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비닛>을 읽으면서 재미 있거나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부분을 메모해봤다.

하프문과 프린스 윌리엄이여,
말해다오 붕붕거리는 이 오후의 무료함을

p55
나는 y공기업의 부속 연구소에서 일한다.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으며 "연구원이세요? 박사?" 하고 묻는다. 그럼 나는 "아뇨, 그곳에서 자료와 자재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행정직이지요" 학 솔직하고도 재빨리 대답한다. 솔직하고도 재빨

리! 그게 무척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대화가 끝난 후 나와 상대방은 찜찜하고 서먹서먹한

상태가 되어버린다. 상대방은 뭔가 속았다는 느낌을 받게 되고 나로서는 왠지 무시당했다는

느낌이 살짝 든다고나 할까.

  물론 이것은 연구원이 아닌 사람이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느끼게 되는 자격지심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병원에서 일한다고 모두가 의사는 아니며, 공군에 근무한다고 모두가 전투기 조종

사는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조금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투기가 거꾸로 날거나 논두렁

에 처박혀서 경운기의 비웃음을 사지 않기 위해선 누군가 그 큰 바퀴를 제대로 갈아끼우고, 비

행기 이곳저곳을 닦고, 조이고, 기름쳐야 하며, 또 누군가는 깃발을 열심히 흔들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조종사와 비행기만으로는 하늘을 날 수 없다는 것,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폼나지 않는 일을 해줘야만 비행기가 논두렁이나 하수구에 처박히지 않고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 그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이해해주길 바라는 거다. 대표성의 잣대

에 기대지 말고 개별성의 잣대로 사람을 대해달라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성숙하고 깊이 있는

인간관계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상대방을 존중하는 대화란 이런 것이다.

"어디에서 일하시죠?

"H병원에서 일합니다."

"하는 일은 재미있으세요?"

"때때로요. 저는 X-Ray실에서 방사선 촬영을 하는데, 사람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즐거움이 있다

고나 할까요."

"내부를 들여다보는 즐거움이라, 와우, 근사하군요."

"사람의 몸속에서 자기만의 독특한 공간이 있다는 것을 아세요?"

"그래요? 처음 듣는 이야긴데요?"

"사실이랍니다. 모두들 저마다의 빈 공간이 있어요. 저는 그 공간을 엿보지요. 그걸 보면서 사람

들이 자신만의 고유한 것들을 저곳에 저장해두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지요."

"굉장하군요."

"은밀하죠."

"언제 시간 나면 저의 은밀한 공간도 볼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저로서야 더할 나위 없는 영광입니다. 꼭 한번 찾아오세요. 스페셜로 찍어드리겠습니

다. 은밀하게요."


점점 에로틱하게 점점 우아하게 발전해가고 있는 이 대화의 끝을 계속 추적하지 못해 유감이다. 어

쨌든 이 대화는 굉장히 우호적이고 뭔가 럭셔리하며 인간 친화적이고 심오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

지 않는가. 즉 이 대화의 분위기는 은밀한 쪽이든 건전한 쪽이든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틀에 박힌 예의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존중이 우리의 세상을

얼마나 아름답게 하는지를 보여주는 예다. 그렇지만 내가 평소에 만나게 되는 대화들은 이런 멋진

대화가 아니다. 내가 평소에 만나는 대화는 주로 이런 식이다.

"어디에서 일하시죠?"

"H병원에서 일합니다."

"(약간 놀라며) 의사인가요?"

"(약간 당황하며) 아뇨. 의사는 아니고."

"(약간 실망하며) 네.... 그럼 뭘?"

"X-Ray 실에서 일합니다. 그러니까 그냥 뭐 X-Ray 기사죠. 하염없이 X-Ray나 찍어대는"

"(완연히 실망하며) 네. 그렇군요."

"(할말이 별로 없어 구두를 바닥에 문지르며) 어째 날씨가 꿉꿉하네."

"(나름대로는 화제를 돌리며)X-Ray기사는 벌이가 괜찮아요?"

"(이 여자 별걸 다 묻네 하는 표정으로)뭐 신통찮아요. 허리띠 안졸라매면 살림 꾸리기가 팍팍하죠."

"(이젠 완전히 흥미를 잃고) 요즘은 다 힘들잖아요. 너도 나도 아우성이에요. 경기가 이 모양이니

까. 그래도 전문의들은 월 오백 이상은 된다면서요?"

