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밤이고 나는 방에 불을 끄고 누워있는데, 그래도 보일 건 다 보인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과 참 비슷하다.

어둠속에서 더 잘 보려고 눈을 더 크게 뜬다.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 이유와 참으로 다르다. 그렇다면 내가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서운 영화를 보면, 손으로 눈을 가리곤 했다. 그럼 영화를 왜 보나?

만나기 싫은 사람을 만나, 억지웃음을 짓곤 했다. 억지웃음을 짓는 건 마음에 돌덩이가 있는 것처럼 어려워. 그럼 그 사람은 왜 만나나?

내 삶은 언뜻 보면, 이렇게 모순덩어리다. 그런데, 그 속을 보면, 이유 같지 않은 이유라도 거기에는 ‘이유’라는 것이 있다. 무서운 영화는 그가 보고 싶어 했던 영화였다. 만나기 싫었던 사람은 그가 사랑하는 그의 연인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이유는 저기에 두고 만다. 원인과 이유가 맞물려 뭐가 이유이고 원인인지도 모른 채 원인과 이유가 쳇바퀴 돌듯 돌아가는 것이다. 평균분포의 안에, 이것이 있다. 그리고 그게 사는 거다. 원인과 이유가 맞물려, 쳇바퀴 돌듯 돌아가고 있다.

쳇바퀴 돌듯 다람쥐는 참으로 인생다운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은가. 다들 그렇게 사는 거야. 그냥 열심히 사는 거지. 나는 무던히도 그 말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또한 상투적인, 누구나 하는 말이 싫었다. 예를 들자면, 힘들 때 의례적으로 하는 힘내. 모든 게 잘 될 거야. 잘되겠지. 난 널 믿고 의지해. 나는 그게 자기의 마음이라기보다 남들도 다 그렇게 말하니까 습관적으로 하는 말 같아서 더욱 싫었다.

그런데, 어떤 것이 원인이고, 어떤 것이 이유인지도 모른 채 쳇바퀴 돌듯 살아가는 다람쥐 같은 삶이 참으로 인생다운 인생이라면, 그동안의 나의 생각이 잘못된 것일까? 나의 생각이 잘못되지 않고, 잘못되고, 잘못되지 않고, 잘못되고.. 여기에도 모순의 조각들이 있다. 그렇다면, 이 모순은 언제까지 내 곁에 남아있을까?

모순. 사람은 소의 귀를 가졌다. 직접 불에 들어가지 않고는 그 불이 뜨거운지 모른다. 이게 바로 모순이다. 깨달을 때까지.

나는 불을 끄고 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주변을 바라본다. 나는 예전에 무서운 영화를 봤고, 내가 사랑하는 그의 그녀를 보며, 웃었다. 무엇이 불이고 무엇이 내 걸음이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나는 총체적인 접근을 하고 있으며, 또한 지엽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나는 멀리서 숲을 보다가, 빠져들기도 한다. 또한 다시 뒤돌아보기도 하면서, 앞으로 가기도 한다. 그게 본질인가? 표면 속에 표면이 있고, 그 표면 속에 또 다른 표면이 있다. 그런데 그 표면이 위의 표면을 덮기도 한다.

모순과 습관과 표면 속 표면을 거닐며, 어느새 끝에 왔다. 나는 어쩌면, 모순이 두려운 것도, 습관에 지는 것이 무서운 것도, 표면의 주인을 아는 것이 궁금했던 것도 아닐지 모른다. 그저, 언젠가는 어떻게 되든, 우리는 끝으로 거슬러 가야한다는 걸 마음속 어딘가에서 원하고 있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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