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즈 - 한국어 더빙 수록
피터 램지 감독, 알렉 볼드윈 외 목소리 / 파라마운트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영화는 기독교적 가치관을 흐리게 하는 상업주의 (복음을 흐리게 하는 크리스마스 산타와 부활절 토끼), 다원주의 (영적인 Jack Frost, 그리고 매우 동양적인 꿈의 가디언 Sandy), 인본주의 (금전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이빨의 요정)등의 교집합 (남을 위한 용기 있는 희생과 상호 소통에 의한 자존감 회복)에 영리하게 편승 했다.

   

   영화 선전을 보면 동심의 세계 어저꾸 저저꾸 하면서 어렸을 적의 꿈을 회상하며 어른들에게도 그런 순수했던 시절을 생각나게 줄 수 있다고 하는데어렸을 적에 산타크로스가 선물을 갖다 준다거나 부활절에 숨겨진 계란을 찾는다거나 이빨을 뽑고 나면 동전이 생긴다 등을 믿는것이 과연 바람직한 순수한 동심인지 순진하게 기만 당하는 동심인지 모르겠다. 그리고는 나이가 들면서 세상에는 자연주의적 산물만이 존재 한다고 믿는것이 옳다는 것인지. 크리스마스라는 남의 생일날, 남에게 생각은 못하게 하고 받을 생각만 하게 아이들을 키우는 것일까 부활절이란 축제일에 부활의 의미를 가르치지는 않고 플레이보이의 상징이자 다산의 상징인 토끼가 판을 치게 만드는 것일까? 유치에서 영구치로 이갈이를 하는 신비로운 인체의 성장 과정에 동전이라는 금전적 개념을 넣어서 신체 장기 매매가 있는 세상을 (요건 무리수) 가능하게 할까? 그나마 눈에 거슬리지만 공감이 약간 가고 싶은 3가지. 첫째: 악몽을 꾸는 것은 Pitch 라는 악의 가디언 때문인데 놈의 뿌리는 두려움에 있다는 것. 둘째: 좋은 꿈의 요정 Sandy 왠지 인상이 동양적이라는 . 세째: 주인공 Jack Frost. 어린 넘이 하얀 머리색을 가지고 있다!


 

 

 

 

   가디언즈를 만든 드림웍스 사는 스티븐 스필버그, 제프리 카젠버그, 데이비드 게펜이 1994 설립한 미국의 영화 제작사이다. 알려진 대로 유태계인 스필버그의 영향인지, 예수님과 상관없는 회사 답게 복음을 희석 시키는 대표적인 존재인 성탄절 산타와 부활절 토끼가 부담없이 그려지고 있다. 밖의 가디언으로 꿈의 수호자인 Sandman 나오는데 주인공 격인 Jack Frost 이빨의 요정보다 단연 존재감을 보인다. 이 친구는 일명 Sandy 나오는데 하필 총기 참사가 일어난 코네티컷의Sandy Hook 초등학교와 허리케인 Sandy 이름이 겹치는 우연으로 기억이 남는다. 멋진 모래 채찍과 금가루 처럼 보이는 모래로 무엇이든 만들내어 자유자재로 다루는 가장 강력한 능력자이다. 말이 없는 데다가 색깔과 차림새 하며, 마치 선불교(禪佛敎) 묵언(默言) 수행중인 승려 느낌이 난다. 유교의 경전인 사서 (논어, 맹자, 대학, 중용) 오경 (시경, 서경, 주역, 춘추, 예기) 유가(儒家) 예절에 관한 기본서인 예기(禮記) 곡례(曲禮) (고대일상생활에 적용되었던 규범들을 수록한 자료이다) 에서도 말의 중요성이 나오는데 이러한 고요함 속에서 진리의 힘을 추구하는 동양적 정서를 막연히 흠모하는 (달라이라마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으나) 헐리우드 딴따라들의 헤벌죽함이 보인다.

 

   하여튼 어수선한 4명의 가디언즈는 아이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는 악몽의 주관자 Pitch의 등장에 위기를 느끼고 달의 예언에 따라 겨울의 정령인 주인공 Jack Frost 다섯번째 가디언으로 삼는다. 그는 영적 존재 답게 자신의 출생을 더듬으며 자신이 가장 일찍 기억 있는 것은 어두움 이라고 말한다. ("Darkness... it was the first thing I remember.”) 이는 창세기 1 2을 떠 올리게 한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 Now the earth was formless and empty, darkness was over the surface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was hovering over the waters.) 이 어두움의 존재와 빛의 존재 사이에서 우리는 선택을 하고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을 남들이 인정을 해 주느냐, 남들이 믿어 주느냐, 남들이 얼마만큼 알아 주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존재 가치가 민감하게 달라진다. Jack Frost 역시 낮아졌던 자존감을 가디언이 됨으로서 회복한다.

