또 다른 하루이다.

 

우리는 현재의 아름다운 날들을 느끼지 못하고 낭비해 버리고, 달갑지 않은 날들이 닥쳐왔을 때 비로소 우리는 예전과 같은 날이 돌아와 줬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다.

 

우리의 몸뚱이가 옷으로 싸여 있는 것처럼 우리의 정신은 거짓으로 싸여 있다. 우리의 이야기나 행위, 우리의 모든 거동은 거짓에 가까우며, 사람들이 이 덮개를 통하여 겨우 이리의 진정한 의향을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마치 옷을 통하여 신체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인간을 사교적으로 만드는 것은 그들에게 고독을 참아 나가거나 고독 속에 자기를 가두어 나갈만한 능력이 없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인간의 사교 본능도 그 근본은 직접적인 본능이다. 왜냐하면, 사교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고독이 무섭기 때문이다. 우리의 고뇌는 모두가 혼자서 있을 수 없다는 데서 오는 것이다.

 

시간을 내어 고독을 가까이하고, 다시 이것을 사랑하게 된 사람은 금광을 얻은 것과 다름없는 이득을 본 셈이다. 음식을 절제하면 건강을 되찾을 수 있고, 되도록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다. 사회는 모닥불로 비교할 수 있다. 현명한 사람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불을 쬐며 바보처럼 손을 불에 데는 일이 없지만, 어리석은 자는 손을 데고 나서 고독이라는 찬방에 가서 불이 자기에게 화상을 입힌 것을 원망한다.

 

인간이 질투한다는 것은 그가 자기 자신을 얼마나 불행하게 느끼고 있는가를 말해 준다. 그들이 타인의 행위를 끊임없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얼마나 권태에 사로잡혀 있는가를 보여 주는 것이다.

 

모든 일이 우리의 뜻대로 되어가도 오직 한 가지 일만 우리의 의도에서 어긋나면 그것이 하찮은 것이라도 우리의 머리를 계속 자극한다. , 우리는 이에 대하여 몇 번이고 생각해 보지만, 뜻대로 되어가는 다른 모든 소중한 일들에 대해서는 별로 염두에 두지도 않는다.

 

우리가 어떤 사람의 됨됨이를 무작정 공격하면 그는 우리 가운데 있는 불구대천의 적을 만들어 힘들게 물리치려고만 할 것이다.

 

그 경우 전혀 문전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주저할 필요도 없이 의리를 저버리는 사람은 나라의 법률도 어길 것이며, 자기 신상에 위험이 닥치지 않는다면 어떠한 잘못도 저지를 것이다.

 

우리의 동료나 사귀고 있는 사람이 우리에게 불쾌하게 굴거나 귀찮게 군다면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이와 비슷한 일을 다시 몇 번이고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상대방은 우리에게 쓸모가 있는 존재인가 아닌가.

 

만일 우리가 자기가 알고 지내는 사람 대부분이, 자기가 없는 데서 자기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는가를 귀로 분명히 들을 수 있다면 벌써 그들과 한 마디도 나누고 싶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평범한 자가 상석을 차지하고 실력이 있는 자들은 이들보다 한결 처지거나 혹은 배척을 당하게 마련이다. 이런 현상을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다.

 

궁핍은 하류층의 끊임없는 채찍이며, 권태는 상류층의 채찍이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는 일요일은 권태를 대표하고 나머지 6일은 궁핍을 대표한다.

 

불안과 괴로움에 시달리는 생물들이 오직 서로 물어뜯기를 일삼으며, 모든 맹수는 무수한 생명을 삼키면서 연명하고 있다.

생물들이 이지가 발달할수록 괴로움에 대한 감각이 증진하며, 따라서 인간은 그 감각이 최고도로 발달해 있다.

 

욕구를 갖는다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욕구를 갖게 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삶은 본질적으로 괴로운 일이다.

