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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그만두고 어떻게 보내셨어요? - 옴니버스 퇴사 에세이
안미영 지음 / 종이섬 / 2018년 1월
평점 :
회사 그만두고 어떻게 보내셨어요?
안미영 지음
회사 그만두고 꼭 잘 지내야 되나? 이전보다 꼭 잘 되야 하나? 그리고 잘 지내고 잘 되야 하는 기준이 꼭 목표지향적이어야 하나?
책을 읽는데 1순위 필요 물품은 플래그이다. 난 책을 한 번에 다 읽는 사람이 아니기에 다음에 읽을 곳을 플래그로 표시해둔다. 그리고 다음으로 애정하는 것이 돌려쓰는 노란색 색연필이다. 그었을 때 표시가 적절하고 예쁘게 난다. 진하지도 투박하지도 않으면서 예쁘게. 그리고 연필. 나는 책 이곳저곳에 생각나는 걸 적는다. 책을 함부로 본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얼굴 찌푸릴 일이지만, 나는 책을 통해 이전의 나와는 다른 내가 된다고 믿고 있다. 오히려 내 입장에선 정성들여 책을 보는 행위이다. 나의 사적인 이야기까지 책 속에 내놓을 수 있는데는 나름의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어떤 책이라도 어디 한 줄 정도는 건질 내용이 있다. 비록 내 생각과 심리적으로 아주 먼거리에 있는 책일지라도.
대기업에서 연봉 1억이 넘게 벌어도 내가 잘 지내지 못하다는 걸 아는 게 문제일까? 회사를 그만두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도 잘 지낼 수는 없을까? 나는 아직 덜 자란 아이여서 그런지 유동인구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외따로이 떨어진 작은 서점에서 불을 밝히고 있는 이들을 응원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회의감이 들었다. 나는 그렇지 않다는 반감으로 읽었지만, 결국 회사에서 안정을 찾기 위해 내 삶을 바꾼 건 다름 아닌 나이기에. 이 책은 더 잘나가는 사람이 됐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나는 오히려 지금의 잘나가는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회사에서 전혀 행복하지 않다.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동안 마음을 다치는 일이 적지 않아 정규직이 된다는 것에는 안정감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눈에 보이는 차별이 분명히 존재하는 곳에서 정직원이 된다는 건 남들과 평등해진다는 의미를 가졌다] 그러나 [보수적인 조직에서 사람들에게 맞춰가며 일하는 것은 힘들고 지칠 뿐 아니라 자신이 가진 본연의 모습을 끊임없이 외면해야만 가능했다. ] [애정을 쏟은 대상이 등을 돌릴 때 속수무책으로 상대의 결정에 따를 수 밖에 없어 밀려오는 자괴감 앞에서 지난 관계를 돌아보게 된다. 믿었던 사람들의 이면. 평소에 잘 지내다가도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적대관계가 되는 동료라는 이름들. 평소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표면적으로 친근함으로 일관하다가 위기상황에 맞닥뜨리면 남을 모함하거나 적당한 타이밍에 뒤로 빠지는 순발력. 기회가 될 때마다 눈치껏 권력자에게 자기 존재를 각인시키는 부지런함까지 갖춘 사내정치의 능력자들. 그들과 함께 일하는 태생적으로 정치에 능하지 못한 나는 피곤하다. 업무에 쏟을 에너지를 엉뚱한 데 뺏기는 건 비생산적이라는 생각에 그럴싸한 가면 하나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채 있는 그대로 묵묵히 일한다. 댓가는 업무능력은 뛰어날지언정 미련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렇다고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시골 도시의 작은 서점에 앉아 있다고 해서 행복할지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을 소모품처럼 대하는 곳이 아니라, 사람에 가치를 두고 개인의 능력을 존중해주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중요하다. 버티는 시간은 무엇을 남길까. 낮아진 자존감?, 무기력감?.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 보수에 비해 일이 힘들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하루하루 보내다 어느 순간 이 무기력감과 마주한다면, 좌절감으로부터 헤어나오기 힘들어진다. 나이가 들고 사회 경험이 쌓일수록 자신의 가치관에 반하는 회사로부터 등을 돌리는 결정과 판단이 빨라져야 한다. 그 이유는 한가지, 우리의 시간은 소중하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다니고 국내로 돌아와 공기업에 취직한 A는 어느 날부터 회사에만 가면 숨을 쉬지 못해 휴직을 했다. 더 이상 휴직을 연장할 수 없어 복직해야 하는 시기에 병원을 찾았다. 지금의 나는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지만, 당시의 나는 다닐 수도 그렇다고 그만둘 수도 없는 A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남편은 회사에 다니기를 바라고, A는 회사에만 가면 죽을 것 같은 공포. 그리고 스스로도 놓기에 아까운. 그렇게 버티고 버티려고 하는 회사. 그곳에서 견디지 못하면 실패한 것 같은 지독한 패배감. 모두 실패한 줄 알았던 순간에 아주 큰 것을 얻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것들은 시간이 지나야 제대로 보인다.
[회사 그만두고 어떻게 보내셨어요? 애초에 정답 없는 질문이었으나 질문을 던지고 얻은 것은 많았다. 그 누구도 자신감이 넘친 상태로 회사를 나온 사람은 없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상태, 4대 보험이 끊긴 상태, 고정적 수입이 없는 상태, 어떻게 진행될지 확신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해 모두가 마음 한구석에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그런 그들은 불안한 시간을 보내며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자신만의 방법을 발견하기도 했고, 뜻밖의 길과 인연을 만나기도 했으며, 새롭게 좋아하는 일을 찾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