"뭐 그렇겠죠. 걔네들은 뭐 전문의씩이나 되는 분들이니까요."

이 대화에서 더이상의 발전 가능서이 보이는가? 나는 물건너 갔다고 본다. 그녀는 재미없고 살림

꾸리기 팍팍한 X-Ray기사와이ㅡ 이 건조한 대화를 금방 잊어버릴 것이고 X-Ray기사는 그녀를 그저

재수 없는  여자쯤으로 생각할 것이다. 이 도시에서 무수하게 생겨나는 쓸데없고 시시한 만남첨러

말이다.

이 매력적인 부분을 읽으면서 이 소설의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피노키오

p108

나는 지금 이쑤시개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지난 수천 년의 역사 동안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은 사소하고 하찮은 상품. "작은 공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와, 사장님이시군요. 그런데

어떤 물건을 만드십니까?" "이쑤시개를 만듭니다." 그러면 왠지 피식 웃음이 나고 그 사장이라는

사람이 우습게 보이는 그런 상품, 이쑤시개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이쑤

시개와 더불어 한 인생을 살아가야 했던 사나의 이야기도 하려고 한다. 그 사내는 나에게 말했다.

"저는 이쑤시개를 닳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습니다. 두고 보세요. 22세기가 되면

모든 물건은 인간을 닮아 있을 겁니다. 아니라면 모든 인간이 물건을 닳아 있겠지요. 둘 중에 하나

는 분명합니다."

p113

 그가 이쑤시개를 중오했던 까닭은 그의 별명이, 그의 정체성이, 그의 존재가 모두 이쑤시개로부터

출발했고 이쑤시개와 관련을 맺었기 때무이다. (중략)

 그는 이쑤시개를 증오했고, 세상의 그 많은 사물들 주에 하필이면 이쑤개와 엮여버린 자신의 삶을

증오했고, 아버지를 증오했고, 아버지의 작은 이쑤시개 공장을 증오했고, 이쑤시개를 뽑아내는 기

계들을 증오했고, 작업을 하면서 엄마의 몸뻬바지 사이로 비치는 엉덩이를 훔쳐보던 공장 아저씨들

을 증오했고, 채소 반찬뿐인 식사를 하고도(가끔 단백질 보충용으로 계란 프라이가 있었다) 모두

다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는 집안의 희한한 식사풍습을 중오했다. 못 쑤실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의 집에는 제갈공명이 조조에게 장난처럼 빼앗아온 화살 백만 개처럼, 이쑤시개 백만 개 정도는

그저 기본으로 굴러다니고 있었다.
 
 고3 때 그는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했다. 그가 육군사관학교를 지원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이쑤시개

와 가장 멀리 있는 학과를 고를 것! 그래서 그가 선택한 것이 육군사관학교였다. 그런데 육군사관

학교 입학지원서에는 아버지 직업란이 있었다. '이제 드디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는데 또다시

이쑤시개로부터 시작해야 한단 말인가?" 그는 오랫동안 갈등하고 번민했다. 그리고 그는 멋진 묘안

을 짜냈다. 그는 아버지 직업란에 '목재가공업'이라고 썼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원서를 받아본

선생은 아버지의 직업란에 써진 '목재가공업'을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는 선생이 그 부분에

대해서만은 제발 그냥 넘어가주길 바랐지만 인생이란 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선생은 나지막

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아버님이 목재를 가지고 주로 무엇을 가공하시지?"

 그는 침묵했다. 솔직히 그것에 관해 그는 단 한마디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선생은 그의

대답을 침찹하게 기다렸다. 할 수 없이 그는 목까지 벌겋게 달아오른 채 아주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

다.

 "이쑤시개를 만드십니다."

 그러나 선생은 웃지도 놀라지도 않았다. 선생은 단지 고개만 약간 갸웃거렸다. 그의 담임선생은 원

래 과묵하고 잘 웃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그럼 이렇게 쓰면 안 되지. 이런 것을 기재할 때는 다른 사람이 보고 쉽게 알 수 있도록 써야 하지

않겠나?"
 
 선생은 그를 가볍게 질책했다. 선생은 한동안 원서를 바라보다 목재가공업에 두 줄을 그었다. 그리고

그 위에 이렇게 썼다.

 '정밀 목재가공업'

 나는 그 선생이 이쑤시개의 본질에 조금은 접근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목재의 재질과 용도를 작업

방식과 산업적 특성에 따라 정확하고도 품위 있게 분류해냈으니까. 그해 입시에서 그는 육군사관학교

에 무사히 들어갔다.

