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말 알아요? 아우슈비츠에서 자살한 사람보다 지금 도쿄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것. 그런데 어떻게 살았느냐? 희망을 버리니까 살았죠. 아이들이 태어났고 저 아이들을 위해서 살자, 일본에 돌아갈 꿈을 포기하자...... 아니 희망을 버린 것이 아니라 운명이 내 맘대로 내가 원래 계획했던 대로 되야 한다는 집착을 버린 거죠...... 그래서 살 수 있었어요." (198쪽)

 

공지영의 소설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는 여러 매체에 쓴 단편들을 모은 것인데 소설의 주인공이 작가 자신인 경우가 몇 편 된다. 위의 말은 일본작가 H(스물 세살에 북한으로 납치되었다 24년만에 돌아온)가 공지영에게 한 말이다.

 

이 부분을 읽는 순간 가슴이 뻐근한게 앉아있기 힘들었다.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일어서서 심호흡을 하며 걸어다녔다. 희망을 버리니까 살 수 있었다니, 그건 그냥 숨만 쉰거지 살았다고 볼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럼 희망은 필요 없는 건가? 아니다. 그 깊은 절망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고자 하는 희망을 볼 수 있었다. 희망을, 집착을 버렸다는 건 삶을 포기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현실을 그냥 감당하겠다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답답함의 원인을 알 것 같다. 지금 내 처지가 그렇다. 나도 이렇듯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을 피하려 하지 않고 온 몸으로 부딪혀봐야하는 것 아닌가 하는데 생각이 미치자 답답해진 것이다. 그러고 싶지 않으니까. 어딘가 빠져나갈 길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니까.

생각해보니 나도 일을 시작한지 올해로 24년째다. 암담한 상황이 계속되면서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는데 그만둘 수가 없다. 힘들면 그만두면 되지, 떠나면 그만이지 생각하면서도 집안일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그런데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 살 수 있다고 한다. 그게 사는 것인가 싶다. 하지만 살아야하니까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더 괴롭고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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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를 시작하면서 두툼한 노트에 독서감상을 적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감상을 적은 다음 골라서 알라딘 서재에도 올려야지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노트에 쓴 글들이 알라딘 서재에 올리기엔 감정이 너무 앞선 글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읽을 것이라 생각하며 쓴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은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일로 쌓인 스트레스를 책 사는 것으로 풀었더니 겁이 날만큼 책이 쌓였다.

한 해동안 60여권을 읽어치웠으니 나름 많이 읽은 셈치자.

내년에는 책 사는 걸 자제하고 책장의 무게를 덜어내는 쪽으로 해보려 하지만 잘 되려나.

 

올해의 마지막 책을 읽고 있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의 칼럼을 모은 책이다.

읽다가 밑줄 팍팍 그을 내용이 많다.

 

입시공부가 갖는 또 하나의 큰 문제는, 많은 이들로 하여금 공부를 싫어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공부하는 곳에 입학하기 위해 공부가 싫어지는 체험을 해야하는 역설이 대학입시 공부에 있다. -74쪽

 

2년째 대학편입시험에 매달려있던 딸이 올해는 다행히 2차 면접시험까지 보게 되었다.

긴장되는데다 몇 년씩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집과 학원을 반복하다보니 애가 공부에 진절머리를 낸다.

대학에 들어가서 배워야 할 내용을, 들어갈 자격을 얻기 위한 시험을 치려고 사설학원에서 배우고 있으니 정작 대학에서는 뭘 가르쳐 주려고 그러나 싶다.

이 나라는 그 나이에 맞는 교육과정을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고 사교육을 통해 미리 배워오기를 원한다.

이미 우수한 애들을 데려다 더 우수하게 만들어 줄 것도 아니면서.

모름지기 학교란 공부가 즐거운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곳이어야 하는 것 아니냔 말이다.

 

그리하여 취업이라는 목표에 대학 시절마저 갈아 넣고 나면, 시험을 위한 수단이 아닌, 또 다른 종류의 공부가 존재한다는 것도 모르고 나머지 생을 살게 될 수도 있다. 자신은 공부라면 다 지긋지긋하게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75쪽

 

여러 곳에 쓴 칼럼을 모은 것인지 내용이 가볍기도 하고 무겁기도 하다.

그리고 중간 중간 실린 사진이 참, 좋다.

 

 

 

 

이 땅에 희망이 있어서 희망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기에 희망을 가진다. -1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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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연 나는 치매환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던 것일까? 이미 병이 많이 진행되어버린 치매 환자만 봐왔고, 그들의 병적인 상태를 경험한 것으로 치매에 대한 이해를 다 했다고 생각했나 보다.

  조발성 치매를 앓고 있는 치매 초기의 환자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이 책은 치매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최대한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이 치매 환자로 적응해서 살아가는 것임을 깨닫는다. 인지기능을 발전시키거나 자극하는 활동을 하면 치매를 늦출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아니다. 어떤 노력에도 불구하고 치매는 그냥 진행될 뿐임을 알게된다. 다만 환자가 자기 통제력을 행사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최대한 버티는 것이다. 좀 더 쉬운 길을 찾으면 인지기능은 더욱 낮아지기만 하기 때문에 좀 더 어렵고 힘든 일을 일부러 해 보는 것이다. 주인공 웬디는 직장생활을 하는 싱글맘으로 항상 주도적으로 삶을 꾸려왔다. 그랬기 때문에 치매에 대응할 방법을 열심히 찾을 수 있었는지 모른다.

