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에는 엄마로 보이지 않는 여성의 뒷 모습.
서문만 읽고서 '이건 내 이야기야.'라고 생각했다.
늘 있었던 내 방, 내 책상이 결혼과 함께 없어졌다.
거실 한쪽에 작은 책상을 마련했던 것은 그렇게 사라져가는 나를 붙들고자 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여성관련 책을 하나씩 사서 읽었던 것도 그 무렵이었다.
결혼이 여자의 완성인 것처럼 키웠던 엄마에 대한 원망이었을까.
난 딸에게 신데렐라, 백설공주 같은 공주과 책을 읽어주지 않았다.
유치원 다닐 때 큰 애가 가장 좋아하는 동화는 성냥팔이 소녀였다.
딸은 성냥을 사 주지 않고 외면했던 어른들을 미워했다.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자 사 줬던 책들은 다음과 같다.
'아우성'으로 한참 유명세를 탔던 구성애씨가 그랬다.
자식들이 커서 맘에 안 드는 상대를 데려와 결혼하겠다 하면 그때서야 눈에 흙이 들어가야 하네 마네 하며 뜯어말려도 소용없다고.
엄마 말 듣는 말랑말랑한 시절부터 암암리에 애들한테 엄마 스타일을 주입해야 한단다.
그래야 나중에 이성을 사귈 때 '울 엄마가 마마보이는 안된댔지, 술 담배 하는 남자도 안 돼.' 머 이렇게 자가 검열이 가능하단거지.
그래서 딸이 중학생이 되자 엄마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했다.
결혼이란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고.
혼자서 충분히 살 수 있을 때 하는 거라고.
남자를 위해 네 자신을 희생해서도 안 되고, 남자가 너를 위해 희생하는 것도 안 되고,
둘이 만나 서로의 인생을 더 반짝이게 해주는 것이라고.
다음은 그런 이야기와 함께 딸에게 권했던 책들이다.
나중에는 권하지 않아도 내 책꽂이에서 찾아 읽기도 했다.
교육을 너무 진지하게 했는지 큰 딸은 결혼에 대한 로망이 별로 없다.
작은 딸은 내가 좀 기운이 빠졌을 때 태어나서 그런지 결혼에 대한 핑크빛 기대감을 갖고 있다.
그 애의 꿈은 '사모님' 으로 부자 만나서 떵떵거리고 살고 싶다고 한다.
모든 교육이 성공할 수는 없는 거지. 쩝.
'엄마의 책방'을 읽으면서 딸에게 권할 책이 하나 더 늘었구나 생각한다.
내가 쓰지 않은 책이지만 내가 쓴 것 같은 책이다.
결혼 전에 읽는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얼마전에 그런 책을 또 한 권 발견하여 딸에게 권했다.
중고로 구입했다가 책 상태가 너무 엉망이어서 반품하고 새로 구입했던 책이다.
많이 안다고 해서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모르고 당하는 것보다야 낫겠지.
딸들의 결혼생활이 나보다는 실수가 좀 적었으면 좋겠고, 덜 힘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