'TV 동화' 등에 나올 법한 얘기지만 그래도 재미있다.


고양이가 되고 싶어요

p130

 혹시, 고양이로 변신하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는가?
 
 고양이는 평균 열여섯 시간 동안 잠을 자는 낙천적이며 호기심 많고 귀여운 동물이다. 담장 위로

가볍게 뛰어오르는 탄력적인 몸놀림과 지붕에서 지붕으로 날아다니는 가볍고 우아한 동작들, 높은

나뭇가지에서 떨어져도 순식간에 무게중심을 잡고 사뿐하게 착지하는 놀라운 평형감각을 보라. 그

리고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저 깊은 눈동자를 보라.

 고양이는 정말 근사한 동물이다. 재규어나 치타 같은 동족의 친구들이 점점 줄어드는 사바나의 열

대우림 속에서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잇는 동안 고양이는 오히려 도시로 들어와 훌륭하게 적응했다.

고양이들은 도시의 신호등 체계는 물론이고 고압선이나 전기철조망처럼 건드려서는 안 되는 위험구

역도 잘 알고 있다. 고양이들은 이 도시에서 무슨 요일에 음식물 쓰레기가 나오는지를 알고 있고

그 쓰레기봉투가 어떤 색깔인지도 알고 있다. 고양이는 식성도 매우 다양하며 또한 너그럽기까지

해서 햄 찌꺼기, 꽁치 통조림, 곰팡이 슨 식빵, 몇 번이나 국물을 우려낸 멸치 찌꺼기까지 모두 먹

을 수 있다. 이 쓰레기 같은 음식들이 우아하고 기품 있는 고양이들의 입맛에 그리 맞는 것은 아니

지만 그들은 편식하지도 불평하지도 않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세계의 조건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

이다.

 하지만 도시의 온갖 쓰레기를 먹고 있어도 고양이들은 여전히 야생의 자존심을 지니고 있다. 주인

의 품 안에서 귀엽게 꼬리를 흔들어주는 대가로 먹이와 잠자리를 보장받는 애완용 개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집고양이건 길고양이건 그들은 누구에게도 종속도는 법이 없다. 고양이에게는 결코

주인이 없다. 고양이에게는 친구나 하인이 있을 뿐이다. 당신을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고 생각하겠

지만 고양이는 당신을 결코 자신의 주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양이는 아마 당신을 집사나 하

인 정도로 여길 것이고 좋게 봐줘야 친구 정도로 여길 것이다. 당신이 만약 집사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고양이는 엄중하게 "야옹!" 하고 소리지르며 당신에게 경고할 것이다. "야

옹!" 그것은 밥그릇이 비었다는 뜻이다.

 일단 배를 채우고 나면 고양이들은 다시 공원과 지붕과 전봇대와 빌딩으로 이루어진 그들의 밀림

을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날아오르고, 달리고, 솟구치고, 은밀하게 잠복한다. 도시에 살고 있지만

고양이들은 여전히 밀림의 몸을 가지고 있다. 야생적이면서 동시에 도시적인 것!

 고양이의 육체를 가진다는 것은 그렇게 근사한 일이다.

 파울루스 크뤼거는 이렇게 말했다.

 "이 빌어먹을 도시에서 인간이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딱 한 가지 뿐이다. 그것은 고양

이로 변신하는 것이다."

고양이와 개라. 작가는 니체나 들뢰즈를 염두에 두고 이런 글을 썼을까.  노예적인 것과 고귀한 것,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구분하는 그들의 철학을 연상시킨다.  나는 고양이과인가 개과인가.


네오헤르마트로디토스

p195
 
 "다시 태어난다면 여자로 태어나고 싶습니까,
 
 아니면 남자로 태어나고 싶습니까?"

 
  "저는 이 폭력적인 이분법의 세계에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아요."

어쩌겠는가! 언어 자체가 이미 폭력인걸. 그리고 문화의 역사가 바로 가르고 구분짓는 것의 역사 아닌가.

그래도 그런 폭력성을 감지하고 덜 폭력적인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은 언제나 중요한 일이다.  

외계인 무선통신

p210

'외계인 무선통신' 의 회원들은 지구에서 성공하기 위해 아등바등 거리지 않는다. 이곳은 자신의

고향이 아니며 자신의 삶의 터전이 아니다. 지구는 그들에게 외계 행성이다. 우리들 중 그 누구도

원숭이 무리에서 명예로워지거나 이름을 날리고 싶어하지 않는 것처럼 그들도 지구 위에서는 그렇

다.

