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느리게 오는 편지 - 최돈선의 저녁편지
최돈선 지음 / 마음의숲 / 2015년 10월
평점 :
뭔가에 들떠서 한참 얘기를 하다가 잠시 숨을 고를 때가 있다.
뭔가에 쫓기듯이 바삐 걷다가 잠시 숨을 고를 때가 있다.
그렇게 잠시 멈춰서 숨을 고르는 시간은 여백이다. 앞만 보고 달리는 동안 잠시 놓쳤던 여유로움을 찾는 시간이기도 하다.
쓸 때는 너무 속도를 내도 잉크가 튀어버리고, 쓰는 속도가 너무 느려도 펜촉에 고인 잉크가 침을 흘리게 마련이어서 아주 적당한 속도를 유지해야만 한다 …… 아주 잠깐 숨을 고를 때가 있는데, 이때가 바로 문장과 문장 사이의, 문단과 문단 사이의 공간이 마련되는 시간인 것이다.
(p.31 그대의 섬에서 그대를 읽네 中)
최돈선 시인의 글은 처음 읽게 된 것은 페이스북을 통해서였다. 머리가 희끗한 노시인이 소년처럼 웃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글은 그런 그의 순수하고 맑은 심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호준 작가를 알게 된 것도 그즈음이다. 페이스북에서 ‘저녁편지’, ‘아침편지’로 번갈아 올라오는 두 분의 글은 마치 아침저녁 안부를 묻는 것처럼 따스했고 정감이 있었다. 두 분은 안부 묻듯 건네던 편지들을 묶어 <느리게 오는 편지>와 <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라는 책을 나란히 내었다.
‘저녁편지’를 묶어 낸 최돈선 시인의 책에는 치매 걸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이 녹아있고, ‘숨겨둔 애인’ 같은 아내에 대한 사랑이 들어있고, 어린 시절의 추억과 만나는 사람들, 지나온 풍경들에 대한 단상이 담겨있다. 시인은 아무렇지 않은 듯 심드렁한 표정으로 두런두런 얘기를 풀어낸다. 하지만 어머니에 대한 얘기를 읽다 보면 금세 마음이 촉촉해지고, 어릴 적 개구지게 장난치던 얘기를 들으면 같이 미소가 지어진다.
책을 읽다 보면 어떤 책은 단숨에 읽고 지나는가 하면, 반대로 곱씹듯이 느릿느릿 읽게 되는 책이 있다. 이건 글이 잘 읽히고 안 읽히고의 차이와는 또 다르다. <느리게 오는 편지>는 제목에서 풍기듯 느린 책이다. 잠시 숨을 고르면서 천천히 읽으면 좋을 책이다. 그러면서 ‘문장과 문장 사이의, 문단과 문단 사이의 공간’에서 거닐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