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쪽에서 보자면 불안, 우울 같은 감정은 치료의 대상이다. 정신장애를 진단하려면 개인이 처한 환경, 유전 정보, 가치관 등을 살펴야 한다. 하지만 감정이 치료의 대상이 될 때 증상의 완화가 가장 중요하다. 잠을 자지 못하고, 사람들을 만나는게 두렵고, 밖에 나갈 수 없게 된다면 무엇보다 그 괴로움을 당장 없애줄 처방을 원하게 된다.

그런데 진화심리쪽으로 보면 그런 감정은 위험을 감지하고 피하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는 거다.

인간은 누구나 괴로운 감정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괴로운 감정에도 다 이유가 있다. 그런 감정들은 좋지 못한 상황을 변경시키거나 피하거나 벗어나려는 노력을 유도한다. -139쪽

그러니까 안 좋은 기분(bad feeling)도 삶에 도움이 되는 감정이다. 안 좋으니까 더 조심하거나 하지 않을 수 있고, 더 안전해지는 것이다. 뭐가 되었건 '인류는 그런 식으로 진화되었어'라고 하면 끝인가 싶다.

읽다가 계속 읽을까 그만 읽을까 고민했다. 뭔가 더 있을까 하여 끝까지 읽었는데 결론은 이런 것이다.

안 좋은 기분도 삶에 도움이 되는 감정이고, 정신건강에 관한 진단을 할때 현재의 문제만 살필게 아니라 그 사람의 환경, 유전적 정보, 가치관 등등 그 사람의 역사를 알고 적절한 처방을 해야한다는 이야기다.

즉 말하자면 환자의 병이 아니라 환자를 보라는 이야기이다.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검나 당연한 이야기다. 제목에 낚인 느낌.

 

감정에는 의미가 있다. 우리는 감정의 메시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감정은 보통 우리가 어떤 일을 하도록 만들거나 어떤 일을 멈추도록 유도한다. 우리가 감정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감정이 지혜로울 때가 있기 때문이다. - P142

플라톤은 쾌락을 추구하다 보면 불행해진다고 경고했고, 싯다르타는 욕망을 영원히 채울 수 없다고 가르쳤다. 모든 종교는 향락의 쳇바퀴에서 빠져나오고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으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그런 충고는 다이어트에 관한 충고와 비슷하다. 옳고,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고, 아주 많고, 진화적 이유도 충분하지만 실제로 따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 P246

사람들은 자신이 처하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고, 그 상황이 또다시 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 대개 그런 상황들은 저절로 고착된다. - P303

특히 환자가 자신을 괴롭히는 상황들을 본인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할 때 치료의 성공확률은 높아진다. 사람들은 때때로 근본적으로 변화한다. -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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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 힘든, 고통스러운 한 여자의 삶.

'말하지 않는 것'이 나에게도 있다.

그게 용서할 수 없어서 말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걸 인식하지 못했는데 어쩌면 그게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드러내 말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

말하지 못하기 보다는 말하지 않는 것이겠지.

잊지도 않고 드러내지도 않는 일들.

그 경계를 잊어버렸을 때는 결국 말하게 될까.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까.

 

미안하다고 말할수도 있을거라고 이순일은 생각했다. 그것이 뭐가 어렵겠는가.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그러나 한영진이 끝내 말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걸 이순일은 알고 있었다. 그 아이가 말하지 않는 것은 그래서 나도 말하지 않는다. 용서를 구할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엔 있다는 것을 이순일은 알고 있었다. 순자에게도 그것이 있으니까. - P142

어른이 되는 과정이란 땅에 떨어진 것을 주워먹는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하미연은 말했다. 이미 떨어져 더러워진 것들 중에 그래도 먹을 만한 걸 골라 오물을 털어내고 입에 넣는 일, 어쨌든 그것 가운데 그래도 각자가 보기에 좀 나아보이는 것을 먹는 일, 그게 어른의 일인지도 모르겠어. 그건 말하자면, 잊는 것일까.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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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관함에 담아두었던 책들을 주문했다.

금요일 같은 월요일을 보내고 체력이 바닥나서 퇴근했는데 주문한 책(실은 굿즈)이 와있었다.

천정에 둥근 불빛을 은은하게 비취주는 모비딕 구슬램프는 참 예뻤다.

하루의 피로가 다 씻길 만큼.

 

그런데,

아침에 불이 켜지지 않아 충전하려고 잭을 꽂았는데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연결부위가 깊숙히 들어가버려서 전기가 통하지 않은거였다.

바닥을 뜯어내고 연결부위를 바깥쪽으로 밀어낸 다음 잭을 꽂자 불이 들어온다.

어젯밤의 기쁨이 짜증으로 바뀌는 순간.

 

알라딘 굿즈를 몇 번 구입한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뭔가 부족하다.

모양은 예쁜데 사용하기 불편하거나, 마감이 깔끔하지 않거나.

안 사면 되지 않느냐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게 된다.

 

그나저나 구슬램프 충전할 때마다 바닥 뜯어야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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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에 대한 가벼운 에세이 정도인줄 알았는데, 아니다.

불안에 대한 다양한 증상과 거기에 수반된 문제 상황들, 불안에 대처하는 약물요법, 심리치료까지 온갖 어려운 약물명과 기전이 끝도 없이 계속되는 책이다.