  지구로 유배되어 있는 삶. 고향을 상실한 삶. 그들은 이 지구라는 유형지에서 살아가기 위해

날마다 안간힘을 쓴다. 그들은 이 지구를 탈출하는 꿈을 매일 꾼다. 그래서 그들에게 우주 끝까지

전파를 날릴 수 있는 강력한 무전기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어디쯤에 있는지 얼마나 멀리 있는지도 모르는 고향 행성을 향해 그들이 날리는 쓸쓸한 전파는

오늘밤도 달의 뒤편을 지나서 우주 끝으로 날아갈 것이다. 왜 그들은 강한 지구인으로 살지 못하

는 것일까. 왜 그들은 인간이라는 종족에 대해 정체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그들은 꼬박꼬박

의료보험금을 내고, 세금을 내고, 연금을 내고, 수많은 교통질서를 지키면서, 왜 자신을은 지구인

이 아니라고 믿고 싶어하는 걸까.

  글쎄다.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말이 통하는 인간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이

답답하고 심심한 지구를 생각해볼 때 그들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들은 백년 전의, 천년 전의, 만년 전의, 인간 종하고는 완전히 다른 종족이다. 하지만 그렇

다고 지금의 인간 종이 보다 긍정적인 종족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계속 긍정적인 종족

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그녀가 먼지 날리는 환풍기 아래서 밥을 먹다

p220

 그때가 아마 10월이었을 것이다. 수업시간에 나는 창밖의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운동장에서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회오리바람이 10월의 은행나무 잎사귀들을 둘둘 말아 하늘 높이 올려보개고 있었

다. 은행잎들은 회오리바람의 형상을 따라 빙글빙글 돌면서 국기계양대보다 더 높이 치솟아올랐다.

 팽이의 가파른 회전처럼, 토성의 띠를 이루는 얼음 알갱이들처럼 은행잎을 매달고 빙빙 도는 바람

의 모습은 놀라웠고 아름다웠다. 나는 그때까지 그렇게 아름다운 바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아!" 하고 감탄사를 질렀다. 그때 해골처럼 깡 마른 얼굴과 물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건조한 피부 때문에 실리카겔이라는 별명을 가진 윤리선생이 나를 교탁 앞으로 불렀다.

 "뭘 보고 있었냐?" 나는 그런 아름다운 풍경은 소년의 인생에 몇 번 오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선생도 내 마음을 알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정직하게 말했다. "아름다운 회오리바람이 은행잎

을 둥글게 감아올리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이 웃었다. 실리카겔은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실리카겔은 "이 새끼가 돌았나" 하고 말했다. 실리카겔은 시계까지 풀고 내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한 대! 두 대! 세 대! 네 대! 뺨을 맞는 얼굴은 아프지 않았다. 나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던 너무나 창백하고 슬픈 것들이 목구멍으로 북받쳐올라왔다. 그래

서 나는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냈다. 우아악! 우아악! 우아악! 이렇게.

 실리카겔은 깜짝 놀라서 서너 걸음 뒷검을질친 채 멍하니 서 있었고, 아이들도 아무 말 업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교실은 일순간 모든 것이 정지되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는 교실을 박차고

나와버렸다.

  그런데 뚱딴지같이 웬 회오리바람 이야기냐고? 나는 열다섯 살에 평범하고 그저 그런 아이에 불과

했지만 분명히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알았고 분노라는 것을 할 줄 알았다. 이 식사시간을 보라.

이것은 정말 13호 캐비닛만큼이나 비현실적이지 않는가? 단지 직장 상사라는 이유만으로 어떻게 사람

이 사람에게 "저 돼지 같은 년 어떻게 안 보고 사는 방법 없나?" 따위의 말을 면전에다 할 수 있는가.

그건 솔직히 진짜 돼지한테도 해선 안 되는 말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 말에 대해 분노하지 않는다. 아무도 분노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

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내 나이 열다섯에 그 넘치던 분노들은 도대체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어디

로 갔을까. 나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나의 분노들이 혹시 호주머니에 있나 싶어 한 손으로 호주머니

를 뒤적거리며 다른 한 손으로 부장의 식판을 배식구에 얌전히 갖다놓았다.

