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글동네의 그리운 풍경들
정규웅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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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신입생 때를 돌이켜보면 온통 후회투성이지만 그 중에 딱 한 가지, 내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이 하나 있다. 한국 근·현대 소설을 모두 독파했던 일! 딱히 그럴 이유가 있었던 것도,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지만 대학 첫 학기부터 도서관을 오가며 단편, 장편, 전집 등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었더랬다.

딱히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가 그때까지 교과서에서 접했던 한국문학 작품들은 일부만 인용된 상태로 읽었다는 것, 그래서 작품 전체를 온전히 다 읽은 것은 얼마 안 된다는 것, 원하던 국문과에 들어왔는데 적어도 한국문학작품들은 한번 다 읽어봐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1910년대, 20년대 소설을 시작으로 당시 한창 인기를 끌던 이문열의 전집까지 모두 완독했을 때까지 걸린 시간이 얼마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때는 읽은 기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그걸 끝까지 해냈다는 게 중요했으니까.

다만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후회가 되는 것은 그 책들을 읽으면서 왜 내가 작은 독서 노트 하나 만들지를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리뷰까지는 아니어도 간단히 메모라도 해두었다면 나 스스로에게도 좋은 자료가 되었을 것을. 작품을 읽을 때는 주인공이며 내용을 모두 기억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제목과 내용과 등장인물이 뒤섞여 한참 뒤에는 누가 누군지 혹은 어떤 내용인지조차 잊어버린 경우가 태반이다. 한없이 읽기에만 골몰했던 시간이 소중하면서도 역시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란 생각이 든다.

<1980년대 글동네의 그리운 풍경들>은 그런 점에서 더욱 의미 있게 읽힌다. 저자인 정규웅은 1960년대 글동네의 풍경을 담은 <글동네에서 생긴 일>(1999)에 이어 이번 책에서는 1980년대 글동네의 풍경을 담아내었다. 그는 중앙 일간지에서 오랜 기간 문학기자, 문화부장 등을 거치면서 겪었던 문단 안팎의 이야기들을 작가들의 일화를 중심으로 풀어나간다.

신군부의 군사 반란으로 시작된 1980년대는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격변의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1980년대 문단의 모습은 저자가 프롤로그에도 썼듯이 양극단에 걸친 어지러운 양상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글동네의 풍경은 제목의 그리운 풍경들이라는 글귀가 암시하듯 뭔가 그립고 추억에 젖게 하는 아련함이 있다. 그것은 아마도 지금보다 훨씬 정감이 넘쳤던 시절에 대한 향수이기도 하고, 혹은 젊음이란 이름으로 그 시대를 관통해온 개개인의 그리움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는 한수산, 박노해, 기형도, 조정래, 서정윤, 강신재, 정비석, 김동리, 이문구, 조태일, 이청준 등등 1980년대를 풍미한 많은 작가들의 일화가 등장한다. 이름만 들어도 그들의 작품과 머릿속에 각인된 구절들이 떠오르는 작가들이다. 기대했던 몇몇 작가들의 이름이 빠져있기는 하지만 모든 작가들을 담을 수 없는 지면의 한계로 이해된다. 책 속에 등장하는 작가들의 일화를 통해 그들을 추억하며, 오랜만에 그들의 작품을 하나씩 찾아 읽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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