 

그들은 안락한 삶을 누리게 되면 그 삶 자체가 일종의 형벌이 되어 권태의 채찍에 시달리게 되므로, 여기에 벗어나려고 여기저기 명승지를 찾아 여행이라도 다니면서 세월을 보내는데, 그 모습은 한 곳에서 다른 곳을 찾아 구걸하러 다니는 거지와 다른 바 없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 끝의 고래 - 2024 학교도서관저널 추천도서, 2024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사서추천도서 곰곰문고 105
크리스 빅 지음, 정주연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 끝이 고래

크리스 빅 지음

정주연 옮김

 

내가 왜 이 책을 골랐을까? 초등 고학년이 읽으면 어떨까? 싶어서 구매했던 것 같다. 나도 재매있어야 권할 만하니, 직접 읽어 본다.

내용은 인공지능이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다. 여기에 사람은 덤~ 고래도 덤~

 

이 책은 고래 수가 줄어들면서 환경이 파괴되고 심지어 사람이 살 수 없어서 훗날 다른 곳으로 삶을 대체하고 이전에 무수한 기회를 주었지만 끝내 지구를 파괴했던 이들을 버리는 것에서 이야기를 끝맺고 있지만, 나에게는 인공지능의 무서움이 자리하고 있다.

 

명령어만 입력하면 끝내 실행하고 지구를 구하는 것은 사람의 감성과 깨어남을 반복하는 문라이트라는 인공지능이 있을 뿐이다. 분명하게 아름답지 않았다. 인공지능과 사람의 우정은 영화같지 않다. 인공지능이 사람으로 대체된다는 무서운 이야기로 끝이 난 것 같았다.

 

인공지능이 나오고 비서처럼 활용하세요 세상인데, 지금은 똑똑한 초등 저학년 정도의 수준으로 다가오고 있다면, 몇 년만 지나면 톡톡히 한 몫을 하겠다. 지금은 명령어를 주는 이들이 똑똑해야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훗날이면 척하면 척이겠지. 내가 말한 것보다, 요구하는 것보다 더 좋은 정보를 주겠지. 그리고 알아서 하겠지. 알아서 해줘라는 명령어가 없어도 알아서 해줄까? 라고 하며 대신하고 있겠지. 그런저런 생각의 꼬리가 이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식물적 낙관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식물적 낙관

김금희 산문

 

김금희 님의 복자에게를 의미있게 읽었다. 그 뒤로 경애의 마음, 나의 폴라 일지, 식물적 낙관을 집어 들었다. ‘경애의 마음을 읽으면서 아~ 소설가의 문체구나 하며 읽었다. 경애의 마음을 몰라서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래서 끝내 마지막을 펼쳐보지 못했지만 보았다.

 

문제는 작가의 산문, 에세이에서부터였다. 시인이 쓰는 에세이의 매력이 무궁무진한데, 소설가의 에세이는 반과 반의 마음이 혼재한다. 김연수, 김영하의 소설은 안 좋아하는데, 에세이는 좋고. 반면 소설이 좋은 작가의 에세이는 안 좋기도 하다.

 

식물적 낙관은 자연을 좋아하는 아이의 관심에 나도 자연스럽게 이끌려 집어 들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자연에 나도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에 자꾸만 이런 책들에 눈이 간다.

 

밑줄을 그은 글들을 이어 붙이니 다른 문장이 됐다. 흩어져 있어도 내 마음을 흔든 건 하나였다는 듯이.

 

[삶이라는 덩어리. 체력이 달리던 차가 낭패감이 들었지만 돌아오지 않더라도, 얻는 것이 없더라도 끝까지 애쓰면서 불필요한 물건들에 더이상 내 공간을 내어주고 싶지 않았다.

 

일의 고충을 하소연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다 쓰기 때문이다. 사는 얘기, 살긴 사는데 이게 사는 건가 고민이 드는 얘기들을 하며 과한 마음이 그나마 유지되고 있던 균형마저 깨뜨린다는 것.

 

소설을 애호했다가 어느새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것을 행하는 사람들이 된 우리의 겨울을. 그리고 봄의 귀환. 창으로 보이는 나무들은 그 자체로 위안이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