그렇다. 세상은 때로는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그리고 나는 너무나 왜소하다.

 

나는 인간이라는 종이 수치스러워

p254

권박사는 심토머들이 인간과는 다른 새로운 종이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나는 권박사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저는 심토머들이 여전히 인간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우리와 하나도 다를 것 없는 같은 종 말입니다.
 
 단지 심토머들은 조금 아픈 거죠. 정체 모를 병에 걸려서."

 "그럴 수도 있지. 나는 아니기를 바라지만."

 "아니기를 바라세요?"

 "자넨 인간이라는 종에게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나?"

 "예, 완벽한 존재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반성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니까요."

 "반성하는 존재라. 웃기는 소리군. 내가 스무 살 때 전쟁이 있었지. 같은 마을에서 태어나고 개울가

에서 깔깔거리며 같이 고기를 잡던 사람들이 이데올로기 때문에 두 패로 나누어졌지. 끝없는 살육과

복수가 있었어. 어느 날 나는 한패가 다른 한패 모두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는 걸 봤어. 일렬로 줄을

세워놓고서. 한 사람이 한 명씩 찔렀지. 그리고 그들은 초등학교 뒤편에서 구덩이를 파고 시체들을

거기에 밀어넣었어. 아이들이 뛰어노는 초등학교 뒤편에 말이야. 자네는 그것이 이데올로기 때문이

었다고 생각하나?"
 
 "-----"

 "지난 오십 년간 인간에게 그 시대를 반성하는 역사가 있었나? 우리는 여전히 싸우고 있지. 자신의 아

파트 평수나 지키기 위한 하찮은 이유들로. 나는 인간이라는 종을 증오해. 치욕스러워. 인간은 그것보다

더한 짓도 할 만한 생물이지."

 "심토머들은 다를까요?"

 " 모르지. 하지만 나는 더 아름다운 종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더 이타적이고, 더 따뜻하고, 그

래서 자신의 삶을 항상 이웃의 삶과 같이 생각하는 박애적인 종이 이 지구 위에 번성했으면 좋겠어."

 이타적인 종이 나온다 해도 세상에 행복이 더 많아지거나 세상이 더 잘돌아갈 것 같진 않지만.


부비트랩

p299

 퍼스컴이라는 부비트랩이 있다. 백오십오 밀리미터 곡사포, 혹은 비행기나 헬기에 의해 자동으로 설치

되는  이  대인, 대전차 부비트랩은 여덟 개의 지뢰가 한 세트로 연결되어 있다. 각각의 지뢰에 연결된

인계철선 중에 어느 하나라도 건드리면 여덟 개의 지뢰들이 연쇄적으로 폭발한다. 대인지뢰나 발목지뢰가

그것을 밟는 병사 한 명의 목숨이나 발목을 앗아가는 데 반하여, 이 부비트랩은 누군가 잘못 건드리면

중대원 전체가 몰살당할 수도 있다.
 

p300

 이상하게도 불행이 곡 이 부비트랩과 닮아 있다. 마치 하나의 불행이 다른 불행과 연결되어 있는 것

처럼 인계철선 하나를 건드려 터지기 시작하면 약속이나 한 듯이 모든 불행이 연쇄적으로 터져나온다.

p301
 
 우리가 만약 우리 자신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면, 우리 일상의 곳곳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 곳

곳에 얼마나 많은 부비트랩이 거미줄처럼 촘촘히 퍼져 있는지를 알고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과연

이 촘촘한 인계철선들을 피해갈 수 있을까. 우리가 어떤 '유혹' 앞에서도 '실수'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실수하지 않는다면 내 앞사람은? 내 뒷사람은? 내 뒤에 어떤 안전한 후방을 둘 수 있을까?

 우리는 어느 순간에 파산을 맞거나 예기치 않은 사고를 당하면서 인생은 급작스러운 것이며 사고는

한순간이다'라고 한탄한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우리는 그보다 훨씬 전에 이미 부

비트랩의 인계철선을 건드렸다. 당신이 그 순간, 바로 그지점에서, 오른쪽 대신 왼쪽으로 고새를 돌리

는 순간, 당신의 브레이크에는 균열이 가기 시작했으며 당신의 불행은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당신이

직장 상사에게 "노!" 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순간,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나?" 검은손이 악수를 청

할 때 "그럴 순 없습니다." 하고 말하며 의연하게 일어서는 순간. 그리고 더 사소하게 당신이 그저

재수 없게 생겼다는 이유로, 아니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인계철선은 툭 하고 끊어진다.

