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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약속
루스 퀴벨 지음, 손성화 옮김 / 올댓북스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대학에 다닐 때, 카페에 갈 때마다 디자인이 예쁜 성냥갑이 있으면 하나씩 모으곤 했었다. 하나 둘 모으기 시작한 것이 꽤 많았었는데 나중에는 결국 무심결에 버리고 말았다. 최근에 어느 중고 시장에서 옛날 성냥갑들이 나와 있는 것을 보니 그 때 버렸던 성냥갑들이 생각나 새삼 아까운 기분이 들었다. 성냥갑을 모으던 당시에는 잘 몰랐었지만 계속 모으다 보니 애착이 생겼던 모양이다.
요즘은 프라모델이나 건담 매니아가 많지만, 예전에는 우표나 동전을 수집하는 이들이 꽤 있었다. 전문 수집가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많았고, 크리스마스 때면 ‘크리스마스 씰’이란 것이 있어서 그것만 따로 모으는 사람도 있었다. 수집품의 종류가 무엇이든 본질은 마찬가지다. 즉, 어떤 물건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갖고 모으게 되고, 그 애정이 애착이 되며 심한 경우에는 욕망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사물의 약속>은 물건에 심취한 작가의 이야기이다. 작가는 마티스의 안락의자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옷장과 돌, 의자와 벨벳 재킷 등 다양한 물건에 대한 이야기를 자기 주변의 상황들에 맞춰 풀어나간다. 그녀는 전쟁과 질병으로 불안한 상황에서도 마음에 드는 의자를 사들였던 마티스의 행동을 ‘자기 세계가 흔들릴 때 사람들이 흔히 하는 행동’이라고 얘기한다.
작가는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의 말을 빌어 ‘우리가 물질주의에 빠지는 것은 대개 의식의 불안정성을 사물의 견고함으로 바꾸고 싶어하는 역설적 욕구’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좋은 구두를 신으면 좋은 곳에 데려다줄 것 같다’는 말처럼 물건의 존재가 자신이 원하는 삶이나 미래의 자아상에 대한 존재의 반영이라는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물건에 대한 애착과 욕구 저변에는 물건을 지닌 당사자의 잠재적 심리가 어떤 식으로든 들어있게 마련이다.
작가는 에드워디언 스타일의 옷장 이야기를 통해 자신 또한 ‘소유물을 버리기 위한 분투’ 중임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대개들 그렇듯이 작가 자신도 미니멀리스트처럼 단순하게 살고 싶어하면서도 물건 버리기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 중 하나인 것이다. 그녀는 너무도 입고 싶어 샀지만 맞지도 않더라는 벨벳재킷이나 직접 만든 손길이 아쉬워 버리지 못하는 핸드메이드 제품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녀처럼 나 또한 ‘맞지 않는 벨벳재킷’ 같은 소유물들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지····.
물건이 지닌 힘은 물건 그 이상이다. 물건 자체에 빠져 물질주의의 노예가 되거나 무엇이든 버리지 못해 짐에 눌려 사는 것은 곤란한 일이다. 하지만 몸과 마음이 힘들 때 ‘이타카섬의 돌’과 같은 존재가 있다면 무척 소중한 위로가 될 것 같다.
이상한 공간에서 도무지 내 것 같지 않은 고갈된 육체로, 나는 일상적인 세계와 연결되는 무언가를 갈망했다. 손으로 돌을 감싸 쥐자 그 무생물 -그냥 단순한 휴가 기념품이었건만-이 오히려 거꾸로 나를 지탱해주고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p.73 이타카섬의 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