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즈 - 한국어 더빙 수록
피터 램지 감독, 알렉 볼드윈 외 목소리 / 파라마운트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영화는 기독교적 가치관을 흐리게 하는 상업주의 (복음을 흐리게 하는 크리스마스 산타와 부활절 토끼), 다원주의 (영적인 Jack Frost, 그리고 매우 동양적인 꿈의 가디언 Sandy), 인본주의 (금전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이빨의 요정)등의 교집합 (남을 위한 용기 있는 희생과 상호 소통에 의한 자존감 회복)에 영리하게 편승 했다.

   

   영화 선전을 보면 동심의 세계 어저꾸 저저꾸 하면서 어렸을 적의 꿈을 회상하며 어른들에게도 그런 순수했던 시절을 생각나게 줄 수 있다고 하는데어렸을 적에 산타크로스가 선물을 갖다 준다거나 부활절에 숨겨진 계란을 찾는다거나 이빨을 뽑고 나면 동전이 생긴다 등을 믿는것이 과연 바람직한 순수한 동심인지 순진하게 기만 당하는 동심인지 모르겠다. 그리고는 나이가 들면서 세상에는 자연주의적 산물만이 존재 한다고 믿는것이 옳다는 것인지. 크리스마스라는 남의 생일날, 남에게 생각은 못하게 하고 받을 생각만 하게 아이들을 키우는 것일까 부활절이란 축제일에 부활의 의미를 가르치지는 않고 플레이보이의 상징이자 다산의 상징인 토끼가 판을 치게 만드는 것일까? 유치에서 영구치로 이갈이를 하는 신비로운 인체의 성장 과정에 동전이라는 금전적 개념을 넣어서 신체 장기 매매가 있는 세상을 (요건 무리수) 가능하게 할까? 그나마 눈에 거슬리지만 공감이 약간 가고 싶은 3가지. 첫째: 악몽을 꾸는 것은 Pitch 라는 악의 가디언 때문인데 놈의 뿌리는 두려움에 있다는 것. 둘째: 좋은 꿈의 요정 Sandy 왠지 인상이 동양적이라는 . 세째: 주인공 Jack Frost. 어린 넘이 하얀 머리색을 가지고 있다!


 

 

 

 

   가디언즈를 만든 드림웍스 사는 스티븐 스필버그, 제프리 카젠버그, 데이비드 게펜이 1994 설립한 미국의 영화 제작사이다. 알려진 대로 유태계인 스필버그의 영향인지, 예수님과 상관없는 회사 답게 복음을 희석 시키는 대표적인 존재인 성탄절 산타와 부활절 토끼가 부담없이 그려지고 있다. 밖의 가디언으로 꿈의 수호자인 Sandman 나오는데 주인공 격인 Jack Frost 이빨의 요정보다 단연 존재감을 보인다. 이 친구는 일명 Sandy 나오는데 하필 총기 참사가 일어난 코네티컷의Sandy Hook 초등학교와 허리케인 Sandy 이름이 겹치는 우연으로 기억이 남는다. 멋진 모래 채찍과 금가루 처럼 보이는 모래로 무엇이든 만들내어 자유자재로 다루는 가장 강력한 능력자이다. 말이 없는 데다가 색깔과 차림새 하며, 마치 선불교(禪佛敎) 묵언(默言) 수행중인 승려 느낌이 난다. 유교의 경전인 사서 (논어, 맹자, 대학, 중용) 오경 (시경, 서경, 주역, 춘추, 예기) 유가(儒家) 예절에 관한 기본서인 예기(禮記) 곡례(曲禮) (고대일상생활에 적용되었던 규범들을 수록한 자료이다) 에서도 말의 중요성이 나오는데 이러한 고요함 속에서 진리의 힘을 추구하는 동양적 정서를 막연히 흠모하는 (달라이라마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으나) 헐리우드 딴따라들의 헤벌죽함이 보인다.

 

   하여튼 어수선한 4명의 가디언즈는 아이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는 악몽의 주관자 Pitch의 등장에 위기를 느끼고 달의 예언에 따라 겨울의 정령인 주인공 Jack Frost 다섯번째 가디언으로 삼는다. 그는 영적 존재 답게 자신의 출생을 더듬으며 자신이 가장 일찍 기억 있는 것은 어두움 이라고 말한다. ("Darkness... it was the first thing I remember.”) 이는 창세기 1 2을 떠 올리게 한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 Now the earth was formless and empty, darkness was over the surface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was hovering over the waters.) 이 어두움의 존재와 빛의 존재 사이에서 우리는 선택을 하고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을 남들이 인정을 해 주느냐, 남들이 믿어 주느냐, 남들이 얼마만큼 알아 주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존재 가치가 민감하게 달라진다. Jack Frost 역시 낮아졌던 자존감을 가디언이 됨으로서 회복한다.

 

 

 

   박영미의 우물 속에 담긴 하늘이란 노래가 있다. 어른(?) 되고나서 이처럼 절망적으로 순순했던 시절을 그리워 하는 노래가 있을까?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우물속에 담긴 하늘은
왠지 푸른 하늘보다도 파랗게
아주 파란 크레파스로 하얀 종이 가득 채우면
왠지 나는 구름보다도 하얗게
작은 뒷동산에 올라가 잎이 고운 풀위에 누우면
하늘은 소년의 꿈을 물었지
푸른 하늘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햐얀 구름같은 마음을 갖겠다고

흐린 눈을 가진 어른이 되었구나
잿빛 구름같은 마음을 가졌구나
회색빛 하늘 바라보며 무거운 걸음을 옮기면
왠지 우물속의 하늘이 그리워져

 

   

   만약 영화에 대한 물음이존재 가치보다 좀 더 근원적인존재에 있다면, 다행히 영화는 존재 자체가 믿음에 좌우 되지는 않음을 보인다, 왜냐면 믿는 아이들이 없어도 Jack Frost는 존재 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믿음에 따라 존재 여부가 달라진다는 자연주의적 세계관에서 살짝 비켜 있는것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하지만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타인에 대한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아이들에게 보여 주기엔 산타와 토끼, 나약한 여성 요정, 그리고 작고 강해서 멋있으나 금을 덧칠한 불자(佛子)같은 Sandy. 그리고 뭔가 Jack Frost의 어둠과 친할 것 같은 모습이 눈에 거슬린다. 그러한 이교도적인 상징물들로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혼탁하게 만들기 보다는 복음과 부활의 의미를 가르쳐 주는것이 푸른 하늘 같은 사람, 하얀 구름 같은 마음을 갖는 사람이 되는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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