 

 

 

   박영미의 우물 속에 담긴 하늘이란 노래가 있다. 어른(?) 되고나서 이처럼 절망적으로 순순했던 시절을 그리워 하는 노래가 있을까?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우물속에 담긴 하늘은
왠지 푸른 하늘보다도 파랗게
아주 파란 크레파스로 하얀 종이 가득 채우면
왠지 나는 구름보다도 하얗게
작은 뒷동산에 올라가 잎이 고운 풀위에 누우면
하늘은 소년의 꿈을 물었지
푸른 하늘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햐얀 구름같은 마음을 갖겠다고

흐린 눈을 가진 어른이 되었구나
잿빛 구름같은 마음을 가졌구나
회색빛 하늘 바라보며 무거운 걸음을 옮기면
왠지 우물속의 하늘이 그리워져

 

   

   만약 영화에 대한 물음이존재 가치보다 좀 더 근원적인존재에 있다면, 다행히 영화는 존재 자체가 믿음에 좌우 되지는 않음을 보인다, 왜냐면 믿는 아이들이 없어도 Jack Frost는 존재 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믿음에 따라 존재 여부가 달라진다는 자연주의적 세계관에서 살짝 비켜 있는것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하지만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타인에 대한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아이들에게 보여 주기엔 산타와 토끼, 나약한 여성 요정, 그리고 작고 강해서 멋있으나 금을 덧칠한 불자(佛子)같은 Sandy. 그리고 뭔가 Jack Frost의 어둠과 친할 것 같은 모습이 눈에 거슬린다. 그러한 이교도적인 상징물들로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혼탁하게 만들기 보다는 복음과 부활의 의미를 가르쳐 주는것이 푸른 하늘 같은 사람, 하얀 구름 같은 마음을 갖는 사람이 되는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미제라블
톰 후퍼 감독, 휴 잭맨 외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스토리는 됐고. 궁금하면 여기. 왜냐면 방대해 보이는 원작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감히 의견을 내 놓을 순 없다.

 

1. 포스터: 포스터의 이 아이 사진은 영화가 호러/공포물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었다. 원작의 삽화와 매우 비슷하기는 하다만 좀 무서웠다.

 

2. 기존 유명배우들의 이미지에서 오는 몰입방해: Russell Crowe 타기 곡예하듯 건물 꼭대기 가장 자리를 걸으며 노래 부를때    성량 부족인지 장소에 따른 동시 녹음의 한계인지 전혀 긴장감이나 갈등이 느껴졌다. 내가 이상한건가? 하지만 Russell Crowe 음반까지 냈던 가수 였다.


 

역시  아저씨는 노래보단 영화 이미지가 너무 강한듯… (? 노래하는 글래디에이터네?  ? 글래디에이터가 로빈훗 됐네? 대충 이런 느낌?)


 

기존 배우들을 쓰면 결국 이런 인상을 준다고 누가 만들어 놨다.


 

특히 Amanda Michelle Seyfried (85 생인데 고생했는지 이마에 주름살이 나이를 짐작 하지 못하게 하는 신비감을 ?%@!?) 좋았지만 상영 바로 전 광고 The Big Wedding 나오는 대범함을 보인다

 

3. "전부 다 노래로만"의 한계: 어릴적엔 뮤지컬이란 장르가 참 이해 하기 어려웠는데 디즈니덕에 ("미녀와 야수"때 부터) 조금씩 적응되었다. 그래도 가끔은 적응하기가... 혁명군을 위해 화약을 재빨리 주워야 하는데도 이놈의 뮤지컬 때문에꼬마가 불러야 노래 부르다가 않 맞아도 총에 맞는 장면. 극 전체를 노래로만  채우려 넘 무리 하지 않았나 한다.


 

4. 이건 뭐지? 장발장 너무나 심각하게 나는 누구인가?” 부르고 마지막 대사 나는 누구인가?” 하자 옆에서 우리의 순진남 마리우스, 조그맣게  장발장하는 장면.

 

 

5. 어지러운 클로우즈업 카메라: 노래 부르는 배우 얼굴 표정 잡는다면서도 카메라가 너무 자주 흔들릴때마다  런닝맨 생각나게 한다.


 

억지로 만든 의문점들과 나름 감동적이 었던 몇 장면들

 

1. 극에서 이빨이 2개나 뽑힌 Anne Hathaway 발음이 너무 좋다. 틀니? 어쨋든 Anne Hathaway 직장을 바꾸고 맡은 (?) 끝내고 절망의 노래를 부를때 울뻔 했다.

 

2. 장발장의 힘의 원천은 결국 X-man 이었단 말인가?

 

3. 혁명군과 정부군 사이에서 까페 테이블에 앉아 사랑을 속삭이다 황급히 도망가는 젊은 연인이 의미하는건 ?


    1. 혁명은 무슨사랑이 최고다

    2. 마음은 코젯이란 콩밭에 가있는 마리우스가 환각이다.

    3. 시가전은 역사적으로 관심도 중요성도 없었던 사건이다.

    4. 전쟁중에도 장사하는 넘들 있다.

 

4. Eponine 비를 맞으며 신세 한탄 할때 죽어 가지만 않았다면 에포닌이 코젯의 쪽지를 마리우스에게 전해줬을까? 한편의 막장 드라마가 가능했을 텐데. 나이 드신 3명보다 젊은 친구3명의 노래가 듣기 훨씬 편했던 점으로 보아 뮤지컬도 나름대로 재미 있을듯 하다.

 

5. 장발장이 죽을때 다시 나타난 Anne Hathaway 함께 노래 부를때. 역시 우먼은 죽지 않아.

 

6. 그냥 남녀의 사랑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역사적 사건과 이야기가 맞물리면 왠지 무게 있고 뭔가 있어 보이는 . “써니처럼 그래 그냥 있어 보일려구 데모 장면 끼워 넣었다면 모를까 원작자가 이야기 하고 싶었던 역사 인식을 영화로 보여주기엔 무리였던듯 하다. “스카우트 그런면은 오히려 기억에 남는다.

