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제주편 (감귤 에디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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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pil Bookclub

20223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제주 편

유홍준 지음

 

책을 다 읽지 못한 채 제주도에 갔다. 그럼에도 책을 만난 후, 펼쳐진 제주는 분명 다른 곳이었다.

 

화산폭발로 생겨난 섬에 꽃들이 하나둘 피어난, 이리도 아름다운 곳에 내가 간다고 생각하니, 여간 신비로운 것이 아니다. 모두는 역사와 문화 가치가 넘쳐나고, 어떻게 발굴되고 보존되고 있는지를 알게 되니, 아름답게 피어난 건 비단 꽃뿐만이 아니었다. 네가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의미있는 곳에 가는 나도 의미있어 졌다.

 

그러고 보니 2월에 많은 일이 있었다. 별일 아니라는 듯이 쓱 지나갔지만, 사실은 별일이니 내 몸과 마음은 많이 힘들었을 게다. 우선 휴직 준비로 사무실 정리 및 복직 후 옮길 곳에 물건을 날랐다. 그리고 집 도배 및 싱크대 시트지를 갈았다. 거기에 더해 제주도 여행까지 갔다.

 

3월에는 논문작업을 했다. 다음에 하라는 말을 들었다. 논문작업을 하는 동안 매우 예민했다. 매일 논문 작업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런데 결국 시간만 잡아먹고, 효용성도 모르는, 글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사흘을 앓았다.

 

이렇게 글을 쓰다보니, 역시 여기는 내 마음의 소리를 넣어두는 곳이구나 싶다. 나의 근황을 정리하고 나니, 내가 왜 그리 알라딘에 서평을 올리지 않았는지 하소연을 할 수 있어 속이 조금 후련하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제주 편이 도배풀에 굳어 쩍쩍 소리를 낸다. 나이 일흔이 넘은 부부에게 집 도배를 맡겼는데, 온갖 곳에 도배 풀칠이 난무하고 방바닥에는 칼심이 돌아다녔다. 덕분에 몇몇 책은 응급구조가 필요한 상황이 되기도 했는데, 이 책도 그러하다. 쩍쩍 넘겨 가며 나머지 부분을 제주도에 다녀와서 읽었다.

 

목차에서 제일 눈길이 간 건,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동굴 이야기였다. 용천동굴을 읽으니, 다른 동굴은 어떻게 발굴됐고, 역사적으로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가 궁금해 졌다.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일자무식인 나로서는 카페의 한 켠에 진열되어 있는 이 책의 표지를 보고, 유홍준이 오랜만에 제주편을 냈나보다 하고 구매했다. 그런데 예전에 나온 책을 컬러풀하게 재출판한 거였다. 그렇다. 나는 역사, 유적 이런 거 일절 관심이 없다. 두껍고, 빽빽한 이 책이 나의 그런 생각을 조용히 타일렀다.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문제를 소유주나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반대하는 일이 발생했는데, 비단 이것은 설악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사는 곳에서도 뭐만 하려고 하면 사람들이 반대하고 플랜카드를 걸고 외쳤다. 일단 반대하고 저항하고 보는 것은 우리나라의 유전인가. 좋든 싫든 무언가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면 외친다. 항거한다. 왜놈이 쳐들어올 때 항거하고,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고, 무언가 자신의 영역에 침입했을 때 저항하고 이겨냈던 것이 몸속에 남아 유전적으로 되물림되고 있어, 그러지 말아야 할 상황에서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단 항거하고 보는 것인가. 하는 겉넘는 생각도 들어온다.

 

여행객으로 매일 인산인해를 이루는 제주도와 잘 맞는 시가 있어, 함께 보낸다.

 

다녀가셨군요...... 당신

당신이 오지 않는다고 달만 보며 지낸 밤이 얼마였는데

당신이 다녀간 흔적이 이렇게 선명히 남아 있다니요.

물방울이 바위에 닿듯 당신은 투명한 마음 발자국을 남기었으니

그 발자국 몇 번이나 찍혔기에 화석이 되었을까요.

 

아파서 말을 잃은,...... 당신

눈이 멀도록 그저 바라다보기만 하였을 당신

다녀갈 때마다 당신은 또 얼마나 울었을까요.

몸쓸 바람 모슬포 바람에 당신 귀는 또 얼마나 쇠었을까요

(...)

소금 간 들어 썩지 않을 그리움, 입 잃고 눈 먼 사랑 하나

당신이 남긴 발자국에 새겨봅니다

다녀가셨군요...... 당신

-[사계리 발자국 화석] 부분(귀가 서럽다, 창비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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