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간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라는 생각이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듯.

영생을 얻기 위한 ‘올바른 믿음‘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한 까닭에, 이 배타주의 종교에 잠재돼 있던 불관용성은 일찌감치 맹목적인열정으로 불타올라 광범위하지만 분명 일반적이지는 않은 불관용정신으로 발전했다. 잘못된 믿음은 너무나 위험해서 참아줄 수 없다는 태도였다. 기독교의 불관용은 이르게는 신약성경부터 계속 이어져 내려와 4세기의 기록물에서도 보인다. 그것은 유대인이든 이교도든 아니면 심지어 기독교도든, 누구를 의미하는지는 불확실하지만하여간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향해 있었다. - P395
수천 종의 이교 컬트가 얼마나 각양각색이었는지 망각해서는안 된다. 물론 제물 희생 의식이라든가 기도 의식 같은 공통의 특징은 있었다. 하지만 제우스 숭배교와 아테나 숭배교, 아폴로나 헤파이스토스 숭배교, 숲과 개울과 들판을 굽어살피는 신들을 모신 컬트교, 집안과 가족을 지켜주는 신을 모시는 컬트교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섬기는 신이 제각각 달랐고, 각기 다른 신화를 통해 알려졌으며, 각기 다른 의식으로 숭배했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엄청난 다양성은다름에 대한 관용을 즉 신에게 닿는 각기 다른 길들은 얼마든지 수용 가능하고 용인 가능하며 더구나 바람직하기까지 하다는 이해를널리 퍼뜨렸다. 관용은 권장해야 하는 것이었다. 종교의 자유는 포용해야 마땅한 것이었다. 전체적으로 조명해봤을 때 고대 이교주의의 가장 위대한 면 중 하나는 기꺼이 다양성을 수용하고 나아가 그것을 최대한 누리겠다는 광범위하게 공유된 태도였다. 그것이 기독교가 승리하면서 사라지고 말았다 - P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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