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으로 쓰는 글에서는 대상에 대한 공감이 꼭 필요한데, 정치적 올바름이나 윤리적 온당함이 아니라, 공감이 없으면 마음이 닫혀버리기 때문이다. 교류는 실패하고, 연상의 흐름은 말라버리고, 작품은 편협해진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공감이란, 상대에게 감정을 이입함으로써 입체감을 부여하는 수준의 공감이다. 우리 독자들로 하여금 ‘타자‘를 타자 자신의 시선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감정이입 이야말로 글을 진전시킨다. - P43
그러고 나서 글을 쓰기 시작하자마자, 이야기가 숨통을 열고 스스로 나아가게하려면 이 사람들과 사건들에서 멀찍이 물러나야 한다는 걸 알았다. 간단히 말해, 내 이야기에 더 자유로운 연상을 허용해 줄 유용한 관점이 필요했다. 내가 오랫동안 보지 못하고 놓쳤던 점은, 나인 동시에 내가 아닌 서술자에게서만 이런 관점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 P29
아무래도 상관없다. 어느 쪽이든 여기 아로새겨진 교훈은 여자의 인생에서 남자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어릴적부터 이 교훈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는 그것과 여자들을 버리고 탈출하기로 결심했다. 탈출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둘 중 무엇도 버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여자들. 더군다나 어머니는.어머니의 유난스런 자기도취로부터 벗어나리라 단단히 마음먹었건만, 세월이 쌓이면서 나의 다혈질적이고 심각한 성격이 실은 애정에 굶주린 어머니의 호들갑과 다를 바없음을 알았다. 더 나아가, 우리 모녀에게 자기 극화는 행동의 대체물이라는 것도 알았다. 어머니 뿐만 아니라 내 안에도 안톤 체호프적 인 우유부단함이 춤추고 있는 것이다. 내가 어머니처럼 되었으므로 어머니를 떠날 수 없었음을 나는 불현듯 깨달았다. - P28
시인이든 소설가든 회고록 작가든 자신에게 어떤 지혜가 있다는 확신을 독자에게 심어주어야 하며, 이 지혜를 전달하기 위해 최대한 정직하게 쓴다. 자전적 이야기를 쓰는 작가는 여기에 더해 서술자의 신뢰성까지 독자에게 납득시켜야 한다.-19쪽이 조지 오웰은 경험과 관점, 그리고 지면 가득 풍기는 개성이 성공리에 합쳐진 결과물이다. 그의 존재감이 워낙 강하다 보니 우리는 서술자를 아는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렇듯 우리가 서술자를 알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은, 신뢰할 수 있는 서술자의 능력이다. - P23
내가 가입한 시립도서관에서 11월부터 회원에게 교보문고 전자도서관에서 전자책을 무제한 다운 받을 수 있게 해준다. 예산 소진시까지라는 단서가 있긴 하지만 이게 왠 떡이냐.소설을 잘 읽지 않으므로 아는 작가가 많지 않은데 전자도서관 상단에 떠 있길레 다운받았다.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데 나무의 일생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나무의 수령은 대체로 길기 때문에 나무는 몇 백년에 걸쳐 주변의 변화를 묵묵히 보아 넘긴다. 마을이 생겼다 없어지거나 사람들이 늙어서 죽는 것을 보고, 전쟁도 겪고. 내가 사는 동네도 원 마을이 없어지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곳인데 군데군데 공원에 당산나무들이 있다. 그 나무들을 볼 때마다 그 책 생각이 났고 저 나무들도 마을이 생기고 사라지고 애들이 태어나고 노인들이 죽는 것을 다 봤겠구나 생각했었다. 작가의 말을 보니 작가도 그런 생각을 했었나 보다. 나 같은 사람은 생각만 하는데 소설가는 그걸 소설로 풀어내는구나. 4대에 걸쳐 내가 선택한 적이 없는 운명을 대하는 여자들의 이야기. 그냥 감수하거나, 증오하거나, 이유를 찾는다. 같은 운명에 처해 있는 것 같지만 각자의 상황은 다르다. 인간의 삶이 그렇다. 각자 감당할 몫이 있고, 사는 방식도 다르다. 작가는 환멸과 절망이 가득한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고 말하는 것 같다. 수퍼맨처럼 세상을 구할 수는 없어도 네 옆의, 네가 구할 수 있는 한 사람, 단 한 사람은 있다고. 그게 중요한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