 

 

나의 무식함들


  1. 문학 - 레미제라블 스토리가 장발장의 사건과 촛대 사건이 전부인줄 있었던 .  그리고 저자 빅토르위고랑 발자크랑 헸갈렸다,
  2. 역사 - 프랑스 혁명과정이 복잡 했나 . 총싸움이 시끄러울까봐 창문 닫는 동네 아줌마가 있는가 하면 마리우스가 혁명 불장난에 가담 했었는데도 마리우스네 가문은 끄떡 없다. 이걸 이해하려면 역사공부가 필요 .
  3. 음악 배우 노래와 (특히 장발장과 자벨) 반주 음악이 서로 음정이 않맞는 처럼 들렸다. 내가 음치인듯.

 

블러그 하느라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들


  1. Hugh Jackman 뮤지컬 배우 였다.
  2. 영국작품이라 호주 배우들이 많다.

 

가장 도전이 되는 장면들


  1. 남의 무고함을 풀어주려고 정체를 드러내는 장발장. 같으면 기도응답(?)이네 하며 감사하며 모르는 척하며 그냥 살아가지 않을까?
  2. 딸이 사랑한다니 그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생고생을 다한다. 사위 사랑은 장인 사랑... 가능한 일인가?
  3. 자식을 위해 이빨을 뽑는다. 그것도 2개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007 스카이폴 - 아웃케이스 없음
샘 멘데스 감독, 주디 덴치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나이가 들어도 내가 세상에 태어 났는지, 해야 하는 건지, 자기 정체성으로 고민 하는 사람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을 주는 영화다 시리즈가 언제까지 계속 될지 궁금해요?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어 007이네? 하며 악당을 때려 부수는 화려한 영상을 즐기면 그만. 하지만 예전엔 줄거리 구상에 도움이 되었던 007이라는 기본 토대가 빠른 시대 변화엔 버거운 짐이 되어 버렸다.  크루즈의 Mission Impossible 이나  데이먼의 Bourne 시리즈에 길들어진 관객들의 관심이나 끌 수 있을까? 게다가 안젤리나 졸리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원티드, 솔트, 투어리스트 등등)까지 있는데. 새로운게 별로 없다. 인디애너 존스를 연상 시키는 시작 부분이나 중간부분의 마카오 상하이의 진부함. 마지막에는 거의 전원일기 분위기. 사진예로 보이는-이게 어느 영화인지 헷갈리는 상하이-진부함. (당연하다 그냥 관광사진).

   


포스터에서 부터 점점 다가오는 진부함... 너무 힘을 주신듯. 특히 저 반가운 전통적 배경은 그 앞에서 어느 누가 무게를 잡아도 버틸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처음 도입부의 속도있는 액션들은 어디서 본듯한 장면이지만 좋았다. 처음이 이정도니 나중엔 그럭저럭? 하는 기대감 +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그나마 있었는데갑자기 본드걸을 기대하고 있던 관객앞에 M이라는 관심이 전혀 가지지를 않는 할머니가 나타나서리 죽네 사네 하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억지인지. 그러더니 아예 깡촌 시골의 허름한 저택을 중심으로 카우보이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총질로 마무리. 저 예산 영화도 아니고. 이건 아니죠.

  공자가 40세를 불혹(不惑), 50세를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했다. 시리즈가  탄생한지  50년되는 기념작이라는데 이나이에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다니. 007에서 말이다. 도대체 무슨 영화인지 수가 없었다. 정체성 고민 부분에서 아무리 공감이 가더라도 이건 007인데 말이다. 기존의 권선징악형의 단순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007시리즈가 즐거웠던것은 현란하고 참신한 최첨단 무기들과 쭉쭉빵빵한 본드걸들이 주는 영상들 때문이었는데최첨단 기기를 앞세운 영상과 복잡한 첩보전은 이미 Mission Impossible 밀리고 달랑 지문인식 구형 권총에다 커다란 GPS... 그동안 보여줬던 007 무기와 너무 차이가 난다. MI에서 창문에 붙어다니는 저 잘 고장나는 장갑 생각이 나는 장면이었다.


그나마 가장 기억에 남는 초반 추격전. 사실 달랑 사진 1장 보단 영화가 더 볼만 했지만 자꾸 비교하면 썰렁해지는...


MI 같은 인상적인 장면은 기억에 별로...그래도 이런류의 영화중 가장 섬찟했던 장면을 글 맨 마지막에 넣었다 

 

달리기도 왠지 별 감흥이...


기다리던 본드카는 충격 그 자체. 옛날 것 그대로. 뒷 트렁크가 열려서 뭔가를 터뜨린다.



심각하게 분위기를 전환하자니 Bourne 이미 자리를 잡았고이리저리 없는 007 아저씨. 그나마 아저씨들에게 주는 희망은 씨리즈 끝물의 007 아저씨들에게 여전히 달려드는 본드걸 정도? 하지만 본드걸의 매력이라는 것도 안젤리나 졸리의 질리지도 졸리지도 않는 영화에 치이고아무리 깡촌에서 외로운 설정 샷을 날려도 도시 한복판에서 자기 정체성을 모른체 방황하는 Bourne을 따라 잡기에는...

왠만한 본드걸 저리가라는 졸리가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세상이니...


게다가 007 악당이면 범접할 없는 뭔가 (장비며 장소며)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이건 쓰레기 섬에 노트북이 전부인 소굴이란...게다가 은퇴에 가까운스파이의 활약이레드테이큰은퇴한스파이들보다 더 노쇠해 보일 필요가 있었을까? 왜 이렇게 ...이 많은걸까? 말 끝맺기가 힘든 영화인듯.


(여기가 세계 정복을 꿈꾸는 악당의 소굴?)

