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기분
박연준 지음 / 현암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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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기분

박연준

 

시와 저자의 말이 어우러져 나를 다독였다. 나도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시인이 쓴 글, 삶에 대한 태도를 접한 것이 처음이다. 부끄러운 일이 아닌데 볼이 살짝 붉어진다. 글 하나하나가 살아 있어서, 마음의 문을 열고 스며들어와서 먹먹했다. 시가 나를 품었다.

 

책은 크게 세 가지 면으로 다가왔다.

1. 시가 가지고 있는 한 글자 한 글자의 힘과 마치 작가의 목소리가 함께 타고 올라오는 듯한 문장력을 가지고 있었다.

2. 나를 돌아보게 하고, 나의 지금 상태, 기분, 생각을 글로 쓴다면 이럴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3. 내가 당하고 있는 집단의 폭력이 정당화될 수 없고, 그들의 문제를 나의 잘못으로 가져오지 않아도 된다는 다독임을 받았다.

 

[가을입니다.] 소리내어 말해보세요. 당신도 이 마음을 느낄겁니다. 이 말이 이렇게 가슴을 건드리는 말이었나. 이 말이 이렇게 서정적이었나. [나뭇잎 빛깔이 전해지더니 성질 급한 잎들이 가지에서 벗어나 툭 툭 떨어집니다. 낙엽을 바라보며 당신은 생각에 잠기겠지요. 떨어진 잎과 떨어지지 않은 잎 사이]. 떨어진 잎과 떨어지지 않은 잎 사이라니. 그 사이에서 얼마나 많은 마음을 흘리며 살고 있나.

 

상념은 무엇일까. 추상적인 단어가 시로 표현될 때는 이렇구나. 왜 눈물이 나지. 시는 슬픔에 속해 있는 물인가 보다.

[슬픔이 굳어 의자가 되었다.

누가 앉을래?

 

다리는 네 개 매달리는 상념은 스물

앞을 보고 서 있는 사람이 하나]

 

어느 날엔 책을 읽고 있는 내가 그곳에 있기도 했다.

[오늘은 당신이 쉬는 날입니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창문을 연 당신은 코끝이 시리다고 생각합니다. 빨개진 코를 만져보다 다시 창문을 닫습니다. 식탁 위엔 사과 두 개와 귤 여섯 개가 놓여 있습니다. 당신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귤을 까먹습니다. 사실 무얼 먹어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허기를 느낀 지 좀 됐습니다. 괜히 달력을 몇 장 넘겨봅니다. 어떤 날이나, 아무 날들. 도래할 시간 앞에서 당신은 막막해집니다.]

 

일상이 바삐 흘러간다. 일상이 그리 흐르는 게 아니라 내가 그리 만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쉬이 놓지 못한다. 그럴 때 아이는 마치 엄마 나 여기 있어요라고 손짓하듯이 내 걸음을 멈춰 세운다. 바람을, 꽃을 맞이하며 삶을 살아가는 아이가 있어, 현실의 빛을 조금이나마 머금을 수 있다. [당신은 기적을 믿나요? 기적이란 무엇인가요?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 일이 일어나는 일? 간절히 바라던 게 이뤄지는 일? 어쩌면 기적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봄이 오는 기척을 곳곳에서 발견할 때, 저는 잠시 기적을 떠올려요.]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텔레비전을 몇 시간 동안 내리 보고, 자극적인 음식을 배달시켜 먹고, 누가 보여주는(저절로 상영되는) 남의 삶을 들여다보고, 짜고 현란하고 시끄러운 감각을 몸속에 내리 넣은 날에는 영혼의 결이 달라져 있다. 두껍고 탁하고 냄새나고 건조하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나 순한 마음, 먼 곳을 생각하는 느린 마음 같은 건 가지기 어렵다. 하지만 노는 일은 얼마나 달콤하며 쉽게 적응이 되는지. 며칠을 쉬다 보면 몸은 다음, 그다음 날에도 계속 놀려고 한다. 이제 정말 일해야 한다고 머리가 화를 내봐도 몸은 소파 위에 늘어져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다시 쓰는 몸을 만들기 위해선 얼마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무서운 몸의 관성이여.] 그렇기에 더더욱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계산할 수 없는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그것과 동행하기 위해 글을 쓴다] [작은 것일지라도, 능동적으로 몰두하는 창작 행위에는 인생을 손으로 쥐고 가는 자의 기쁨이 밴다]

 

나를 응원하는 이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조롱하는 이들로 인해 마음 아파한다. 조소가 섞인 미소, 한심하다는 표정. [왜 모르겠어요] [조소와 냉소가 대부분인 감정의 뾰족함이 느껴져] 베이고 만다.

[비방과 비난이 난무하는 곳에 그저 숟가락 하나를 얹은 후 정의를 실현한 척, 알량한 면죄부 한 장 얻은 듯 행동하는 건 지양해야 한다.] [모임이 다수의 구성원을 가질수록 폭력이 개입할 수 있다. 수십, 수백, 수천, 수만 명의 모임이라면? 구성원들이 모여 기관이나 단체, 나라를 이룬다면? 수없이 떨어져 나가고, 흘러내리며, 밟히는 존재가 생겨날 것이다.] 나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나는 밟혀 뭉개지고 짓이겨지고 있다. 버려지는 사람들이 있다. [한때 나는 내 축축한 세계가 완전히 증발하려면 얼마나 오래 걸릴지 가늠해보다 울었다. 바보같은 일이다. 증발을 바라며 울다니? 바보 같은 일이지]

 

[누군가 내 약점과 비루함, 슬픔과 불안정을 보기 전에 미리 센 척을 해야 한다고 믿을 때 나오는 해동. 아무도 공격하지 않는데 혼자 뛰어오르는 골키퍼처럼 처연하게 느껴질지 몰라요. 위악의 껍질을 벗겨 보면, 그 안에는 두려움이 웅크리고 있을 거예요.] 나를 괴롭히는 자들의 내면이다. 그렇지 않은 나를 보면 이러한 공격성이 더 차오르겠지. 가만히 있지 못하고 누군가를 밟기 위해 시간을 쓰고, 그런 다음 짧은 안을 채 느낄 새도 없이 다시 차오르는 불안에 누군가를 짓밟는 행동을 하며 인생을 살고 있는. 나는 네가 가엾지 않다.

 

[책을 쓸 때는 이를테면 전쟁의 처참함에 대해 쓸 때는 처참함을 고발하려는 게 아니라 그것을 떨어내려고 쓰는 것이다.] 내가 그래서 글을 쓰고 있었구나. 이 처참함을 쓰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구나. 이제 그만 거기에서 나오고 싶어서. 더는 그곳에 머물고 싶지 않아서. 나 좀 살려달라고 쓰고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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