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자신을 우선적으로 ‘부름 받은 자로 여긴 건 그렇다 쳐도, 그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개종‘이라는 용어를 섣불리 버려선안 된다. 그렇다. 바울은 자신이 더 이상 유대인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유대교와 대립하는 메시지를 설파하고 다닌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여태껏 유대교에 대해 이해하고 있었던 바에 극적인 변화를 겪으면서, 그리고 그보다 분명하게 그리스도에 대한 이전까지의 이해에서도 극단적 변화를 맞아 그를 하나님에게 버림받은 자라고 여겼다가 이제는 하나님이 보낸 구세주로 보게 되면서,
‘전향‘ (‘개종"conversion‘의 문자 그대로의 의미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니 그가 한 경험을 소명이자 개종 둘 다로 보는 게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어떤 용어를 사용하건 바울이 한 경험은 고도의 자각을 불러왔다는 면에서 더없이 경이로운, 아주 획기적인 변화였다. 하나님이바울에게 이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하는 임무를 맡겼다. 바울에게 이는 조금 남다른 직업 선택의 수준이 아니었다.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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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이 책을 승리주의적 논조로 쓰지 않으려 한다. 그러니까, 기독교가 본질적으로 우월하거나 매우 훌륭한 종교임이 분명하다고 주장하면서 기독교의 부상과 그 결과로 따라온 지배를 찬양하지 않을 거라는 얘기다. 반대로 기독교가 나쁜 종교라고 말하고싶지도 않다. 궁극적으로 좋다 혹은 궁극적으로 나쁘다는 식의 가치판단에서 한 발 떨어져, 역사학자로서 중립을 유지할 것이다. 이는일면 기독교의 승리에 상실이, 특히 독실한 타 종교 신봉자들의 상실이 따랐기 때문이다. 한 무리가 싸움에서 이기면 반드시 지는 무리도 있다. 이 문제에 역사적 관심을 둔 우리같은 사람들은 승자와 패자 모두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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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세상에는 ‘어머니답지 않은‘ 어머니가 있다. 딸에게 끝없는 희생과 양보를 요구 하는 어머니가 있고, 아들만 귀하게 여기는  어머니가 있고, 어린아이를 학대하거나 방치하는어머니가 있고, 자녀를 소유물로 여기는 어머니가 있다. 그러나 자식에게 상처를 주는 어머니가 있다는 사실과 별개로
‘어머니다움‘에 대한 정의는 일종의 신성(神聖)이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라는 말처럼 이상적 어머니상은 신에 필적하기에 모든 어머니는 실패한다. 반드시 실패한다.  어머니가  ‘실패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우리는 어머니에게 불가능한 요구를 계속할 것이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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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여 년 전 엄마는 아빠 몫의 효도가  엄마에게 떠맡겨지는 상황을 ‘당연하다‘고 전제했지만, 그래서 그 사실을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는사실에만 화를 냈지만,  이제  우리는 당연한 것은 없음을 한다. ‘다른 목소리‘로 ‘당연한 상황‘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던 엄마는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지  않았다. 거부하고 싶은 일, 불만스러운 일,  불화를 일으킬 만한 일을 마음속에 담아두었다. 목소리를 제거(당)함. 이것은 가부장제가 초래하는 부정적 측면 가운데 하나다. 목소리를 빼앗음으로써 세상이나 타인과 충돌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 충돌하게 만든다.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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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땅과 가까운 곳에서 살아가는 우리 문화보다 더 오래된 다른 문화권에서는 사람들이 자기네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뒤계의 꼭대기에서 다른 동물을 낮추어 보는 짓 따위를 결코 저지르지 않는다. 생명은 동물과 인간, 인간과 비인간으로 나뉠 수 없다. 생명은 연속적이고 상호작용하며 상호 의존적이다. 인간과동물은 삶이라는 드라마에 함께 출연하는 동료 연기자인 것이다. 동물의 삶, 그들의 동기, 사고, 감정은 인간의 주목을 끌고 인간에게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따라서 그들의 중요성을 묵살하는 태도는 중대한 잘못으로 마치 ‘원죄‘라는 근대 서양식 개념과 유사한 어떤 것이 된다.  - P399

물론 세 젊은 여성은 처음에는 자신들 작업을 신성한 탐색이 아닌 위대한 모험으로 접근했다. 애써 이루려는 계획이 있었고 이름을 날리고 성취를 일구려는 야심도 없지 않았다. 그건 여느 과학자가 하는 것과 동일한 문제해결 과정이었다.
하지만 그 작업은 그렇게 순조롭게 전개되지 않았다. 그 여성들이 현장에서 보낸 초기 몇 달은 연구 대상 동물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거나 자신들 존재를 알아채고는 냅다 달아나는 녀석들의 뒷모습을 언뜻 보거나 했을 뿐인, 좌절과 낙담으로 점철된 나날이었다. 이 여성들은 좀 더 은밀한 방식으로도, 더나은 장비로도, 좀 더 새로운 기법으로도 자신들 작업을 유효하게 만들 수 없었다. 혹자는 작업의 성과를 앞당기려고 실험하거나 조작을 가하기도 했지만 이 여성들은 결과를 섣불리 강요하거나 서두르지 않았다. - P404

이들 성지에서 세 여성은 유인원의 발자국을 따라 걷거나 그들이 서식하는 숲 차양부의 아랫길을 따라 걸었다. 유인원들이먹는 음식을 표집하기도 했다. 이따금 숲에서 그 동물과 함께 잠을 청하기도 했다. 제인은 ‘제인 봉우리‘에서, 다이앤은 텐트에서, 비루테는 오랑우탄이 꼭대기에 보금자리를 튼 나무 아래에해먹을 치고서. 그들은 매일 동물 세계로 성지순례를 떠났다. 조사나 기록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들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과하나되기 위해서.
표명된 것이었든, 무의식적인 것이었든 끝까지 고수한 것이었든, 중도에 포기한 것이었든 그 여성들은 모두 자신의 동물과하나되기를 끈질기게 소망했다. - P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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