   

몇달 노셨다고 이렇게 까지 초췌할 필요가? Taken의 이분은 은퇴 하신지 몇년 지나셨다던 분인데도 이정도 포스였는데...

   하여튼 실망스런 007이었다. 정말 오랜 만에 액션 영화를 보며 주인공의 위기때 마다 비명을 지르는 아내가 옆에 없었다면 그나마 무슨 재미로 끝까지 봤을지한없이 추락하고 있는스코트랜드에 있는 본드의 고향이자 가족 소유지 “Skyfall” 진짜 무슨 의미인지 싶다면 (아델이 부른 주제곡도 좋지만) 존박의 Falling 들어보라. 007 팬들이 영화를 바라보는 심정을 나타내고 있다.

 

하얗게 번지는 머릿속에다
그대를 새겨놓고 멀리 날아가
모든 보이는 눈을 감고서
시간을 되돌려서 때로 돌아가고 싶어

Falling 이대로 falling for you
잡아줄 없어도
Falling
다시 falling for you
감싸줄 없나요
좋았던 나날도 너무 아팠던 날도
이제 돌이켜보면 그저 그랬었나요
아니라 말해요 멍든 가슴도
멍해진 내마음도 다시 느낄 수만 있다면
까맣게 번지는 하늘 위에서
한없이 추락하는 보고만 있네요
Falling
이대로 falling for you
이런 잡아 주세요
Falling
다시 falling for you
제발 감싸 주세요
한없이 추락하더라도 바닥까지 떨어져도
그댈 향해 falling for you
그저 그대만 보네요


아델의 Skyfall

 

쨘!  예고 했던 그 문제의 샷. 섬찟하지 아니한가?

 

어쨋든 고향집 까지 다 불태워 없앤 007...주요 관심사가 아닌 007 영화의 방향 전환 토대 마련을 위해 12불과 시간이 아까웠지만 불우이웃 돕기 했다 치자. 탐 크루즈가 아바타 제임스 본드로 나오면 모를까 다음번 007은 어떤게 나올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그래 별로 궁금하지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이프 오브 파이 : 초회 한정판 (2disc)
이안 감독, 이르판 칸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주제/줄거리는 이 싸이트를 참고 했다

영화나 소설의 줄거리는 역시 Wikipedia 에서 눈에 있다.

줄거리와 줄거리 이해에 도움이 되는 배경들: 영화는 줄거리를 모르고 한번 (마지막 반전이 중요한 경우) 그리고

다시 보면 재미 있을 .

주인공파이 어려서 부터 학교 선생님등의 영향으로 힌두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모두 공통적으로 사랑이 있는 신의 존재(belief in a loving higher power) 믿는 것이라고 믿게(?) 된다. 그의 나라 인도는 200여년 동안 영국의 식민지 였지만

파이가 자라난 Pondicherry 소도시는 한때 프랑스 점령지의 수도이기도 했던터라, 지역과 구분되는 프랑스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복합적인 문화적 배경은 힌두교에서 자란 파이가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만나면서도 왜 선입관의 장벽이 낮을

있었는지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1975년은 인도 역사에서 국가 비상사태 (National Emergency)” 라고 불리는 시대다

인디라 간디가 1971년의 부정선거로 사임 압력을 받자 이에 맞서 2년여 동안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재선거를 할때 까지 의회

민주주의가 실종되었던, 기득권 세력의 반대파에 대한 정치적 탄압과 권위주의 체제가 이루어 졌던 시기이다.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나름 발전을 이룬 논란의 시기이기도 하다. (인디라 간디는 1980년대에 재집권에 성공한다. 이건 도대체 어느

나라 이야기 인지 헷갈린다). 어쨋든 Pondicherry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던 파이의 아버지는 다가오는 경제적 혼란과 탄압을

걱정하며 1977년 가족과 동물원을 카나다로 옮기고자 한다. 항해중 일본 회사의 (Tsimstum ) 폭풍으로 침몰하고 파이를

제외한 가족은 모두 죽는다. 구명보트에는 호랑이, 얼룩말, 오랑우탄, 하이에나가 함께 오른다. (소설에서는 학생 시절 파이가

16세기 유태인 밀교자 Isaac Luria 우주관을 잠깐 언급 하는데 5가지 빛으로 신이 세상을 창조 할때를 가르키는 단어가 바로

침몰한 배의 이름 Tsimstum 이다. 그리고는 결국 구명 보트에는 5 생명이 오른다.) 하지만 얼마후 호랑이와 소년만 살아 남는다.

구명보트의 몇가지 구조 도구와 물고기와 빗물로 연명하다가 식인섬을 거쳐 멕시코 만에 도착한다. 호랑이는 숲으로 사라지고

주인공은 구조된다. 사건 조사를 위해 찾아온 일본 보험 회사 직원들에게 동화 같은 동물 이야기와 충격적인 반전이 있는,

그러나 그들이 요구 했던, 현실성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회사 직원들은 호랑이 이야기를 택한다.


이름과 그 절묘한 상징성

주인공의 원래 이름은 집안의 오랜 친구 마마지아저씨가 좋아하던 프랑스의 수영장 클럽 이름 "Piscine Molitor” 였다. ‘

수영장또는 물고기의 특성이란 뜻의 프랑스어 Piscine는 앞으로 물에서 일어날 사건을 암시한다. 하지만오줌싸다

발음이 비슷해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자 필사적으로 원주율 파이Pi(p) 숫자를 외워서 친구들간에 불리우는 이름을 Pi

고치게 된다. 주인공의 적극성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마치 파스칼이 말했다는 무한사이에 걸려있는

유한한 존재 인간처럼, 유한한 인간이지만 그 안에 무한한 정보량을 내포하는 존재를 무리수 파이로 상징하고 있다.

