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회이명

용회이명 - 영화 ㅣ 인문학 수프 시리즈 2
양선규 지음 / 작가와비평 / 2013년 5월

책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는 인문학 고전이나 고사성어와 관련된 책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책 소개를 보니 뜻밖에도 영화에 대한 책이란다. 영화를 재해석하는 책이야 종종 접하지만, 왜 굳이 뜻도 얼른 와닿지 않는 한자어를 썼을까 하는 의문이 얼핏 들었다. 그래서 다시 살펴보니 ‘인문학 수프’라는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이다. 저자는 이전에 <장졸우교>라는 제목으로 인문학 수프 시리즈1-소설편을 출간했고, 이 책은 그 두 번째인 ‘영화’편에 해당한다.

저자는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영화라는 현대 예술의 총아는 충분히 인문학의 소재가 될 수 있다’고 전제하며 영화를 통한 인문학적 가치를 다루고 있다. 저자의 말이 복잡하기는 하지만, 인문학이란 분야를 막론하고 생각과 창의력이 바탕이 된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되, 저자는 그것을 '어두운 곳에서 빛은 빛난다'는 뜻의 ‘용회이명(用晦而明)’이란 말로 표현한 듯하다.

저자는 책에서 “최종병기 활”, “올드보이”, “원초적 본능”, “고양이를 부탁해”, “터미네이터” 등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들과 “해를 품은 달”, “신데렐라 언니” 등 드라마도 함께 다루고 있다. 그런데 처음 접하는 저자의 책이라 익숙하지 않았던 때문일까? 목차를 볼 때도 그랬지만, 책을 읽으며 계속 의문이 들었던 것은 ‘수록된 작품들의 선정 기준이 뭘까’ 하는 점이었다. 물론 장르를 막론하고 폭넓은 작품을 다루려는 저자의 노력은 높이 살만하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그 안에 담긴 담론을 찾아내려는 노력은 영화를 단지 재미나 흥미로 보는 일반인의 시각과는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책을 읽으며 아쉬운 것은 책을 관통하는 주제가 딱히 잡히지를 않는다는 점이었다. 종합예술인 영화는 다양한 분야에서 각자의 시각으로 재해석이 가능하고, 대개의 경우 한 가지 주제로 관통해서 다루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책의 경우, 다 읽고 나서도 다른 이에게 ‘이 책은 이런 내용이다’라고 한 마디로 설명해주기가 쉽지 않다. 그것이 인문학이라는 광범위함 때문인지 혹은 저자의 역량을 따라가기에는 내 독서 내공이 부족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란 다루기에 따라서는 그 자체로 재미있고 다양한 얘깃거리가 넘쳐나는 소재다. 하지만 책의 내용 대부분이 어려운 얘기로 빙빙 에둘러 표현되다 보니 읽는 재미도 좀 반감된 느낌이다. 책 소개에서 말하듯 ‘소통되지 못하는 인문학은 더 이상 인문학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독자의 이해와 소통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자의 독서력도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독자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는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아마도 시간이 좀 더 지난 뒤에 읽으면, 지금보다는 한 발짝 가까워질지도 모르겠다.