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와서야
바다가 나를 보고 있음을 알았다.

하늘을 향해 열린 그
거대한 눈에 내 눈을 맞췄다.

눈을 보면 그
속을 알 수 있다고 했는데
바다는 읽을 수 없는
푸른 책이었다.

쉼 없이 일렁이는
바다의 가슴에 엎드려
숨을 맞췄다.

바다를 떠나고 나서야
눈이 
바다를 향해 열린 창임을 알았다.

                  <<수련>>  문학과 지성사 2002

 일상에서 바다를 생각할 일은 없다. "바다에 와서야/ 바다가 나를 보고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될지라도... 내가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바다가 나를 바라보는 일. 바다와 나와의 경계가 無化되는 일.

그리고 "바다는 읽을 수 없는 푸른 책". 어찌 바다만 그렇겠는가. 우리의 삶 또한  읽을 수 없는 미지의 질문으로 가득찬 책이다. 

위안이 있다면 "바다를 떠나고 나서야/눈이/바다를 행해 열린 창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 지리멸렬한 일상에 찌든 마음들이 바다의 가슴에 숨을 맞춤으로써 얼마간은 치유될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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