 당신은 이 거미줄로부터 결코 빠져나갈 수 없다. 우리 일상에 깔린 불행의 부비트랩은 너무나 많고

너무나 정교하다. 권력의 역사는 부비트랩의 역사다. 다르게 말하면 인간의 역사가 바로 부비트랩의

역사다. 우리는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 자신도 안전할 수 없는 부비트랩을 계속해서 설치한다. 기폭장

치를 건드리는 수많은 선들, 미친 듯이 증식해나가는 저 불행의 선들, 감시의 센서들과, 금기를 요구

하는 저 두꺼운 법율의 사전들. 하나의 질서를 만든다는 것은 수천수만 개의 혹은 그 이상의 부비트랩

을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는 푸코가  떠오른다. 푸코는 권력이 촘촘한 망처럼 세상의 은밀한 곳까지 촉수를 뻗고 있다고

생각했다.  과연 법율, 질서 등은 부비트랩일까?  

수상소감

p390

 나의 선생은 소설쟁이가 농부, 어부, 막노동꾼처럼 자신의 가족을 위해 신성한 밥벌이를 하는 성실한

사람들에 비해 두 수쯤 아래에 있는 존재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선생이 틀렸다. 소설을 쓰고자 하는

가장 근원적인 욕망은 허영이므로, 소설쟁이는 그들보다 최소한 세 수쯤은 아래에 있는 존재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독자들은 작가에게 관용이란 걸 베풀 필요가 없다.

  당신이 이 저열한 자본주의에서 땀과 굴욕을 지불하면서 힘들고 어렵게 번 돈으로 한 권의 책을 샀는

데 그 책이 당산의 마음을 호빵 하나 만큼도, 붕어빵 하나만큼도 풍요롭고 맛있게 해지지 못한다면 작

가의 귓사대기를 걷어올려라. 그리고 멋지게 한마디 해주어라.

  " 이 자식아, 책 한 권 값이면 삼 인 가족이 맛있는 자장면으로, 게다가 군만두도 곁들여서, 즐겁게

저녁을 먹는다. 이 썩을 자식아!"

얼마나 멋진 수상소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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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에 빠진 세계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114
이강국 지음 / 책세상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다보스, 포르투 알레그레 그리고 서울>을 인상적으로 읽었기 때문에 같은 저자의 <가난에 빠진 세계>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구입하여 읽었다.

저자가 <다보스..>를 통해 세계화의 현실과 이론들을 주관적 견해를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서술하려고
노력했었다면 <가난에 빠진 세계>에서는 점점 양극화되어 가는 현실에 대해서 저자의 안타까움을 피력
하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을 기울일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래서 <가난에 빠진 세계>는
<다보스..> 보다 더 잘 읽히고, 보다 더 인간적이다.

1장은 현재 전 세계 가난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여러 데이타들을 동원해 보여주며, 2장은 가난과
관련된 경제학적 논의들을 소개하고, 3장은 한국 사회의 양극화 문제를 다룬다.

1장에서 보여주는 데이타들은 자못 충격적인데 몇 가지를 인용해 본다.

 "(전 세계에서) 일자리가 있는 28억 인국 가운데 절반인 14억 인구의 벌이가 여전히 하루 2달러에도
못 미쳐 생계를 유지하기도 버거운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에서는) 23개 재벌이 전 경제의 60% 가량을 장악하고 있으며 재산이 10억 달러 이상인 억만
장자의 수는 세계 3위로 꼽힌다."

 "역사적으로 보면 2004년 미국의 빈곤층 비율은 36년 전인 1968년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터프츠 대학 기아 빈곤 연구센터는 미국 내 어린이 6명 가운데 1명이 굶주린 경험이 있으며 미국
어린이의 빈곤 비율은 서유럽보다 평균 4배가 높다고 보고한다. 전체 성인 중 65%, 어린이 중 13%가
비만인 나라에서 기아 문제가 나타나는 것은 참으로 예상 밖의 일이다."

 " 2004년 미국 기업체 최고경영자들의 평균수입은 스톡옵션 등으로 인해 증가하면서 1,180만 달러
로 나타났다. 이는 생산직 노동자보다 430배나 많으며 1990년의 약 90배보다 5배나 늘어난 것이다."