   리차드 파커는 벵갈산 호랑이의 이름으로 동물원 관리장부 기입실수로 Thirsty 대신 붙여진 이름이다. 이름 역시

파이처럼 절묘한데 다른 기록에 남아 있는 몇몇 조난된 선원의 이름이기도 하다. 에드가 알렌 포의 유일한 소설The Narrative of Arthur Gordon Pym of Nantucket (1838)에 등장하는 조난된 4명의 포경선 선원중 하나로 먹을것이 없게 되자 제비뽑기로

한명을 죽여서 인육으로 살자고 제안한 죽게되는 선원의 이름이다. 1846 침몰한 Francis Spaight 타고 있던 21명의 선원중 한 견습생의 이름이 리차드 파커 인데 역시 인육 관련 이슈가 있는 사건이다. 1884년에는 요트 Mignonette 침몰하는데

생존자 4명중 인육 때문에 살해된 선장실 급사 이름 리차드 파커가 범죄사건 기록에 남아 있다. 조난/인육과 연관있는 리차드

파커라는 호랑이는 주인공의 야수성/야만성/폭력성/동물적 본능 등을 상징하며 인육과 연관 있음을 암시한다. 어려서 부터

동물원에서 길러진 그래서 조그마한 공간에 갇혀 있기에 익숙한, 사람의 지시에 따를 줄도 아는, 하지만 야수의 본능을 가지고

있는 맹수. 소설에서는 주인공 파이가 조난당한 프랑스인의 인육을 물고기 미끼로 쓰는데 이처럼 인정하기 싫은 자신의 다른

, 선원(얼룩말) 엄마(오랑우탄) 죽인 요리사(하이에나) 죽이고 인육을 이용하는(식인섬) 자신의 다른 면을 호랑이가

상징하고 있다. (이건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Cast Away의 배구공 친구 Wilson을 떠올리게 하지만 좀 차이가 있는듯)

생존의 싸움 vs 경계의 싸움후에 갖는 종교와 나레이션(이야기) 대한 생각

주인공파이 무한한 자연에서의 생존을 위한 싸움, 그리고 자기 영역 안의 경계를 지키는 싸움을 한다. 자기 영역안의

경계란, 앞에서 언급한 주인공 내면의 폭력성/야만성 문화성/종교성의 경계를 말한다. 파이에게 가장 위급한 것은 호랑이와

공존 하는 법을 터득 하는것 이었다. 이를 통해 파이는 인위적인 문화/윤리가 만든 규범의 제약을 야생적인 생존을 위해 깨뜨린다. (처음에는 생선 회를 먹고 나중에는 인육도…) 호랑이가 주는 절망할 겨를 없는 위협은 점차 습관화 되면서 종교 의식화 된다.

이러한 의식은 다시 견디기를 습성화 하고 강화한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주인공은 믿음이 강해지고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은

결국 신이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게 된다. 상황의 절박함에 대비되는 심화된 경이로운 자연의 아름다움은 신에 대한

믿음을 더욱 강화 시키고 이렇게 강화된 믿음은 생존 투쟁에 힘을 주고 이는 다시 믿음을 강화시킨다

 

227일을 지내면서 주인공 파이가 했던 질문, 극한 상황속에서 생존을 위해 지켜야 경계는 어디 까지 일까? 문화와 종교의

경계를 넘어서 까지 생존의 은총을 허락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삶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무엇인가? 등의 멋진 질문을 한다.

이에 대한 답으로 자신이 살았으므로 삶은 의미가 있고 생존이야 말로 모든 경계를 무너뜨리는 궁극적 가치라고 한다면

빈약해 보인다. 파이는 생존이 결국 신의 은총 (생존 의식, 구조 도구, 비 등등)없이는 불가능 하다고 느끼고 신의 섭리로

문명으로 돌아 오게 되었음에, 생존 있었음에 감사 뿐이다. 깨우침을 얻은 사람들은 은혜에 대한 감사 밖에 남는게

없고 그래서 겸손해 밖에 없나보다. 그래서 병든 병아리처럼 힘 없어 보이지만 뭔가 내공이 있어 보이는 이분하지만

왠지 코미디언 한무를 닮았다는…(이건 영화 '밀양'의 저 유괴범과는 다른 평온함인데 불안하긴 마찬가지 인듯)

 

   어쨋든 신을 빙자해서 자기 정당화로 마무리한 느낌이 아쉽지만, 가족의 비극사가 자신의 살인과 인육화 행위를 정당화

한것은 아닌가 두렵지만, 그리고 이러한 논리의 정당성을 오로지 자신의 생존에서 찾은 것은 아닌지 미심쩍지만, 성공과

형통만이 축복의 증거라는 성공신학과 파이의 믿음이 다를바 없다고 비난 있겠지만 () 아니고 무엇인가

존재하는가? 대한 고민 보다는존재이후의 의미만을 다루려 했던점이 아쉽지만, 그리고 주인공은 힌두교의

영향을 받은 다원주의자찜찜 하지만, 어줍짢은 저자의 세계관을 아이의 입으로 말하는 비겁함을 보이지만 그것이 작가의

한계라고 봐준다면 그럭저럭 줄만하다. 게다가 신이 있던지 없던지 하나가 분명 한데도 아무것도 않하는 게으른

불가지론자들을 - 보이는 사실에만 갇혀있는 이성주의자들을- 경멸하지 않는가? ‘이야기 무한한 상상력에 의해서 그

어떤것에도 갇힐 없다며 종교화된 신앙을 경계하는 주인공의 자세는 바람직 하지 않은가? (아쉬운 점은 역시 다원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함 정도?).


