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밤새 그짓을 하고

지쳐서 허적허적 걸어나가는

새벽이 마냥 없는 나라로 가서

생각해보자 생각해보자

무슨 힘이 잉잉거리는 벌떼처럼

아침 꽃들을 찬란하게 하고

무엇이 꽃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는지

어째서 얼굴 붉은 길을 걸어

말도 아니고 풍경도 아니고

말도 지나고 풍경도 지나서

어떤 나무 아래 서 있는지
                                                         <<속이 보이는 심연으로>>, 문학과 지성사. 1991.


새벽에  읽을 때의 그 생생한 느낌은 소멸하고 지금은 손에서 슬며시 빠져나가는 바람처럼 그렇게 사라진 느낌, 감각들.  그저 빔(空), 아스라한 흔적, 그림자뿐......

 안에 있으면서 안을 관찰할 수는 없는 법. 새벽이 없는 나라로 가서 볼 때, 즉 아주 낯선 시선으로 새벽을 응시할 수 있을 때,"무슨 힘이 잉잉거리는 벌떼처럼/아침 꽃들을 피어나게 하고/무엇이 꽃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는지/어째서 얼굴 붉은 길을 걸어/말도 아니고 풍경도 아니고/말도 지나고 풍경도 지나서/어떤 나무 아래 서 있는지" 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닌지. 詩의 그림자......

 말이면서 말이 아니고 풍경이면서 풍경이 아닌, 말도 지나고 풍경도 지나서 한 그루 나무가 되어 서 있는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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