  치매의 여러 증상들을 생생하게 알려준 덕분에 어르신들의 마음을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자신의 병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자신을 시나브로 잃어가면서 두렵고 슬펐을 어르신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우리가 치매에 걸리겠다고 선택한 게 아니다. 병이 들이닥쳤고, 우린 이유조차 모른다. 그 의문이 치매 환자를 매일 괴롭힌다. 치매는 기억과 존엄을 앗아간다. -213쪽

다들 부모가 늙으면 어둔해지는 줄 알아도 평생 사랑한 자녀의 얼굴이나 이름을 잊을 줄은 꿈에도 모른다. 그게 치매의 잔혹성이고, 바로 거기에 죄책감이 깊이 묻힌다. -214쪽

치매환자 평가의 근본 문제는, 환자에게 일상의 괴로움을 기억하라고 요구하는 점이다. 난 기억할 수가 없었다. 당연히 기억하지 못하지. 몇 주 후 수급자격 탈락 통보를 받았다...... 정부의 종일 보살핌을 받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이유로 재정적인 생명줄을 빼앗긴 셈이다. 적응하려고 안간힘을 쓴다는 이유로 오히려 불이익을 당하다니. -2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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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일과 육아를 책임지면서 사회적으로도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가는 여성들의 글을 읽을 때마다 그들의 안간힘이 내 것 같아 짠함과 분노가 같이 차오른다. 일과 가정을 '양립'하려는 여성들의 분투는 겪어 본 사람만 안다. 옮긴이의 말처럼 ' 도려내기엔 치러야 할 값이 너무 커서 때로 모순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받아들이기엔 치러야 할 값이 너무 커서 때로 모순을 도려내는 쪽을 택'하게 된다.

 

여성임을 자각하는 순간 본인에게 쏟아지는 불평등은 견디기 힘들다. 나는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당연한 듯 불평등을 감당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이유때문이든 딸에게도 고등교육을 받게 해준 부모님께 감사한다. 가정에서의 불평등은 그래도 혈연내에서의 불평등이라 견딜 수 있었지만 결혼으로 인해 감당해야 하는 불평등과 부당함은 나를 깨어나게 했다.

 

현재도 많은 부분의 모순을 그냥 감당하고 있지만 내가 겪은 부당함과 불평등을 내 딸들이 물려받기를 원치 않는다. 그래서 더욱 결혼이란 중요한 삶의 과정이라 생각한다. 내가 일관되게 주장한 탓도 있지만 부모의 결혼생활에서 그 어떤 주장이나 설명보다 선명한 실체를 경험한 딸들은 비혼을 선언했다.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그것이 온전한 본인의 선택이었으면 하고, 그것을 확신한다면 나는 언제나 딸들의 선택을 지지할 것이다.

 

노동자의 억압과 여성의 억압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노동자는 자신을 억압하는 고용주와 함께 살지 않는다. 여성은 남성과 같이 살뿐더러, 남성을 사랑한다. 어떻게 자신을 억압하는 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맞설 수 있겠는가? -44쪽

샘은 내 강의를 들으러 왔다가 내가 여성도 자신의 커리어를 남성만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고, 남성의 분야에 받아들여져야 하며, 남성과 똑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을 때 쏟아진 박수와 ‘맞장구‘에 섬뜩해했다. 나는 힘과 영향력을 손에 넣으려고 분투한다고 생각했는데, 샘은 내가 급진적이고 힘이 세다고 보았으며, 그렇게 보이는 나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258쪽

페미니즘 경제학은 결정적인 경제 공헌이 무급 노동, 특히 아동과 환자, 노인을 위한 돌봄 노동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며, 여성의 일이 그 사회적 공헌에 비해 훨씬 적은 보상을 받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사실을 조명한다. -350쪽

내가 제안한 방법은 인적자본이론과 결혼의 동업관계이론에 기초한다. 두 배우자는 결혼에 서로 다른 경제적 투자를 했다. 남편이 소득을 올리는 동안 아내는 비시장성 노동을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결혼생활 내내 두 가지 다른 경제적 공헌의 과실을 똑같이 누렸다. 헤어지는 시점에 부부는 아내의 공헌을 전부 써버렸지만, 남편의 공헌은 상당부분이 자산 형태로 남았다. 부부가 동업관계였기에 아내는 그 자산 절반을 가질 자격이 있다. 그 반대를 증명하는 법적 문서가 없다면, 50대 50 동업관계라고 가정하는게 정당하다. -354쪽

나는 누구와 결혼하느냐 혹은 동반자가 되느냐가 앞으로 내릴 가장 중요한 커리어 결정이며, 함께 사는 사람이 자신의 커리어를 지지하지 않으면 앞에는 아주 길고 어려운 길이 놓일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367쪽

젠더 혁명은 교착상태다. 남성 수입 대비 여성의 수입은 늘지 않는다. 어머니인 여성은 엄마 벌금을 문다. 여성이 가장인 가족은 어느 때보다 빈곤한 상태일 가능성이 크다. 이공계 여성의 비율은 여전히 매우 낮고, 대기업 내 여성리더나 기업이사회 내 여성 이사는 아직 당황스러우리만치 부족하다. -373쪽

하지만 성실함과 끈질긴 노력, 효과성으로 직업에서 형평성이 생겨나지는 않는다. 환경은 무척 중요하다. 여성이 힘을 얻으려면 우호적인 법적 환경, 젠더 평등을 촉진하는 사회 이데올로기, 여성의 열망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제도, 여정 내내 손을 내밀어주는 남성과 여성동지에게도 의존해야 한다. -3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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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한/일 각본집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정미은 옮김 / 플레인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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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받은 굿즈가 각본집인줄...... 책이 너무 작아서 살짝 실망했지만 읽어가면서 영화의 장면들을 떠올릴수 있어서 좋았다. 자식을 인식하는 부와 모의 차이와 감정을 잘 보여준 영화였다.북펀딩 참여는 처음이었는데 나름 괜찮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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