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서구 문화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절대적인 의존뿐만 아니라 물과 돌, 식물과 동물,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필수 불가결한 관계까지도 이상하리만큼 부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부정의 문화속에서 스스로 옷을 입거나 욕실에 가는 데에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이들이 상호 의존을 상상하려 한다면 실패하리 라. 아침에 일어나는 일에서부터 밤에 잠자리에 드는 일까지 돌봄이 필요한 세상을 떠올리면, 압도적인 의존과 프라이버시 및 존엄성의 상실을 상상하게 된다. 우리는 잠시 멈춰서서, 이러한 두려움이 드러내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상상력의 한계라는 사실을 알아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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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동물들이 우리에게 그토록 부정적인 관점으로만 존재하는지 궁금하다. ... 아무도 동물처럼  취급받으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동물들을  어떻게 대하는가? 동물에 빗대어 이루어지는 모욕의 근원에는 비인간 동물 자체에 대한 차별이 있다"(장애인 작가, 동물권 활동가 수나우라 테일러의 말  인용)
간단히 말해서, 원숭이라는 잔혹한 결론은 인간이 비인간 동물을 잔혹하게 대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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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인류학자들은 더 이상 우리의 두개골 치수를 재지 않는다. 대신 심리학자들이 우리의 지능을
수치화하고 등급을 매긴다. 우리를 둘러싼 가해자 무리의 조롱이 울려 퍼진다. 세상은 셀 수 없이 많은 방식으로 우리에게 원숭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원숭이라는 말은 우리 중 어떤 이들을 인류에서 제외시키고 자연 세계의 비인간 동물 사이로 그들을 밀어넣는다···. 어떤 사람이 인간이 아닌 것으로 간주되면, 모든 종류의 폭력이 용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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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생학자들은 정신박약과 가난과 폭력이 유전적인 것이라고 믿었다. 이것들은 미국의 몰락을 이끌 수도  있는, 여러 세대에 걸친 결함이자 위협이었다. 우생학자들은 민족주의, 백인성, 부를 통해 정의되는건강을 회복하여 국가를 치유하고자 애썼다. 6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시설에 수용되었으며, 셀 수 없이 많은 이민자들이 국경에서 돌려보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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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손에 잡힐 듯하기만 한 치유를 기다리며 자원과 에너지와 언론의 관심을 낭비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오늘의 삶을 유예하며 살아갈 위험을  감수 해야 한다. 치유에 대한 믿음은 한편으로는 과거의 몸에 대한 기억에, 또 한편으로는 미래의 몸에 대한 바람에 우리를 묶어 놓는다.  특히 그러한 바람이 아직  발명되지 않은 치료기술에 기반하고 있을 때,  우리의 몸-마음은 쉬이 환상이자  투영 projection이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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