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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나는 신경숙의 소설을 읽으면 대학시절 나의 친구가 떠오른다.
신경숙 소설속 주인공들이 늘 그 아이와 겹쳐지는 현상에 당혹스러울때가 있다. 이번 책도 그랬다. 몇 페이지를 넘기지 않았는데 방에 검은 도화지를 붙여 놓았다는 윤이 나에게 다가왔을때 그 아이의 어두운 자취방이 생각났다. 다들 그랬다 동굴에 사는 아이 같다고...
그렇게 시작과 동시에 윤이 그 아이와 겹쳐지는 통에 책장을 넘길때마다 내 대학시절이 떠올라 책 진도를 빼기가 참 힘들었다. 걸어서 도시를 익히는 윤이와 학교에서 한참을 먼곳에 자취방을 구해걸어다녔던 그 아이가 겹쳐졌다. 수동카메라로 밤새 도시의 밤을 찍어 "밤은 늘이렇게 우울해"라고 말하며 사진 뭉터기를 내 놓던 친구가 명서와 겹쳐졌다. 군대에서 일주일에 한번 이상 편지를 쓴 감수성이 풍부한 동기가 단이와 겹쳐지는 책이었다.
그렇게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는 나를 끊임없이 과거로 과거로 이끌었다.
그렇게 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면서 쉬엄쉬엄 책을 읽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그 시절 친구들에게 먼저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물었고, 보고 싶은 언니의 홈에 글도 남기는 성과(??)를 달성했다.
보고싶은 이들을 떠오르게 하는 책이었다.
지금부터는 책 내용과 그 밑에 간단하게 메모해둔 내 생각을 옮긴다.
내가 스물한 살에 다시 이 도시로 돌아오면서 나 자신과 약속한 것은 다섯 가지였다. 책을 다시 읽을 것. 책을 읽을 때마다 발견한 새로운 단어와 그 뜻을 노트에 적어 개인사전을 만들 것. 일주일에 시 한 편씩을 외울 것. 추석때까지 엄마묘소에 가지 말 것. 이 도시를 하루에 두 시간 이상씩 걸을 것. (p27)
살기위해 이 도시로 모여드는 모양이다. 첫 문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내 눈에서 집을 떠나올 때도 나오지 않던 눈물이 한방울 툭 떨어졌다. ...... 넓고 좁은 길이 너무 많아서 자주 길을 잃게 만들었다. 나도 이도시의 사람들과 사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만나도 인사를 하지 않는 것에 익숙해 지며 나는 어린 실향민이 되었다. (p33~34)
내성적인 스물한 살 윤이의 불안이 느껴졌다. 철저히 혼자라고 생각했기에 주변의 사촌언니도 아버지도 자신 스스로도 위로가 되지 않았을 것 같아 내 마음조차 불안해졌다.
왜 하필 서른셋이냐고 묻고 싶은 모양이군. 글쎄 서른셋은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돌아간 나이고 알렉산더가 거대 제국을 건설하고 죽은 나이지. 서른셋이 지나면 더이상 청춘이라고는 할 수 없지 않을까. 요절이란 말도 서른셋이 되기 전 죽은 자들에게나 주어지는 것 아니겠나. (p77)
이 장면을 읽는데 울컥했다. "서른셋이 지나면 더이상 청춘이가도 할 수 없지 않을까"란 말에 서른셋을 훌쩍 지나버린 난 우울했다. 그리고 누구는 서른셋에 뭔가를 했는데 난?? 하는 의문이 날 괴롭혔다. 이래 저래 속상한 문구다!
"맘에 드는 게 있으면 그냥 가져가. 시들시들해 돈 받기도 그래." 꽃집 아주머니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내가 이름이 무어냐고 물었던 테이블야자를 플라스틱 화분째 봉지에 담아주었다. "집에 가져가면 다른 화분에 옮겨심고 물 충분히 줘...... 시위 안해도 되는 세상 물려주지 못해 미안해...... 미안하다구."(p114)
그 시절 어른들은 젊은이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한 시위를 보며 미안하다란 말을 했다는 것!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런 말을 썼다는 것! 그것만으로 그 아주머니가 고마웠다.
루쉰이 일본 유학생이었을때 일본인 선생이 참배할 곳이 있다며 루쉰을 비롯한 학생들을 뒤따르게 했는데, 데리고 간 곳이 오차노미즈에 있는 고자 사당이었단다. 공자로 상징되는 전근대적인 것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유학을 온 루쉰으로서는 그때의 참배가 상당히 충격이었을 거라고 말했다. 새로운 문물을 배우기 위해 찾아온 머나먼 타향에서 만난 은사가 자신이 버리고 온 옛것 앞으로 데려가 참배하게 했을 때 루쉰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깊은 생각에 잠기게 했다. (p182~183)
폭력적이거나 부패한 사회는 상호간의 소통을 막는다. 소통을 두려워하는 사회는 그 어떤 문제를 해결 할 수 없게 된다. 나중엔 책임을 전가할 대상을 찾아 더 폭력적으로 된다.(p183)
이 두 부분은 나를 한참 생각에 잠기게 했다. 지금이 그 때와 다르지 않구나!
살아 있으라 마지막 한 모금의 숨이 남아 있는 그 순간까지 이 세계속에서 사랑하고 투쟁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며 살아 있으라. (p291)
나의 크리스토프들, 함께 해주어 고마웠네. 슬퍼하지말게. 모든 것엔 끝이 찾아오지. 젊음도 고통도 열정도 공허도 전쟁도 폭력도. 꽃이 피면 지지 않나. 나도 발생했으니 소멸하는 것이네. 하늘을 올려다보게. 거기엔 별이 있어. 별은 우리가 바라볼 때도 잊고 있을때도 죽은 뒤에도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을걸세. 한 사람 한 사람 이 세상의 단 하나의 별빛들이 되게. (p354)
윤교수의 수업을 위해 학교를 다니던 주인공들이 부러웠다. 죽는 순간까지도 제자들을 위한 손글을 남긴 윤교수를 보면서 대학시절 "봄볕 따스한데 수업하러 와 있는 불쌍한 청춘들을 위해 출석을 부르지 않을테니 지금 일어나 잔디밭에서 낭만을 즐겨도 된다"라고 이야기 했던 교양국어 교수를 생각나게 했다.
한국어를 쓰는작가로서 우리말로 씌어진 아름답고 품격있는 청춘소설이 있었으면 했습니다. 내가 지금 쓰려는 소설이 그런 소설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지금 청춘을 통과하고 있는 젊은 영혼들의 노트를 들여다보듯 그들 마음 가까이 가보려 합니다. 더 늦기 전에요. (p374)
신경숙 작가의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 20대를 떠올리며, 끝없이 비교하며 읽었던 이유가 여기 있구나를 확인했다.
작년 어느 날 나와 같이 포럼을 하던 한 교수님께서 나와 술한잔을 하다가 문득 물었다. "도대체 몇학번이예요?" 내가 하는 이야기들이 내 나이와 맞지 않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내가 웃으면서 "95학번이요! 그런데 절 가르친 선배들이 다 80년대 후반학번들이예요!" 나에게 베여버린 80년대 후반의 치열한 대학시절의 추억은 그 선배들의 말과 행동에서 배운 것이었다. 내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난 80년대 학번들의 정서를 가진 90년대 학번으로 학교생활을 했다
그런 어중간한 대학생활을 한 나를 자꾸 떠오르게 하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