저자는 3장에서 한국의 현실을 다루며 가난을 극복하기 위한 몇 가지 정책적인 노력에 대해 언급한다.
첫째, 정부의 소득재분배 기능을 제고할 것, 둘째, 금융 부분의 공공성을 확보하고 빈곤층과 중소
기업의 금융 소외를 극복할 것, 셋째, 근로빈곤 문제와 노동시장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 비정규직의
증대를 억제하고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을 도입할 것, 넷째, 공교육을 강화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평
등한 교육과 보건의 기회를 제공할 것.

사실 이런 방안들은 새로울 것도 없는 당연한 논의들이지만 저자의 맺음말은 그래도 감동적이다.

"세상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언제나 그렇듯, 우리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더 많은 반성과
미래에 대한 더 깊은 고민 그리고 다양한 논의와 치열한 논쟁이 필요하다. 특히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
의 노력이 이 끔찍한 가난과 양극화의 덫을 끊는 소중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해보자. 빈곤과 양극화에 관한 다양한 언론
보도, 정부와 각 정당의 정책, 그리고 이 책을 포함한 여러 연구에 귀를 기울이고 비판적으로 생각하
며 토론해보자. 그리고 인터넷 게시판에 자신의 의견을 전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여론을 만들어가며
정치와 경제 개혁을 위한 시민단체의 노력에 동참하고, 정책을 꼼꼼히 살펴보고 투표를 해보자. 이
모든 노력이 우리안의 가난을 해결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가난에 빠진 세계>는 세계화와 양극화에 관심은 있지만 무엇을 읽어야 할 지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는 좋은 입문서가 될 수 있는 책이고, 이미 이와 관련된 많은 지식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알차고 충실
한 요약본의 역할을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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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의 사례로 본 '기관 없어진 신체'

 

 

 

 

 

 

1. 하나의 구멍 뚫기

   '학교종'  같은 단순한 음악을 때때로 배우고 익힌다. 고막과 뇌 사이에 멜로디를 인식하는
   하나의 구멍(통로)이 뚫린다. 그것은 단순한 멜로디와 리듬을 인식할 수 있는 하나의 기관이다.

2. 그 옆에 몇 개의 구멍 더 뚫기

   화음이 포함된 조금 더 복잡해진 음악을 듣는다.  최초의 구멍 옆에 비슷한 모양의 구멍들이 몇 개
   생긴다. 그 구멍들을 통해 대중음악과 대중적 고전음악들이 매끄럽게 통과한다.

3. 최초의 구멍과는 완전히 다른 모양의 구멍 뚫기

   서양의 음계와는 다른 음계를 가진 민속음악들을 듣는다. 그런 음악들은 생김새가 서양의 음악
   과는 달라서 처음 만들어진 몇 개의 구멍으로는 고막에서 뇌까지 통과시킬 수 없다. 그렇다면 수고
   스럽지만 다른 음계를 가진 음악들을 계속 들을 수 밖에. 오랜 노력으로 새로운 모양의 구멍들이
   만들어진다. 전혀 다른 모양의 음악이 새로운 구멍을 쉽게 통과한다.

4. 사방에서 구멍 뚫기

    ROCK, 재즈, 블루스 닥치는 대로 들어본다. 구멍이 너무 많이 뚫어져 청각기관은 만신창이가
    된듯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시각적인 착각일 뿐,  긍정적이고 초월적인 하나의 신체를 탄생
   시키기 위한 필연적 준비과정이다.

5. 마침내 없어진 기관

    쇤베르크, 바르톡, 리게티, MAGMA, KING CRIMSON, ORNETTE COLEMAN 외 수많은 현대음악을
    통해 마침내 모든 구멍이 숭숭 뚫려버린다. 기관의 흔적은 사라진다. 모든 음악들이 모든 방향에서
    조금의 덜거덕거림도 없이 매끄럽게 드나든다.  고막과 뇌 사이에 장애물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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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영화잡지에선가 가네시로 카즈키와의 인터뷰를 읽었는데 그는 <GO>가 역시 재일교포
출신인 최양일의 <피와 뼈>를 패러디하는 의미도 있다고 얘기했다. 그래서 이 책은 윗세대
에는 있었지만 자기 세대에선 볼 수 없게 된 아주 강렬한-때론 폭력적인- 인물에 대한 일종
의 오마쥬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 <피와 뼈>를 본 사람들은 분명 그 강렬함에 매료되었을 (또는 질려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GO>는 그렇게 강렬한 작품은 아니다. 오히려 경쾌하고 가볍다. 비록 주인공이 매우
폭력적인 인물이지만 말이다. 이것은 바로 재일교포 1세대와 2,3세대 간의 물질적 차이에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질적 풍요로움은 무엇이든 가볍게 만들어 버리는 힘이 있는
것이다.   