 

저자는 긍정적으로 책을 끝맺었지만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편안한 관계를 맺기는 곤란할 듯하다.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고 뇌의 편도체가 과활성화 된 환자라 그렇다 하더라도 매일, 매순간 과하게 불안을 호소하는 사람과 어떻게 평온을 유지하며 지낼 수 있을까. 머리가 아프면 뇌질환을 의심하고, 심장이 좀 빨리 뛰면 심장병을 의심하면서 응급실을 제 집처럼 드나들다 보면 일상생활 유지도 어렵고 돈도 많이 든다. 저자는 자신의 병을 이해해주는 주변사람과 필요할 때 의료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유리한 환경을 가진 점을 인정한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불안장애 때문에 삶을 제대로 이어갈 수 없었다.

 

불안때문에 유리한 점도 있었다. 뺨에 생긴 점이 조금씩 커지는 것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고 바로 병원에 갔고 별 것 아니라는 의사의 말을 의심하여 여러 병원을 다닌 결과 흑색종으로 진단받고 수술했다. 나 같은 사람은 무시할 증상이다. 저자는 기자이고 필요할 때 필요한 정보를 수집할 방법이 많다보니 증상이 더 심해진 것 같다.  너무 많은 지식이 불안을 키우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는 게 병이다.

 

'불안장애의 위험요소 중 하나가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라고 한다. 양육자, 특히 아버지는 딸의 불안에 대해서는 수용하고 회피하도록 하는 반면 남아는 맞서도록 한단다.  그래서 남아가 불안에 더 노출되어 이길 힘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키워진 남아는 자기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하고 여아는 그 반대가 되어 자기 통제력을 얻지 못한 여아가 불안에 훨씬 취약하다고.  나도 자라면서 과잉보호된 측면이 있고, 자기 통제력을 잃었다고 생각할 때 불안감이 높아지는 것으로 보아 사실인 듯 하다.

 

불안장애를 건강염려증이나 괜한 호들갑으로 여기지 않고 깊은 관심과 변함없는 도움을 주는 남편과 동료들, 가족들의 태도를 보면서 공감이 환자에게 얼마나 큰 용기와 위안을 주는 것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불안은 공포와 유관하면서도 구분된다. 공포는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반면 불안은 그럴린이 말하듯 <지속된 불확실성>이다. 모호한 미래에 대한 만성적 불편함, 일어날 수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에 대한 정신을 갉아먹는 염려다. -22쪽

불안장애의 가장 큰 위험요소는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여성은 남성보다 불안장애에 걸릴 가능성이 대략 두 배 높고 병세가 더 오래가며 증상이 더 심하고 생활에 지장도 더 크다. -123쪽

남자 아이들은 무모하게 구는게 남자로서 당연한 거라고 배우지만 여자아이들은 나쁜 일이 일어나면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 -129쪽

육아방식 때문에 아동이 불안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동이 이미 불안증상을 보인다면, 통제적이고 과잉보호하는 육아가 아동의 불안을 부추기거나 유지시킬 수 있다. -351쪽

기묘하게도 불안은 내가 더 진정한 삶을 살게 해 준다. 그 삶은 남들에게 한결 공감할 수 있는 삶이기도 하다. 불안 덕분에 나는 도움을 구하고, 약한 모습을 보이고, 그 결과 깊은 우정을 쌓을 수 있었다. -387쪽

내가 불안하다는 것은, 매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무른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내 인생은 더욱 풍요로워졌다. -3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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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재미있다. 손에서 놓을 수 없을 만큼. 소설을 잘 읽지 않기 때문에 요 네스뵈의 소설 역시 처음인데 왜 베스트셀러 작가인지 알겠다.

 

희곡, 그것도 검나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소설로 다시 썼다. 쇠락한 도시를 배경으로 마약판매상과 카지노 업자, 부패한 공권력에 대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각자의 사연이 사건 전개에 따라 하나씩 드러나고 긴장감을 늦출 수 없어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성의 역할이 모성애에 집중되는 것이 좀 거슬리긴 하지만 원작이 나온 시기를 감안하기로 했다. 그래도 대부분 여자들이 성녀 아니면 요부라는 식의 설정은 마음에 안 든다.

 

원래 태극기 휘날리며풍의 영화, 드라마, 소설 등등을 싫어한다. 더 없이 평화로운 풍경과 걱정 없이 뛰노는 어린이들, 선한 주인공과 그 주변 사람들을 맘껏 보여준 뒤 어쩔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그 모든 것들이 남김없이 파괴되고 허무만 남는 그런 거지같은 결말이 싫다.

 

맥베스도 장동건처럼 선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는데 자신을 사랑해주는 단 한 사람(여자)을 위해서 욕망을 과다하게 추구하다 추락한다. 난 이 부분이 항상 궁금하다. 정말 남자는 자기를 인정해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거는지. 또 유부남을 사랑하고 그 유부남이 마누라랑 헤어지고 너랑 살겠다고 한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가 배신당한 여자가 그래도 그 남자를 잊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것도. 굉장히 아름다운 것처럼 포장하지만 전혀 아니다.

 

어쨌건 700쪽이 넘는 책을 이틀 만에 읽어버렸다. 하필이면 일요일 오후에 추켜드는 바람에 새벽 3시에 잠들어서 월요일 오전 내내 헤매긴 했지만 그래도 재미있었으니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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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2-02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상님 명절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가상 2019-02-03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합니다. 님도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