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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레모사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8
김초엽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12월
평점 :
므레모사
김초엽 지음
어느 순간부터 소설을 읽지 않았다. 그나마 읽는 소설이라고 하면, 민음사의 오래전 나온 책 위주였다. 특히나 한국 소설은 더더욱 읽지 않았다. 그리고 한동안 책 읽기도 하지 않으면서 나는 글을 읽는 사람으로서 서툴러졌다. 글은 계속 읽지 않으면 금세 서툴고 어리숙해진다. 글은 계속 쓰지 않으면 그새 단계가 내려간다. 무언가를 한다고 해도 큰 보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매일 하지 않으면, 시들어버리는 꽃처럼 든자리와 난자리의 표시가 선명하다.
당장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 매일 해야 하는 일 뒤로 밀려나기 일쑤이지만, 사실 핵심을 들여다보면 당장 해야 하는 일들은 나를 위한 일은 아니다. 먹고 사는 일이 나를 위한 일이 아니냐고 항의를 한다면 그래도 나를 위한 일이 아니다. 먹고 사는 일을 위해 실상 내가 써야 하는 시간은 하루 24시간이 아니다. 그 중 일부이다. 시간이 남아돌아도 글을 쓰는데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러니 나를 위한 일이 아닌 시간을 보내느라 나는 오늘도 내일도 어제도 글을 읽고 쓰는 나를 위한 일을 멀리한다. 그러다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이, 쩍 갈라진 어느 한곳에 떨어진 물방울 마냥 노트북을 열어 제일 만만하다고 여기는 서평을 쓴답시고 그거라도 쓰면서 다시 길을 들여보자는 식으로 글이라는 것을 쓴다.
김초엽 작가의 자그마치 90년대생의 새파란 소설들을 좋아한다. 물론 지금은 새파랗지는 않지만, 새파랄 때 시작을 했으니까. 이전의 등단한 작가들의 나이를 보라. 그들의 시작도 역시 젊다. 그리고 심지어 단명했다. 그런 천재적인 기질을 사랑한다. 어느 순간부터 꾸준하고 성실하지만 어딘가 천재적인 기질은 부족한 작가들이 즐비해지고 있다. 작가는 작가다운 특기가, 연예인은 연예인다운 특기를. 그런 사람들의 작품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가독력이 어마어마하다. 분량도 적고, 크기고 작다. 집어 들면 어느새 끝나있다. 나? 책 오래 못 읽는다. 하루에 30쪽이라도 읽자 라던가, 하루에 30분이라도 읽자 라던가 뭔가 장치를 걸어놔야 그나마 그 시간이라도 버틴다. 요즘은 그 시간 안에도 딴짓을 하기 일쑤다. 그런 내가 집어 들면 어느새 끝나 있다라는 말을 할 정도면 이 책의 가독력은 폭주기관차급이다.
아쉬운 건. 그래서 뭐? 다. 지구 끝의 온실은 그래도 간단한 메시지 정도는 있었는데, 이건 어쩌라고~ 뭐... 마치 우울증에 걸리면 당장 죽을 거 같다느니, 한심하다느니 하면서 빨리 그 늪에서 빠져나오라고 하지만, 스스로 우울증의 늪에 빠져들어 그곳을 안온하다고 느낀다면? 그래서 계속 있고 싶다면? 병식이 없어서 그런 것이니 빠져나오라고 하겠지만 그게 아니라 우울증에 걸려 있는 상태가 내 상태라고 한다면?, 만족한다면?
누군가가 베푸는 호의가 호의가 아닐 수도 있다. 그건 알고 있다. 내버려 두라는 말이 진짜 내버려 두라는 말일 수도 있다. 나 좀 내버려 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