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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808/h2008080702421539780.htm

나는 선생의 작품을 즐기지 못했다. 그저 허영심이나 의무감으로 읽었다. 단편 <눈길>을 읽었을 땐 주책없이 눈물을 쏟았지만, 그 눈물은 일본열도를 울음바다로 만들었다는 구리 료헤이(栗良平)의 <우동 한 그릇>을 읽고 흘린 눈물과 별다를 바 없었다. 사실 <눈길>은 선생의 문학세계 변두리에 고명처럼 덧놓인 소품일 뿐이다.

선생은 젊어서부터 최인훈과 함께 한국 지식인문학을 대표했지만, 나는 선생의 지성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최인훈의 세계가 나와는 한결 더 맞았다. 두 분의 문학세계는 ‘지식인문학’이라는 헐거운 말로 뭉뚱그리기엔 너무 다르다. 두 분 다 관념을 부리는 데 능했지만, 최인훈의 관념이 근대적이라면, 선생의 관념은 고전적이었다. 묻고 되묻고 거듭 캐묻는 ‘지식인문학’의 임무 수행에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인 것일까?

지성의 피륙과 청승의 속살

추리소설 형식을 즐겨 취한 것도 선생의 문학에 지성의 무늬를 아로새겼다. 그러나 선생의 문학에는 기지나 풍자나 냉소나 해학 같은 지적 장치들이 없었다. 그것들이 최인훈에게는 있었다. 발랄함과 재바름의 결여는 선생의 삶과 문학이 지녔던 진지함과 따스함의 뒷면일 수도 있겠으나, 그것이 (내 경우에) 선생의 작품에서 잔재미를 앗아갔다.

문체도 그렇다. 이성의 투명함으로 반들반들한 최인훈 문장에 견줘, 선생의 문장은 자주 어눌하고 청승맞았다. 그 청승은 어쩌면 선생이 ‘진짜’ 전라도 사람이라는 데서 나왔으리라. 고향이 서로 멀지 않았던 문학평론가 김현이나, 함경도에서 전라도를 거쳐 서울로 온 최인훈과 달리, 선생은 끝내 서울 사람이 되지 못했다.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선생의 고향 장흥은 내 선대들의 누백 년 세거지지(世居之地)였다. 내 본향이 그 곳이다. ‘제주 고씨 장흥 백파’가 내 부계 혈통의 라벨이다. 장흥은 ‘약빠른 서울내기’인 나와 전라도 사람이었던 선생을 이어주는 거의 유일한 고리다.


내가 선생의 작품을 즐기지 못했다는 것은 선생의 문학이 예사로웠다는 뜻이 아니다. 취향과 품질을 분별할 정도의 판단력은 내게도 있다. 읽기의 편식이 심해 극히 주관적인 평가가 되겠지만, 해방 뒤 소설가 가운데 셋만 꼽으란다면, 나는 주저없이 선생과 최인훈, 이인성을 꼽겠다. 그것은 한국문학이 지난주 대상(大喪)을 당했다는 뜻이다.

나는 생전의 선생과 친분이랄 만한 게 거의 없었다. 먼발치에서 뵌 것까지 셈해도, 여남은 번이나 뵈었을까? 그러나 내겐 거의 스무 해 전 선생께 받은 편지가 하나 있다. 선생의 어떤 작품을 읽고 반해 신문에 호들갑스러운 서평을 썼는데, 거기 고마움을 표한 편지다.

몇 년 전, 그 알량한 친분마저 금이 갔다. ‘전라도’ 발언(본인은 이를 부인한다)으로 한창 물의를 일으키고 있던 소설가 이문열씨가 민주당 추미애 의원과 사나운 말을 주고받은 적이 있다. 그 때 선생은 한 신문 칼럼에서 이문열씨를 두둔했다. ‘전라도’가 정체성의 큰 부분인 나는 이문열씨를 비판하는 칼럼 끝머리에서 거칠게 선생을 거론하고야 말았다. “이청준씨께 묻는다. 문인까지 갈 것도 없이 한 시민의 처지에서, 이문열씨의 발언은 받아들일 만한가? 아니 전라도 사람으로서, 이문열씨의 발언은 받아들일 만한가?”라고.

