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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의 겨울빛
조지프 브로드스키 지음, 이경아 옮김 / 뮤진트리 / 2020년 9월
평점 :
베네치아의 겨울빛
2025년 12월
The April Bookclub
내용이 이해가 안가서 드문드문 잡아 끄는 문장을 붙잡는 시간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이런 글을 읽고 싶어하는가? 내가 러시아문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가?
이해가 안가는 건 끝까지 넘겨가면서 끝을 봐야지. 대충 봐서 끝을 보는 시간이 이르다. 대학원에 다닐 때의 일이다. 나보다 한 살 어린 박사 선배가 있었는데, 수업을 마치고 교수가 질문을 받는 시간이 항상 이어졌다. 그 선배는 숲을 알지 못하는 게 명백한데, 어디에 있을지도 모르는 딱 한 줄의 이야기를 궁금하다고 던지는 패턴을 내가 보아온 3년간 지속했다. 누가 봐도 공부를 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공부를 하지 않았다고는 못하니 대충 어느 한 줄 읽은 것이 분명한 질문. 그런데 그 질문에 눈빛이 흔들리면서도 대답하려고 애쓰는 교수. 그 사이에서 그것을 모두 알면서도 지켜보는 나. 이 책을 읽는 내 마음이었다. 선배는 읽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읽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도 어디선가 아는 체를 하지만 속은 없는 인생을 이어가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팝업처럼 다가온 문장들을 하나둘 옮기자니, 그럴싸하다. 나조차도 속을 것 같다. 적는 글들의 심도가 사색으로 이끈다. 독서란 참 여러 가지 방법이 있고, 어떤 식으로든 나를 상기시킨다.
그러나 저러나 나는 졸업을 하지 못했고, 선배는 졸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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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똑같이 음모를 꾸미는 듯한 어조로 가족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언제가 즐겁다고 대답했다] 소개팅. 맞선이라는 것이 가족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는, 내 삶을 흔들어놓는 일이라는 걸, 왜 단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나는 그리 인간의 연을 가벼이 여기는 면이 있다.
[여행의 끝은 춥고, 축축하고, 흑백이었다.] 매번 여행이 그런데, 일상으로 돌아오면, 따뜻하고, 산뜻하며 컬러인 하루가 있다.
[충동구매로 산, 결국 그 옷들을 빛이 바래고 낡아가도록 옷장에 처박아 두거나 더 젊은 친척들에게 줘야 한다. 아니면 친구들에게 주던가.
어쩌면 전지전능한 신의 존재에 대한 최고의 증거는 인간은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삶이 오로지 인간의 일이라면, 인간은 이곳에 존재할 기간을 정확하게 정해주는 조건이나 선고를 태어날 때 받아야 한다. 교도소에서 행해지는 방식처럼 말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니 그 문제가 온전히 인간의 것이 아니라고, 우리로선 뭔지 알 수도 없고 간섭할 통제력도 없는 뭔가라고 생각하게 된다. 또한 우리의 시간의 흐름이나 도덕 감각을 따르지 않는 어떤 힘이 있다고 짐작하게 된다. 여기에서 사람의 미래를 점치거나 알아내는 그 모든 시도가 시작된다.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려고 이리저리 움직일수록 당신은 길을 잃은 뿐이다.
좀 더 밝은 면으로 보자면, 이 도시에는 당연히 수많은 사자들이 있다.
행복은 당신을 구성하는 원소들이 자유로운 상태에 있을 때, 당신이 그것들과 마주친 순간의 감정일 것이다.
기껏해야 미래는 현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