다원주의의 실체

힌두교는 코끼리의 앞다리 하나, 이슬람교는 나머지 앞다리, 불교는 꼬리, 기독교는 뒷다리, 유대교는 다른 뒷다리

이렇게 하나씩 붙들고 아는체 한다고 생각하는 넘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코끼리의 일부분만을 아는 것 이므로 코끼리

앞에서는 모두 마음을 열고 다른 종교가 붙들고 있는 다리/꼬리/몸통을 이해하고 포용해서 코끼리를 보자라는게 다원주의다.

문제는 우리가 잡고 있는것이 코끼리의 것인지 뭔지 모른다는 것이다. 붙잡고 있는 것이 코끼리의 일부분 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코끼리 전체를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다원주의는 코끼리를 보았고 알고 있다고

교만을 떤다. 영화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독재자 나폴레옹의 코끼리라고나 할까? 이는 겸손을 가장한 교만이요 상호이해를

주장하는 교조주의요 민주주의를 외치는 독재자다.(히틀러는 이때 독재자는 없다고 외치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은 어렸을 적에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를 마치 모두 체험 한듯 하고 영화는 짧은 시간에 세상과 자연의 잔인함과 아름다움, 풍요로움과 빈곤함, 절망과 희망을 보여 주려 한다. 노력은 가상하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겪은 주인공은 마치

세상을 달관한 듯한 자세다. 보이는것 만이, 세상만이 전부가 아님을 깨달은 주인공은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세상 너머의

무엇인가에 감사하며 살아간다. 어쩌면 흔히들 말하는 절대 타자를 체험 한듯 태도다. (타짜 말고.)

그래서 세상은 모든게 헛되고 헛되고 헛되다는 전도자의 고백 (전도서 1: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카타르시스를 주는 처럼 주인공의 호랑이 이야기 역시 세상 살이로 부터 정화된 느낌을 준다. 하지만

너머의 무엇인가를 확실히 알고 믿고 있는 기독교인에게는 2% 부족한 공허함을 준다. 왜냐면 세상 너머에 있는 무엇이란

다원주의와는 상관없이 실재하는 무엇이기 때문이다. (것이 무엇인지 바울이 말했었다. ‘사도행전 17: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그러한 아테네에서의 선교는 실패란 설이 있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그건 나중에.)

관념화된 종교의 허상과 값싼 은혜

영화를 보면 인도라는 나라는 힌두교와 궁합이 맞는 다원주의의 영향으로 여러 종교가 자연스럽게 공존 하나보다.

종교 의식과 교리 체계만이 종교가 아님에도 이러한 의식과 체계는 문화와 역사에 스며들어 다른 종교들과 상호 연관성을

갖게 된다. 그러다 보면 복잡하고 난해한 종교와의 공통점을 쉽게 찾을 없게 된다. 그래서 여러가지 주제를 나누기

보다는 단일한 주제로 논제를 단순화 시킨다. 하지만 단순화 주제라고 답이 간단치가 않고 그래서 그 답을 눈에 보이는

매일 매일의 삶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영역으로 넘겨서 소모적이지만 영원 같은 논쟁 속에서 종교적

생명을 유지 하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제기된 답은 생활에서는 소용도 없고 적용 되지도 않는 너무나 추상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으므로 실제 같지만 실재 하지 않는 가상 속에서나 답을 적용시켜 만족을 얻으려 한다. 동물원 호랑이와 바다에서

표류하는 그런 가상 말이다. 그렇게 되면 신앙이 실제 삶과 이원화 된다. 세상은 그냥 예전 처럼 굴러가고 껍데기 종교 의식

속에서 멋진 강해나 설교/설법등을 제시하는 종교 종사자들만 배가 부르게 된다. (책도 그다지 철학적 깊이가 있는

같지는 않고 다만 기존의 몇몇 소설에서 힌트를 얻어 나름대로의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만든점이 재미는 있는것 같다.

영화는 그것을 발달된 CG 정서에 맞는 아름다운 영상을 만들어 었다.)

신앙을 갖게 되면 자신의 죄에 대해 무감각 있다. 왜냐하면 자신이 지은 죄를 모두 사탄의 조종에 의한

것이라든지 또는 자신에게 들어온 악령들 때문이라고 하면서 쉽게 털어 버릴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주인공은 작가가

죄의 문제를 오로지 개인과 신의 관계에서 찾을 있도록 장치 안에서 고민 있다. 죄의 결과가 3자에게 미치는

효과가 매우 적은 비극적인 환경에서 (살인사건의 가능성이 있지만 오로지 생존자인 주인공만이 증인이 되는 현실.

