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를 낸다면
죽집은 냈으면 한다.
죽 한 그릇
한 그릇의 죽
죽 한 그릇도 못 얻어 먹었다는 말은 너무 사나워
죽이 밥보다 부족타는 생각도 습관이야
무슨 일의 바탕이든 연하고 조용해야만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거다
또 그리고 싶어질 거다
거리거리마다
온갖 생고기 집 주물럭 짐 수산횟집이 난장을 치는 사이로
가만히 가만히 끼어서라도
죽집을 냈으면 한다
찬으로는 나박 물김치
단 하나지만 제일 어울리는 걸로 준비해 놓고
고소하고 삼삼하게 죽 냄새 종일 풍겨
내 죽집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하리
혹사와 공복, 년놈의 세상
죽사발을 만들고 말겠다 이빨 가는 사람
옳아, 죽사발을 만들어 주세요
죽사발이 많아야겠어요
이빨 상하지 않는 연한 음식 새알죽 가득 떠 올릴게
소매를 잡아 끌리라
속이 연하고 조용해지면
생각이 높아지는 법
생각이 높아지면
모든 지상의 것들에게로 겹으로 스미리
내 죽집 앞을 사뭇 기웃거리며 부딪는 떠돌이 개야
내 죽집 유리창엔 맨날 늘어진 입을 대는 늙은 가로수야
초대하리라 이 주그렁이들아, 나의 미식 녹두죽을 특별히 낼게
이 저녁도 길에 지친 행인들의 쓰린 속이 보인다
세상 폭력이 보인다
환중의 헐은 내벽이 보여
흰죽, 검은깨죽, 야채죽
비집고라도 죽집을 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