해방 이후 한국문학의 大喪

그 뒤, 선생은 나를 볼 때마다 외면하셨다. 나도, 겸연쩍음과 오기가 겹쳐, 선생을 피하게 됐다. 마지막으로 뵌 것이 두 해 전 어느 상가(喪家)에서였는데, 우연히 선생과 등을 맞대고 앉게 된 나는 일어설 때 인사도 없이 그 곳을 나왔다. 이따금 그 칼럼을 되새기며, 내가 옳았는지 글렀는지 곰곰 생각해보곤 한다. 모르겠다. 그러나 똑같은 상황이 다시 벌어진다면, 나는 똑같은 방식으로 처신할 것 같다. 지난주, <눈길> 이후 처음으로 선생님 때문에 울었다. 선생님이 저쪽 세상에서 늘 평안하시길 빈다

2008.8.7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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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원문보기(이지누의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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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예술이란 무엇일까? 많은 예술 이론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현대와 같은 다원주의 시대에 참된 예술과 거짓 예술을 구별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순수예술과 참여예술 사이의 대립 역시 진부한 것이 되었다. 그러나 진정한 예술과 사이비 예술은 구별되어야 한다. 진정한 예술이 권력에 의해 은폐된 모순을 폭로하고, 왜곡된 이데올로기에 의해 격화된 대립을 화해로 이끈다면, 사이비 예술은 모순을 은폐하고, 격화된 모순 앞에서 침묵한다.(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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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말 행복해지기를 원합니다. 적어도 쪼들리지 않게는 살만큼 돈도 충분하기를 바라고, 집안 가족들이 별탈 없이 모두 건강하기를 바라고 ,요즘은 특히나 북한 미사일 문제,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국제 유가 문제 등으로 국제 정서가 불안정하다는데  크게는 나라경제를 비롯한 정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어 우리들 삶이 평안해지기를 바라고, 정말 <우리의 바람>은 끝이 없습니다. 도정일 선생의 글은 이런 점에서 현재 우리의 모습을 성찰하게 합니다. 행복한 삶에 관해서.

21세기 초 도시 중산층 이상의 한국인을 지배하는 정신상태는 두 개의 강력한 '코드'에 관통당했는데, 하나는 '탐욕의 코드'이고 또 하나는 '선망의 코드'랍니다. "소유하라, 친구여, 욕망의 크기만큼 소유하고 그 소유를 달성하기 위해 뛰어라, 그러지 않으면 너는 불행을 벗어날 길이 없다. 네가 뛰어야 네 부동산도 뛴다".라고 하는  '탐욕의 코드'와, "저자는 갖고 있는데 나는 없어, 이건 안되지, 암 안 될이고 말고"라고 사람들을 들쑤셔 견딜 수 없게 만드는 전염성 질투의 코드로 '선망의 코드'를 말하고 있습니다. 탐욕과 선망의 부호가 행복의 공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 이는 석가모니입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탐욕과 선망을 부추기지 않고서는 단 하루도 지탱되지 않는다는 것이 현대 우리 사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 결함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생존에 필요한 욕망과 과잉의 탐욕은 성질이 다르다는 것을 의식하고, 현대인의 불행감을 다스리는 방편으로서의 석존과 동양적 정신세계의 가르침을 겸허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법을 찾아 헤매야 하는 사회는 행복한 사회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절망의 사회다"라는 군요.(기사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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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느끼는 것이지만, 지금 이 정부가 국민들을 대하는 방식을 보면 불편하다. 어제는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체결을 원활이 지원하기 위해 국무총리실 산하에 설치하기로 했던 지원단을 대통령 '직할기구'로 위상을 격상시켰다. 국민 대다수가 FTA를 반대하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노 대통령은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협정 체결이 우리의 미래가 달린 사활적 문제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말에서처럼 국민의 정서보다는 대통령 개인의 판단력을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것 같다. 위험하기 짝이 없다.

박구용 교수는  말한다. "대통령은 홍보가 부족해 국민이 오해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국민은 홍보의 대상이 아니라 소통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 이 나라의 주인이다."라고. "참여정부는 국민적 소통이란 힘으로 권력을 창출했지만, 참여와 소통을 막으면서 권력을 잃어가고 있다. 참여정부는 폭력정권이 돼 가고 있다."라고.(기사원문보기)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오늘 4군데서 실시된다. <성북을>을 제외하곤 이미 판세는 기울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이 현실을 읽어내려 하지 않는다. 아니면 오판하고 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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