게다가 살인도 정당방위일 가능성이 많은. 인육을 먹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그것은 채식주의자 였던 주인공이 생선회를

먹은것과 차이가 없지 않을까? 영화 밀양과는 다른 상황) 신의 섭리와 죄의 용서등에 대해서 신앙의 진정성을

통찰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와 상황 안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다른 모습인 리차드 파커와 결별하며

세상으로 돌아온다. 철저히 사실적인 동물로 그려지고 있는 호랑이는 멕시코 해안에서 파이와 헤어질 때도 뒤돌아 보는

법이 없었다. 그러한 이별이 생뚱 맞게 이질적인 리차드 파커란 이름과 함께 주인공의 결별 의지를 보여주지만 그렇게

의지 대로 간단히 결별이 이루어 질지는 의문이다. 어쩌면 주어진 상황에 따라 나타나는 본성은 평온한 문명 세계에서만

잠잠 있는건데 그렇다면 주인공이 누리는 안식과 평화란 진리와는 거리가 상황 윤리 속에서의 안주 일 수 있다. 그게 영화가 주는 불안감이다. 게다가 결코 호락호락 하지 않는 실제 삶의 이야기를 호랑이 이야기로 덮어버리는 결말은

이야기 어떤 종교나 사상보다 중요시 한다는 작품의 주제로 볼때 이해 가능하지만이야기 사실 자체보다

중요하지 않다. 그러다간 결국 역사적 실제의 예수는 무시하고 케리그마의 예수만을 믿는 공허한 신앙이 되기 십상이다.

다른 이야기들

저자 1963 6 25 생으로 스페인에서 카나다 부모밑에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카나다 외무부서에 일을 하게 되어

어려서 부터 알라스카, 프랑스, 코스타리카, 카나다를 돌아다니며 자랐다. 카나다 온타리오 Trent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글쓰기를 시작했다. 전에 2책은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라이프오브파이가 대박. 다양한 형식을 갖는다는

책은 초현실적 사실주의거나 성장 모험 이야기쯤 듯하다가 환타지 모험 나중에는 인터뷰 형식의 논픽션까지.

   소설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와 비교가 되곤 한다. 노인과 파이가 짐승을 상대로 사투를 벌이는 적이자 동료 내지는

분신 ( 다른 자아) 되는 점이나 인간의 인내가 주제가 되는 점등이 비슷하다. 그리고 죽음과 파멸에 이르기 까지

인간이 할 수 있는 선택이란 2가지임을 이야기 한다. 패배 아니면 오래참음. 비교되는 다른 작품은 브라질

작가 Moacyr Scliar  1981 Max and the Cats 인데 독일에서 브라질로 항해하던 동물원 사육사 가족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청년과 제규어가 표류하는 구성은 닮았으나 다루는 주제와 이야기 전달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고 한다. 한편으로

헨리 루소의잠자는 집시 올리게 한다. 잠자는 집시를 달빛 아래서 어떤 영감을 주듯 내려다 보고 있는

사자는 집시의 꿈과 현실을 몽환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데 사자가 집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파이가 리차드 파커에게

들려 줄 이야기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궁금해요? 궁금하면다시 봐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입] 프라미스드 랜드 O.S.T.
데니 엘프만 (Danny Elfman) / SONY CLASSICAL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복잡한 주인공의 내면 세계


   주인공이 천연가스가 매장된 땅 주인들과 천연가스 회사간의 많은 계약을 성사시키며 지금까지 승승장구 할 수 있었던것은 가족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농장을 잃었던 어렸을 때의 상처 때문이다. 돈에 대한 상처. (매우 검소하며 아무리 허접한 주당 내기 라도 뿌리치기 힘들다. 하지만 시골로 돌아오거나 시골 여자와 엮이기는 싫다) 그는 그가 자라온 환경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하는지 잘 안다. 그는 남들보다 저렴한 가격임 에도 땅 주인들을 계약서에 싸인하게 하여 회사에 큰 이익을 남긴다. (승진도 한다) 그에게는 대기업에게 농장을 잃지 않도록 그들을 돕는다는 초라한 자기 위안이있다. (빈약한 주인공의 도덕적 정당성은 환경 단체 로고만 봐도 솥뚜껑 보듯 민감하게 반응한다) 여러가지 기술상의 문제는 부차적인 것이다. 회사의 천연가스 추출 기술 안전도에 대한 이해도나 신뢰도는 그저 보통사원 수준이다. (시골 고등학교 선생님이지만 MIT출신 할아버지의 질문에 쩔쩔 맨다) 그리고는 쇠락해가는 농가구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라고 애써 자부한다. (그래서 누가 자신의 도덕적 약점을 건드리기라도 하면 자신이야 말로 마지막 금전적 기회를 주는거라며 소리치다 맞는다). 느슨하고 느리게 흘러가는 영화의 흐름속에서도 나름 긴장감을 주는건 이런 주인공의 내면적 갈등에서 나오는 듯한 애매모호한 표정 (마치 일부러 그런 표정을 내는듯)이다. 끝까지 회사편일까 아니면 동네 사람편이될까? 하는 긴장감 말이다.
(포스터의 주인공 자세 - 몸과 시선의 방향이 다른 -가 절묘하게 심리를 묘사 하고 있다)



영화의 주제


   영화는 극적 재미를 위해 대기업의 단순 사기극을 끼워 넣는다. 대기업들의 고도의 지능적이고 합법적인 계략/음모가 영화의 주제가 아니므로 그 정도는 봐 줄 수 있다. 이 영화의 주제는 돈에 의해, 돈을 위해 굴러가는, 돈의 힘에 휘둘리는, 사람들의 대책없는 자그마한 존엄성 지키기이다. 영화는 천연가스가 묻혀있는 땅 주인과 없는자들간의 갈등 같은것에는 관심이 없다. 영화의 관심은 자본과 권력의 힘 아래 순진하게, 애써 자기합리화 또는 무지로 연명하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다. 뭐 이런게 나쁘다는게 아니고 그냥 그렇다는 거다. 어려움이 없을 때 사람들은 아무 생각없이 즐기고 먹고 마신다. (영화 도입부에 등장하는 CFO와CEO들은 Chateau Margaux 같은 포도주를 점심때 부담없이 마시며, 고작 고민거리란 11살짜리 딸 아이가 수업 시간에 개구리 해부 때문에 우는 문제 정도로 모든걸 다 가진 자들 같이 행복해 보인다.) 그리고는 어려움이 닥치면 생각하게 되는 법이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전도서 7:14). 물론 그래도 아무 생각 없이사는 넘들도 있다. (계약 했다고 스포츠카를 당장 사는 넘을 보라)


