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에 대해 뭐라 콕 찍어 말할 수 없으나 요즘엔 책을 읽고 나서도 쓸 말이 없다.

지난 주에는 내가 읽고 싶었다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쓴 글에 자주 오르내려서 궁금하던 책을 두 권 읽었다.

 

로맹 가리의 책은...... 나와는 맞지 않는다.

답답한 결말이 이어지는 단편을 결국 다 읽지 못하고 내려놓았다.

글이 이런식이면 작가가 권총자살을 했다는 것이 전혀 놀랍지 않다.

'현시창'이라도 가상의 세계에서만은 해피엔딩을 원한다.

 

 

 

소설의 형식이 독특하고 내용도 매우 공감이 가나 별 감흥이 없다.

몇년전에 나보다 한 살 위의 여성과 꽤 사적인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친구도 별로 없는데다 친구들과도 속 깊은 이야기는 하지 않는 편이라서 그녀와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 지금도 좀 놀라울 때가 있다.

이상도 하지.

같이 있으면 마음에 빗장이 채워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도 모르게 무장해제가 되는 사람이 있다.

그녀와 같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내 이야기를 털어 놓게 되었다.

아마도 스스로를 무장해제 시키는 그녀 특유의 말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그랬다.

연애 말고 대화만 하는 이성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연애 한 번 못 해보고 선 본지 한 달 만에 나이 차가 많은 남자와 결혼한 그녀로서는 충분히 할만한 생각이긴 했지만,

난 콧방귀를 뀌었다.

나이 마흔 넘어 아내 아닌 여자를 만나는 남자가 허구헌날 까페에 마주 앉아서 당신과 이야기만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다니 정말 순진하다며.

소설을 읽으면서 그녀를 떠올린 건 에미도 처음에는 그런 마음으로 메일을 주고 받은게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결혼한 여자가 남편과 육아, 교육, 가정 대소사 말고 나눌 이야기가 얼마나 되는지 생각한다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나 역시 그녀와 같은 생각(대화만 하는 이성친구를 갖고 싶다)을 한 적이 있었으니까.

어떤 경우건 상대에 대한 매력없이 만남이 이어질 수 있는지가 의문스럽다.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를 만나지 않는 다음에야 이성간 끌리는 마음을 의지로 누를 수 있을 것인지 장담하지 못하는 한,

대화만 하는 이성친구는 사귀기 어렵다고 본다.

 

영화 '하녀'에서 이정재의 대사가 생각난다.

하녀에게 생긴 자기 아이를 낙태시키려고 한 장모에게 한 말. 당신 딸이 낳아야만 내 자식인 거냐고.

정말, 진정한 수컷만이 할 수 있는 대사다!

 

하여, 진정한 수컷이라면 까페에서 여자와 마주 앉아 책 이야기, 영화이야기로 수다만 떨지 않을 것이며,

노을 진 바닷가를 '손만' 잡고 걷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아무런 성적 제스처 없이 이야기만 할 수 있는 그런 남자 있으면 당장 친구 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