소설의 제목은 무엇을 나타낼까? (소설의 마지막 대사도 '가자'이다.) 주인공은 어디로 그토록
가고싶은 걸까? 그가 가고자 하는 곳은 국가, 민족 따위의 관습과 인습에 얽메이지 자유로운
곳이며 '내'가 일본인, 한국인, 북조선인 등으로 규정되지 않고 그냥 '내'가 될 수 있는 곳이다.
그곳에 가기 위해 그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그것은 자신을 규정하는 모든 것과 끊임없이
싸워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싸워나갈 때만이 그는 일본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니고 북조선인도
아닌 그냥 '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폭력은 그래서 누구를 이기기 위한 싸움이 아니다
오로지 '내'가 되기 위한 싸움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대한 약간의 불만.
1.현대문학북스에서 2002년에 출간된 의 표지디자인은 덱스터 고든의 재즈 명반 <GO>
연상시켜서 책의 내용과도 더 잘 어울렸던 것 같다. 책에도 재즈 얘기가 많이 나오니까. 영화
포스터도 음반과 같은 디자인이었고.

2.음악이나 영화, 심지어 인류유전학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역자의 설명이 너무 없어
아쉬웠다. 예를 들자면 주인공이 US3가 너무 좋다고 말할 때 'US3는 미국의 ACID JAZZ BAND
이다' 정도의 설명은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유일한 역자 설명으로 기억되는 것은 한국인라도
대부분 알고 있으리라 생각되는 '요코즈나'에 대한 설명에 불과했다. 그리고 책에 두 번 언급
되는 'L'이 무엇을 나타내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었고. 국내 일본문학의 대표적 번역자로서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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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폴리스 1 -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
마르잔 사트라피 지음, 김대중 옮김 / 새만화책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헌신적 맑시스트인 이란 출신의 여류 작가라는 소개 문구가 흥미를 자극해 구입해

읽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맑시스트로서의 면모는 찾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중요

하지도 않다. 이 책의 주인공은 겨우 10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념이 그녀의 삶을

지배하기엔 아직 너무 이른 시기이니까. 사실 그녀의 집안은 혁명가 가문이면서도

부모와 그녀의 삶은 완전히 부르조아의 그것이다. 부모는 캐딜락을 타고 다닐 정도로

부자이고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하자 딸을 전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유럽으로

유학을 보낸다. 그리고 유학에서 돌아온 주인공은 더 이상 부모의 차가 캐딜락이 아닌

것을 보고 실망하기도 하며, 부모는 우울한 딸을 위해 자가용을 사주기도 한다. (우리가

보아온 이란 영화들에 나오는 사람들과는 많이 다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이란에서 극소수에 속할 부유한 부르조아 가족의 얘기이며, 이란에서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의 시각에서 볼 때는 서구문화에 철저하게 물든 사람들의 눈꼴사나운

얘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 책은 매우 읽을 만하고 정치적으로도 올바르다.

 (특히 여성에게) 억압적인 이슬람 국가에서 살아온 혁명가적 기질의 자유분방한 한 소녀가

이슬람적 시각에서 서구를 바라보고 다시 귀국하여 이번엔 반대로 서구적 시각에서 더욱

자유가 억압된 자신의 조국을 바라보는 이 체험담은 우리가 쉽게 접하지 못한 내용들이라

진귀하고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자유, 민주, 억압, 성과 사회 등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간략하지만 함축적인 문장들과 더불어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흑백그림들을 통해 작가는

그녀의 체험을 솔직하고 효과적으로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다시 유럽으로 떠나면서 2권은 마무리되는데 뒷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 출판된 모양이다.

어른으로 성장한 그녀가 유럽에서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자못 기대된다.

 

1권을 매우 흥미롭게 읽고는 2권의 내용이 궁금해서 영문판으로 1, 2권을 모두 구입해 읽었다.

영문으로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정도의 문장이었다. 1권이 출간 된지 1년이 넘도록 2권이

나오지 않고 있으니 1권만 읽을 사람이라면 몰라도 1, 2권 다 읽어볼 사람은 아예 처음부터

모두 영문판으로 구입해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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