맷 데이먼 버젼의 “돈으로 살 수 없는것들”

  

   맷 데이먼의 뭔가 웃음기 없는, 기껏 해야 씨-익 웃고마는, 그의 표정은 자기가 하는 일과 가치관에 대해 의문을 덮어둔체 살아가는 주인공에 잘 어울린다. 게다가 주인공은 거대한 자본주의 체제 앞에서 존엄성과 자부심으로 농장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은 헛소리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 권력에 붙어서“그건 헛소리다”라고 말해 보지만 그는 뼛속부터 힘 없는 자들의 상처를 알고 있다. 그는 마이클 샌들의“돈으로 살 수 없는것들”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것이다. 어설픈 사기극과 환경 단체에서 파견나온 넘의 비아냥거림은 결국 자신이 회사의 꼭두각시임을 각성케 한다. 그리고 마을의 찬반 투표 장소에서 레몬쥬스를 파는 어린 아이로 부터 다시 한번 자신을 확인하게 된다. 한사코 레모네이드의 제값인 25센트만 받는 아이를 보며 주인공은 깨닫는다. 그 아이가 팔고 있는 것은 90억달러를 주고도 못 사는 것 이라는걸. 결국 그는“돈으로 살 수 없는 것”편에 서게 된다.


약속의 땅


   문제는“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택하게 되면 매일 매일“살 수 없는”세상이 되어 가고 있는데 있다. 하지만 영화는 그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제목은 약속의 땅이다.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것은...이 세상에서는 그 어떤 금전적 이익이나 약속된 어떤 것을 받지 못하더라도 지킬것은 지킬 수 도 있다는...것인데 그러고도 얼마나 살아 갈 수 있냐는 의문이지만 중요한건 이 세상에서 그냥 사는게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 무엇을 지키며 사느냐 라고도 말 할 수 있는 거니까. (그래도“고문 당해 봤어?”보다는“굶어 봤어?”를 더 중요시 여기는 나라도 있다) 약속의 땅하면 생각나는 건 가나안인데. 젖과 꿑이 흐르는. 그래서 거기 살고 있던 가축이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 쓸어버리고 들어가 사는 민족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수천년 전의 민족을 막연히 흠모하는 어떤 신앙인들도 있다. 성공의 신학, 자본주의 신학이 판을 치면 그 약속의 땅을 어떻게 취하는가 하는 과정보다는, 쳐들어가 쟁취 했다는것 만을 중시 할 수 있다. 히브리서 11장13절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와 같은 삶은 관심 밖이다.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해도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과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소위 예수를 믿는다는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그들의 온전함을 이루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신앙이 아쉽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히브리서 11장 39,40절)


그리고 반전
 

   마지막 반전. 결국 영화가 말하는 것은‘천연가스 계발과 그로 인한 막대한 금전적 이익 보다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자긍심과 사랑과 가족들의 땅같은 뭐 그딴것들 지키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다’라고 생각하면 오해일 수 있다. 왜냐면 이 영화의 자본이 두바이로 부터 온 것이라고 여기 써 있는데? 즉 타 국가의 에너지 자원 계발을 지연 시키려는 중동의 입김이 작용한 영화 일 수 있다는 거다. 마치 영화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거나 데이먼이 디몬 같지 않은가? (이때“환상 특급”배경음악이 깔려 줘야하는데…)


하찮은 몇가지


1. 맷 데이먼이라 영화속에서 버벅거려도 저넘이 또 언제 자신이 천재이며 비밀 첩보 요원임을 드러낼까? 라는 착각을 영화 내내 하게 된다. 결국 여기선 그냥 박지성과 웃는 하관이 닮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2. 앗 저 볼륨감 있는 금발이 여자 주인공인줄 알았는데 그냥 대사도 없고 잠깐 잠깐 나오고 만다. 영화 카메라빨 인듯한 Sara Lindsey. 제작진과 친한가봐?


3. 이 영화 팀은 Good Will Hunting팀과 거의 비슷.


4. 각본에는 주인공과 일하는 직장동료가 누나뻘 되는 매력적인 여성이라고 나와 있는데 매력 있지 않습니까? 그래, 매력있지가 않다. 그래도 지적이지 않습니까? 그래 지적이지 않다.


5. 이렇게 애매모호한 표정을 짓는 여자는 참 무섭다. 어떻게 보면 꼭 속으로“너 맷 데이먼이지?”하는것 같아 영화 몰입을 방해 한다. 국민학교 (난 초등학교 다닌적이 없다) 담임선생님이 시험 못 봤을때 짓는 표정과 겹쳐서. (나만 그런거 일 수있다.)


6. 미국은 진짜로 2시간 달려서 도시를 벗어나면 어디나 켄터키라는 말이 피부에 와 닿는다. 미국 어딜가도 널려 있는 우리 동네 같은 곳. 여기서 오랫동안 살던 사람들의 정서 – 반도체나 IT 회사 같은데 다니는 사람들에 대한 정서 - 가 어떤 것일까 알기 두렵다.


7. 참고로 90억 ($9B)달러 회사라는데 그건 그 바닥에서 별로 크지 않은 회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