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에 대한 가벼운 에세이 정도인줄 알았는데, 아니다.

불안에 대한 다양한 증상과 거기에 수반된 문제 상황들, 불안에 대처하는 약물요법, 심리치료까지 온갖 어려운 약물명과 기전이 끝도 없이 계속되는 책이다.

 

저자는 긍정적으로 책을 끝맺었지만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편안한 관계를 맺기는 곤란할 듯하다.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고 뇌의 편도체가 과활성화 된 환자라 그렇다 하더라도 매일, 매순간 과하게 불안을 호소하는 사람과 어떻게 평온을 유지하며 지낼 수 있을까. 머리가 아프면 뇌질환을 의심하고, 심장이 좀 빨리 뛰면 심장병을 의심하면서 응급실을 제 집처럼 드나들다 보면 일상생활 유지도 어렵고 돈도 많이 든다. 저자는 자신의 병을 이해해주는 주변사람과 필요할 때 의료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유리한 환경을 가진 점을 인정한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불안장애 때문에 삶을 제대로 이어갈 수 없었다.

 

불안때문에 유리한 점도 있었다. 뺨에 생긴 점이 조금씩 커지는 것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고 바로 병원에 갔고 별 것 아니라는 의사의 말을 의심하여 여러 병원을 다닌 결과 흑색종으로 진단받고 수술했다. 나 같은 사람은 무시할 증상이다. 저자는 기자이고 필요할 때 필요한 정보를 수집할 방법이 많다보니 증상이 더 심해진 것 같다.  너무 많은 지식이 불안을 키우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는 게 병이다.

 

'불안장애의 위험요소 중 하나가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라고 한다. 양육자, 특히 아버지는 딸의 불안에 대해서는 수용하고 회피하도록 하는 반면 남아는 맞서도록 한단다.  그래서 남아가 불안에 더 노출되어 이길 힘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키워진 남아는 자기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하고 여아는 그 반대가 되어 자기 통제력을 얻지 못한 여아가 불안에 훨씬 취약하다고.  나도 자라면서 과잉보호된 측면이 있고, 자기 통제력을 잃었다고 생각할 때 불안감이 높아지는 것으로 보아 사실인 듯 하다.

 

불안장애를 건강염려증이나 괜한 호들갑으로 여기지 않고 깊은 관심과 변함없는 도움을 주는 남편과 동료들, 가족들의 태도를 보면서 공감이 환자에게 얼마나 큰 용기와 위안을 주는 것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불안은 공포와 유관하면서도 구분된다. 공포는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반면 불안은 그럴린이 말하듯 <지속된 불확실성>이다. 모호한 미래에 대한 만성적 불편함, 일어날 수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에 대한 정신을 갉아먹는 염려다. -22쪽

불안장애의 가장 큰 위험요소는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여성은 남성보다 불안장애에 걸릴 가능성이 대략 두 배 높고 병세가 더 오래가며 증상이 더 심하고 생활에 지장도 더 크다. -123쪽

남자 아이들은 무모하게 구는게 남자로서 당연한 거라고 배우지만 여자아이들은 나쁜 일이 일어나면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 -129쪽

육아방식 때문에 아동이 불안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동이 이미 불안증상을 보인다면, 통제적이고 과잉보호하는 육아가 아동의 불안을 부추기거나 유지시킬 수 있다. -351쪽

기묘하게도 불안은 내가 더 진정한 삶을 살게 해 준다. 그 삶은 남들에게 한결 공감할 수 있는 삶이기도 하다. 불안 덕분에 나는 도움을 구하고, 약한 모습을 보이고, 그 결과 깊은 우정을 쌓을 수 있었다. -387쪽

내가 불안하다는 것은, 매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무른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내 인생은 더욱 풍요로워졌다. -3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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